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0. 00:23

징그럽다

20대 왕따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찌질하여 사회적 발언권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도 아마 사실일게다. 그런데 10대들이 촛불집회에서 부각될수록 20대의 게토화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좀 당황스럽고 씁쓸하다. 요즘 누구나 "10대들이 사랑스럽다"라고 말한다. 나도 저 '참을 수 없이 남성화된 광장'이 사실상 처음으로 여성의, 그리고 십대소녀의 놀이터가 된 것이 너무나 기쁘다. 내가 불편한 건, 386들의 지랄맞은 구별짓기 때문이다. 10대들을 상찬하면서 꼭 "20대와 달리"라는 말을 붙인다. 같은 말을 해도 꼭 그런 식으로 해야겠나. 동참하려던 20대들마저 등 돌리게 하는 그런 말뽄새, 참 징그럽다 징그러워.  이런 구별짓기에 나도 일조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2008. 5. 4. 22:24

멘토링과 리더십

2002년 신효순 심미선 씨 사망사건 당시, 광장에서 열리는 초대형 대중 집회가 더이상 운동단체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시대가 왔음을 직감했다. 운동권의 눈에 비친 이른바 대중은, "당신들에게 사상도, 운동도, 집회도, 그 무엇도 지도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보였다.  

그 서슬에 놀란 운동권들이 멈칫거리는 사이, 과실은 고스란히 '노빠'들의 것이 됐다. 비슷한 광경이 이후에도 몇번인가 반복되었는데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광장의 싸움'이 된 지금, 운동권과 진보적 지식인 중 일부는 이 현실을 완전히 승인한 것 같다.

2008년의 한국시민들은 자신의 삶을 지도해 줄 '멘토(mentor)'를 그렇게나 욕망하면서도 집단행동에 나설 때에는 '리더십'을 벌레보듯 혐오한다. 개인은 지도받지 못해 안달이고, 그 개인이 모이면 지도받기 싫다고 난리다. 이런 묘한 이중성은 분명 과거와 구별되는 현상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좌파 또는 진보들은 거꾸로 움직여온 게 아닐까. 대중이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 가오 팍팍 잡으며 리더십을 발휘하려 하고, 대중이 수동적일 때는 조신하게 멘토링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은 그 반대로 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어느 경우라도 '가오 잡고 악을 쓰는 리더십'은 금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