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4. 12:37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22990.html


-취재를 30년 넘게 해오셨는데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만나서 취재하고 싶은 대상이 있으면 편지를 썼습니다. 전쟁 중 뭘 생각했는가, 무엇이 옳다고 판단했는가 물었습니다. 큰 언론사 기자면 바로 만났겠지만 아무 직함이 없어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A급 전범들은 여러차례 만나니 ‘실은 그 때 말이지’라고 본심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무 직책도 없는 서른살짜리 저를 왜 만났는지 생각해보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을 만나면서 개인적으로 보면 좋은 할아버지들이 조직을 움직일 때는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명령으로 많은 사람을 죽게 했을까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 명령을 내린 한 육군 참모는 왜 특공(자폭) 명령을 내렸냐고 물었더니 ‘특공은 선구적이다. 특공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의 전단계다’라고 대답해 달려들어 때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좋은 할아버지였던 그 사람에게 인간의 이면성을 실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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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다. 반면, 개인적 관계를 모조리 파탄내고 착취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올바른 일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취재현장에서는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은 별개'라는 상식을 싫어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단지  '사회적으로 올바르기만 하면' 그걸로 된 것일까.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유주의적 전통 하에서는 그래도 별 상관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의 괴리를 극대화시키고야마는 어떤 구조가 실은 더 근본적인 차원에 놓여있는 문제이며, 이 봉합불가능한 균열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보'는, 단순히 사회적으로 올바른 일의 추구를 넘어서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의 균열을 최대한 좁히기 위한 끝없는 시도이기도 하다.

2008. 11. 21. 15:58

노래방 애창곡

당분간 여친사마 애창곡이 될 듯. 내가 테크노나 일렉트로니카, 이런 계열의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여친에게 이 밴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알고보니 예전 '코나'의 배영준이 리더다. 여성보컬 웨일은 이번에 영입.
며칠 전 노래방에서 여친이 이 노래를 첨 불렀는데, 음색이 완전 비슷해서 ㅎㄷㄷ.  아무리 광고에 쓰여 익숙하다지만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거의 똑같이 불러내는 걸 보고 다시 ㅎㄷㄷ. 뭐, 노래는 예전부터 잘했으니.^^


2008. 11. 20. 15:10

아즈마 히로키

http://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250


아즈마 히로키의 책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외엔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 정말 재미있어서 손에 쥐자마자 빨려들어간다. 그의 핵심주장보다도, 오히려 심상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언급에서 의외의 수확이 좀 있었다.

한국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20대를 맞이한 세대의 상당수에게 일본 대중문화는 단순히 '생경한 외국문화' 이상의 무엇이다. 미처 거리두기를 할 여지도 없이 그 속에서 숨 쉬며 자라났기 때문이다. 일종의 '태내환경'이었던 셈인데, 그 점에서 이들은 일본대중문화 평론을 처음으로 시작했던 일부 386 세대 등의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취향과 인식태도를 갖게되었다.

아즈마 히로키는 1971년생이니까 오타쿠 1세대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1960년생)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볼 수 있다. 안노 히데아키의 경우, 전공투 세대와 같은 선배 세대와 사회의식을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었고, 그 자신이 오타쿠이면서 오타쿠를 부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욕망에 따른 부정이 아니라, 윤리나 사회의식에 따른 부정이었다. 그러나 아즈마 히로키의 경우는 다르다. 책을 읽어보면 감이 바로 온다., 이 인간, 미소녀게임 하느라 식음을 전폐하는 전형적인 오타쿠다.

물론 글에서는 온갖 서구 석학의 이름과 개념들이 현란하게 소용돌이치고 오타쿠적 인식의 근저에 깔린 위험을 날카롭게 비평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비평은 사회의식이나 건강한 윤리 따위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이건, 태아가 엄마의 자궁을 발로 걷어차며 즐거워하는 행위에 가깝다.

"자네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인문학(철학이나 사상) 연구 대신에 미소녀 게임이나 분석하고 있다니 재능이 아깝네"
꼰대들의 이런 핀잔에 아즈마 히로키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았을까.
"능력있는 너네들이나 연구 많이 하세요."
2008. 11. 19. 23:38

KBS 책문화대상

http://www.kbs.co.kr/1tv/sisa/book/preview/index.html

<88만원 세대>가 KBS 책문화대상 '우리 시대의 논점' 부문에 최종선정된 것 같다. 공중파에서 수상작이 공식발표되는 건 내일 밤 12시 35분이라고 한다. 후보작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지식인의 죽음><88만원 세대> 이렇게 세 권이었다.  완성도를 가리는 것이라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제치고 <88만원 세대>가 선정되었을 리가 없다. 장석준의 평가처럼 <88만원 세대>는 "팜플렛", 참혹한 시대가 만들어낸 팜플렛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선정될 수 있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기뻐할 수가 없다.
2008. 11. 18. 08:19

일본의 편집자와 만나다

어제는, 아니 어제도 낮부터 술을 때려마셨다. <88만원 세대>의 일본어판 출판 건으로 서울에 온 아카시쇼텐(明石書店)의 편집자 효도 케이지 씨와 함께였다. <레디앙>의 이재영 선배와 출판 기획팀장님도 합석했다. 효도 씨는 나보다 한 살이 많고, 2년간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한 덕에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부스스한 머리결에, 항상 멍을 때리는 듯한 표정의 이 사나이는 알탕과 하이트 맥주를 좋아한다고 했다. 아니 그 맛있는 일본 맥주들보다 하이트가 좋단 말이예요? 우리가 농을 걸었지만, 그저 머리만 긁적인다. 그러나 하이트를 좋아한다는 말은, 그나마 한국맥주 중에서 그게 좀 낫다는 얘기를 돌려말한 것일테다. 동의한다. 카스보단 하이트가 아주아주 야악간 낫긴 하다. 그러나 나에게 한국맥주는 '소맥폭탄용 베이스' 또는 '안주가 목에 메이지 않게 하는 보습제'일 뿐, 맥주가 아니다.

온갖 잡다한 주제로 수다를 떨었는데, 두 가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부라쿠민(部落民) 차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카시 쇼텐의 대표이사가 예전에 부라쿠민 운동을 하던 사람이라고 한다. 부라쿠민은 잘 알려졌다시피 전근대 일본의 신분제도상 최하층 천민으로 과거 한국에서의 '백정'과 같은 직업을 생각하면 된다. 일본 특유의 서발턴(subaltern)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호모 사케르라고 할까.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는데 좀 놀랐던 건 아직도, 즉 2008년이라는 시점에서도 부라쿠민 차별이 여전하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특히 취업과 혼인에서 심각한 장벽이 존재한다고 한다. 과장이 섞여있겠지만, 야쿠자가 되거나 공무원시험에 패스하거나, 둘 중 하나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근대화를 빨리 수행한 사회에 아직도 신분제도의 악습이 뿌리깊게 남아있는 걸 보면, 한국사회가 미칠듯한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공고했던 신분제가 어쩔 수 없이 무너졌던 사실을 축복이라도 해야 할까.

