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13. 10:29

서평 『능력주의는 허구다』

『시민과 세계』 제23호_서평 능력주의는 허구다

 

미국사회 부()의 상속에 대한 분석

 


 

이 책 능력주의는 허구다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능력주의 신화를 배반하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능력 및 노력에 비례해 보상해주는 사회 시스템을 뜻한다. 능력주의를 이상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져 왔다. “그 누구에게도 차별적 특혜를 주지 않으며,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며, 타고난 계층 배경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제공한다는 논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12)


스티븐 J. 맥나미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이하 저자)는 주로 미국 사례를 들어 능력주의 신화가 왜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지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한국사회에도 부합한다. 한국 역시 미국처럼 능력주의를 일종의 사회적 당위로 여기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현재 능력주의가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지를 주로 논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의 능력주의 신화는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부유층과 특권층은 칭송하고 저소득층과 빈곤층은 부당하게 비난하는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14) 능력적 요인보다 비능력적 요인(상속 등)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적 요인(merit factor)’은 타고난 재능, 능력, 근면성실함, 올바른 태도, 높은 도덕성, 이상적인 자질 등이다. ‘비능력적 요인(non-merit factor)’에는 부모의 경제적 자원과 가족의 계층 배경, 부의 세습, 특권의 대물림, 우수한 교육,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행운, 차별적 특혜, 태어난 시기, 시대적사회적 상황 같은 요인이 있다. 저자는 비능력적 요인이 현실에서 어떻게 불평등을 생산하고 또 확대시키는지에 논의를 집중시킨다. 이런 논의들을 근거로 저자는 (미국) 사회가 능력주의를 주창하지만 실은 전혀 능력주의 사회가 아님을 보인다.


이 책의 한계는 능력주의를 주제로 삼고 있음에도 능력주의 개념에 대한 심층 분석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의 논의는 주로 비능력적 요인이 얼마나 개인의 성공을 좌우하는지, 상속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등에 집중된다. 능력주의가 현실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이념이라는 점은 물론 지적되어야 하겠으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능력주의라는 개념 자체에 더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능력의 모호성,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능력주의조차 그 자체로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점이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다. 먼저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한 다음, 한계를 짚어보기로 한다.

 

특권의 매개체, 교육

 

교육(학교)은 성공의 열쇠인가 아니면 성공의 징표인가? 이는 교육을 계층이동의 수단으로 보느냐 계층화의 결과로 보느냐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관점을 반영한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은 교육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지만, 저자에 따르면 교육은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일 뿐이다.


교육이 성공의 열쇠라는 주장, , 교육을 계층이동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그동안 다양한 이론으로 뒷받침됐다. 기능적 교육 이론, 인적 자본 이론, 지위 획득 이론 등이 그것이다. 기능적 교육 이론은 현대사회에서 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필요한 훈련과 기술을 제공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기능적 교육 이론은 능력주의적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할당되고 개인의 능력은 모든 사회 계층에게 동등하게 분배된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이 이론에 따르면 교육의 확대는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인적 자본 이론은 인간을 자원으로, 자본의 한 형태로 본다. 교육은 개인이 자신의 인적 자본에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인적 자본 이론 속의 개인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자본가가 된다. 능력주의와 강한 친연성을 지닌다.


지위 획득 이론은 다변량 통계 기법을 활용해 개인이 가진 심리적 특성과 특징적 태도가 교육 수준, 직업에서 비롯된 사회적 지위, 소득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그러나 지위 획득 이론은 비능력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산업적 기회 구조처럼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을 간과한다. 이런 구조적 요인은 개인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요소지만 개인의 직업 선택이나 인적 자본의 가치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런 이론들과 대조되는 이론도 있다. 대표적인 게 사회적 재생산 이론이다. 이 이론은 교육을 성공의 열쇠가 아니라 (성공의) 징표로 보고, 계층화의 (수단이 아니라) 결과라고 주장한다. 보울스와 긴티스는 자본주의 미국의 학교 교육에서 학교 교육이 개인의 경제적인 성공에 미치는 영향은 부분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계층에 따라 불평등한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부모의 개입, 수준별 수업, 부유한 동네냐 가난한 동네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학교 재정 등은 세대가 바뀌어도 교육의 질과 수준이 거의 바뀌지 않는 이유가 된다. 사회적 재생산 이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한다.”(58)


