2009. 4. 3. 01:40

싸움의 방식

목수정씨가 <레디앙>에 올린 문제의 글을 읽은 순간 열이 뻗쳤는데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정명훈이 쏟아낸 발언들 때문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꼭지가 돌아서 냉정하게 대처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목수정씨는 너무 기가 막혀서 제대로 쏴붙이지도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 정도면 현장에서 침착하게 잘 참고 대응했다고 본다. 나였다면 쌍욕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두번째는 목수정 씨의 글 때문이다. 현장에서 발휘한 놀라운 인내심을 일거에 무화시킬만한 '자해행위'였다. 읽다보니 한숨만 나왔다. 어째서 이런 글을, 글에 쓸어담은 감정표현만으로도 수십배의 역풍이 몰아칠게 뻔한데! 나중에서야 밝혔지만 애초에 내부회람용의 글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 물건을 '날것'으로 언론에 공개한 것 부터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늘 훑어보니, 블로그에서 늘 '간지'를 강조하는 어느 청년좌파 선생님께서는 "닥치고 약자 편"을 외치시며 강자와 약자를 명확히 구분하라며 훈장질을 하고 계신다. 그 지당한 말씀에 짜증이 솟구치는 건, 정명훈의 '이념적 커밍아웃'에 가려 정작 예술노동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증발하고 있는 지금의 구도를 우려하는 사람들까지 졸지에, 그의 단순명쾌한 이분법 속에서는 '정명훈 연대세력'이 되고 만다는 점 때문이다. 대체 지금 예술노동자에 대한 문제의식을 휘발시키는 쪽은 누구인가? 목수정을 비난하는 사람들? 틀렸다. 정명훈과 목수정의 발언을 열심히 비난하거나 열심히 옹호하는 사람들 전부다. 약자와 연대해야 한다는 글 하나로 피아가 일거에 구분되고 상황이 단박에 정리되는 줄 아는걸까. 그러나 현실은, 늘 그렇지만 그리 간지나게 흘러가지 않는 법. 단언하건대 그런 방식으로 정명훈과의 전선에 집중하면 이 싸움은 필패다.

이제와서 새삼 목수정씨의 실수를 다시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물통은 이미 엎어졌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큼은 지적해두고 싶다. 싸움을 시작하려거든 우리편 상황을 먼저 살펴야한다는 거다. 합창단 노조는 금속노조가 아니다. 노조라고는 하지만 노동자의식이 명확한 사람들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나 마찬가지다. 노조를 처음 세우려는 사람들이 극도로 조심하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내부에 결속력이 생기고 역량이 어느 정도 자라나기 전의 일정 기간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싸움을 섣불리 키우면 내부구성원들이 크게 동요하면서 조직이 순식간에 박살난다. 노조는 파업과 투쟁 속에 단련된다지만, 단련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초체력이 있어야 한다. 갓난 아기 무림고수 만든다며 철사장시키면 손가락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이번 건의 경우, 정명훈과의 싸움으로 비화시킨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정명훈과의 싸움이 아직 결속이 약한 내부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 치명적인 문제다. 실제로 합창단 노조가 몸을 극도로 사리고있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이 싸움이 완벽한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절망하기엔 이르다. 객관적으로, 지금은 전선이 이원화된 상태다. 합창단 노조와 사용자와의 '육상전', 그리고 문화권력자 정명훈 및 그의 지지세력과의 '공중전'. 전선이 이원화된 만큼 대응도 이원화해야 한다. 어설프게 전선을 합치다가는 같이 피박을 쓰는 수가 있다. '육상전'에는 이 방면의 선수들이 가능한 빨리, 다수가 결합해서 내부성원들의 불안을 다독이고 조금이라도 힘을 줄 수 있는 이벤트 등을 기획하면 좋겠다. 현장투쟁이나 법리적 문제들 역시 일사불란하게 정리하고 쉬운 언어로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다. 공중전, 다시말해 음악계의 문화권력자 정명훈과의 싸움은 물론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긴 하지만 새로운 팩트가 나오지 않는 이상 오래 가기 어렵다. 목수정씨의 글에 불만이 있는 좌파들도 상당수 있는 걸로 아는데 나올 얘기들은 대충 나왔으니 논란을 더 키우기보다 이쯤에서 자제하는 게 좋을 성싶다. 정명훈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싸움을 걸어오면 단호한 입장(목수정 씨와 대체로 동일한 입장)을 피력하되 먼저 나서서 판을 키우지는 않는 게 좋다. 정명훈은 다시 깔 기회가 올테지만, 합창단 노조는 한번 붕괴되어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투쟁도 좋고 연대도 좋은데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움직였으면 좋겠다.
2009. 4. 2. 14:44

오아시스, 국카스텐


-어제 오아시스 내한공연에 갔다. 그 비싼 R석 표를 여친사마께서 하사하셨더랬다. (내가 남복은 몰라도 여복은 좀 있는듯) 오아시스는, 뭐, 브릿팝의 적자라느니 비틀즈의 직계라느니, 아무튼 메이저 중의 초메이저이긴 한데, 나는 아무리 들어도 '그 노래가 그 노래' 같은지라 별로 관심은 없었다. 이번 공연에 들려줄 노래도 미리 한번 들어봤다. 이건 뭐, 다 똑같잖어! -_- 딱 하나 <The importance of being Idle>이란 곡만 좋았다. '빈둥대기의 중요성'이라니, 제목도 아주 맘에 드는데다 일단 전주부분이 완전 투쟁가...자가자가장 자가자가장 쾅쾅쾅...  아무튼 공연장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엘 갔는데 북적북적, 백인종 반 황인종 반이다. 큰 기대 안하고 착석. 연주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근데 웬걸 초반부터 기냥 앞만 보고 냅다 달리는 광견경주마같은 사운드. 나도 모르게 방방 뛰고 있었다. (그럴거면 스탠딩석으로 하지 왜 지정석을...) 열몇 곡을 쉬지않고 달려주시는데, 나중엔 뒷목이 약간 뻣뻣해져오면서 종아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헐 나도 늙었구나. 잠깐 쉬려고 좌석에 앉았는데, "자가자가장 자가자가장 쾅쾅" 앗, 나왔다. 또 일어서서 열광. 공연 말미에 앵콜송으로 "한국팬들만을 위한 곡" 어쩌구하며 <Live forever>를 노엘 갤러거가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불렀다. 대천사 가브리엘같은 후광과 작살나는 간지에 울 여친사마 포함 여성팬들 다수 혼절. 이 밴드, 앨범보다 라이브가 1만배 낫구나! 벌써 마흔줄인 멤버들은 여전히 씩씩해서 보기좋았다. 정말 한 10년만에 콘서트에서 잘 놀았다. 쌩유 여친사마!

-요즘 국카스텐 노래를 듣고 듣고 또 듣고 있다. 얘네들 물건이다. 몇몇 노래는 들을 때마다 짜릿짜릿할 정돈데 사이키델릭한 음색과 억눌린 증오를 토해내는 듯한 보컬이 참 맛깔스럽게 어울린다. 가끔 싼티나는 사운드가 비어져 나오고 편곡이 조금 미숙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가난한 밴드의 숙명...돈 벌어서 장비와 뱃속에 기름칠 좀 하면 나아질 게다. 그나저나 제일 잘 알려진 노래인 '거울'이 노래방에 떴다고 한다. 간만에 목에 낀 녹을 벗겨낼 때가 온 것 같다. 근데 이거 샤우팅하다 마이크에 각혈하는 거 아녀?
2009. 4. 2. 12:18

청산해야 할 '지적 청산주의'

한국언론이, 그리고 몇몇 유명 지식인들이 지식소매상 노릇을 할 때 종종 노출하는 고질적인 병폐가 있다. '청산주의' 경향이 그것이다. 혹은 '지적 종말론'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현실이 워낙 답답하니 심정적으로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광야에서 백마를 타고 나타난 지적 초인'을 기다리는 소박한 바람이 일부 언론과 지식인의 과장과 결합해서 어떻게 환멸의 무한루프로 이어지는지를 우리는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목격해왔다. 이제는 좀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서구의 지성을 소개함으로써 대중의 교양주의를 만족시키는 일도 중요하며 그 속에서 영감을 끌어내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이런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우리가 발딛고 선 현실과 정밀하게 결합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 사상이 우리 현실의 어떤 지점에 결합될 수 있고 어떤 지점에서 결코 결합될 수 없는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는 XXX의 시대!"류의 발언이 태연히 튀어나오는 것이다. 시대적 전환기라고 사람들이 떠들어댈수록 매체와 지식인은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발언해야 한다. 언론이니까 그 정도 과장은 허용되어도 괜찮다는 허술한 사고는 이제 쓰레기통으로 던져넣어야 한다. 지금 매체일반에 걸쳐 신뢰의 위기가 닥친 걸 보면서도 그런 얘길 하는 것은 단지 나태한 딜레탕티즘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아카데미가 이닌 저널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과장된, 혹은 도발적인 레토릭이 허용되는 건 구체적 근거가 확보되었을 때나 실천적 의미가 명백한 때로 엄밀히 한정되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저런 식의 지식유통이 공중화장실 벽면에서 매월 업데이트되는 '좋은생각'과 구조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는 XXX의 시대"라는 단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앞으로는 OOO의 시대"로 대체될 뿐이다. 정작 XXX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그러나 힘들고 폼도 안나는 일에 우리는 여전히 눈감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우리가 서있는 바로 이곳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는 것. 그리고 그 질문에 소박하되 전복적인 대답과 도발적이되 구체적인 전략을 하나씩 하나씩 보태어가는 것.
2009. 3. 29. 15:37