두번째는 아소 다로 총리 이야기. 원래는 출판기획팀장님께서 <마징가>의 나가이 고와 <은하철도>의 린 타로 얘길 꺼냈는데, 효도 씨는 만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일본의 그 세대에게 너무 오래된 만화인건지 두 작가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아소 다로 얘길 한다. 일본에서 아소 다로를 비웃는 말 중 하나가 "만화책만 읽는 총리"라는 거다. 총리가 되기 전부터 '무식한 발언을 일삼는 만화광'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일본사람들은 그게 만화책만 읽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하긴, 만화를 좋아하는 것과, 만화만 줄창 읽어대는 것은 정말 백만 광년 떨어진 게다. 그러고보니 나도 아소 다로의 소문에 대해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인에게 추천할만한 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고르고13>이라 했다던가...OTL (아소 다로 총리의 '등 뒤'에 섰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얼마 전 방한했던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 씨의 명언도 떠오른다. "명심해. 애니메이션만 보는 인간은 절대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없어."

<88만원 세대> 일본판은 1월 말 경 출간될 예정이다. 아카시 쇼텐이란 출판사의 성향을 보아하니 베스트셀러 따위와는 아주 거리가 먼 곳이다. 여기서 출간하는 월간지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무려 <빈곤연구>다. 효도 씨에게 한권 선물받았는데, 표지만 봐도 두통이 밀려왔다. 베스트셀러 따윈 바라지도 않으니 아무쪼록 3쇄만 넘겨주길.
2008. 11. 14. 11:17

종부세 단상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582

공영방송 수호투쟁에 올인하는 바람에 읽을 게 없었던 <미디어오늘>에 간만에 괜찮은 기사가 올라왔다. 이정환 기자 말마따나 <한겨레><경향신문>의 종부세 관련 비난은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당초의 입법정신마저 무력화하고 있다. 특히 <오마이뉴스>는 종부세가 사실상 무력화될 경우 헌법재판관 개개인의 종부세가 얼마나 줄어드는가를 탑에 올렸다. 이른바 '개혁 선정주의'의 귀감이 될만한, 기념비적 기사였다.  

종부세가 처음 추진될 때부터 세대합산 부분은 위헌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잘 알려져 있었다. 입법을 추진한 주체들이 그걸 몰랐다면 멍청한 것이고, 알았다면 대비를 해야했다.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면, 위헌이 될 것을 알면서도 '눈가리고 아웅'한 셈이 된다. 세대합산은 지금까지 종부세 징수의 핵심수단이었으나 그것이 무력화된 이상, 당초 입법취지를 살리는 방식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언론이란 그런 걸 하라고 존재하는 거다. 일부 위헌 판결 날 것을 조금이라도 예상했다면, 이후 의제설정에 대해 전문가 좌담이라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어느 정도 선까지 부당이익으로 볼 것인가는 법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건 사회적 합의의 영역, 다시말해 정치의 영역이다. 세법의 논리로는 돌파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종부세를 둘러싼 최근 개혁진영의 대응은 따라서, 그 자체로 징후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08. 11. 8. 04:31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동희오토에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폭력적인 구사대도, 검은 군복을 입은 공장경비도, 자본을 비호하기 위해 아침부터 바지런을 떨며 출동하는 경찰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 팔뚝질, 출근선전전의 풍경 마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 막막한 기시감이라니. 풋내기 기자로 전국의 공장을 떠돌던 5년 전의 나에게 비정규 노동자들이 싸우는 현장은 냄새로 기억되고 있다. 피냄새, 그리고 향냄새다. 한달이 멀다하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던 시절이다. 변한 것은 얼굴 뿐이다. 변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아니 더 철저하게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었다. 젊다못해 앳된 해고노동자의 말간 웃음을 보니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20대일 때 만났던 그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 역시 20대였다는 사실을. 그들과 조우했기에 비로소 내가 88만원 세대라는 단어를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김승옥의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안개는 '꿈의 공장'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꿈을 꾸면 이런 기분일까.
2008. 11. 5. 01:18

공장에 갑니다

http://xenga.tistory.com/entry/드림-팩토리

'꿈의 공장'으로 취재하러 갈 것 같습니다. 특정 단체나 매체와는 무관한, '개인자격'으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지경일지야 '안봐도 비디오'입니다만, 직접 현장에 가보면 또 느낌이 다른 법이지요.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 중에서 현장상황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최대한 참고해서 취재할 때 반영하겠습니다. 다녀와서 글을 하나 쓸 예정입니다.


2008. 11. 3. 18:43

잡감 1103

1. 어제는 대낮부터 지하철이 끊길 때까지 술을 진탕 때려먹고 집에 와서 뻗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보니 재킷이 현관문 손잡이에 걸려있다. 아니, 이게 왜 여기에? 재킷을 방에 걸어놓으려고 집어드는데 팔부분에 이물질이 매달려있다. 아니, 이건 또? 난 오바이트를 한 적이 없으니 어디에선가 묻혀온 것이리라. 곧장 세탁소로 가서 옷을 맡겼다. 막걸리를 그렇게 때려먹었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은 걸 보니, 그사이 양조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했거나 나의 체질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

2. 후진 미감(美感)을 스스로 폭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블로그 따위에서 그런 걸 보는 건 이중으로 불쾌한 경험인데, 우선 후진 감수성 그 자체로 불쾌하고, 그 후진 감수성을 자신의 전문분야와 억지로 엮어 정당화하는 것 때문에 또 불쾌하다. 글을 세련되게 쓰지 못하거나 기초적인 맞춤법이 틀리는 것 등에 진심으로 혐오감을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글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천박한 감수성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럽다. 대개 미감을 취향의 문제로 단순화시키는 사람들이 많지만, 미감이야말로 어떤 사람이 가진 지성을 총체화시키는, 다시말해 지성을 지성이게 만드는 '현자의 돌'이다.

3. 조만간 운전면허를 딸 작정이다. 남자아이들은 움직이는 기계를 좋아하게 되어 있고 나도 예외가 아니지만, 어릴 적 교통사고를 당해 코마상태에 빠졌던 경험 때문에 본능적으로 차에 대한 공포감 같은 게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동차라는 탈것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갖게 된 면도 크다. 그런데 면허가 없어서 극도로 힘들었던 경험을 최근 잇따라 하면서, 분하지만 이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기로 했다. 실제로 스티어링 휠을 쥐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있을 때 면허만이라도 따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2008. 10. 31. 00:53

민증 깠다

평소 가던 가게가 아닌 데서 담배를 사게됐다. 값을 치르고 나오려는데, 계산대의 아줌마가 날 아래위로 훑더니, "잠깐만요! 죄송한데, 민증 좀..."

