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7. 00:30

움베르토 에코

최근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읽었다. 내 주위에 평소 에코를 극찬하는 사람이 몇몇 있는데 그들에게 거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에코는 소설가가 아니다. 그가 쓰는  것은 '박물지'이지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알려졋다시피 에코는 디지털 환원주의에 맞서서 아날로그 종이문화를 강력히 옹호해온 사람이다. 거의 종이 페티쉬에 가까운 그의 성향은 <로아나..>에서 가장 변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에코가 자신의 방대한 지적 데이터베이스를 과시하면 할수록 그가 그렇게나 혐오해온 디지털 정보이론은 더 강화되고 만다. 고진 등이 말해온 근대문학의 공통적 특성을 에코의 '소설'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소설'에서 박물지적 지식의 나열을 제거해버리면, 남는 것은 서사가 아니라, 오타쿠들이 말하는 '모에 요소' 뿐이다.  이를테면 노스탤지어는 서사에 의해 성취되는 게 아니라,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모에 요소들의 조합으로 상기된다. 이제 서사는 더이상 세계와 대결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필요한 정취를 끌어낼수 있는 모에요소 데이터 베이스의 적절한 변용이다. 따라서 에코의 소설이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디지털라이제이션의 결정적 신호로 보이는 것이다.

p.s ) <로아나...>는 에코의 저작 중 가장 뛰어나진 않지만, 가장 사랑스럽다.
2008. 7. 31. 00:03

교육감 선거

서울시 교육감 직선제 선거에서 공정택 후보가 당선됐다. 15.4%라는 참담한 투표율이 이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케했다. 주경복 후보는 1% 범위 내에서 바짝 추격했지만, 역부족. 그나저나 다른 구를 압도하는 서초-강남-송파의 투표율은 정말 공포스러웠다. 강남이 강남인 것은, 이렇게 '실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 패인이라 말할 수는 없다. MB는 꼴보기 싫어하면서도 정작 교육감 선거에는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 그것이 진짜 원인일 것이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중간계급이라 부르는 사람들이다. 드라이하게 말해서, 이들에게는 MB를 향한 분노보다 교육감 선거의 기회비용이 더 컸다. '촛불정국의 리트머스 시험지' 'MB 정권에 대한 심판대'라 불리던 선거는 이렇게 끝났다. 그리고 그 함의는 작지 않다. 이제 모두들, 이를 꽉 물어야 한다. 냉소주의라는 악령에 사로잡히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