장기하가 소비되는 방식


장기하에 대한 열광은 이해가능한 사건이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아주 멀지만 그의 일부 노래에는 분명 독특한 페이소스가 담겨있다. 나에게 언제나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래서 내 손발이 막 오그라드는 그의 자기연출 역시, 보는 이에 따라서는 참을 수 없이 귀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의 장기하는 '유니크한 존재'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장기하에 대한 기성언론을 포함한 미디어 일반의 과도한 사회적 의미부여를 정당화해주진 못한다. 그가 88만원 세대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데 대해 장기하 스스로가 인터뷰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순전히 나의 직관에 불과하지만, 장기하 현상의 사회적 의미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88만원 세대가 아니라 기성세대의 주이상스에 더 닿아있다는 점이다. 구매력, 문화자본, 상징자본을 가진 30대 이후 세대에게 달콤쌉싸름했던 자기 학창시절의 추억과 감수성을 적절한 형식으로 환기시키는 것이다. 기성세대와 언론은 이를 다시 특정세대의 서정성으로 환치시키지만, 글쎄, 정말 그런지 의문이다. 서민들이 자신의 삶과 하등 무관한 재벌가의 연애담을 상상적으록 구성한 통속드라마에 탐닉하는 것은 그저 무지몽매해서가 아니다. "저 사람들도 사는 건 다 비슷하지 뭐"라는 환각 혹은 동일시를 경험하기 위해서이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획득하기 쉬운 쾌락의 하나여서다. 서민들은 리얼리즘 이란 이름 하에 자신의 지리멸렬한 삶이 날것으로 전시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장기하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상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지점에서 묘한 역설이 발생한다. 장기하가 서울대이기 때문에 그 루저감성이 기성세대와 제도권에 더 편안하게 추인받을 수 있고, 반면에 서울대이기 때문에 그 루저감성을 계속해서 의심받게 되는 역설. 비루한 현실은 추억될 때만 아름답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보자.  세계의 비참은 '매개'되고 '재구성'될 때에만 소비될 수 있다. 실제로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간에 의해 비참한 현실이 직접 폭로되는 것은 쾌락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법이다. 그런 사건은 숭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장기하를 '88만원 세대의 대표가객' 등으로 규정하거나 '포크락 리얼리스트'로 만들어버리는 건 분명 억지스런 규정이지만 그 자체로 일말의 진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2009. 3. 26. 13:01

경향신문

경향신문이 망할 것 같다는 이야기는 계속 들어왔다. 얼마 전 기자들의 2월 급여액을 간접적으로 들었는데 쇼크였다. 미디어오늘 기사를 보니까 '대포광고' 실었다가 업체측의 항의를 받고 광고를 빼는 수모도 겪었다고 한다. 정권에 밉보일 수 있으니 공짜광고도 싫다는 거다. 경향신문이 진보적인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건 사실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몇년 전부터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한겨레보다 경향이 낫다"고 할 때 한번도 동의한 적이 없다. 과거의 경향이 어떤 후진 기사를 써왔는지 알고 있기도 하거니와 짧은 기간 사이 논조의 진폭이 심한 매체는 좀 오래 지켜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매체의 신뢰성은 오랜 기간 축적된 일관성에서 나온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경향을 지켜볼 기회조차 박탈당할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이다.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매체가 중도에 쓰러지는 비극만큼은, 정말이지 보고싶지 않다. 경향에 특별히 애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진보적 목소리를 내던 시기의 경향을 읽으며 기자를 꿈꿨을 사람들이 있어서다. 촛불을 맨처음 들었던 소녀들이 경향신문에 기자로 들어가서 써낼 빛나는 기사들을 볼 기회가 영영 사라지는 것, 그것이 나는 무엇보다 두렵다. '싹수 있는 루키'들은 어느 시대, 어느 진영에나 희귀하다. 그들이 중요한 선택지 하나를 잃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큰 손실이다. 경향신문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자구책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이번 재정위기는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혹독하다고 한다. 이미 자본잠식이 큰 상태이고 팔아치울 부동산도 없는 걸로 안다. 일간지 구독자 수가 늘어날수록, 그러니까 신문을 더 찍을수록 손해라고 한다. 살아남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믿는 건 '한국땅에서 중앙일간지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부질없는 속설 뿐이다.
2009. 3. 12. 08:57

촛불의 서울중심주의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가 출간됐다고 한다. 2008년을 달궜던 거대한 시위문화에 대해 찬양과 회고 이상의 성찰을 보여주려 한, 의미있는 기획이란 생각이다. 촛불집회에 대한 여러 가지 논점이 있을 수 있지만, 내 생각에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부분은 '촛불의 서울중심성'이다. 1987년 민주화항쟁에서 지방의 대도시 및 주요도시는 서울 이상의 격렬한 투쟁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2008년의 촛불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촛불의 서울중심성은 당시 이명박이 상황을 낙관하게 만든 핵심요인의 하나가 아니었나 한다. 결과적으로, '명박산성'으로 광화문을 고립시키는 작전이 성공했으니 말이다. 물론 지방에서도 크고작은 집회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시민단체나 지역 운동권들이 조직한 것이었고, 서울과 같은 양상을 보이지는 않았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초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무관심에 가까웠다. 이것은 미국산 쇠고기라는 이슈의 특성 때문인가, 아니면 시위주체의 특성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촛불집회라는 형식(비폭력과 평화시위에 대한 강박 등등) 때문인가. 촛불이 '중간계급적 저항'이란 규정에 나 역시 동의함에도, 그것이 어째서 이렇게 확연한 국지성을 띠게 되었는지에 대해 의외로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지방에도 중간계급은 많은데 말이다. 따라서 촛불이 단순히 중간계급적 시위라는 규정은 불충분해 보인다. 촛불의 새로움은 중간계급적 저항이라는 점이 아니라 그 분열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점에 있다. 촛불의 서울중심성은 중간계급 내부의 문화적-지역적 분절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굳이 비유하자면, 촛불의 에너지라는 것은 (중간계급의) 핵융합이 아닌 핵분열의 에너지가 아니었나 싶은 거다. 좀더 현장취재를 하고 분석해보면 흥미로운 지점들이 보이지 않을까.
2009. 3. 10. 16:52

마이클 폴라니


http://en.wikipedia.org/wiki/Michael_Polanyi

어떤 작업의 사전조사 때문에 이런저런 글을 읽다가 마이클 폴라니에 대해 알게 됐다. 과학철학자인데, 내가 학부 때 과학철학이나 지식사회학 수업 들을 때는 나오지 않았던 이름이다. 아니, 워낙 수업을 많이 빠져서 몰랐을 수도...-_-(내 기억에 그 수업 둘다 학기 막판에 출석일수 미달로 F)
암묵지 개념을 탁월하게 발전시킨 학자이고, 과학지식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지식이 인식주체의 참여와 통합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개념으로 제시된 것이 ultimate self-reliance다. 즉, "믿어라, 그래야 보인다"는 소리다. 천재적 통찰을 보여준 학자치곤 라카토스나 파이어아벤트만큼 한국에 잘 알려지진 않은 것 같다. 그 유명한 칼 폴라니가 그의 친형이다. 형제라서 그런지, 경제학과 과학을 바라보는 인식틀이 서로 유사하다는 느낌이다.

2009. 3. 8. 22:54

원고 마감

일본 계간지 <현대의 이론>에서 청탁한 원고를 편집자에게 보냈다. '신자유주의 이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특집에 들어갈 글이다. 번역을 전제한, 또 시의성 강한 글은 맥락설명과 용어사용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쓰기가 정말 까다롭다. <88만원 세대> 일본판 번역과정에서도 느꼈지만, 일본의 편집자는 정말 편집증적 인간들이다. 숨이 턱턱 막히게 꼼꼼하다. 아무튼 원고작성 과정에서 워크 셰어링 관련된 해외자료를 인터넷으로 좀 검색해보았다. 내가 얼마 전에 전경련의 일자리 나누기 개념을 일자리 쪼개기(job split)라고 이름붙인 적이 있는데, 사실 이건 즉석에서 끼워맞춘 단어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외국에선 심심찮게 상용되고 있던 용어였다. 정확히는 job splitting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편집자 말로는 용산참사(청와대의 이메일 코미디까지 포함해서)가 일본쪽 언론에는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원고 후반부에 사건의 전말을 알기쉽게 요약정리해 주었다. MB정권의 이 모든 미친 짓들은 글로벌하게 공유할 필요가 있다. 아래는 대졸초임삭감 관련 챕터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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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일본의 경단련(經團聯)과 유사한 단체가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약칭 ‘전경련’이 그것이다. 전경련은 2009년 2월 25일, 30대 그룹 채용담당임원들이 참석한 ‘고용안정을 위한 재계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전경련은 대기업 신입사원 임금을 최대 28% 삭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계획이 “인건비 절감을 통해 인턴직원을 더 뽑기 위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라 밝혔다. 신입사원의 임금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대기업 임원진의 연봉삭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며칠 후 공기업 경영진들도 ‘신입사원 임금을 최대 30% 삭감할 것’이라 선언했다.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금융기관과 민간기업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그러나 전경련의 발표는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스스로 명시한 “고용안정”이라는 목표와 “인턴사원을 더 고용하겠다”는 수단은 명백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인턴사원’은 풀타임 비정규직 노동자를 의미한다. 요컨대 전경련은 불안정 노동자(비정규직)을 고용하기 위해 신입사원의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정말로 ‘고용안정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라면 잡 셰어링(job sharing)이 아니라 워크 셰어링(work sharing)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게 정확하다. 워크 셰어링은 잘 알려진 것처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의 안정성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고용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것은 사민주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고 성공사례도 적지 않다.