죄송한데 민증 좀...

죄송한데 민증 좀...

그래서 민증 깠다. 생년월일을 확인한 아줌마의 당혹스런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좀 타이트한 후드티와 핫옐로우 운동화가 결정적 역할을 한 듯. 걸레가 될 때까지 입어주고 신어주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8. 10. 28. 17:15

업데이트 #1

트라우마가 미래를 승인하는 방식 

젖을 뗄 때가 되었는데도 공갈젖꼭지를 늘 물고있던 아이가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공갈젖꼭지에 집착하는 아이를 보며 짜증이 난다. 그래서 그는 아이의 눈 앞에서 위협적으로 가위를 흔들어 대다가 공갈젖꼭지를 싹둑 잘라버린다. 아이는 공포에 질려 큰소리로 울지만, 이 사건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그것이 어떤 의미였던가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은 젖을 완전히 떼고 난 뒤, 처음으로 다른 음식을 먹게되면서부터다. 젖꼭지의 명백한 대체물이 등장하고 그것을 스스로 인지했을 때, 비로소 아이는 상황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갈젖꼭지를 체념하고 상황이 변화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공갈젖꼭지의 절단이라는 외상(trauma)은 극복된 것이 아니라, 은폐되었을 뿐이다.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던 상실의 경험은 우연히 이웃의 아기가 물고있는 공갈젖꼭지를 보았을 때 미묘한 분열증으로 나타난다. "한없이 친근하게 생긴 저것은 나의 것이었지만, 이제 결코 나의 것이 아니야."

평온한 어느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는 초현실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수 개월 동안 그 사건의 물리적 사회적 원인에 대해 이해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상징으로, 즉 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 '이해'한 것은 몇년 후였다. 이후에 벌어진 IMF구제금융이란 미래사건이,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 붕괴란 과거사건이 무엇을 암시했는지 드러낸 것이다. 기업의 과도한 채무가 초래한 IMF를 상징하는 전조로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스펙타클은 이제 필연의 차원에 올라선다. "그때 벌써 우리나라는 썩어있었던 거야." 그렇게 성수대교와 삼풍참사는 시간을 역전해서 IMF를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시공간의 격차를 상당히 둔 그 두 사건-성수대교/삼풍백화점붕괴와 IMF-은 실상 별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사건이다. 그러나 미디어에 의해 마사지되는 스펙터클의 사회는 두 사건을 긴밀하게 엮는다. 대중-수용자의 관점에서 사건들은 질적 특성에 의해 분류되는 게 아니라 쇼크의 역치에 따라 분류되거나 기억되기 때문이다. 두 사건이 엮이면서 IMF는 명백한 전조가 드러난 실재로서 반복승인된다. 이중의 역사적 기억은 일종의 '확인사살' 효과를 가지며 사람들은 두 번 반복된 역사를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우연과 필연 사이의 차이만큼 '과잉'의, 어떤 새로운 심적 상태가 출현한다. 이제 IMF는 피할 수 없는 재난, 우리의 원죄가 야기한 '에덴에서의 추방'으로 인정되고, "글로벌 스탠더드"는 모세가 받아든 십계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 # by 쟁가 | 2007/04/3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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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지금의 '위기'국면에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2008년 10월 현재, 이명박과 강만수에게 금융-실물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는 '어떤 경향성'은, 내가 보기엔 촛불의 트라우마가 미래를 승인하는 방식이다. '그래, 역시 촛불은 옳았어!' 그리하여 촛불은 이제 꿈틀대며 역동하는 운동이 아니라 합리화-박제화된 상징의 지위에 올라서려 한다. 이런 저런 촛불 기념사업들이 출범하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다. 미래사건이 과거의 구조적 요인들의 분석이 아니라 특정한 과거의 트라우마에 의해 설명되는 것은 흔히 시대정신이란 말로 치장되는 중간계급 특유의 인식틀(frame)이 어떻게 배치되고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신자유주의가 문제"라며 뜬금포를 날린 전직 '좌파 신자유주의자' 대통령과, 강만수를 경질하면 사태가 단번에 호전되는 양 목청을 돋우는 몇몇 '전문가들'이 이런 경향성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 이데올로기적 귀결은 민주적 시장경제론과 같은, 낯익은 것들의 귀환이다."

2008. 10. 25. 18:23

미 대선의 결정타?

지금 CNN을 얼핏 보니 맥케인 진영의 막판 최대 악재가 터진 것 같다. 맥케인 진영의 직원인 애슐리 토드라는 백인여성이 "차에 맥케인 지지 스티커를 붙였다는 이유로 어떤 흑인남성이 나를 일방적으로 구타했다"고 밝혔던 모양이다. 사진상으론 얼굴이 아주 엉망이었다. 그런데, 이게 구라였다능...-_-;; "사기: 맥캐인 직원 거짓말하다"라는 제목이 반복해서 나가고 있다. 설령 이것이 인종변수를 노린 선거캠프의 조직적인 작전이 아니었다고 해도 거의 결정타가 될 것 같다.
2008. 10. 24. 23:02

데 키리코와 브라크가 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주로 쓰는 카드가 하나카드인데, 전시회 할인행사한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꼴랑 2천원 할인해주면서 생색은...-_-;; 심드렁하게 읽어보다가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이름 발견("드 키리코"라고 표기되어 있다). 조르주 브라크까지. 데 키리코의 어떤 작품이 오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테지만, 아무튼, 이건 꼭 가야 해!(요즘 너무 남발하는 듯)
2008. 10. 23. 11:17

[펌]대형마트와 동네상점

http://newkoman.mireene.com/tt/1958
일본 2ch 게시판 유머를 번역해서 올리는 유명 블로그인데 예전에 흥미로운 번역 스레드가 올라왔던 게 갑자기 생각나서 퍼왔다. 대형마트로 마을 하나가 초토화되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아래 글을 보면, 특히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대형마트에 가는 것에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야말로 '수준차이'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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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일본 이온그룹이 운영하는 대형마트 쟈스코를 빗댄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로서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기업들인만큼 그냥 대기업-대형마트 로만 표기했습니다
.

