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2. 18:14

밥상 걷어차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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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서명자가 5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ㅎㄷㄷ... 처음 제안한 이는 고등학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때맞춰 방송된 시사프로그램과 맞물려 굉장한 폭발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당은 처음엔 '지가 깝쳐봤자지 ㅋㅋ' 하면서 쪼깨고 앉아 있었을텐데, 사태가 불과 하루이틀 사이에 일파만파 커져서 이제 더이상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할 수가 없게 됐다. 나는 대운하가 정권을 흔들 뇌관이 될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침을 묻혀놔서 '젖은 화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쇠고기가 반MB의 기폭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한국사람들이 쌓이고 쌓인 불만을 드러내는 타이밍은 먹는 것을 앞에 두고 있을 때다.  1) 숟가락을 내동댕이치면서  2) 밥상을 확 걷어차고  3) 벌떡 일어서는, 요 세 가지 동작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력을 가진  게 한국인이다.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아드레날린은 맥시멈을 찍는 것이다.

2008. 4. 29. 13:58

사이코패스의 꿈 [시사IN 32호]

 미국 TV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웬트워스 밀러 분)는 샤프한 외모에 더해 뇌쇄적 음성과 천재적 지성, 천사적 감성까지 갖춘 완벽남이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형을 구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공전절후의 탈옥극을 벌인다. 정교한 설정과 숨 막히는 스토리 전개에 한국의 ‘미드 폐인’들은 열광 또 열광했다. 스코필드는 어느새 ‘석호필’이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당시 백수였던 내가 이 드라마를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한 회라도 빠뜨릴세라 열심히 봤다. 그런데 시즌 1의 중반 즈음에 이르자,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잘생기고 똑똑한데다 착하기까지 한 석호필이, 실은 ‘정신병자’라는 거다! 석호필의 주치의였던 정신과 의사는 그가 ‘잠재억압부족(Low Latent Inhibition)’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이 증상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물을 볼 때 그 겉모습 뿐 아니라 내부구조와 구성요소들까지 직관적으로 파악해버린다. 보통사람이라면 지나치게 세세한 정보들은 미리 차단하기 때문에 별탈이 없지만, 잠재억압부족증상(LLI)이 있는 사람은 홍수처럼 밀려들어오는 정보 때문에 결국 미쳐 날뛰게 된다.

정신과 의사는 덧붙였다. “하지만 석호필처럼 아이큐가 높으면 그런 정보를 모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천재가 된다.” 에이, 이런 말도 안되는 설정이 어딨어, 라며 코웃음을 치다가 혹시나 싶어 잠재억압부족에 대해 검색을 해봤더니, 놀랍게도 관련 논문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2003년 하버드대와 토론토대 연구자들의 논문 ‘Decreased Latent Inhibition Is Associated With Increased Creative Achievement in High-Functioning Individuals’).

석호필은 드라마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못하는데, 곤경에 처한 사람의 아주 작은 신호조차 예민하게 감지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석호필이 착한 건,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착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인간이라서다. 이처럼 잠재억압부족(LLI)이 미국 드라마 속에서 ‘착한 놈’의 생물학적 증거로 그려진 반면, 요즘 한국사회에 자주 회자된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L: Psychopathy Checklist)는 ‘나쁜 놈’이 될 가능성을 진단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진화심리학자 린다 밀리 박사의 정의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경쟁적 환경 하에서 타인의 이타심을 악용해 자신의 욕구만 채우는 이기적 인간’이다. 그래서 사이코패스가 타인의 고통에 그토록 무관심할 수 있는 것이다. 연쇄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건 사이코패스 중 극히 일부인데,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욕구는 금전적 이익이 아니라 살인 또는 강간이다.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 사이코패스는 ‘멀쩡한’ 사람들이며, 경제학자들이 사랑해마지않는 ‘합리적 인간’ 그 자체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사이코패스를 미지의 괴물로 생각한다. 정작 우리 자신을 사이코패스로 만들고 있는 환경에는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으면서.

‘착한 놈’이 착한 원인을 굳이 정신질환에서 찾아야 하는 미국 드라마, 그리고 ‘나쁜 놈’을 사이코패스로 규정하면서도 ‘나는 정상인’이라 굳게 믿는 한국사회. 공통점이 있다. 선악의 근거를 개인의 생물학적 결함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는 공동체의 목표를 상실한 사회의 특징이자, ‘윤리’ ‘평등’과 같은 가치 지향적 단어를 순진하다며 냉소하는 ‘실용주의’가 다다른 기묘한 종착지다. 남는 것은 승자독식의 배틀로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 잠재적 사이코패스들의 꿈은 야무지다. ‘나 말고, 당신만은 석호필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