저자는 다양한 통계와 사례를 들어 사회적 재생산 이론이 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보인다. 미국의 상위 146개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 중 74퍼센트가 부모 소득 기준 상위 25퍼센트에 속하며 소득 하위 25퍼센트에 속하는 학생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런 예들 중 하나다. 사회학자 미첼 스티븐스는 계층을 만들다에서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반영한다는 SATACT 등의 평가 방식은 평등한 교육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오히려 계층의 특권만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자가 교육 및 학교에 관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학교는 사회에 존재하는 기존의 불평등을 오히려 더 반영하고 심화시킨다. 학교는 특권층 자녀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더욱 발전시키고 이런 자본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더욱 발전시키고 이런 자본들이 갖고 있는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특권층 아이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한다.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집안 아이들에게는 별 볼일 없는 교사와 질이 떨어지는 교육 과정, 수준별 수업, 부실한 학교를 배정하고 이런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낮은 기대치라는 자기충족적인 예언을 강요하는 등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아이들을 벌한다.”(80)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이어서 저자는 두 개의 비능력적 요인,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으로 시선을 돌린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누구를 알고 있는가혹은 당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의 가치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인맥이다. 기회는 사회적 자본에 따라 차별적으로 주어진다. 개인과 가족의 인맥은 교육적 경제적 기회에 접근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자본은 자기 능력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대부분 부모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사회적 자본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해 수행되었고, 미국 사회학자 제임스 C. 콜맨도 관련 연구를 축적했다. 사회적 자본의 주요 구성 요소나 자원, 그 접근 기회 중 그 어느 것도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자원이 존재하고 그 자원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적 자본(cultural capital)사람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알아야할 모든 것, 규점과 가치관, 신념, 매너, 학위, 취미, 라이프 스타일 등에 관한 지식이다. 그것은 한 집단의 문화가 다른 집단의 문화보다 뛰어나다는 암묵적 인식에 기반한다. 문화적 자본은 부르디외가 아비투스(habitus, 집단습속)라고 부른 것 속에 자리잡고 있고 이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부르디외는 또한 학교 졸업장, 즉 학력 자격증이 문화적 자본의 증거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학위를 따면 법적으로 보장되는 문화적 자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와튼 스쿨을 졸업한 MBA 소지자가 일정 금액 이상의 연봉을 보장받는 것처럼, 학력 자격증은 능력의 우월성을 보증하는 증거가 되는 동시에 자격을 갖지 않은 사람을 걸러내는 여과장치로 기능한다.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은 부모의 구체적이고 의도적인 실천으로 전수된다. 아네트 라루는 불평등한 어린 시절이라는 책에서 노동계급빈곤층 아이들과 중산층 아이들이 어떻게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지를 묘사한다. 라루는 중산층 부모들이 집중 양육 방식을 통해 자녀들에게 체계적이고 의식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산층 가정과 노동자 계층 가정은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되는지에 대해 각기 다른 문화적 레퍼토리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는 각기 다른 사회적 역량과 문화적 역량을 갖도록 자녀들을 사회화시킨다.”(106)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오바마의 성공이 능력주의를 상징하는 사건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버락 H. 오바마는 미국의 44대 대통령이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고 2012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오바마의 당선은 아메리칸 드림과 능력주의의 재확인이라고 칭송받았다. 조지 W. 부시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오바마의 당선이 1960~1970년대 인권운동의 정당성을 최종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는 오바마의 경험이 미국에서 소수 인종이나 흑인의 경험을 대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바마는 교육 수준이 높고 문화적으로 다양한 가족 환경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아이비리그에서 교육받으며 자신의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한층 강화하며 상류층으로 공인받았다. 오바마는 물론 미국 최상류층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바마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과도한 기회와 명망 있고 영향력 있는 형태의 사회적 자본 및 문화적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특혜를 물려받는다.(124)

 

, 교양, 인맥 그리고 운

 

저자는 일관되게 비능력적 메커니즘이 능력을 압도한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특히 글자 그대로의 자본, 즉 돈은 교육, 사회적 자본, 문화적 자본의 영향력을 능가하는 최강의 비능력적 요소다. 특히 저자는 소득 불평등보다 부의 격차(자산 불평등)가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1) “2010년 미국 가구 중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총가계 순자산의 74.5퍼센트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퍼센트는 순자산의 1.1퍼센트를 갖고 있었다. 2007년 자료를 보면 순자산이 제로 혹은 마이너스인 가구가 24년 만의 최고치인 18.6퍼센트에 달했다. 이는 곧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 어떤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거나 혹은 소유한 자산을 능가하는 수준의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129)


물질적 재산의 상속은 특권을 물려주는 절대적인 수단이다. 미국에서 세대 간 부의 이동을 살펴보면, 가장 부유한 집단과 가장 가난한 집단에서 사회적 이동은 발생하지 않는다. 중간 집단에서 작은 규모의 계층 상승과 하락이 발생할 뿐이다. 다수 미국인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출발점 혹은 출발점과 매우 가까운 곳에 계속 머무른다. 사회 시스템 상층부에서 엄청난 부가 세습되어왔으며 지금도 세습되고 있다. 그들의 부는 확고하며,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그 안정성이 위협받는 일은 없다.


부의 세습이 자녀 세대에게 주는 특혜는 단지 많은 재산 이상이다. 먼저 유년기에 누리는 물질적으로 윤택한 삶부터가 특혜다. “특권층 자녀들은 신체적인지적감정적사회적 발달이 좀 더 빠르고 뛰어나며, 공부를 할 준비가 좀 더 잘되어 있고, 학업 성취도도 높다. 반대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도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범죄와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좀 더 많은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 문제로 고통 받고,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가족 붕괴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139)


특권층 자녀들은 흔히 교양이라 부르는 문화적 자본과 인맥이라 부르는 사회적 자본도 함꼐 물려받는다. 그것은 물질적 재산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과소평가되기 쉽지만 매우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며, 그런 비물질적 형태의 자본은 하위계층을 차단하고 배제하는 높은 허들로 작용한다. 부모가 사망하여 물려주는 재산만이 아니라, 부모가 살아생전에 자녀에게 증여하는 돈도 중요하다. 부모들은 중요한 삶의 변곡점, 이를테면 대학 진학, 결혼, 주택 구입, 출산 등의 이벤트 또는 실질, 이혼, 질병 등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녀들에게 많은 돈을 직접 물려준다. 가족이니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회 전체 불평등을 고려하면, 이런 일은 상속세 한 푼도 내지 않고 부모의 재산을 자녀에게 일치감치 상속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하나 중대한 요소는 ’, 행운이다.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우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행운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복권에 당첨되거나 벼락에 맞는 것과 비슷한 확률로 벼락부자가 될 기회를 잡는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주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우는 이렇게 말한다.

 

빌 게이츠는 미국의 하위 40퍼센트에 속하는 가정이 보유한 것과 맞먹을 만큼 많은 부를 갖고 있지만 1,10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의 재능을 모두 더한 것과 똑같은 수준의 재능(IQ, 뛰어난 사업 감각,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향 등)을 갖고 있지는 않다. 빌 게이츠만큼 똑똑하고 빌 게이츠만큼 훌륭한 사업가 기질을 갖고 있으며 빌 게이츠만큼 모든 것을 잘 해내지만, 빌 게이츠처럼 많은 부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엄청난 부를 얻는 것은 조건부 로또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적하다. 거기에는 반드시 행운이 필요하다.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187)

 

타고난 재능과 근면성실

 

능력주의의 중요한 전제는 타고난 재능의 차이다. 능력주의의 신봉자들은 타고난 재능의 차이는 부정할 수 없으며 그 재능에 따라 자원이 분배되는 것은 효율적인 일이므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서로 비교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적확히 대답하기 어렵다. 과연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은 그렇게 명쾌하게 인지되고, 비교할 수 있는 것일까?


