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2. 17:44

브라크, 추억은 방울방울

감기가 좀 나은 듯 해서 미술관으로 고고씽했던 게 화근이었다. 상태가 또 안좋아졌다. 어제 여친사마와 함께 퐁피두센터 특별전을 갔더랬다. 4천원 할인 받았다. 데 키리코 작품은 하나밖에 없어서 좀 실망이었지만, 대신 조르주 브라크의 그림들이 산더미. 우왕굿!

내가 '미취학 어린이'였을 때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 서예학원 이렇게 세 곳을 동시에 다녔는데(얼마나 힘들었을꼬!), 피아노학원은 두 달만에 때려치웠고(원장 선생님 발꼬랑내도 한몫했음), 서예학원은 천자문 뗄 때까지, 미술학원은 5년 가까이 다녔다. 미술학원에 그렇게 오래다닌 이유는 대회 나가서 상을 타면, 일본에서 들여온 화집을 빌려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제 화집은 꽤 고가여서 선생님들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굉장한 특권이었다. 처음 그 책들을 접했을 때의 감동이란...당시 우리집에 있던 책들 중에 제일 비쌌던 백과사전조차도 종이의 질과 색감에서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 때 봤던 그림들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지만, 피카소의 사진이 크게 박힌-아마도 큐비즘에 대한 책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어느 화집은 꽤 인상적이었다. 정작 나는 피카소보다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이 더 마음에 들었더랬다. 물론 내가 보기에 죄다 그림을 못그리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 피카소가 젤 못그린다고 생각했다. 피카소가 '4세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렸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이다. 당시의 나는 구상이나 조형 보다는 이 화가들의 색감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훗날 고등학교에 가서 나는 그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그림들이 조르주 브라크의 것이었음을 알게됐다.

이번 전시회에 온 브라크의 작품들은 모두 대표작이라 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실물로 보니 포쓰가 장난이 아니었다. 가보길 잘했다. 조만간 한번 더 가야겠다. 빨리 감기부터 나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