언론 등에서는 보통 잡 셰어링과 워크 셰어링을 엄밀하게 구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곤 하지만, 이번에 한국의 전경련이 발표한 ‘잡 셰어링’은 정규직 신입사원의 실질임금을 삭감해 비정규직을 고용하겠다는 것이므로 실은 ‘일자리 쪼개기(job splitting)’라 이름 붙여야 적절하다. ‘일자리 쪼개기’는 ‘노동의 유연화’ 또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의 한 방식으로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고용형태이다. 따라서 고용의 질과 안정성이 글로벌 이슈로 등장하고, 워크 셰어링의 성공사례가 축적되었으며, 신자유주의의 한계가 더욱 명확해진 현재 시점에서 이런 방식을 고용문제의 해법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은 이미 오래 전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가 정규직을 압도했고 OECD 회원국 중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각한 사회다. 국가경제를 위축시킬 정도로 엄청난 비정규직 문제 때문에, OECD, ILO, IMF 등 국제기관으로부터 강력한 경고를 끊임없이 받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전세계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말하고 있는 지금, 비정규직 차별이 어떤 국가보다 심한 한국에서 전경련은 그렇게 ‘더 강한 신자유주의’를 외치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나 기업집단이 자신의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하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그런 책임전가의 방식 중에서도 최악의 형태라 할만하다. 특정 세대, 다시 말해 아직 노동조합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예비 노동자인 20대 청년들에게 경제위기의 고통을 모두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삭감이 이대로 진행될 경우, 20대의 생애전체소득은 심각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양질의 일자리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탓에 임금삭감을 하지 않더라도 20대는 ‘역사상 가장 가난한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일본에서도 번역 출판된 <88만원 세대>는 그런 20대에 관한 책이었다. 한국의 기업집단은 경제위기를 핑계로 또다시 그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기업집단의 돌출행동이 아니었다. 경제전문지인 <머니투데이>의 2월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잡 셰어링’ 논의의 진원지는 청와대 지하벙커”다. 일본의 독자들은 ‘지하벙커’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의 지하에는 전쟁상황에 대비한 지하벙커가 있는데, 몇 개월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이곳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있고, 그 사실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려왔다. 위기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각오를 보여주겠다는 ‘한국적 쇼맨쉽’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 보도에 따르면, 2009년 1월 15일 열린 제2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을 안정시켜 실질적으로 고용을 늘리는 ‘잡 셰어링’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고, “대졸신입사원의 초임을 낮추는 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한 달 남짓 지나 전경련의 발표가 나오게 된다.

2009. 3. 4. 14:22

요리와 까칠함

지인의 글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 원래 요리는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즉 까칠한 부류의 인간들이 맡아야 하는 분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한다.

1) 안전성: 인체에 직접 투입되는 물질을 다룬다
2) 예술성: 감각(시각,후각,미각,촉각 등)의 기예(arts)다
3) 통시성: 숙련과 혁신이란 모순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4) 일회성: 레시피는 존재하나 완전복제는 불가능하다

개나소나 식당 차리는 한국땅에선 이런 말조차 공염불일테지만, 어쨌든 까칠함이 가장 큰 미덕인 분야가 바로 요리라고 생각한다. 난 전혀 까칠하질 못해서 포기.^^;

2009. 3. 1. 15:29

20대는 어디서 싸워야 하는가


대졸초임삭감은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반복된 '20대 죽이기'의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이에 맞서겠다 마음먹은 20대는 어디에서 싸워야 하는가. 전경련? 국회? 청와대? 아니다. 민주노총이다. 자본주의가 끝장나기 전까지, 계급투쟁을 해야 한다는 명제는 언제 어디서나 옳다. 그러나 그것이 '계급간투쟁'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계급투쟁의 대부분은 사실 내부에서 자신의 몫과 자리를 요구하는 계급내부투쟁이며, 그런 '교통정리'가 선행되지 않는 계급간투쟁은 시작할 것도 없이 분열과 패배를 뜻한다.

현재 한국의 조직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와 일대결전을 벌일 역량도 의지도 없다. 한편 한국의 부르주아는 이 거대하고 급박한 위기국면에서 유례없이 살벌한 생존경쟁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다. 도무지 계급간투쟁 씩이나 할만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20대 몇몇이 전경련 앞에 가서 항의해봐야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남루한 미래가 거의 확정된 이들 '불안정노동 예비군'이 어딘가에 '드러누워야' 한다면, 그 장소는 민주노총이어야 한다. 그곳에 드러누워 노래를 부르고, 함성을 지르고, 반성과 실천을 요구하고, 자신의 몫을 주장해야 한다.

한국의 20대는, 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노동자가 아닌 CEO가 될거라 야무지게 착각하고 있더라도, 예비노동자의 미래를 깡그리 파괴하는 상황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조직노동자들의 대표집단에 그런 요구를 할 권리가 있다. 아무리 그 요구와 주장이 순진할지라도, 그 행위 자체가 한국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커다란 상징효과를 연출하며 돌이킬 수 없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20대의 그런 행동을 완전히 외면하기 어렵다. 아직은 그런 감수성과 인식이 다소나마 남아있는 조직이기도 하거니와 민주노총 입장에서도 지금처럼 철저히 무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차라리 20대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나아가 20대의 설익은, 그러나 처절한 절규를 정말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민주노총은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붙잡을 수도 있을테다. 그러니 이것은 단순한 적대가 아니라 '상생전략'이다.
2009. 2. 18. 23:01

갸우뚱한 그 균형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38958.html

김진석의 <기우뚱한 균형>이란 책을 읽어보진 않아서 뭐라 하기가 그런데, 강준만은 정말 '기우뚱한 균형'이 없어서 한국사회가 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칼럼에 따르면 '기우뚱한 균형'이란 것은 그냥 중간에 서있기만 하는 중도와는 다르다고 한다. 이를테면 '우충좌돌'하는 능동태-진행형으로서의 중도주의적 관점과 태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중립적 지식인에 대한 로망이야 이해하겠지만,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이끌었던 엘리트들이야말로, 정확히 지금 강준만이 이야기하는 그 '기우뚱한 균형'류의 주장을 언제나 강조해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 궁금하다. 그리고 그 10년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도.

물론 진보진영 일각에서 툭하면 제국주의나 파시즘을 들먹이는 개념의 빈곤 혹은 레토릭의 인플레에 대해서는 나도 무척 짜증이 나지만, 그것이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나이브한 개념의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다. 강준만이 칼럼에서 결론격으로 내미는 사회적 대타협, 이것은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줄기차게 많이 나온 얘기이고, 내가 알기로 정권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시도는 실패했는가.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근본주의적 투쟁만 일삼아서? 틀렸다. 엄청난 수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정권에 힘을 실어주었다. 반면 비정규직 투쟁은 격렬해질수록 더 격렬하게 밟혔다. 매년 열리던 비정규직대회는 언제나 선혈낭자한 생지옥이었다. 그때 적지 않은 수의 이른바 중립적 지식인들이 침묵하거나 "시대가 변했는데 아직도 폭력투쟁이라니"라며 조소를 보냈다. 가장 극렬하게 싸우던 노동자 집단을 정부가 알아서 밟아주는데 부자들과 대기업들이 왜 타협을 하겠는가. 그들이 스웨덴 형 대타협에 관심있었던 건, 북유럽형 선진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직 자본을 거의 무상으로 세습해줄 권리를 공식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한국사회가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정말 알고 싶은가? 그놈의 '기우뚱한 균형'류 주장을 입에 달고살던 이들이 처음부터 '개혁'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정권초기 관료들과 기업의 아우성 때문에 자고 일어나보면 증발하던 개혁정책들이 증거다. 탄핵을 촛불로 막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만 했던가. 답은 간단하다. 그냥 편한 길로 간 것이다. 기업-우파-관료들은 직접적인 위협이었지만, 진보좌파는 실질적인 위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의 문제'를 담론전략의 문제로 전치시켜버리면 '기우뚱한 균형'과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강준만이 그리 순진한 학자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 칼럼을 통해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9. 2. 18. 20:47

기축늑약, 그리고 광어논란

어제 모 기자님과 서로 다른 출판사의 편집자 두 분과 함께 새벽까지 술을 때려먹었다. 다들 비슷한 시기 같은 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동년배인데다 '글장사'하는 사람들이라 할 얘기가 참 많았다.  내가 약간 과장된 이야기를 해버려서 술자리에 돌연 광기가 번들거리기 시작하더니 막판엔 메모지에다 각서를 써서 나에게 서명을 하라 윽박지르는 참극이 벌어졌다. 전부 술에 취해 있었으니 가능한 시트콤인데, 정작 각서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저는 2009년 안에 반드시 이런이런 내용의 책을 집필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였던 것 같다. 내가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냐"며 종이를 확 낚아챈 뒤 구겨서 어딘가에 숨겼는데 모 기자가 그걸 다시 찾아내는 바람에 결국 서명을 하고 말았다-_-;; 역시 맞고 자란 나는 그런 폭력적인 공기에 약했던 거다. 이제부터 그 사건을 '기축늑약'이라 칭하기로 한다.

사실 그날의 주된 화제는 따로 있었고 다들 공감하며 즐겁게 떠들고 마셨다. 그런데 어쩌다 광어 얘기가 나왔다. 닭도리탕 먹고 광어 얘기가 왜 튀어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자연산 광어가 확실히 양식보다 맛있긴 하고, 눈으로 쉽게 구분하는 법은 배를 보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자연산은 비교적 균질한 모래바닥에서 일정 영역을 차지하고 서식하므로 배가 민짜로 하얗고, 양식은 비좁은 공간에 서로 겹쳐진 채 길러지는 경우가 많아서 배에 얼룩이 생긴다, 뭐 이런 이야기다. 회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상식으로 통하는 이야기라서 나도 그동안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던 내용이다.