13
대기업 「물렀거라! 물렀거라! 대형 유통그룹님의 등장이시다!」
상점A  「헉! 와, 왔다. 대형마트가 온다!」
상점B  「히익―!대기업이 왔어―!」
대기업 「흐으음……꽤 좋은 마을 아닌가……좋아 결정했다! 이 마을에 지점을 세우겠다!」
상점B  「……! 그렇지 않아도 인구가 줄어 큰일인데……!」
상점C  「그만둬……! 우리는 생존이 걸린 문제야……그만둬 제발!」
대기업 「내 알 바 아니잖아 버러지들www 좋아 대형마트, 가서 벌어와라!」
대형마트 「네!」
상점A  「우와악! 손님들을 빼앗긴다!」
상점B  「모두 참아라! 지금은 참는거다!」
상점C  「우웃……, 모두들…….나는 더이상 안된다……(쿵)」
상점AB「시계 가게! 시계 가게!」



14
>>13
재밌는데
 



15
완곡한 대형마트 비판이군요, 압니다.





18
백화점도 내리막길인데





19
백화점계

이세탄       「아아, 정말 천박한 싸움들이네요」
미츠코시    「후후★ 너무 보기 흉해서 눈길도 주기 싫으네요★」
다이마루    「벼, 별로 신경쓰지 않는게, 너, 너무 천박해서, 보는 제가 다 부끄러운・・・」
이와타야    「진정해 다이마루」
마츠자카야 「더 해라∼!재미있다구! 끝까지 해봐!」
다카시마야 「・・・정말 너무 천박한 것들이네요」





22
>>19에 나온 백화점 한번도 못 가본 나는 촌놈




21
상점

상점A「시계가게……! 50년이나 이 마을의 상징이었는데……!」
상점B「크윽……그 놈들만 오지 않았다면……!」
상점D「급이 다른데……」
상점E「그렇다면 반대운동을 일으킬 수 밖에 없겠는데……」
상점A「그래! 이대로 끝날 수는 없잖나!」
상점B「모두! 각오는 했나!」

고졸  「아, 저……! 잠깐, 모두들……!」
상점A「응? 뭐야, 고졸」
고졸  「응, 나, 글자, 실은……고등학교 졸업 하면, 대형마트에 취직한다……」
상점B「……뭐, 뭐라고!」
상점D「뭐!」




30
상점F「무슨 바보같은 소리를……! 고졸, 무슨 일 있었던거야?」
상점D「그래! 이 마을의 상권을 무너뜨린 대형마트에 취직하다니 미친 소리다!」
고졸  「……모두, 현실을 봐라!」
상점A「!」
상점B「!」
고졸  「……대형마트는 이 마을의 유일한 취직처야……! 나도 그런 최저임금만 간신히 주는 회사 따위에
           취직하는 것은 싫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 이 마을에서 취직할 길은 이것 밖에 없어!」
상점D「그래서, 우리들을 배반할 생각인가!」
상점E「그래! 한번 더 다시 생각해라! 이 마을에게는 아직 작은 공장이나 상점이 있잖아!」
고졸  「……그 작은 공장도 기껏해야 토요타 자동차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인 제 5차 하청업체
           아닌가! 게다가 나, 내년에는 아버지가 된다고!」
일동 「……!」
고졸 「아내와 아이를 부양하려면, 그나마 이 길 밖에 없었어……! 모두들 이해해줘!……!」




38
>>30
그렇지만 전근 갈 각오가 없다면 절대 승진이 힘들고, 매일매일이 수당도 없는 야근이야. 최악의 일자리라고.




47
>>38
확실히 우리 형 그 자체의 이야기.
 



44
수개월 후

상점A「……상점B, 오늘은 가게 안 열어?」
상점B「제기랄! 입 닥쳐!」
상점A「후, 너도 힘들겠구나, 아들이 대형마트 점원이 되어버렸으니. 그렇지만 그렇게 마시면 몸이……」
상점B「켁, 뭐가 몸이냐!……3대가 물려온 이 전파상도 이제 대가 끊기는데……술이 안 들어갈 수 있냐고……」
상점A「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는 마. 그래도 이 마을에서 50년간 쭉 가전제품을 팔아온 기반이 있잖아」
상점B「그것도 끝이야. ……내년에는, 야마다 전기 대형양판점이 생긴다고 하더구만」
상점A「……! 사실인가, 상점B!」
상점B「그게 들어오면 이제 난 끝이야 ……그때까지 이렇게 술이나 마셔야지 ……아」
상점A「……」



 

58
동네헌책방  「북오프! ··죽어버려!!」
북오프        「후후훗」


 

59
상점A「하……설마 전파상이 그리 되다니……. 이 마을에서 제일 밝은 놈이었는데……응?」
상점D「아, 손님, 저희 문방구에 오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상점A「아……! 문방구다……! 저 손님은 대형마트에서 돌아오는 길의 손님이 아닌가……!」
상점D「저희 가게에서는 닥터그립 스크린 톤도 팔고있습니다……! 그러니 잠시 구경하시다 가세요」
손님A「뭐 이 아저씨www재수없어www」
손님B「닥터그립www그게 뭐 자랑이라고ww그냥 대형마트에 널려있는데www」
상점D「우, 우리는 대형마트 와는 조금 달라……! 부, 부탁해 우리 가게에……!」
손님A「아 귀찮게스리. 이 영세기업이!(뻥!)」
상점D「우, 우웃……」
손님A「아 대형마트가 있는데 이런 곳에 올 리가 없잖아 www그냥 그만둬버려」
손님B「맞아ww」
상점D「다, 다음에 오실 때는 부디, 저희 가게에……!」

상점A「……우, 우우……흐,흐흑」


 

61
>>59
누, 눈물이 나온다;;



 

62
재미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이 조금 쨘하다




64
>>59
조금 우울해졌다
왜 감정이입이 되어버리지
 



78
상점E「크, 큰일이야! 약국! 약국……?」
상점A「……! (눈물을 닦는다)……응, 무슨 일이야 옷가게?」
상점E「너, 울고 있었어……?」
상점A「뭐, 아무튼……그런데 무슨 일이야? 안색이 창백해」
상점E「아, 그래! 큰일이야! 슈퍼(상점F)가! 슈퍼가!」
상점A「뭐라고?」
상점E「그 바보, 대형마트와 싸워보려고 무리하게 주차장을 넓혔나봐, 그래서 빚이 늘어나서, 그래서……!」
상점A「그래서, 슈퍼, 슈퍼는 어떻게 되었는데!」
상점E「아, 그, 그게, 저, 그……」
상점A「어, 어떻게 된거야! 왜 입을 다물지?」
상점E「……」
상점A「……무슨 일인데! 슈퍼, 슈퍼는 어떻게 된거냐고!」
상점E「……조금 전에, 마을 강변에서……낚시꾼이 그 시체를……」
상점A「……! 거짓말……거짓말이야……거짓말이라고오오오오오!」




85
이거 말고도 편의점끼리의 전쟁도 볼만하지 


 