올림픽 수영 챔피언들을 오랫동안 추적하며 연구한 사회학자 대니얼 F. 챔블리스2)에 따르면, 타고난 재능이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실제로 성공하기 전까지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재능을 근거로 성공과 실패를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수영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기초신체능력, 즉 근력과 심폐지구력의 한계치는 매우 낮으며 선수 간 차이가 그렇게 엄청나지 않다. 반면 수영선수로 성공하는 데에는 그런 차이 외에 기후가 온난한 곳에서 훈련받을 수 있는가 여부, 부모로부터 충분한 뒷바라지를 받는가 여부, 전문가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가 여부가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일반적으로 운동의 유형과 해당 종목에서 활약하는 프로 선수들의 인종과 출신 계층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운동 실력 뿐 아니라 차별적인 기회가 재능을 펼치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저자는 거듭해서 강조한다.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절대 아무 것도 안된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재능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어야 하고, 체계적으로 계발되어야 하고, 한 단계 더 발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재능이 발견되지 않으면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기반으로 사회적 이동성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끝나게 된다는 뜻이다.(199)

 

재능 외에 능력주의의 또 다른 요건은 노력, 근면성실함이다. 작가 바버라 애런라이크는 일 년 동안 웨이트리스 등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며 미국 하층 노동자의 삶을 직접 경험하며 관찰한 결과를 토대를 책을 썼다. 그의 결론 중 하나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적은 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잡역부, 웨이트리스, 청소부들은 매일매일 몸이 부스러질 것처럼 힘들게 일하지만 이런 힘든 노동을 추가로 더 한다고 해서 부자가 되거나 상위 계층으로 올라설 수 없다. 반면, 어떤 직업들은 이들보다 훨씬 덜 일하고 있음에도 많은 돈을 받는다. 진짜 부자들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막대한 재산이 그 자체로 돈을 벌어들인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일을 하든 근면성실함 그 자체는 노력에 대한 대가로 가장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한 그 어떤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될 수 없다. 근면성실함은 중요하긴 하지만, 보상의 측면에서 보면 무엇을 하는가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논의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사회에 엄존하는 각종 차별(인종차별, 성차별, 외모차별 등)이 부당한 특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런 차별을 철폐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누진세를 강화하고, 차별을 없애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강화하고, 노조가입과 노동운동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하며 책을 끝맺는다.

 

능력주의라는 이상은 과연 좋은 것인가

 

과연 그 정도 변화로 이 극심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지만, 이 책에서 정작 아쉬운 점은 다른 데 있다. 능력주의 신화를 비판한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상속과 세습을 비판하는 데 내용의 대부분이 할애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능력주의 사회가 아니라 사실 상속주의 사회야!”


저자는 이 문장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사례와 통계를 동원했고 그 논의들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것은 상속사회세습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이지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라 할 수 없다. 능력주의를 총체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능력주의가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왜곡)되고 있는지를 비판해야 하며, 나아가 진정한 능력주의즉 능력주의의 이상적인 형태까지 비판해야 한다.


능력주의를 다루는 대다수 담론들은 상속과 세습의 악덕을 비판하며 능력주의의 미덕을 옹호하는 데 머무르고 만다. 저자는 이 책에서 능력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데까지 이르지도 못한다. 저자는 어떤 부분에서 진정한 능력주의라는 것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서술하다가 또 어떤 부분에서는 진정한 능력주의가 실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초반부와 후반부의 서술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다음 대목을 보라. “학력 자격증은 개인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능력주의가 위협을 받는다.”(79) “진정한 기회평등을 이뤄내고 오직 능력만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듯하다”(333)


저자가 능력주의라는 이상 자체가 문제일 수 있음을 아예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자.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모두 잘 인정하려 들지 않는 한 가지 진실은, 진정한 기회평등이나 오직 능력만을 성공의 요인으로 인정하는 방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공정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333) 단언컨대 저 대목이야말로 능력주의 담론의 핵심 중 핵심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핵심은 에필로그에서 살짝 언급될 뿐,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도 언급하다시피 그 문제의식은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말을 처음으로 널리 알린 마이클 영의 미래소설 능력주의의 출현에 이미 담겨있었다. 영이 그려낸 능력주의 유토피아는 처음엔 매우 공평하고 공정한 시스템처럼 보였지만, 점차 잔혹한 디스토피아로 변해간다. 능력 피라미드 상층부의 인간은 저능력자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고, 피라미드 아래의 사람들은 경멸당하고 착취당하면서도 저항할 능력조차 상실한 채 고통 받는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의식, ,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은 활발히 논의되지 못했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여전히 전근대적 형태의 세습과 상속이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어서다. 이런 행태에 맞서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가장 쉽게 동원할 수 있는 것이 능력주의이다. 둘째, 능력주의를 대체할만한 대안이 합의되지 않아서다. 성과를 어떻게 보상하고 생산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첨예한 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우리는 능력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 또한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사회주의적 대안이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힘을 잃었기 때문에 능력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능력주의는 민주주의를 침식한다

 

이 서평에서 능력주의의 개념적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3) 다만 분명한 것은, 오늘날 불평등은 세습이나 상속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며, 능력에 따른 차별적 처우, 즉 능력주의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일견 정의로워 보이는 원칙이다. 그러나 그 내적 논리를 따져보면 그것은 고대 서구 정치철학의 자의적 정의론과 오류로 판명된 경제학 이론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차별적 분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4)