그 순간 바닷가 출신인 모 기자가 강하게 태클을 걸었다. 자연산 배에 얼룩이 있고 양식 광어 배가 민짜라는 것이다. 오잉? 그, 그럼 내가 반대로 알고 있었던겨? 워낙 강하게 주장을 해서 나도 살짝 자신감이 없어질라 그랬다(이 인간 평소에 조용조용해서 목청이 그렇게 좋은줄 몰랐다). 모 기자는 그러면서 자연산이라고 파는 것들도 사실은 양식이나 매한가지라고 덧붙였다. 자연산이라고 파는 광어가 실은 반양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은 나도 어느 정도 동의가 됐다. 치어방류로 인해 자연산이나 양식이나 종이 획일화된 점도 맞는 말이다. 자연산과 양식, 또는 양식과 반양식의 맛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종자가 달라서가 아니라 먹이의 차이라는 점에도 서로 동의를 했다. 그런데, 자연산/양식산의 구별법은 서로 반대로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래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는 비뚤어진 성격이라, 집에 와서 '광어 배'로 검색까지 했다. 나 역시 바닷가 출신이고 분유 떼자마자 각종 희귀 어패류를 섭렵해온 사람이다. 이건 자존심(?) 문제인 거다. 확인해보니 내 말이 맞았다. 물론 양식광어도 기르는 환경이 자연산과 비슷하다면 배가 민짜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산 광어의 배에 얼룩이 있다는 주장이 틀렸음에는 변함이 없다. 모 기자께서는 이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시게... (농담같은 글이니 굳이 댓글 다실 필요는 없삼)ㅎㅎㅎ 아래는 참고링크.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1&Total_ID=3156017
2009. 2. 11. 01:10

감정이입


그는 방안에서 뒹굴며 빈둥거렸다. 그의 형제 중 한 사람은 이렇게 썼다.
"가족의 충성과 결속을 종교처럼 중시하는 종족과 가문에서 태어난 것이 그로서는 행운이었다. ... 아주 점잖은 우리 고장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 그는 책을 읽으며 빈둥거렸고 다음날에도 다시 빈둥거리며 책을 읽었다."
분명히 그는 모든 것을 읽었다. 정치학 소책자, 경제학, 사회학, 루터교의 찬송가집, 고고학 논문 등등. 그러나 게으름 때문에 사회로부터 더욱 격리되었고, 더욱 신랄하고 내향적이 되었다. 성과도 없는 발명품을 만든다고 시간을 허비했고, 그 당시의 호화로운 행사에 대해 시큰둥한 논평을 했으며, 식물채집도 하고, 아버지와 이야기도 나누고, 몇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직장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 결실도 없었다. 그에게는 남에게 호감을 살 만한 세련미나 풍채도 없었다. 그가 엘렌과 결혼할 당시 여자 쪽 가족이 무척 실망하면서도 결혼을 승낙한 것은 그가 최소한 먹고 살 수는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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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된 글에 나오는 "그"는 다름아닌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훗날 베블런이 '한가한 무리들'을 해부하기로 결심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거다. 저 구절을 읽다가 너무 감정이입이 되는 바람에 쵸큼 무서웠다. 그래도 베블런은 천재였고 장가라도 갔는데...
출처는 <세속의 철학자들>(로버트L. 하일브로너, 장상환 옮김, 이마고, 2008)




2009. 2. 3. 05:46

가족들에 관한 기억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에게 다정한 분이었다. 원래 성정이 유쾌하고 정이 많은 분이기도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외항선을 타고 몇년씩 한국을 떠나있어야 했으므로 어린 아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가부장'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분이다.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고 나서 본인의 생각을 의문의 형태로 덧붙이는, 사려깊은 아버지이기도 했다. 또한 신문의 서평란을 체크하다 내 수준에 소화가 가능하다싶은 책이 있으면 즉시 사다가 내 책상에 놓아주셨다. 그러나 매를 아끼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에게 엄격한 분이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여장부였고 모든 일에 완벽주의자였다. 나에게 승부근성이나 독기, 집중력 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마 대부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리라. 아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수준이 무척 높았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치맛바람'도 상당했다. 형제가 없는 내게 늘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집에 계실 때엔 늘 내 친구들을 불러 발군의  요리센스를 발휘하셨다. 장사를 하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나를 외가에 맡겨두셔야 했기 때문에 늘 나에게 미안해 하셨다. 그러나 매를 아끼지 않으셨다.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의 이모는 내 국민학교 시절, 가족들 중 유일한 말동무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여서, 늘 집에 앉아 수를 놓아 표구점에 팔았다. 핏기없이 말간 얼굴로 한땀 한땀 소나무나 사슴 같은 영물을 수놓을 때면 나는 턱을 괴고 옆에 누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나 구창모의 '희나리'같은 노래를 흥얼대며 책을 읽었다. 내가 때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꾸며내기라도 할라치면, 그녀는 냉랭한 말투로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곤 했다. 이모는 가수들의 뒷얘기라든지 외국의 신기한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알고 있어서, 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매를 아끼지 않으셨다. 이모가 세상을 떠났던 날, 정말 많이 울었다.

큰외삼촌, 그러니까 어머니의 바로 아래 남동생인 그는, 가족들 중 나를 가장 이뻐했다. 나도 큰삼촌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다섯살 무렵에 아무 망설임도 없이, 엄마를 내버려두고 당시 외가가 있던 제주도로 삼촌을 따라 갔을 정도다. 내 유년기의 일정기간은 오직 큰삼촌과의 기억 뿐이다. 사실상 그가 이 시기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 했다.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간판에 적힌 한글을 읽기 시작하자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했다고. 나에게 일절 매를 들지 않았지만, 30cm 정도의 각목에 테입을 감아 '사랑의 매'라 적어 가족공용 몽둥이를 만든 게 바로 그라는 사실이 십여년 후 밝혀졌다.

작은외삼촌은 어린 시절 월반을 거듭하던 유명한 수재였다고 한다. 외가가 너무나 가난해서 정상적인 코스를 밟아 대학에 가지 못했다. 돈을 벌어야했기 때문에 교사가 됐고, 불과 두어살 아래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나중에 법대에 갔지만 집안형편은 나날이 나빠질 뿐이어서 오랜 꿈이었던 사법시험을 끝내 포기했다. 중학교 이후 고등학교 까지의 내 독서편력은 대부분 작은 삼촌의 영향 아래였다. 책장에는 창간 직후의 <말>지가 빽빽히 꽂혀있었고, 사회과학 서적도 많았다. 생일마다 빨간(?) 책을 선물로 받았다. 그가 나를 때린 적은 딱 한번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 무렵 우리집이 독서실을 할 때, 드나들던 뚱뚱한 여고생 누나가 있었는데 오며가며 마주칠 때마다 놀려댔다. 어느 날 작은삼촌에게 딱 걸렸다. 눈이 번쩍할 정도의 따귀가 날아왔고, 공책 다섯장 분량의 글을 써야했다. 단순한 반성문이 아니라 왜 사람의 외모를 놀림감으로 삼아선 안되는지에 대한 논술이었다.

외가에 살던 무렵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함께 계셨다. 손주를 끔찍이 이뻐하셨다는 것 외에 별로 덧붙일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가 거의 거식증에 가까웠을 정도로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께서 쫒아다니며 내게 밥을 떠먹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때만큼은 내버려 두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일제시기 일본의 명문대로 유학을 갔던 전형적인 식민지 인텔리셨는데, 건축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한량기질이 좀 지나치셔서 가세가 날로 기울었다. 내가 일곱살 무렵 천자문을 매일 외워야 했던 건 순전히 할아버지의 고집 때문이다. 다른 가족들에게 많이 맞았기 때문에 두 분 모두 매를 드시진 않으셨고 내가 매를 맞고 있을 때 단 한번도 말리지 않으셨다.


한줄요약:  많이 맞고 컸다.
2009. 2. 2. 17:58

[링크]흉악범죄자 얼굴공개 떡밥



흉악범죄자 얼굴공개 떡밥


capcold님께서 참 잘 정리해 주셨다. 갠적으론 얼굴공개 자체보다는 <중앙일보>의 얼굴공개의 변이 더 흥미로웠다능. 한국사회의 이 적나라한 외설성은 언제봐도 경이롭다.
2009. 2. 2. 02:46

[메모]정보기술과 자본-노동 관계의 재구조화


정보기술의 사용은 폭 넓은 선택조건들을 가지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노동에 대한 자본의 협상지위를 향상시킨다. 이러한 선택조건들은 너무 비싸거나 혹은 관리요청에 순응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직장에 대한 자동화; 다른 생산 단위들과 시장들과의 연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지역이나 다른 국가들로 생산시설들의 탈집중화; 상이한 그리고 일반적으로 수혜가 적은 조건들 하에서 노동이 이루어지는 다른 회사들로 생산과 유통의 하청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상황들 하에서, 자본이 필수적으로 대면적 전략을 택할 필요는 없다. 조직된 노동은 불리한 지위에서 역사적으로 설정된 표준들 이하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채택하도록, 즉 그들의 현재수준에서 직장을 유지하도록 보통 강제될 것이다. 이 점은, 새롭게 고용된 노동자들은 선배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으로 이익을 볼 수 없는 이원적 계약체계-이에 따라 노동력이 근본적으로 분절됨-와 더불어, 1980년대 동안 광범위하게 확산된 바와 같이 조합계약에서 '자발적' 임금삭감의 실행을 설명한다. 또한, 많은 사례들에서, 자본은 보다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조직된 노동이 가장 막강한 노동력의 부분들에서는 직장을 자동화하는 무기로서 기술적 변화를 이용했다.