86
대기업    「어이, 대형마트, 잠깐 이리와 봐」
대형마트 「네, 무슨 일입니까」
대기업    「음……너희가 입주한 그 마을, 동네 상권이 완전히 죽어버린 모양이던데」
대형마트 「네. 반년 전까지는 나름대로 먹고 살만했지만, 요즘 몇 개월은 거의 뭐」
대기업    「쯧! 뭐 애초에 젊은 인구가 많지 않은 마을이었으니까. 이 정도가 한계인가」
대형마트 「에? 그렇다면?」
대기업    「닫는다」
대형마트 「응?」
대기업    「그 마을에서 철수해라」
대형마트 「……. 그, 그러나 그 마을은 이제 우리 마트가 먹여살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우리 마트에 취업해서 먹고 살고 있는만큼 즉시 철수하는 것은……」
대기업    「그게 뭐?」
대형마트 「!」
대기업    「더이상 그 마을에서 쥐어짤 수 있는 돈은 없다고. 적자를 볼 수는 없으니 철수해라」
대형마트 「……네」
대기업    「그 동네 상권의 황폐화는 우리 알 바가 아니다. 10월에는 닫을 테니 준비해둬라」
대형마트 「……네. 알겠습니다」




94
아이 「엄마……여기서 그냥 살면 안 돼?」
엄마 「미안해……이제 이 마을에서는 더 살 수 없어……」
아이 「이잉, 학교에는 친구도 있고, 헤어지고 싶지 않아……」
엄마 「미안해……엄마 아빠가 조금만 더 잘 살았더라면……」
아이 「엄마……울지 마. 나, 참을께. 새 학교에 가서도 노력할테니까 울지 마……」

상점A「……지금부터, 어디에 갈 생각이지?」
상점G「……도쿄에 도요타 하청공장이 있다. 당분간 거기서 일할 생각이야」
상점A「그런가……」
상점G「미안, 약국. 너를 혼자 두고 가게 되다니 ……」
상점A「아냐, 신경쓰지마 책방.……거기에 가서도 열심히 살아」
상점G「그래. ……그럼」
상점A「안녕……」


반년 후

우체부(비정규직) 「우편입니다」
상점A                 「아, 네. 으음……어라? 이건 책방 부인의………!」

상점A 「책방이……! 책방이 과로로 죽었다……!」




101
>>94
와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악




105
대형마트 「자……오늘이 영업 마지막이다……응? 당신은 약국의……」
상점A     「……무슨 짓이냐……」
대형마트 「응?」
상점A     「철수한다는게 진짜냐?」
대형마트 「네. 최근 매상이 영 침체되어서……」
상점A     「웃기지 마……! 뭐가 매상이냐! 이 마을 상권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서는……!」
대형마트 「……! 침착하세요. 우리도 적자를 볼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자선단체도 아니고」
상점A     「닥쳐! 너희는 악마야! 이 마을의 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짓을……!」
대형마트 「……」
상점A     「?」
대형마트 「후후……하 하 하! 참 답답한 말씀이십니다. 저희 기업이 공짜로 이런 대형유통그룹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점A     「뭐라고……!」
대형마트 「후후…… 당신도 이제 깨달으셨겠지요. 저희 그룹의 역사를……」
 



220
정말 촌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고향도 지금 이 꼴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241
괴로운 것은 인근 상가 뿐만이 아니야. 꿈을 갖고 마트 안에 입점한 가게들도 괴롭다. (특히 중소세입자)
격렬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인테리어도 1년에 몇 번이나 바꿔서 간신히 버틴다 싶으면
채산성이 낮은 점포니까 나가라는 요구까지w 확실히 지옥이야
2008. 10. 22. 15:19

어머, 이건 사야 해!

http://www.takaratomy.co.jp/products/zoids/staff/001.html

오오오~귀여워 귀여워!
쥐며느리 그 자체!
대체 태엽 하나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거야? 그나저나 30여 개 되는 조이드들 다 처분했는데, 이런 뽐뿌가.ㅠ.ㅠ  12월 발매 예정.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 10. 18. 18:55

천년의 고독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마이뉴스 권우성


반포 래미안 아파트에 있는 천년 된 느티나무다. 가격은 10억 원 정도.  사진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초현실주의적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저 나무는 왜 천년이나 살아온 대지에서 무참히 뿌리뽑혀 콘크리트 건물 틈에 주저앉아야 했을까. 천년 된 나무를 아파트 단지에 심는 천박함보다 더 끔찍한 건, 대다수의 한국인이 꿈꾸는 삶이 바로 저곳에 있다는 점이다.
2008. 10. 11. 18:24

재밌네

http://foog.com/686
http://foog.com/687
http://foog.com/689

셋 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사인데,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대형은행을 국유화해야한다"는 소릴 FT에서 보게 될 줄은... 저러다가 이 매체가 결국 자본주의를 부정하게 되지나 않을지 두려워진다. 정말 오래살고 볼 일이다. 뭐,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뜻이겠다.

요즘 foog님 블로그에 들러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미국거시경제에 대해 이 정도의 속도감과 시의성을 갖춘 블로그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foog님은 옛날에 진보누리에서 놀던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분이기도 하다(물론 당시 필명은 다름). 그때나 지금이나 명석함은 여전하신데, 인기블로거여서인지 방문객에게 너무 친절해서 가끔 느끼하다는 생각도. ㅋㅋㅋ 그러고보니 당시 진보누리 사람들 중에서 날 따로 불러 밥을 사준 대인배가 딱 세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이시다. 조만간 진보누리OB-블로거 모임을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2008. 10. 10. 00:15

<유럽적 보편주의> 중 발췌

"나는 분명히 해두고싶다. 가치중립성이 신기루이자 기만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분석적, 윤리적, 그리고 정치적 과제들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근본적이다. 이 세 가지는 간단히 통합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들은 또한 분리될 수도 없다. 우리의 문제는 통합될 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세 가지 과제들에 관한 이런 표면상의 역설을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다."
...
"따라서 지식인들은 전문분야의 범위가 방대한 제반 지식세계의 특정분야에 사실상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다방면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generalists)'이다."
...
"대체로 사회과학자들은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것이 사회과학자들의 생산물에서 어떤 윤리적 혹은 정치적 활용법도 배우지 못했다고 느끼는 수많은 노동계급 뿐 아니라 힘있는 사람들과 그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사회과학자들을 그렇게 낮게 평가하는 이유다."
...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의 학문적인 분석을 역사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것이) 아무리 유용할지라도 연대기적 세부사항의 축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모든 특정한 상황이 다른 모든 특정한 상황들과 다르고, 모든 구조는 날마다, 10억분의 1초마다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뻔한 사실을 역설하는 식의 설익은 상대화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역사화한다는 것은 정반대다. 그것은 우리가 바로 가까이에서 연구하는 현실을 더 큰 맥락, 즉 그 현실이 자리잡아 작동하는 역사적 구조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관련된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세부항목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역사화는 체계화의 반대가 아니다. 전체의, 즉 분석단위의 역사적 매개변수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체계화가 불가능하다."