사회의 경제적 혜택은 행위자의 능력 또는 생산에 대한 기여도에 비례해서 분배되어야 한다는 응분론은 과거에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지만, 오늘날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클라크의 한계생산력설이 틀렸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가 개척한 지식유산 이론5)에 따르면, 개인의 특수한 재능들은 사회경제적 번영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 극히 작은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한다. 반면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 전체의 지식과 문화는 번영을 창출하는 데 압도적으로 큰 기여를 한다. 쉽게 말해서, 능력주의 원칙에 의해 보상하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자산을 극소수가 독식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속이나 세습은 신분에 따른 차별이며 불공정부정의라고 생각하는 반면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둘 다 불공정이고 부정의이다. 더구나 능력주의는 정의를 가장하기 때문에 노골적 부정의인 상속주의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크리스 헤이즈는 능력주의 사회는 빈부격차에 가장 둔감한 사회일 수 있다능력주의의 철의 법칙(The Iron Law of Meritocracy)’을 제기한 바 있다. “부자는 자기 능력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하고 빈자는 자기 능력의 한계로 빈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정당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소수자약자 혐오 담론에는 또렷한 특징이 하나 나타난다. 바로 능력주의다. 혐오대상이 되는 집단은 능력과 자격이 되지 않는데 과분한 몫을 요구하는 자들이다.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 전라도 사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틈만 나면 소환되어 끔찍할 정도의 모멸을 뒤집어 써야 했다. 지역균등 제도로 대학을 가면 지균충’, 월수입 200만 원 이하면 이백충으로 불리기도 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능력주의의 일종이다. 부정의를 개선하고 교정하는 대신 능력자가 되어 초월하라는 명령인 까닭이다. 능력은 이제 물신이 되고, 더 밀어붙이면 민주주의(democracy)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인민(demos)의 자리는 이제 능력/공로(meritum)가 차지한다.


어느 연구6)를 보면, 한국 청소년 다수가 능력주의를 깊숙이 내면화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장학금을 줄 때 가정 형편보다 성적을 고려해야 한다같은 문항에서 이들은 높은 수준의 능력주의 태도를 보였다. 이 성향은 계층이나 학업 성적과 크게 관계없이 고르게 나타났다. 각자의 출발선이 아무리 달라도 객관적 지표나 성적에 따라 대우받아야 한다는 이런 생각은 실질적 공정성보다 형식적 공정성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전면화되고 있는 약자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배려 정책(affirmative action)에 대한 집단적 적대감의 원천일 수 있을 것이다.


능력주의의 위험을 말하면 많은 이들이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한국사회에선 세습과 상속 같은 전근대성 탓에 능력주의가 제대로 관철되지 못하는 게 더 문제 아닌가?” 물론 그렇다. 그런 전근대성은 여전히 잔존해 있고, 그것은 그것대로 직시해야할 문제다. 그러나 전근대의 문제가 일소되지 못한 것이 곧 근대의 문제를 방치해야할 이유는 될 수 없다. 근대의 계몽주의자들은 전근대성, 즉 상속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능력주의를 도입했다. 그 결과 신분에 따른 차별원칙은 능력에 따른 차별원칙이 되었다. 그들은 평등을 표방했지만, 실은 차별을 반대하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도입했을 뿐이다. , 능력주의는 차별주의이다. 이 차별주의는 형식적 공정성을 추구할 뿐, 실질적 공정성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라는 평등주의를 침식할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를 철저히 검토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

1) 『21세기 자본에서 토마 피케티는 초장기 시계열 분석을 통해 자산 불평등의 심각성을 논한 바 있다. 그런데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 중 어느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인지에 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나라마다 불평등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자산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로 알려져 있다. 한국 역시 자산 불평등도가 상승하는 추세지만, 미국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사회가 소득 불평등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 본문 199쪽에 윌리엄 챔블리스라고 표기되어 있고, 원서도 마찬가지다. 명백한 착오다. 윌리엄 챔블리스는 실존인물이며 저명한 범죄학자지만, 올림픽 수영선수를 연구한 적은 없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물은 대니얼 F. 챔블리스로 1980년대에 올림픽 수영 챔피언들을 연구한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3) 자세한 논의는 필자의 글 한국 능력주의의 형성과 그 비판 -고시계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2017, 성균관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4장 및 제5장을 참고하라.


4) ‘고대 서구 정치철학의 자의적 정의론은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비례적 정의(“동등함에도 동등하지 않은 몫을, 혹은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동등한 몫을 분배받아 갖게 되는것은 부정의하다는 주장)와 플라톤의 아르케(arkhe) 논리(출생, (), 능력에 따라 위계적으로 몫을 배분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리킨다. 자크 랑시에르는 공동체에 고유한 몫을 설정하는 아르케 논리, 곧 불평등의 논리가 서양 정치철학의 기원에 내재하고 있음을 보이면서, 평등과 해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아르케 논리와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오류로 판명된 경제학 이론은 클라크의 한계생산력설로서 모든 행위자에게 각자가 창출한 양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베블런, 로빈슨 등 여러 경제학자들에게 체계적인 비판을 받고 논파되었다. 결정적인 문제점은, 그 이론이 총생산물에서 어떤 생산요소가 얼마만큼의 비중으로 기여했는지를 전혀 밝혀내지 못하면서 마치 밝혀낸 듯이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존 롤즈는 정의론에서 능력주의 원칙이 왜 정의에 부합하지 못하는지를 서술하면서 한계생산력설의 오류를 주요 근거로 제시한다.