-마뉴엘 카스텔, <정보도시>, 한울아카데미,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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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국가, 특히 한국과 일본의 정보기술화가 추진된 과정에서의 자본-노동의 재구조화 과정은 넓게 보아 위의 분석과 일치한다. 그런데 비거트와 해밀턴이 지적한 일본 기업 네트워크의 특징인 '공동체적 논리'와 한국의 특징인 '세습논리' 등과 같은 특징, 다시말해 구 제조업의 사회문화적 특징은 정보기술기업의 급격한 팽창상황에서 그리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지 않다. 일본의 제조업 고용의 쇠퇴는 괄목할만하게 느렸고 한국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매우 빨랐는데 이 차이가 양국 정보기술기업의 노사문화에 준 영향은 거의 없다. 이것이 새로운 산업형태의 급격한 확산이 가지는 고유한, 혹은 보편적인 특성인지, 아니면 그 급격한 확산으로 인한 법제도적 정비의 미흡 때문인지, 다른 요인들이 존재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2009. 1. 30. 11:04

88만원 세대론이 우물에 빠진 날

<레디앙>에 실린 글 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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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론이 우물에 빠진 날

*존칭을 생략하니 양해 바랍니다.


88만원 세대론이 결국 우물에 뛰어들고 말았다. 그것도 <조선일보>가 파놓은 '독우물'에. 오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최근 일어난 어떤 사건 때문이다. 글이 좀 긴 편이니 사태의 전말을 일단 한 줄로 요약하자. '<조선일보>가 한껏 띄우고 있는 어떤 세대담론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우석훈이 <한겨레> 지면을 통해 격려와 지지를 보낸 사건'이다. 사실 극우언론이 진보담론을 멋대로 전유하고 이용하는 게 어제오늘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모종의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가지고 미리 세팅해놓은 담론구도에 다른 사람도 아닌 우석훈이 자진해서 발을 담갔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짚어두자. 나는 88만원 세대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으로서 어떤 소유권을 행사하려는 건 아니다. 그 책을 읽은 개인들이 어떤 식으로 이 말을 소화하든 그것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한 개인이 아닌 <조선일보>라는 언론매체에서 기획연재를 맡은 변희재가, <88만원 세대>의 우석훈을 간접 동원해서 88만원 세대론을 기묘한 방향으로 비틀어놓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웃고 넘어갈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이런 글을 써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한동안 함께 작업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지식인인 우석훈에게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이 영 불편하고 어색하다. 공저자 두 명의 시덥잖은 갈등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이쯤에서 '전선'을 좀 명확히 그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무엇보다 나는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이 아직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조금 더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은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일말의 진보적 의미를 읽어냈을 많은 독자들에 대한 작은 '애프터 서비스'다.


변희재의 '노이즈 마케팅'


'실크로드 CEO포럼 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는 변희재는 <조선일보>에 '실크세대를 찾아라'라는 기획연재를 진행중이다. 변희재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테니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TV 탤런트 분석서 <스타비평>이 데뷔작이며 2000년대 초반 '안티조선' 논객으로 활동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안티포털 운동가'로, 요즘엔 <조선일보> 논객으로 활약중인 인사다. 최근작으로는 <코리아 실크세대 혁명서>가 있다.


그가 <조선일보>와 함께 최근 열심히 밀고 있는 담론이 소위 '실크세대론'인 것 같다. 자신이 소개한 글에 따르면 '실크세대'란 "70년대 이하 생들로 386세대들과 달리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나가는 대한민국의 젊은세대를 말한다"한고 한다. (아래 링크 참고)


낡은 386은 가라 20-30대 실크세대가 간다

실크세대론과 88만원 세대론의 소통을 위하여

 

아무래도 실크로드 CEO포럼이란 단체에서 따온 말인 것 같다. '실크로드 CEO포럼'은 그럼 뭘까.


"71년생 이하의 기업가들의 조직으로서 청년 창업의 붐을 조성하기 위해 2007년 6월 3일 출범하였다. 기업가들 이외에도 71년생 이하 대중문화 평론가, 시의원, 언론운동가 등등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하여 명실상부한 세대조직으로 성장하고 있다."


사실 이걸 읽어봐도 뭐하는 단체인지 감이 오질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저기에 '건설업체 사장'만 끼어있으면 어디 지역토호모임으로 손색이 없다는 점이겠다. 변희재는 2008년에 나에게 몇번 연락을 시도했다.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게 2007년 8월이니, 책이 나왔을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88만원 세대 담론이 시쳇말로 확 뜨고나자 연락을 취해왔다는 이야기다. 아마 우석훈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 나는 그즈음 변희재가 어떤 단체를 꾸려 모종의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별 반응이 없자 그는 이번엔 "88만원 세대론을 폐기처분해야한다"며 실크로드CEO포럼 명의의 공개토론서를 어딘가에다 발표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그 글을 나도 읽어보긴 했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대꾸하기조차 민망한 글이었다. 요컨대 "88만원 세대는 386을 예찬하고 20대를 폄하하는 나쁜 용어이니 폐기하라. 그리고 비겁하게 숨지말고 우리와 같이 세대명칭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정도다.


내 잠정적 대답은 "고생하시는데, 일단 책부터 끝까지 읽으셔야죠"였지만, 사실 그런 대답조차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변희재의 수법은 똑똑한 중학생도 알고 있는 그것, '노이즈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만약 변희재가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었다면 내 대답은 달랐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지난 수년간 곳곳에서 그 수법을 너무 많이 써먹는 바람에 소위 이 바닥의 알만한 사람들은 전혀 '낚이질' 않게 됐다는 거다.


‘근성남’ 변희재, 우석훈을 낚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변희재가 하고싶은 말은 결국 "88만원 세대 대신 내가 만든 실크세대를 써야한다"는 소리가 전부다. 설령 토론을 한다해도 386에 대한 비난, 세대명칭에 대한 공방 밖에 나올 게 없다. 실크세대라는 명칭을 홍보하기 위해, <조선일보>가 그토록 싫어하는 386세대를 비난하기 위해, 88만원 세대가 일방적으로 동원될 뿐이다. 그러면 책의 핵심이라 할 20대들이 처한 구조적 모순들에 대한 논의는 연기처럼 날아갈 게 분명하다. 그런 사태야말로 상상가능한 최악의 경우다.


그런데 1월 14일자 <한겨레>에 실린 우석훈의 칼럼이 '최악의 경우'를 현실로 만든 것 같다. '20대 당사자 운동과 변희재의 실크세대'라는 글이 그것이다. 그동안 변희재는 박권일보다 훨씬 학식과 명망이 높은 우석훈을 집중공략 했을테고, 우석훈이 변희재의 근성과 열정에 감동을 했거나, 아니면 귀찮아서라도 한 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사실 이 글이 실크세대론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이라 보긴 어렵다.  텍스트 자체의 밀도를 봐도 변희재의 활동에 대한 그저그런 수준의 '덕담'이라 보는게 공정하리라.

하지만 이 심심하기 짝이 없는 글 하나가 가져올  효과는 작지 않다. 88만원 세대론은 이제 조선일보의 실크세대 기획의 '부록'으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또한 이것이 우석훈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응이라 할지라도 변희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이 글을 써먹을 것이다.


'20대 진보 활동가'의 근황


우석훈은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변희재와 그의 동료들이 ‘실크 세대’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운동처럼 하는 것도 일종의 당사자 운동이다.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운동에는 좌파 버전이 있을 수 있고, 우파 버전이 있을 수 있고, 또 전혀 상관없는 중도 ‘소통 그룹’이 있을 수 있다. 창업 운동이 먼저 움직인 형국이고, 다른 운동은 이제 막 움을 틔우는 상황이라는 게 내가 이해하는 현 상황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확인해본 상황은 우석훈의 판단처럼 한가롭지가 않다. 특히 우석훈이 관여한 20대 당사자 운동들은 변희재의 '그 단체'보다 먼저, 더 왕성하게, 더 20대답고, 더 진보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악전고투, 아니 지리멸렬하고 있다. 20대 당사자 운동단체인 '희망청'의 경우를 보자.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힘을 얻어 뭔가 해보려했던 20대 활동가들이 "우리가 무슨 이벤트대행업체냐"며 자괴감에 빠져있다가 최근 한 명만 빼고 전원 그만뒀다고 한다.


'20대 저자' 데뷔 프로젝트 역시 참담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알기로 애초에 우석훈이 관여한 팀이 세 개였다. 그런데 정작 구성원들은 자기들 외에 다른 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게되어 '설마 우리를 경쟁시키고 있었던 건가?'라는 의심까지 했다고 한다. 내가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두 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상 공중분해됐고, 나머지 한 팀이 출판사 담당 편집자의 개인적 열정과 지원에 힘입어 겨우 살아남은 상태다. 물론 책이 언제 나올지, 나올 수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나 역시 이 팀에 '코가 꿰어' 끝까지 함께 가야하는 상태다. 나는 이들 당사자운동이 지리멸렬하는 것이 우석훈의 책임이라 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 우석훈이 <조선일보>-변희재와 함께 'CEO 운운'할 때는 아니지 않은가, 묻고 있는 거다.


88만원 세대론의 '약한 고리'


위에 적은 것들이 이번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핵심이라 할 수는 없다. 심지어 88만원 세대가 실크 세대가 되든, 앙고라 세대가 되든 그것조차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근본적인 문제는 <88만원 세대>가 글자그대로의 '세대론'에 갇혀버리는 상황이다.