-<유럽적 보편주의>, 이매뉴얼 월러스틴, 김재오 옮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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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내용들을 나열하는 책들을 몰아서 읽어야할 때는 중간중간, 이렇게 거대한 스케일의 에세이를 좀 읽어줘야 사람이 쫀쫀해지지 않는다.
2008. 10. 7. 23:27

엄마는 못말려

저녁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하소연이다.

"아들! 니가 느그 엄마 좀 말려봐라! 내 말은 콧등으로도 안듣는다안카나!"

강력한 '절대모권 가족'인 우리집에서 종종 발생하는 상황이다. 근데 이번엔 무슨 일로? 부친 말씀인즉, 어머니가 뜬금없이 꽤 큰 규모의 MTB 아카데미에 가입해 자전거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는 거다. 엥? 환갑 다 되도록 자전거 한번 안 타보신 양반이?

"푸하하, 아부지, 근데 자전거라니, 엄마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래요?"
"모올라! 내가 다친다꼬 그래 말리도 안듣는다! 수영장 끊어가 잘 다니다가 와 저라노, 느그 엄마? 그라고 동네에서 살살 타는 것도 아이고 한 시간도 넘게 버스타고 가가 굳이 거기서 자전거 배운다카이 이거 완전 본격적으로 타겠다는 거 아이겠나? 나이묵어가꼬 고마 쌀쌀 수영이나 하고 국선도나 요가 같은 거나 하믄 얼마나 좋노..."

울 아부지, 마작부터 낚시까지, 골프와 스쿠버다이빙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레저를 섭렵해오신 분이다.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계신다. 물론 돈이 얼마나 깨질지도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게 결국 아버지의 용돈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도 아마 직감하셨겠지...ㅜ.ㅜ 아버지와 통화를 끊고, 바로 어머니 휴대폰으로 연결했다.

"아들래미다."
"어, 아들이가? 우짠 일로 먼저 전화를 다 했지비?" ("~했지비?"는 모친의 기분이 괜찮음을 알려주는 정체불명의 종결어미)
"와, 우리 엄마 자전거 타러댕긴다매? 아부지가 걱정이 장난이 아니드라."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 음, 설마설마했는데 이 아줌마가 진짜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파트 옆동 사는 20년지기 친구한테 뽐뿌 제대로 받으신 거였다. 처음엔 말리려했지만,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차마 못그러겠다. 그저,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것도 일리가 있으니까 관절에 무리 안가게 살살 타시라고만 했다. 하긴 엄마는 말린다고 들을 분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자기가 납득해야만 그만두는, '전제군주형 장녀' 캐릭터. 절대모권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사실 얼마 전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지는 사건이 벌어져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있다. 당신께서도 많이 놀라셨는지, 그렇게 즐기시던 술(어머니랑 대작하다 기절한 적도 있음-_-)도 끊으시고, 돈 없다고 버티는 아들한테 기어코 용돈 타내서(-_-) 헬스장에도 등록하셨다. 본인이 스스로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신 걸 보며 안도하면서도, '울 엄마 포쓰도 많이 죽었네'라고 생각하며 묘하게 울적하기도 했다. 근데 오늘 보니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역시, 울 엄마는 못말려.
2008. 10. 5. 18:11

쥐벼룩의 우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아주 유명한 우화 하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제목이 '벼룩의 우화'인지, '쥐벼룩의 우화'인지 헷갈리는데, 그냥 쥐벼룩으로 하자.

...
어느 과학자가 애지중지 길러온 쥐벼룩 한 마리가 있었다. 과학자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이 귀여운 곤충은 물경 30cm 이상 점프할 수 있는 건강한 쥐벼룩이 되었다. 충분히 자랐다고 판단한 어느날, 과학자는 드디어 실험실로 향한다. 그는 먼저 쥐벼룩의 앞다리 두 개를 과감히 절단한 뒤 소리쳤다.
"뛰어!" 
쥐벼룩은 평소처럼 힘껏 도약했다. 과학자는 연구노트에 기록을 적었다. '앞다리 2개 절단시 35cm 도약.' 이번엔 중간다리 두 개마저 절단해보기로 한다.
"뛰어!"
쥐벼룩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마침내 힘껏 뛰었다. 25cm다. 과학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다리 4개 절단시 25cm 도약.' 과학자는 상기된 얼굴로 쥐벼룩의 뒷다리,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다리 두 개를 절단했다.
"뛰어!"
그러나 가엾은 쥐벼룩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뛰어! 뛰란 말이야!"
목이 터져라 소릴 질러보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과학자는 심각한 얼굴로 그의 연구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쥐벼룩은 다리를 모두 떼어내면 귀머거리가 됨.'
...

정부의 세제개편안과 각종 경제정책들, 게다가 요즘의 '최진실법'까지 보고있자니, 우화가 더이상 우화로 보이지 않는다.
2008. 10. 2. 06:15

다시, 강의석

블로그 유입경로를 살펴보니, 7개가 '강의석' 관련단어였다. 아마 강의석 씨가 알몸시위 등으로 기사화되자 예전에 내가 썼던 '영악한 처세가 혹은 포스트모던한 주체'라는 글이 다시 화제가 된 것 같다. 검색해보니 장난이 아니다. 사방팔방 글이 돌아다니고 있다. 어느 기자 녀석은 다른 말 다 빼버리고 '영악한 처세가'라는 단어만 똑 떼어내 강의석 씨 인터뷰 자리에서 그를 자극하는 용도로 이용하기도 했다. 하여간 인용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을 기자라고... 강의석 씨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글이 돌아다니는 것 자체는 신경쓰이지 않는데, 저 글이 이상한 방식으로 편집되는 건 좀 짜증스럽다.