5) 이 연구영역의 출발은 1957년 발표한 솔로의 논문이었다; Robert M. Solow, Technical Change and the Aggregate Production Function, The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Vol. 39, No. 3, 1957



6) 김경근, 고등학생의 능력주의 태도 영향 요인에 대한 구조방정식 모형 분석, 교육사회학 연구26권 제2, 2016

 


2014. 5. 9. 15:27

자유의 모험 안전의 성채

<말과 활> 창간호에 실렸던 글. 키워드 하나씩을 택해 연재하려던 글이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첫회를 끝으로 중단하게 되었다. 잡지 목차에는 "안전의 성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성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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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사전_01_자기계발

 

자유의 모험, 안전의 성채

 

박권일 칼럼니스트· <소수의견><88만원세대> 저자

 

 

자기계발이라는 말에서 사람들은 적극성, 진취성, 능동성을 감지한다. 이 단어에는 미지근한 나태를 깨부수는 청량함과, 어설픈 냉소를 연소시키는 뜨거움이 혼재한다. 자기계발은 영혼을 좀먹는 불안을 이겨내는 가장 강력한 백신이며, 타인이 강탈할 수 없는 역능의 독점적 소유권이다. 자기계발하지 않는 자는 현실도피자이거나 낙오한 자이다. 불확실한 미래라는 절대적인 괴물 앞에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계발이라는 담론의 그물에 갇혀 있다. 자기계발은 거대한 산업인 동시에 문화이고 무엇보다 우리의 생활 그 자체가 되었다.


동시에 자기계발은 끊임없이 의미와 뉘앙스가 변화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최소한 한국사회에서 1990년대 이전의 자기계발’, 1990년대부터 2000년대의 자기계발은 동일한 사회적 함의를 지닌 단어라고 할 수 없다. 단순히 수사적 유행의 변화 때문은 아니다. 단단한 돌멩이가 세찬 비바람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서 형상이 바뀌어가듯, 자기계발 담론 역시 시간의 풍화를 겪었다.


그렇다면 2008년 이후의 자기계발은 어떨까. 한국은 여전히 신자유주의 담론이 판치는 사회이지만 세계적인 규모로 벌어진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은 분명 한국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실물경제를 보더라도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이른바 일본형 불황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자기계발 담론은 가장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는 주제의 하나이지만, 자기계발 담론에 대한 회의감과 피로감도 전보다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계발 담론은 정치·사회·경제적 변화-여기서의 변화는 거시적이고 제도적인 변화이다-에 대한 적응이자 수반효과이면서 동시에 자기변모의 재귀적 원인들 중 하나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이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역으로, 자기계발 담론이 정치·사회·경제적 변화의 원인이라거나 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증명하기 까다로운 문제다. 담론과 주체, 그리고 그 주체의 사회적 역할들 사이의 상호작용뿐만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맥락 하에서의 특정한 상호작용 모두에 대해 선행분석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 글은 자기계발 담론의 변화가 거시적 사회변동에 대한 적응의 결과물이라는 관점에서, 먼저 자기계발 담론의 변화양상을 간단히 일별한 다음 이에 대한 주요한 비판 담론을 다시 살펴볼 것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자기계발이라는 키워드가 동시대 한국사회의 다른 멘탈리티(mentality: 집단심리, 사고양식) 혹은 사회적 담론들과 마주치는 장면이다. 특정한 담론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담론들이 부딪히고 공명하는 우발적 시공간에서 주체의 다층성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저항과 전복의 가능성은 홀연히 나타나는 무류한 변혁의 주체로부터가 아니라 차라리 그 다층적 주체들의 분기에서 출현할 수 있다. 여러 키워드들을 꼽아보고 또 교직시켜보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계발 담론 변천사

 

한국사회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자기계발서의 원조라 할 만한 책은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여러 답이 있을 수 있다. 혹자는 1973년 노먼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의 시초-당시엔 성공학이란 말이 더 익숙했다-라 말한다. 이 책이 향후 자기계발 담론에 크게 영향을 준 기념비적 성공학 서적인 것은 맞지만, 눈을 좀 더 앞으로 돌리면 개화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교과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던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이 그것. 집단행동이나 저항 같은 것에 신경 쓰지 말고 근면하게 돈을 벌어 자수성가하라는 내용의 이 책은 1871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수십만 부가 판매됐고, 20세기 초반 조선에 소개되어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18년 육당 최남선이 처음 완역했고, 2006년 유명 자기계발 강사인 공병호가 다시 번역해 출간한 바 있다.


<자조론>을 근대 처세서의 원조이자 자기계발의 시초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에서 말하는 모범적 인간이란 봉건적 질서 또는 이데올로기 따위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의 살림살이를 꾸리는 데만 전념하는 개인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동윤리와 사회규범이 절실했던 당시 위정자의 입맛에 딱 들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자기계발서가 전제하는 인간형도 실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해방 이후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성공하는 방법에 관한 보다 현대적인 지침서들이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성공학의 역사>라는 책에서 정해윤 씨는 한국에 성공학이 도입되고 확산되어온 과정을 흥미롭게 그린다. 그에 따르면 자기계발이 오늘날 거대한 사업이 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배경이 있다. ‘개신교(대형교회)’, ‘기업교육(사원연수)’, 그리고 다단계(네트워크 마케팅)’가 그것이다.


한국 개신교, 특히 대형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공격적인 전도 사업을 통한 불도저식 성장 모델이다. 개별 교회의 양적 성장(이른바 성전 사업, 즉 부동산의 확장과 재정의 확충을 가리킨다)을 추구하며, 철저한 현세중심주의적 가치관과 물질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기복신앙이란 점도 이들 대형교회들의 공통점이다.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노먼 필은 미국의 부흥목사이자 성공학 강사인데 이런 부류의 필자들이 쓴 책이 초기 선교 사업에서 주요한 교재로 채택이 되었다. 또한 기업교육 역시 자기계발 담론의 확산에 큰 축을 담당했다. 1977년 삼성의 사원연수원이 생긴 이래 수많은 기업들이 연수원을 지었고 조직 내부 성원들의 교육을 위해 자기계발 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90년대 들어 본격화한 다단계(네트워크 마케팅) 붐은 생소한 마케팅 기법을 초창기에 진입한 멤버들에게 얼마나 잘 학습시켜 리더로 만드느냐가 관건이었다. 성공학과 처세술에 관련된 책들에서 추려낸 내용이 이들 교육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자기계발 담론은 신자유주의 시대와 함께 전성기를 맞는다. 한국에서 자기계발이란 단어가 대중화하고, 자기계발 서적들이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흥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88만원 세대>가 촉발한 세대론의 유행을 타고 이른바 청춘 멘토링이 부상하기 시작한다. 신자유주의의 피로감이 슬슬 번져가니 닥치고 성공만 부르짖는 성공지상주의에서 슬쩍 비껴나 힐링 멘토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최근 자기계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전례 없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하루아침에 이 산업의 해가 질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권력의 지배는 얼마나 성공적인가