처음 우리가 <88만원 세대>를 기획할 때 나는 20대, 구체적으로 20대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기자생활을 할 때 가장 열심히 썼던 기사들이 비정규직, 저학력, 여성노동자 문제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도 작용했다. "열악하고 위험한 지역일수록 봉사점수가 높아 취업에 유리하다"며 전쟁중인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는 어느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그 아득한 느낌, 내 안의 무언가가 송두리째 무너지던 기억이 그것이다.


우석훈은 "20대보다는 10대에 희망을 걸어야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었고, 실제로 <88만원 세대>는 10대의 동거권 문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우석훈의 통찰이 20대 문제를 분석할 때도 날카롭게 발휘되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공히 세대론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계급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책이 얼마나 팔리지 않을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떠올린 방책이 불안정노동의 전면화라는 다분히 계급적인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糖衣)'를 입힌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우석훈은 우파들조차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하려면 '세대'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그의 영민한 지적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그 작업이 말처럼 순조로울 리 없었다. 세대론에 집중하다보니 세대 내부의 양극화, 20대와 50대에서 쌍봉형으로 나타나는 불안정노동과 같은 주요 문제들이, 언급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아쉽다. 그래도 새로운 형태의 계급모순들을 세대모순의 형태로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힘이 센 세대, 이른바 386세대 비판은 필수적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변희재가 주장하는 '이게 다 386, 특히 진중권 때문이다' 식의 억지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88만원 세대가 뚫어내야 하는 벽은 386세대 개개인이 아니라, 386세대가 싸우며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20대에게 굴레와 질곡이 되어버린 사회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88만원 세대론은 단순히 세대끼리 싸움붙이는 담론 외에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88만원 세대론이 진짜 ‘소통’해야하는 사람들


<조선일보>는 괜히 1등신문이 아니라서 <88만원 세대>가 출간되자마자 이 부분을 치고들어왔다. 2007년 8월 24일자에 실린 박해현 문화부 차장의 칼럼 '포스트 386의 봉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잠깐 그때로 돌아가보자.


"현실 공간에서 386과 포스트 386은 경쟁사회의 원리에 따라 한판 승부를 벌일 때가 됐다. 정치·사회적으로 기득권 세력이 된 386세대가 포스트 386세대를 위해서 한 일이 없다는 비판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나온다. 386과 포스트 386의 투쟁은 정치적 이념적 차원에서 이른바 ‘진보 정권 10년’에 대한 판정을 대행한다."


나는 이 칼럼 하나에 <조선일보>가 세대론에 집착하는 이유가 모두 들어가 있다고 단언한다. 이 칼럼의 대단한 점은 이후 무수히 쏟아지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세대론이 노리는 부분까지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변희재의 '실크세대론' 같은 글을 무려 기획연재물로 실어주는 건 <조선일보>가 젊은 필자 하나를 북돋아주고 싶어해서가 아니다. 20대 이하의 세대들이 자신이 처한 사회구조적 모순에 눈감아 버린 채 오직 386 세대만을 증오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처한 문제를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다.


게다가 "능력과 전문성도 없는 386세대"와 "무한한 잠재력과 전문성을 가진 젊은 세대"로 구별짓기하는 변희재식 세대론은 세대론이 아니라 차라리 변형된 인종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저 발언을 보면서 나는, ‘능력도 없으면서 탐욕스러운 유태인’과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지만 유태인들 때문에 고난을 겪는 아리아인‘을 명확히 구별한 콧수염 달린 어떤 사내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프랑스철학의 거인 자크 랑시에르는 인간 능력의 차이를 과장하고 강조하는 담론들이 얼마나 무용하며 해로운 것인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만인의 역량'을 각기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지 분류하고, 차별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의 능력은 동일하다. 다만 그 세대가 처한 환경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386세대의 성찰을 요구하고 그들이 88만원 세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으며 잡아주어야 한다고 했던 <88만원 세대>의 주장과, 386 세대는 사회적 해악이며 투쟁의 대상일 뿐이라는 주장의 차이를 이해하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우리가 정말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나 변희재같은 사람들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통해야할 사람들은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전략) 이날 모임에선 세대간 불평등의 심각성을 부각시킨 '88만원 세대론'이 도마에 올랐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담론"이란 의견이 많았다. 노동시장의 '인사이더'에 대한 보호장치가 두터워 청년 세대의 신규 진입이 쉽지 않은 유럽과 달리, "외환위기를 계기로 일자리 보호장치가 파괴된 한국의 경우엔 불평등이 모든 세대에 걸쳐 증가하고 있다"(김영미)는 이유에서다. "젊은층이 88만원 세대라면, 고령층은 50만원 세대"(박경숙)라는 지적과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우파 담론에 88만원 세대론이 이용당하고 있다"(한준)는 비판도 이어졌다. (후략)"

(<한겨레>, '한국사회 불평등 핵심고리를 천착하라'-비판사회학회 불평등연구회, 2009.01.12)


학자들 뿐만 아니다. 충남 서산에는 100% 비정규직 고용에, 법정최저임금‘만’ 주기로 악명이 자자한 동희오토라는 공장이 있다. 거기서 콘베이어벨트를 타고있는 노동자들 대다수가 20대, 즉 88만원 세대에 속하지만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청년들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중 한명으로서 내가 늘 부끄럽고 고민스러운 건, <88만원 세대>를 가장 열심히 읽는 20대가 이른바 명문대생이란 점이었다. 정작 88만원 세대에 한없이 가까운 20대들일수록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지 않는다. 지난 일년 반 동안 나를 괴롭혀온 숙제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좀체 사라지지 않을 화두다. 자, 이 글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한줄 요약이다.
“<조선일보>와 변희재는, ‘소통’하기 전에 줄부터 서시라.”

2009. 1. 27. 18:47

먹물이 망가지는 어떤 패턴

어떤 먹물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망가져가는 걸 바라보는 게 애처롭고 서글픈 것은 그가 말해왔던 거창하고, 중대하고, 절박한 지상명제들 대부분이 실은 근거박약의 허풍이며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낯뜨거우리만치 앙상한 인정욕구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던 건, 어차피 거물이 되지 못한 먹물들은 인정욕구를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사회에 별로 해악을 끼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세상에는 전혀 거창하지 않지만 더 중대하고 더 절박한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것. 그런 문제일수록 우리의 인정욕구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것. 우리가 비록 제 잘난 맛에 살아가고 때로 잘났다 싶은 놈을 만나면 '쌩오바'를 떨어가며 서로 똥구멍을 핥아주곤 할지라도, 이 사실만큼은 결코 잊어선 안된다. 하지만 세간의 인정을 획득할수록 그런 사실은 희미하게 잊혀지고 자신이 말하는 것에만 최상급의 표현을 쓸 수 있다고, 즉 가장 중대하고 가장 절박한 문제라고 정말로 믿어버리게 된다. 그럴 경우 어떻게 되는가. 자신의 인정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문제만 이야기하게 되고, 논거와 논리에 대한 검증 같은 건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대신 그 반대편에서 경쟁하는 또다른 힘 있는 자들을 절대악으로 묘사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먹물이 망가진다는 건 이런 거다. 새해단상 끝.^^

2009. 1. 21. 20:11

[한국어사전] "경제" 보론: 갈등 프레임의 부재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일 중요한 것."
경제에 대한 다분히 장난스런 이 정의가 의도하는 바는, "경제"라는 단어가 가치중립적이긴커녕 그 자체로 지금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 정의에는 두 가지 핵심사항이 담겨있다.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이 하나이고, "아무튼 제일 중요한 것"이 다른 하나다. 후자에 대해서는 다음에 길게 써볼 기회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전자, 다시말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부분은 미네르바 사건을 이해하는데 필수요소다. 미네르바가 뜬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사람들에게 "왜 이 지경이 됐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주기적으로 국가경제가 파탄 직전으로 몰리고 있다. 일종의 공황상존국가가 되었는데 아무리 외부요인을 고려하더라도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도대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속시원히 그 이유를 밝혀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관료집단과 정치집단의 모럴해저드가 관례처럼 굳어진 것도 한 이유겠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이게 다 누구때문이다"라는 형태의 진술은 그 논리의 전체적 정합성과 무관하게 작은 '예언' 하나만 들어맞으면 열광적으로 지지받기 쉬운 상황이 됐다. 모든 포퓰리즘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누구의 잘못도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정부와 경제부처는 위기대응능력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하지만 무능은 언제나 '구체적 상황'과 '구체적 대응'에서 드러난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 역시 이런 종류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사안별로 이야기하는 게 올바르다는 것을 알고있다. '구체적으로 비판하라!' 말하긴 쉽다. 하지만 실천하긴 어렵다. 대중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짓이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특히 이른바 범개혁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자꾸만 '유일악'을 설정해 '선악의 아마겟돈'을 펼치려는 것은 한국사회의 갈등 프레임이 1980년대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몇몇 지식인들이 이명박을 전두환과 동일시하고 섣부르게 파시즘 개념을 끌어다 쓰는 지적 나태함을 노출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의 갈등프레임은 '민주화세력 대 군부독재세력'이었다. 그 아류로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이 있다. 당시에는 그것이 옳았다. 더 중요한 건 그것이 매우 효율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갈등 프레임으로 싸우는데 득보다 실이 많다. 범개혁진영 스스로도 이게 예전처럼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고있지만 그나마 갖고있던 지분마저 빼앗길까봐 관성적으로 이 구도를 고집하고 있는 것 같다. 1997년 이후 급격한 변동한 한국사회의 현실은, 이미 과거의 갈등 프레임으로 피아를 식별하는 것이 더이상 진보가 아니게끔 강제했다. 차라리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로 구분하는 것이 더 현실에 부합하는 것일테지만 공교롭게도 '그 1997년' 이후 10년간 정권을 잡아 '신자유주의의 제도화'를 주도한 세력이 이른바 '민주화세력'이라는 점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 같다. 물론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주장한 일부 좌파세력들이 존재해왔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힘은 1980년대에 비해서조차 쇠약해진 상태였고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정의하기가 지나치게 모호한 개념이어서 사회의 갈등프레임으로 자리잡는데 무리가 있었다.