강의석 씨는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서 알몸으로 탱크를 막아선 뒤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과 군대폐지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의 주장과 관점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양심적 병역거부운동과 평화운동의 대의만큼은 적극 지지한다. 만일 강의석 씨가 그 운동 때문에 납득하기 어려운 수위의 처벌을 받게 된다면,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기꺼이 그를 도울 것이다. 특히 국군의 날에 보여준 퍼포먼스는 젊은 활동가다운 대담하고 깜찍한 액션이라 놀라면서도 꽤 즐거웠다. 모름지기 활동가라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파문을 일으켜야 하는 법이다. 이왕이면 앞으로도 말을 아끼는 게 본인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경범죄 등으로 체포됐다고 하는데, 별 탈없이 풀려났으면 한다.
2008. 10. 2. 00:49

시밤

요 며칠 34권의 책을 사들였다. 이런 금욕적인 지름은 처음이다. 모든 책이 쾌락이 아니라 필요에 따른 것이니, '금욕적 지름'이란 형용모순이 적당하다. 몇달 전 직장에서 집필자료용으로 하루에 책을 수십권씩 사곤 할 때는 참 좋았다. 당연하다. 내 돈이 아니라 정부돈이었으니까(청와대 돈이었나? 뭐 아무튼). 법인카드랑 초대형 쇼핑백 두개를 들고가서는, 은행강도가 은행돈 쓸어담듯 책들을 퍼담았다. 쵸큼 짜릿했다. -_-  그나저나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책을 사야할지 감도 안온다. 적어도 하루에 두 권 정도 정독을 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책 읽는 시간을 따로 정해놓지 않으면 쌓이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영영 따라잡을 수 없다. 갈수록 높아지는 도서탑을 보고있자니 식은땀이 난다. 인세로 받은 돈을 책 구입에 다시 꼴아박아야 하는 내 신세. 시밤, 전생에 책이랑 무슨 원수를 졌길래.
2008. 9. 29. 15:30

죽지도 않고 또 왔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12909.html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12071.html



소위 '개혁세력'의 레퍼토리인 '민주적 시장경제론'이 슬금슬금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개혁진보세력"이라 뭉뚱그린 <한겨레>의 제목 붙이기도 다분히 의도성이 느껴진다. 어쩌라고? 다시 반한나라당으로 대동단결?

민주적 시장경제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 쉽지 않다. 논자에 따라 결이 달라져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을 치열하게 관찰하고 정교하게 주조한 이념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사실 이건 블레어와 클린턴의 이데올로그들이 만들어낸 명제들 중에서 듣기 좋은 것만 골라서 짜깁기한 것이다. 영미식 신자유주의가 한계를 노출했다면서 들이미는 이념이 고작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시절의 '관제이념'이라니, 화가 난다기보다 서글프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빈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좌파의 무능이 가져온 참상이라는 점에서.
2008. 9. 27. 08:02

웃으며 떠나기


‘일산 노옹’ 김훈 국장(김국)을 찾았습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종횡무진 얘기를 나누던 차에, 슬슬 그의 선기(禪氣)가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주된 레퍼토리 중 하나라 예전 같으면 실실 웃으며 넘겼을 터이나, 이날만은 달랐습니다. 벼락 치는 소리처럼 귀를 때리더군요. “사실에 바탕해서 의견을 만들고, 의견에 바탕해서 신념을 만들고, 신념에 바탕해서 정의를 만들고, 정의에 바탕해서 지향점을 만들자. 이게 갈 길이다. 저널리스트로서 평생의 고민이 이것이다.”                    
                                                              -<시사IN> 54호, '편집국장의 편지' 중


<시사IN> 신임 편집국장의 첫 일성이다. "신념에 바탕해서 정의를 만들고" 대목까지 읽다가 끝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국일보> 시절 군사정권을 찬양한 김훈, 그 전력을 "사과하는 대신 끌어안고 살겠다"던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을 마른 한숨처럼 토해내던 김훈이 저런 얘길 했다는 게 웃겨서 견딜 수가 없다. 선기(禪氣) 좋아하시네, 취기(醉氣)겠지. 인용한 부분 외에도 저 글 전체가 여러가지 '의미심장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이 매체의 행보가 정말이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보니 내가 <시사IN>에 기고를 해온지도 벌써 반년이다.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화가 나서 그만두는 것보다 이렇게 웃으며 그만두는 것도 어찌보면 축복이겠다. 시점을 정확히 알려준 신임국장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당분간 공부에 집중해야겠다.
2008. 9. 25. 01:36

드림 팩토리

http://www.hani.co.kr/arti/economy/car/298933.html


지인에게서 전해듣고 제대로 관심을 갖게 된 사업장이다. 충남 서산의 '동희오토'라는 업체인데 현대기아의 '모닝'을 생산하는 곳이다.

대기업의 불법 사내하청 문제가 사회문제화하자, 현대기아는 아예 완제품을 출고하는 '사외하청기업'을 만들어버렸다. 나도 기자생활하면서 별별 골 때리는 사업장을 다 돌아다녀봤지만, 이런 형태의 편법고용은 처음 봤다. 위 기사에 나와있듯 완성차 위탁생산방식은 도요타가 최초이지만, 본사와 비슷한 수준의 정규직 노동자를 쓰기 때문에 동희오토와 같은 방식이라 말할 수 없다. 아무튼 한국 자본가들 알아줘야 한다. 선진국 따라하기를 꼭 이렇게 최악의 형태로만 한다. '한국기업의 선진국 배우기'를  기획기사로 만들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풍자이자 골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놀랍게도 동희오토는 생산라인 노동자의 100%가 비정규직이다(2008년 9월 25일 현재, 정규직 비율이 달라졌을 수 있다).  정규직이 될 희망조차 없는 이 공장에서, 노동자는 한번 쓰고 버려지는 존재들이다. 실제로 2년 이상 버티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이런 곳은 노동의 장소가 아니다. 인간이 기계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버려지는 곳, 즉 매트릭스다. 그러나 기업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공장일테다.

하루 10시간 주6일 일하고 야근, 특근까지 해서 받는 돈이 130만원 정도라고 한다. 기본시급은 언제나 그 해의 최저임금에 딱 맞춰져 있다. 이런 제3세계형 노동착취가 최근 '모닝 대박신화'의 실체였다. 아직 기륭전자나 이랜드처럼 큰 이슈가 되고 있진 않은데, 이미 경제신문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경영혁신사례'로 추앙받고 있었다. 효과적인 이슈파이팅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2008. 9. 22. 16:09

닥치고 단 거


영화 <맘마미아>를 봤다. 무뇌적 스토리와 뇌쇄적 멜로디의 환상적 조화. 그야말로 '닥치고 단 거'의 끝을 보여준다. 그동안 난 뮤지컬 <맘마미아>를 철썩같이 80년대산인 줄 알고 있었는데 1999년에 초연됐단다. 내 기억력이 원래 막장이긴 하지만, 뭐냐, 이 엄청난 데쟈뷰는... 하긴 그렇게 친숙하기에 성공했을테다. 위의 노래는 내가 젤 좋아하는 80년대풍 디스코 '김매김매김매.'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의 딸로 분한 아만다 시프리드가 불렀다. 이 아가씨 노래 참 잘한다. 그래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노래는 물론이요 퍼포먼스까지 킹왕짱'인 울 여친만은 못하다. ㅎㅎ