 

한국의 자기계발 담론과 자기계발하는 주체에 관한 독보적인 작업이 2009년에 출간되었다. 서동진의 책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미셸 푸코의 선구적 개념들이 열어놓은 지평 위에 서 있다. 니콜라스 로즈 등 이른바 통치성 학파의 연구들과 노동현장의 변화를 추적한 최근 사회과학계의 경향을 박람하게 참조하면서, 서동진은 볼탄스키와 시아펠로가 68혁명 이후 등장한 프랑스의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을 분석한 것처럼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신자유주의와 함께 떠오른 새로운 정치적 합리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결국 권력은 지배받는 주체에게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성을 형성하고 그 주체가 자신의 삶에 작용하는 방식을 규정함으로써 주체를 멀리에서 지배한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런 지배대상으로서의 주체를 빚어낸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기 삶을 대하는 주체에게 새로운 행위 가능성, 즉 개인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면서 작용한다. 따라서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품고 있는 자유는 허위적인 기만도 아니고 한낱 허깨비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언제나 권력은 자유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리고 지난 20년간 벌어진 한국사회의 변화 역시 이런 자유에의 의지 혹은 자기계발에의 의지와의 만남을 통해 가능했다. 그것은 반공훈육사회를 비판하며 시민이 스스로 자기 꿈과 참여를 실현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꾸었던 자유주의자들과의 행복한 만남을 통해, 신세대 혁명에 기대어 모두 똑같은 생각을 주입하는 학교사회를 비판했던 자유주의자들과의 즐거운 조우를 통해, 튀는 인재를 기죽이고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을 질식시켰던 대기업병 중증 환자로 경제체제를 비판하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전문가와 기업가, 경영자들의 축복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체제는 국가의 기획이자 자본의 전략이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주체성을 만들어냈던,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잠식했던 그리고 이제는 지배적인 자기의 윤리가 되어버린 자유의 꿈, 자기계발에의 의지가 만들어낸 산물이기도 했다.“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2009)>, 돌베개, 367~368

 

 

반공훈육사회, 획일적 군사주의 문화와 가부장주의에 대한 문화적 반란이 이리저리 분출하던 1990년대의 서동진은 퀴어 담론의 한 가운데서 억압과 문화지체에 격렬히 저항하던 작가-투사(writer-combatant)였다. 한편 2000년대의 그는 자유저항90년대가 어떻게 신자유주의에 조응하는 자기계발하는 주체를 만들어냈는지를 폭로하는-과장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일종의 내부고발자가 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러한 변화에 대해 그가 개인적으로 해명할 까닭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1990년대적 멘탈리티가 신자유주의 체제와 합체하게 되는 과정이, 또한 신자유주의가 지배대상으로서의 주체를 빚어내는공정이 지나치게 매끄럽게 묘사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지배가 자유를 통해 작동한다는 말은 옳다. 그런데 저항 역시 자유를 통해 작동한다. 그리고 편재하는 권력에 대한 설명에 방점을 찍다보면 직접적이고 야만적인 폭력, 제도적 강제와 억압, 무엇보다 주체의 저항과 적응이라는 상호작용과 역동성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 있다. 서동진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에필로그에서 자유의 이중적 성격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자유를 지지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에 관한 새로운 물음, 새로운 자유의 정치학을 통해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자유를 동원함으로써 사회적 삶을 관리하고 조절하며, 나아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주체화해야할 것인가를 강제하는 것이 자유의 정치학이라면, 그런 자유의 동원을 다시 문제화함으로써 자유가 지닌 위험을 알리고 비판하는 것도 역시 자유의 정치학이어야 한다.”(같은 책 377)

신자유주의가 지배대상으로서의 주체를 빚어내며 그 지배 권력은 자유를 통해 작동한다는 것, 또한 훈육과 억압에 대한 반발이 자유에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로 이어졌다는 서동진의 분석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방식이 어쩔 수 없이 결여하는 지점 또한 있는 게 아닐까. 요컨대 폭압이 아니라 자유를 통해 작동하는 그 권력의 지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성공적이냐는 것이다. 자기계발하는 주체에 대한 분석을 동시대 권력의 배치와 분포를 그리는 리얼타임 맵에 비유할 수 있다면, 좌표는 제시되었는데 등고선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기압이 빠져있는 격이다. 이는 자기계발 담론이 자기계발하는 주체를 형성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이 괄호 쳐져 있기 때문에-이런 종류의 분석에서 추상수준을 낮추는 일은 너무나 어려워 보인다- 거의 필연적으로 예정된 귀결이다.

 

자유의 의지, 안전의 의지

 

개혁정권 10년 동안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자기계발에 열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이 끝없이 하락하는 걸 경험했다. 열심히 자기계발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88만원 세대는 차츰 그 성공의 사다리가 처음부터 끊어져 있었다는 진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자기계발에 실패한 주체에 대한 분석도 나오기 시작했다(곽중현, 자기계발로부터의 도피?, 한국사회학회 2009 전기 사회학대회). 이를 자기계발하는 주체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이라 규정할 수는 없다. 순전히 자기계발만 하다가 어느 순간 자기계발을 전부 내팽개치는, 그런 식의 변화는 아닌 것이다.