사회문제를 소위 '386스런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참 편리하다. 그러나 그 편리함을 이제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게 얼마나 우리의 눈을 가리는지 이번 미네르바 사건에서 또(!) 배우고 있다. 그런데 프레임은 하루하침에 등장하지 않는다. 새로운 무기들, 다시말해 '새로운 언어'들이 계속 창조되고 축적되어야만 하나의 프레임을 비로소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은 '386'의 다음 세대가 할 일이다. 싸움에서 진 적이 없는 저 힘센 세대의 다음 세대는, 과거의 망령과 싸우지 않고선 작은 길 하나조차 뚫을 수 없다. 갈 길이 멀다.

2009. 1. 21. 00:54

[한국어사전] "경제"


경제  經濟 economy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일 중요한 것. 


*용례 및 파생어

1.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미국에서 빌 클린턴 캠프의 슬로건이었으나 한국에서는 어떤 주제로 논쟁중인 상대방의 입을 틀어막는 용도로만 엄밀히 한정.

2. "경제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 또는 슬로건. 정치적으로 오염된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성공적으로 미화시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

3. "인터넷경제대통령"
-아고라의 필명 '미네르바'를 가리키는 말. "우리편 전문가"를 의미.

4. "경제학자"
-경제(를 이해하는데)에 별 도움이 안된다고 비난받는 대다수 경제학 박사학위 소지자들. '참경제학자'의 반댓말.

5. "참경제학자"
 -미네르바, 일부 아고라 '경방고수', 극소수 경제학자 등을 통칭. 화려한 전문용어 구사, 단정적 어투, 예언자적 분위기 연출이 필수요소. 언제 은행에서 돈 빼야하는지 꼭 알려주는 사람.

6. "경제부처"
-기획재정부, 혹은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를 동시에 가리키는 말.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일 중요한' 일을 한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공무원 집단.

7. "경제부처 수장"
-언론사 등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가리키는 말. "원 없이 돈 써보는" 자리.

(추가)
8. "경제학"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일 중요한 것'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자연과학을 얼마나 탁월한 방식으로 흉내내는지를 경쟁하는 학문.

9. "경제신문"
-정치선동을 경제용어로 세탁해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용역서비스업체. 간혹 골프광고지로 착각할 수 있으니 주의.
2009. 1. 17. 17:37

최규석

만화가 최규석을 만났다. "가르침을 청한다"고 먼저 연락을 취해온 건 그였다. '도장깨기'하러 다니는 최배달스러운 그 멘트에 부담스러워진 나는 "가르침같은 건 됐고,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까불대며 수다를 떨었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내 조언이 전혀 필요없는 사내였기 때문이다. 같이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최규석의 재능은 잘 알려진 데생실력이나 사회의식 등이 아니다. 오히려 또래 만화가에 비해 발달한 사회의식은 종종 그의 작업에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재능은 그런 게 아니라 작가의 원초적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갈수 있는 극소수의 인간에게 필요한 재능은 뛰어난 센스나 화려한 레토릭 따위가 아니다. 그런 건 재능 위에 뿌려지는 자극적인 향신료같은 거다. 진짜 재능이란 건 '지면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는 능력'이다. 일종의 균형감각이고, 타고나야 한다. 이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과 잘 못하는 일을 정확히 판단하게 해주고, 아주 가끔은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더구나 제대로 발을 고정시켜야 높은 추상의 영역으로 힘차게 비상했다가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다. 구름 위에 붕 떠있는 걸 재능이라 착각하는 치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최규석은 참 귀한 재능을 갖춘 작가다. 나와 같은 또래에 이런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좀 짜증나는 건 잘생겼는데 키까지 크다는 것.
2009. 1. 13. 12:49

미네르바, 그리고 불변조건


미네르바 사건에서 그의 개인능력을 차치하고 생각해보면, 이것은 한국사회의 몇 조건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해 발화했다. 현재 생각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가. 경제적 조건
1. 국가규모의 경제위기
2. 정부, 특히 경제운용팀에 대한 신뢰 하락 가속
3. 개인단위의 경제위기 대응전략 및 전망 부재


나. 정치적 조건
1. 행정권력에 대한 입법권력의 합리적 견제 부재
2. 대안정치세력 및 씽크탱크의 부재 혹은 존재감 미미
3. '한나라당/반한나라당 전선'의 관성


다. 사회적 조건
1. (위 조건들에 의한) 음모론적-냉소적 사고방식 일반화
2. 기성매체와 경제학자 등의 지식인에 대한 신뢰 하락 가속
3. 아고라와 블로그로 대표되는 '익명 지식인'의 등장과 그 판타지의 확대재생산



내가 주목하는 점은, '미네르바 개인(의 구속)을 어떻게 볼 것이냐' 따위가 아니다. 이런 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잘 정리하고 있는 중이니까 새삼 말을 덧붙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난 '고유명사 미네르바'의 체포만이 아닌, '일반명사 미네르바의 등장에서 체포까지'의 큰 단락 자체가 가지는 의미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가,나,다 조건들을 모두 합치면 미네르바의 등장은 필연에 가까워진다. 약간 부연설명을 하자면, '정치적 조건' 부분은 미네르바가 취하고 있는 마니즘적 선악대결구도가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게 만드는 촉매가 됐다. 굳이 비유하자면 '리만형제'와 한나라당은 '왜구', '범개혁세력'과 민주당은 ('왜구'와 싸우기는 하는데 무능한) 원균, 미네르바는 이순신이다.  그러나 그 이순신은 펀드와 주식 이야기가 일상인 특수한 개인들을 위한 멘토, 요컨대 '인격화한 처세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흥미로운 건 위에 적은 조건들 대부분이 10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모든 계급을 대표하겠다"던 루이 보나파르트와 매우 흡사한 대통령을 2002년에 선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관료에게 무력했던 그는 진짜 포퓰리스트가 되지는 못했다) 어쨌든 '다-3'만 최근에 생겨난 현상이고, 나머지 조건들은 10년전 금융위기 당시와 유사하다. 따라서 이건 반복-고착된 일종의 불변조건, 한국사회-한국자본주의의 '상수'라고도 말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조건'에 해당하는 부분은, 포퓰리스트의 등장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쉽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네르바가 전문대졸 30대 백수라는 점이 밝혀졌으니, '그 정도의 예측'도 못했던 기성매체와 지식인에 대한 냉소는 더욱 강렬해질테고 반복상존하는 경제위기는 인민의 정치적 성숙을 지체시킬 가능성이 높다. 인민들 스스로 정치,사회,경제적 제약조건을 깨부수려 하기보다는 '학벌과 경력을 갖춘 진짜 미네르바'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거다. 예수의 죽음이 예수의 재림을 약속하는 것처럼, 미네르바의 구속은 아직 오지않은 진짜 미네르바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진짜 미네르바가 나타나면 우리는 진짜 행복해질까?  진짜 미네르바는 대체 무엇인가? 열악한 담론유통구조와 취약한 의회정치, 반복적 경제위기의 세 요소가 바로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최적의 토양이다. 최근 벌어진 이 '반지성주의적 블랙코미디'가 더이상 코미디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2008. 12. 29. 12:57

글쓰기가 귀찮다

연말은 아무 생각없이 뒹굴거려야 제맛. 블로깅이고 뭐고 다 귀찮다. 책만 꾸역꾸역 읽고있다. 링거 꽂고 병원을 누비는 꾀병 환자가 된 기분.^^ 우연의 일치지만 최근 읽는 책들에 '부르디외 비판'이 자꾸 튀어나온다. 그러고보니 한때 한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부르디외 읽기가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었는데, 정작 '비판적 읽기'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한 출판사들의 공(?)이 적지 않다. 특히 동문선 ㅅㅂㄻ. <텔레비전에 대하여>의 그 아사리판 번역은 아직도 열이 뻗칠 지경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1229105501&section=03

소설가 장정일의 '사회적 글쓰기'가 경지에 올랐다는 느낌이다. 우리세대가 존경할만한 지성이 됐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330196.html

한겨레에만 기사가 떴는데, 세부상황을 모르니, 일단 '낭보'라고 해두자. 어찌됐건 코스콤 불안정노동자 동지들, 고생 너무 많이 하셨어요.

2008. 12. 15. 14:11

"괜찮아 별일 아니야"

요즘 어째 생활밀착형 잡감만 쓰게된다. 독감 내상이 심해서리... 쿨럭.

암튼 어제도 약간의 사고가 있었다. 보일러 배관이 터졌다. 다용도실과 방 하나가 침수됐다. 자는 중이라 집안 전체가 물바다가 돼도 몰랐을텐데, 잠에서 깬 건 냄새 때문이다. 체인스모커치고는 기이하게 후각이 예민한 편이라, 번개처럼 이불을 박차고 뛰어올라서 작은 방으로 갔더니 바닥이 온통 물이다. 코를 킁킁, 냄새의 원인은 책상 뒤의 콘센트였다. 살펴보니 이제 막 물이 닿아 불꽃을 튀기기 시작하는 찰라다. 이런 십라...잽싸게 전원을 차단했다. 약간 그을린 흔적밖에 없는데, 이 희미한 냄새를 자다가 어떻게 맡았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

그러나 책장공간이 모자라 방바닥에 쌓아놓은 책들 중 일부가 수장되고 말았다. 보일러가 있는 다용도실은 거의 저수지다. 바닥에 배수구가 있는데도 슬리퍼가 둥둥 떠다닌다. 보일러에 문제가 있는 건 알겠는데, 대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즉각 파악이 안됐다. 자취생활 10여년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그냥 너무 황당하고 황망했다. 아악! 내 책!! 내 (환율 올라서 값이 두배가 된) 프라모델!! 빤쓰 바람으로 한동안 멍을 때렸던 것 같다. 일단 보일러 기사에게 전화를 하고, 여친사마께 보고전화.

