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17. 17:37

최규석

만화가 최규석을 만났다. "가르침을 청한다"고 먼저 연락을 취해온 건 그였다. '도장깨기'하러 다니는 최배달스러운 그 멘트에 부담스러워진 나는 "가르침같은 건 됐고,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까불대며 수다를 떨었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내 조언이 전혀 필요없는 사내였기 때문이다. 같이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최규석의 재능은 잘 알려진 데생실력이나 사회의식 등이 아니다. 오히려 또래 만화가에 비해 발달한 사회의식은 종종 그의 작업에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재능은 그런 게 아니라 작가의 원초적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갈수 있는 극소수의 인간에게 필요한 재능은 뛰어난 센스나 화려한 레토릭 따위가 아니다. 그런 건 재능 위에 뿌려지는 자극적인 향신료같은 거다. 진짜 재능이란 건 '지면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는 능력'이다. 일종의 균형감각이고, 타고나야 한다. 이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과 잘 못하는 일을 정확히 판단하게 해주고, 아주 가끔은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더구나 제대로 발을 고정시켜야 높은 추상의 영역으로 힘차게 비상했다가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다. 구름 위에 붕 떠있는 걸 재능이라 착각하는 치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최규석은 참 귀한 재능을 갖춘 작가다. 나와 같은 또래에 이런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좀 짜증나는 건 잘생겼는데 키까지 크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