훈육과 억압에 발랄한 문화적 자유로 저항하던 시기에도,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절정이던 시기에도 모종의 이질적인 열망이 대중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정상근대(正常近代) 열망이라고 부른다. 오랜 피식민 경험과 처참한 내전, 압축적 근대화 과정은 비극적 민족서사와 한()이라는 단어로 극화된 개인서사들을 만들어냈다. 파괴되거나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복원하고 정상화시키려는 시도와 요구는 그래서,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사고방식이자 공동체의 보편서사이기도 하다. 민족국가의 구성에 대한 대중의 강렬한 정서적 회한(“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오욕의 역사” “민족정기가 훼손되고 허리가 끊긴 한반도”)도 이런 사고방식의 연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인이 보는 한국사회는 언제나 선진국과의 강박적 비교를 통해 설명된다. 한국이 정상적으로 근대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공정한 규칙이 아직도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사회라는 식이다. 정상근대에 대한 열망은 자유의 의지’, 혹은 지대추구행위와 기득권 세력의 구태를 일소하는 도구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열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공히 현실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이념에 가깝다. 그러나 정상근대 열망은 그런 종류의 변화를 추동하는 정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탈구된 현실을 안정화시키려는 정념에 더 닿아있다.

 

한국어로는 미번역된 1997년 작 <탈근대성과 그 불만(Postmodernity and its Discontents)> 서문에서 바우만은 이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준다. 이 책 제목이 차용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주저 <문명 속의 불만>(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문명'이란 근대적 문명이나 문화를 가리킨다. 근대 사회에서 개인들은 현실원칙으로 고정된 위생이나 질서 등의 가치들과 "사회적 지위의 하락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안전'(security)을 얻었지만, 동시에 개인들이 쾌락과 즐거움을 누릴 자유가 억업당해야만 했고, 이 교환과정에서 일어난 상실이 곧 불만으로 표출된다고 해석한다. "억압된 것은 귀환하기" 때문이다.

이 교환 속 상실은 탈근대의 사회에서도 그 상실된 가치들의 자리만 뒤바뀐 채 고스란히 일어난다. 근대 사회와 달리 개인들이 각자의 행복을 맘껏 누릴 자유는 획득했지만, 대신에 안전 보장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만 한다. 이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열망은 공포를 유발하는 '위험한 개인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상태, '안전'(safety)을 향하게 된다. 내 자유의 장애물은 바로 옆의 이름 없는 불특정 타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회국가'(social state)에서 '개인 안전 국가'(personal safety state).

근대 사회와 탈근대 사회를 매끄럽게 나눌 수 있는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이 해석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출몰한 '안철수 현상'에 그대로 적용가능하다. 예컨대 박권일은 이 현상을 "압축적 근대화로 인한 피로감에 지친 개인들의 정상근대에 대한 열망"으로 읽어낸 적이 있다.“


-문순표, ‘'진격의 엘리트'인가, 게토에 갇힌 넷난민인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리퀴드 러브>’, <프레시안> 201367

 

정상근대 열망을 다른 어떤 말로 부르든 간에 이는 잃어버린 것들의 회복이며 기본적으로 보수적 가치들과 친화적이다. 근대에 대한 열망이라고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대안을 강력히 추진한다기보다는 스테레오 타입화된 (서구식) 근대의 형상에 대한 상상적 회고에 불과하다. 부동산 불패신화의 종말과 장기불황의 스산한 기운 속에서 안철수 현상이 일어났고 또 다시 보수정권이 출범했다. 노무현 정부의 행정자치부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행정안전부가 됐고 다시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안전행정부로 바뀌었다. 표현의 자유가 끝없이 위축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그리 거세지 않다. 법원의 형량이 확연히 강화되고 있으며 싱가포르 같은 엄벌주의적 발상이 시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간첩단 사건 따위보다 연쇄성폭행 사건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치안의 논리가 사회의 다른 가치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혐오발언들도 갈수록 수위가 높아진다. ‘우리의 몫,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내부의 타자를 배제하거나 최소한 바깥에 분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자유보다 안전을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하지만 자유의 모험에서 안전의 성채, 사람들의 시선이 옮겨온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과거 군부독재 시기로 회귀하자는 식의 반동적 정서는 아니다. 자기계발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안전과 치안을 더 강화해야한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자기계발하는 주체싱가포르적 주체의 만남, 그리고 자유의 의지안전의 의지의 공존은 어찌 보면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기묘한 결탁이라 할 수 있다. 혹은, 이런 멘탈리티가 노골화되는 체제를 신자유주의 2.0’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2014. 2. 10. 08:32

'자아성형산업: 강신주 현상의 경우' 그리고 약간의 보론


자아성형산업: 강신주 현상의 경우




철학자 강신주 씨(이하 강신주)는 문화권력이다. 그의 강연은 늘 사람들도 북적이고, 그의 신간은 매체 지면의 목 좋은 곳을 오르내린다. 그는 얼마전 SBS 힐링캠프에서 공개강연을 진행해 화제가 됐다. 인문학적 깊이를 갖춘 강연자이자 상담자로서의 진면목이 드러났다는 칭찬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강신주의 글을 좋아했고 2000년대 중반 무렵엔 여기저기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강연에 매진하던 무렵부터는 이런 저런 이유에서 그의 글과 멀어졌다. 하루에 평균 2회 이상의 강연을 수년간이나 꾸준히 해왔다니, 일단 그의 체력에 먼저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 글은 강신주 개인을 비판하는 글이라기보다는 '강신주 현상'을 읽는 하나의 관점으로 읽혔으면 한다. 그를 두고 '인문학 팔아먹는 장사치'나 '사기꾼'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들, 그리고 몇몇 글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강신주라는 아이콘을 통해 우리의 오늘을 한번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모든 나쁜 것으로서 '자본주의'

 

<유한계급론>('한가한 무리들'이라 번역되기도 한다)에서 베블런은 상류계급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에 돈과 시간을 과시적으로 낭비하는지에 대해 거의 가학적인 집요함으로 해부한다.  이 책이 고전으로 이름 날리고 있는 이유는 단지 부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기행을 까발렸기 때문이 아니다.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그들이 금욕적이고 절제할 줄 알기 때문이며 가난한 자가 가난한 이유는 눈앞의 쾌락 앞에서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당시의 지배적인 학설을 산산조각냈기 때문이다. 