"난데, 아놔, 보일러 터진 거 아녀? 물바다야(목소리 갈라짐)."
"(자다가 받았음) 우우웅...잉? 먼 소리야? 집 전체가?"
"아니 다용도실하고 거기 붙어있는 작은 방만. 바닥에 물이 고였어."
"응...그려? 기사 아저씨한테 연락했어? 응, 그럼 올때까지 책부터 좀 마루로 옮겨. 나도 좀있다 날아간다. 놀랬겠네. 괜찮아, 별일 아니야."
사실은 너무 당황해서 그때 그녀가 "괜찮아, 별일 아니야"라고 워딩을 날렸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분명 그런 느낌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여친과 통화하고 나니 급속히 마음의 평정을 찾게 됐다. '음, 사실 별일 아닐지도...? 마루랑 안방도 일단 멀쩡하고...'

보일러 기사 아저씨가 와서 하는 말이, 보일러 본체는 멀쩡한데 방으로 연결되는 급수배관이 삭아서 끊어졌다고 한다. 직접 보여줬는데, 과연, 처참한 상황이다. 견적이 만만치 않았지만, 30-40분이면 새것으로 교체가능하다고. 10년 가까이 된 빌라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라고도 한다. 여친께서 날아오셔서 요령없이 갈팡질팡 헤매고 있는 날 보더니, 껄껄껄 호탕하게 웃으며 일사불란하게 상황정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교시를 내려주신다. 아, 졸라 믿음직스럽다. 역시 학교 댕길 때 괜히 농활대장하신 게 아니었어. 그때 별명 중 하나가 '농기계'였지. 아무튼 보일러 배관은 고쳤고, 밤엔 뜨뜻하게 잤다. 괜찮아, 괜찮아, 별일 아니었어. ^^
2008. 12. 12. 17:44

브라크, 추억은 방울방울

감기가 좀 나은 듯 해서 미술관으로 고고씽했던 게 화근이었다. 상태가 또 안좋아졌다. 어제 여친사마와 함께 퐁피두센터 특별전을 갔더랬다. 4천원 할인 받았다. 데 키리코 작품은 하나밖에 없어서 좀 실망이었지만, 대신 조르주 브라크의 그림들이 산더미. 우왕굿!

내가 '미취학 어린이'였을 때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 서예학원 이렇게 세 곳을 동시에 다녔는데(얼마나 힘들었을꼬!), 피아노학원은 두 달만에 때려치웠고(원장 선생님 발꼬랑내도 한몫했음), 서예학원은 천자문 뗄 때까지, 미술학원은 5년 가까이 다녔다. 미술학원에 그렇게 오래다닌 이유는 대회 나가서 상을 타면, 일본에서 들여온 화집을 빌려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제 화집은 꽤 고가여서 선생님들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굉장한 특권이었다. 처음 그 책들을 접했을 때의 감동이란...당시 우리집에 있던 책들 중에 제일 비쌌던 백과사전조차도 종이의 질과 색감에서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 때 봤던 그림들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지만, 피카소의 사진이 크게 박힌-아마도 큐비즘에 대한 책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어느 화집은 꽤 인상적이었다. 정작 나는 피카소보다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이 더 마음에 들었더랬다. 물론 내가 보기에 죄다 그림을 못그리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 피카소가 젤 못그린다고 생각했다. 피카소가 '4세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렸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이다. 당시의 나는 구상이나 조형 보다는 이 화가들의 색감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훗날 고등학교에 가서 나는 그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그림들이 조르주 브라크의 것이었음을 알게됐다.

이번 전시회에 온 브라크의 작품들은 모두 대표작이라 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실물로 보니 포쓰가 장난이 아니었다. 가보길 잘했다. 조만간 한번 더 가야겠다. 빨리 감기부터 나아야지.
2008. 12. 9. 12:16

독감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녹신녹신 녹아내리는 관절, 퉁퉁 부어오른 편도선, 누군가가 두개골 속에서 안구를 힘껏 잡아당기는 듯한 편두통. 한창 자전거 탈 때는 감기 따윈 얼씬도 못했는데, 역시 운동부족이 병을 부르는 거다. 실내온도를 40도 가까이로 올려놓고, 오리털파카를 껴입은 채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서는 여친사마께서 사다주신 녹차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를 땀 삐질삐질 흘리며 읽고 있다. 아무튼, 다들 감기조심하세요오~
2008. 12. 4. 23:58

일상 1204

1. 어제에 이어 오늘도 랑시에르 강연에 다녀왔다. 그는 최근 2년간 내가 붙들고 있던 주제 중 하나에 대해 20년 넘게 사유해온, 이른바 '그랜드 마스터'다. <88만원 세대>에서 내가 (자신조차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서) 충동적으로 써내려간 '아무도 아닌 자' '이름없는 자'라는 수사는 다름아닌 랑시에르가 오랫동안 정밀하게 세공해온 것이었다. 물론 나는 랑시에르가 해답을 쥐고 있다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헤겔이 "위대한 히스테리 환자"인 건, 헤겔이 특정한 인격 혹은 스승에게서 '해답'을 구하는 걸 끝내는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답을 구했다' '스승을 만났다'고 생각한 순간이야말로 위험하다. 그건 자기 사유의 종말을 알려주는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유란, 쉼없이 아포리아들을 포착하고 돌출시키는 작업이다. 랑시에르는 해답은커녕 내가 붙들고 있던 주제를 더욱 교란시키고, 미궁에 빠뜨린다. 너구리 봉지를 뜯었는데 스프 대신 다시마가 10개 들어있을 때, 이런 기분일 것 같다.

2. 이택광 선생님이 울산에 다녀와서 쓴 글이 <인터넷한겨레>에 실렸다. 근데 그 사이에 다녀온 팀들도 있을텐데, 그건 왜 안실렸지?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325698.html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글이다. 386들에게 광주, 그리고 울산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그들의 감수성은 그래서 언제나 '지박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이후 세대인 우리들에게 그런 장소는 어디일까. 아무리 떠올려봐도 월드컵과 촛불의 광화문 밖에 없다. 방구석 자기 컴퓨터 앞은 아닐테니. 그러나 광화문은 보편체험의 공간이라 하기엔 한계가 뚜렷한 곳이다. 기본적으로 포스트 IMF 세대들에게는 유령이 출몰하는 공간이 없다. 386이 지박령의 세대라면, 이후 세대는 접신과 빙의의 세대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타자의 목소리로만 발화할 수 있었다. 종교인류학적으로 다른 존재다. 그러니 386이 만든 공포영화 혹은 귀신영화가 이후 세대에게 먹힐 리가 있나. 조만간 이 얘기로 글을 하나 쓸지도 모르겠다.
2008. 11. 30. 18:25

랑시에르, 한국에 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 주는 랑시에르와 함께.^^ 전부 참석하는 건 불가능. 적어도 중앙대나 홍익대 강연엔 가볼 작정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감성의 분할>은 이미 한국에 번역되었는데, 내가 보기엔 이 번역이 좀 거시기해서 읽다가 어디 구석에 쳐박아두었다. 겨울방학 때 후배들이랑 랑시에르 강독회나 함 꾸려볼까...

2008. 11. 24. 12:37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22990.html


-취재를 30년 넘게 해오셨는데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만나서 취재하고 싶은 대상이 있으면 편지를 썼습니다. 전쟁 중 뭘 생각했는가, 무엇이 옳다고 판단했는가 물었습니다. 큰 언론사 기자면 바로 만났겠지만 아무 직함이 없어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A급 전범들은 여러차례 만나니 ‘실은 그 때 말이지’라고 본심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무 직책도 없는 서른살짜리 저를 왜 만났는지 생각해보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을 만나면서 개인적으로 보면 좋은 할아버지들이 조직을 움직일 때는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명령으로 많은 사람을 죽게 했을까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 명령을 내린 한 육군 참모는 왜 특공(자폭) 명령을 내렸냐고 물었더니 ‘특공은 선구적이다. 특공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의 전단계다’라고 대답해 달려들어 때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좋은 할아버지였던 그 사람에게 인간의 이면성을 실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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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다. 반면, 개인적 관계를 모조리 파탄내고 착취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올바른 일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취재현장에서는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은 별개'라는 상식을 싫어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단지  '사회적으로 올바르기만 하면' 그걸로 된 것일까.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유주의적 전통 하에서는 그래도 별 상관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의 괴리를 극대화시키고야마는 어떤 구조가 실은 더 근본적인 차원에 놓여있는 문제이며, 이 봉합불가능한 균열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보'는, 단순히 사회적으로 올바른 일의 추구를 넘어서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의 균열을 최대한 좁히기 위한 끝없는 시도이기도 하다.

2008. 11. 21. 15:58

노래방 애창곡

당분간 여친사마 애창곡이 될 듯. 내가 테크노나 일렉트로니카, 이런 계열의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여친에게 이 밴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알고보니 예전 '코나'의 배영준이 리더다. 여성보컬 웨일은 이번에 영입.
며칠 전 노래방에서 여친이 이 노래를 첨 불렀는데, 음색이 완전 비슷해서 ㅎㄷㄷ.  아무리 광고에 쓰여 익숙하다지만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거의 똑같이 불러내는 걸 보고 다시 ㅎㄷㄷ. 뭐, 노래는 예전부터 잘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