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27. 18:47

먹물이 망가지는 어떤 패턴

어떤 먹물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망가져가는 걸 바라보는 게 애처롭고 서글픈 것은 그가 말해왔던 거창하고, 중대하고, 절박한 지상명제들 대부분이 실은 근거박약의 허풍이며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낯뜨거우리만치 앙상한 인정욕구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던 건, 어차피 거물이 되지 못한 먹물들은 인정욕구를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사회에 별로 해악을 끼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세상에는 전혀 거창하지 않지만 더 중대하고 더 절박한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것. 그런 문제일수록 우리의 인정욕구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것. 우리가 비록 제 잘난 맛에 살아가고 때로 잘났다 싶은 놈을 만나면 '쌩오바'를 떨어가며 서로 똥구멍을 핥아주곤 할지라도, 이 사실만큼은 결코 잊어선 안된다. 하지만 세간의 인정을 획득할수록 그런 사실은 희미하게 잊혀지고 자신이 말하는 것에만 최상급의 표현을 쓸 수 있다고, 즉 가장 중대하고 가장 절박한 문제라고 정말로 믿어버리게 된다. 그럴 경우 어떻게 되는가. 자신의 인정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문제만 이야기하게 되고, 논거와 논리에 대한 검증 같은 건 저만치 날아가 버린다. 대신 그 반대편에서 경쟁하는 또다른 힘 있는 자들을 절대악으로 묘사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먹물이 망가진다는 건 이런 거다. 새해단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