중고딩 때 아바 좋아한다 그러면 이뭐병 취급을 당했기 때문에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실은 다들 아바 노래를 많이 듣곤했을 거다. 인간이란 게, 가끔씩 단 게 무지무지 땡길 때가 있거든. 단 것은 언제나 모종의 죄의식을 동반하기 때문에 더 유혹적이다. 어릴적부터 '단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그래서 지금도 초콜릿, 케익 등으로 누가 꼬시면 유괴당할 게 뻔한(대체 누가 널!) 나이기에, 영화를 참 즐겁게 봤다. 부모님 모시고 가서 보기에 딱 좋은 영화다. 울 엄니도 소시적에 고고장서 발바닥 좀 비비셨다는데, 기회되면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여드려야겠다.
2008. 9. 21. 02:40

한국적 평등주의

한국의 부자 대다수가 "평등주의 근성이 나라를 망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나라 망친다는 건, 자기가 망한다는 의미다. (원래 어느 나라나 부르주아는 이렇게 '보편적 언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주의깊은 부자라면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적 평등주의야'말로 그들의 가장 강력한 방패라는 사실을 깨달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평등주의는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갖는 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적 평등주의는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이다. (자매품 "내 새끼도 서울대 가야 한다"와 "나도 MBA 따야 한다" 등이 있다.) 즉, 일반적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삼고, 한국적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삼는다. 전자의 입장에 서면 필연적으로 부자가 가진 것을 일정 부분 빼앗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못 가진 자들에게 분배할 테니까. 그러나 후자의 입장에 서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부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은 곧 자신의 숭고한 목적을 훼손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적 평등주의는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수탈하는 상황을 야기하고, 부자들에게는 어떤 위험도 초래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게 바로 이것, 한국적 평등주의였다.
2008. 9. 18. 17:46

국가의 귀환?

미국발 금융위기가 금융자본주의의 종말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요 며칠 스티글리츠가 거의 조증에 빠진 걸 보고 있자면 금융시장이 더 많은 통제를 받아야한다는 주장을 더이상 반박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 남은 건 세계자본주의 붕괴이고 전지구적 공산혁명일까. 그럴 리 없겠다. 그저 국가가 반복강박처럼 귀환할 뿐이다. 그 모습은 예전과 사뭇 다를 게 분명하다. 이제 국가의 귀환을 이해하는 방식이, 사회적 관점의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의 문제는, 국가가 시장을 통제할 생각을 않고 시민만 통제한다는 것. 견적이 안나온다.
2008. 9. 17. 18:03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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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먼데 가서 커피 마셨다. 무려 강릉.

얼마 전에 여친사마께서 dslr 질러주셨고, 내가 단렌즈 하나를 진상했던 터라, 당연히 카메라도 들고 갔다. 카메라 소유권은 여친께 있으나, 보관권은 나에게 있으므로, 내킬 때 출사를 다닐 수 있게 됐다. ㅋㅋ 기종은 무난하게 캐논 450D. 렌즈는 캐논 35mm f2. 일명 사무캅이라 불리는 렌즈인데, 가격대 성능이 정말 킹왕짱이라능. 작은 바디에 물려놓으니 정말 딱이다. 원래 배두나가 들고 다닌다는 35mm f1.4L 렌즈('럭셔리의 L렌즈'!)를 한 번 써 보고 뻑이 가서 미친 척하고 지르려 했으나, 구입 직전 다음을 기약. (까막눈인 내가 봐도 일명 '사무엘'이라 불리는 그 L렌즈, 참 눈물나게 감동적인 화질이었고, 피눈물나게 비쌌다.) 친한 선배네 부부와 동행했는데, 선배의 남편이 광고사진 등으로 밥 먹고사는 '프로'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주셨다. 차에는 5d와 L렌즈가 막 굴러다닌다... 제대로 광고사진을 만들 때는 왜곡을 최소화는 핫셀블라드 같은 중형카메라로 찍는다고 한다. 가격이 내가 사는 집 전세가격에 육박한다. ㅎㄷㄷ뭐, 나와는 무관한 세계 이야기다. 이날 형에게 피사계심도와 화이트밸런스의 개념과 예시를 일목요연하게 듣고 보면서, "오오오!" 쌩초보가 이렇게 L렌즈 만지작거리며 사진 배우면 버릇 나빠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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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신 곳은 한국 커피문화의 산 증인이자, 소위 일본유학파의 거두 중 한 명인 박이추 씨가 운영하는 보헤미안이다. 하와이언 코나를 마셨는데, 명불허전. 정말 정성스런 핸드드립이 뭔지 보여줬다. 사실 커피 마시려고 강릉까지 간 것은 아니었으나, 그 먼 길이 보상되고도 남는 맛이었다. 보헤미안 뒷편에는 바로 해변인데, 그곳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사진찍기 놀이와 사진찍기 강좌가 벌어졌다. 그러고보니 이 부부와 우리의 인연도 참 징하다 징해.

2008. 9. 9. 20:28

La St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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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세콰이어 가로숫길.


지인들과 1박2일의 자전거여행을 다녀왔다.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광주로, 광주에서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담양으로 갔다. 소쇄원 부근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은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담양투어를 했다. 이번 여행은 자전거여행에 방점이 있었지만 본격 남도 한정식을 맛본다는 야심찬 '맛집기행'이기도 했다. 허나, 결국은 동행한 추천인의 굴욕으로 마무리.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한 마디로 '돈지랄'이었다. 가슴 미어지는 이야기라 자세한 코멘트는 생략.

속도감을 한껏 즐기기엔 여의치않은 상황이었지만, 자전거를 즐기기엔 충분했다. 모든 생물을 절멸시키며 점과 점을 직선으로 잇는 고속국도  대신에, 우리가 택한 길은 한적하다못해 적막한 지방도로였다. 아마 20년 전엔 이 길이 옆 동네 김씨가 야반도주했던 신작로였으리라. 그러나 이젠 더이상 자동차를 위한 길이 아니다. 야만적 근대화조차 아련한 추억으로 만드는 세월의 힘, 그리고 자본의 속도에 문득 소스라친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있고, 아직은 파릇한 논들이 시원하게 눈을 씻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람, 그 시원한 바람.

자전거를 타본 사람들은 알 게다. 고통의 오르막 뒤엔 반드시 쾌락의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세찬 바람의 화살에 세포 하나하나를 관통당하는 그 느낌은, 비록 단 한번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육체에 각인되고 만다. 자전거여행은, 그것을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 깊숙이 새겨넣는다. 땀투성이에, 때로 짜증이 솟구치지만, 사람들이 자전거여행을 끊임없이 떠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카메라를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 위의 사진도 폰카로 찍은 거라 참 거시기하다. 다음 번에는 카메라 하나만큼은 꼭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