 

베블런이 20세기 후반까지 살아있었다면 19세기 부르주아 계급만큼이나 여가를 확보한 지난 세기 중산층, 중간계급의 소비문화도 그의 수술대에 올랐을지 모른다. 베블런은 20세기 초에 죽었지만 그의 후예들은 좀 엉뚱한 분야에서 튀어나왔다. 미국 중산층을 대형 쇼핑몰에 무리지어 몰려다니는 영혼 없는 좀비로 탁월하게 형상화한 예술가들, 그들이 바로 '베블런의 적자'였다. 

 

19세기의 부르주아들, 20세기 후반의 미국 중산층은 탁월한 학자나 예술가에 의해 설명되어야하는 대상으로 존재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닫지 못하는 체제의 향유자들이었고, 그래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은 어떨까. 월스트리트를 점거하고,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중산층들은 과시적 소비자나 영혼 없는 좀비와는 좀 달라 보인다.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에 몸서리치고, 지구온난화를 진심으로 우려하며, 유기농 농산물을 공동구매하거나 아예 도시를 떠나 귀농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강신주 현상을 만들어낸 건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일부다. 강신주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행복한 공동체를 원하는가? 재래시장을 살리고 싶은가? 생태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가족들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안전하고 싱싱한 식품을 원하는가? 그럼 냉장고를 없애라! 당장 냉장고가 없다고 해보자. 우리 삶은 급격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직접 재래시장에 들러서 싱싱한 식품을 사야 한다. 첨가제도 없고, 진공포장 용기에 담겨 있지 않다. 식품을 사가지고 오자마자, 우리는 가급적 빨리 요리를 해야 한다.(중략)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 그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절망한다. 자본주의는 너무나 거대한 체제이기에, 우리가 길들이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변명 아닐까.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없애라! 한 번에 없앨 자신이 없다면, 냉장고의 용량이라도 줄여라! 가족 건강 문제, 생태 문제, 이웃 공동체 문제, 재래시장 문제가 그만큼 해결될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 “여자가 여자에게 추천하는 속이 넓은 냉장고”의 유혹, “살고 먹고 사랑하는 데 필수적인 냉장고”라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냉장고의 폐기, 혹은 냉장고 용량 축소! 여기가 바로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내릴 수 있는가!"


강신주,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 냉장고, <경향신문> 2013.7.21

 

냉동기술의 발명이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기아와 질병에서 구해냈는지에 대한 인식은 강신주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냉장고 없이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자재를 그때그때 구해 먹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노동인지, 혹은 특권인지에 대한 고려도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얼마나 남들과 다른 방식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이다. 강신주는 글이나 강연에서 자본주의의 폭력이 얼마나 인간성을 황폐하게 하는지를 늘 강조한다. 거의 부흥회를 연상시키는 열광적인 분위기의 어느 강연에서는 지폐를 공중에 뿌리는 퍼포먼스도 나왔다고 한다. 

 

강신주에게 자본주의는 역사적 산물이자 사회적 관계로서 생산과 축적 양식, 착취와 억압의 메커니즘이 아니다. 그에게 자본주의란 인간을 소외시키는 지폐, 공동체를 파괴하는 냉장고, 서울역 앞의 노숙자 등의 '물화'된 사물이다. 그리고 때로 자본주의는 '기술문명'이 되기도 하고, '신자유주의'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물질만능주의'나 '관료주의'가 되기도 한다. 요컨대 강신주가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의 그 자본주의란 우리를 둘러싼 '일상적이고 총체적인 악/고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반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모색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자기소외적인 현대사회의 상투성으로부터의 개인적 해방'이란 의미에 더 가깝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런 불분명하고 미분화된 인식은 구조적 모순에 대한 집단적 해결이 아니라 개인적 적응전략 또는 자족적 저항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강신주가 상담자에게 내놓는 답변 하나하나가 그 증거다. 

 

자본주의 vs. 강한 자아

 

2012년에 강신주는 수치와 치욕에 대해 쓴 글에서 서울역 앞 노숙자를 "한 마디로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마비되어 있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자존심을 느낀다면 어떻게 노숙자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니 ‘마비’가 편한 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노숙자를 하나의 인격자로 깨울 수 있을까? 아니, 어느 순간 노숙자는 자존심을 가진 인간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칼럼을 비판했다. 노숙자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인식 없이 노숙자들을 수치도 모르는 인간으로 비하하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런 비난을 받은 근본적인 이유는 글을 못 썼기 때문이다. 논점이 제대로 살아있지 못하고 중언부언하는 글이어서 노숙자를 비난하는 글로 읽힌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강신주의 진의는 그런 게 아니었을 게다. 그 정도 지식인이 노숙자 문제를 순전히 개인 책임으로 인식할 리가 있을까? 날마다 자본주의의 병폐를 이야기하는 그가? 사실 그는 노숙자 문제에 대해 여러 강연과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혹시 노숙자를 본 적이 있나요? 이 분들이 왜 거리에 나앉은 걸까요? 길거리가 좋아서? 그럴 리는 없겠죠. 이분들은 대부분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숙자를 양산하는 체계입니다"


강신주 외,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철수와 영희, 2012, 165쪽

 

강신주는 자본주의가 "노숙자를 양산하는 체계"라고 말한다. '노숙자 발언'으로 그를 비난했던 이들 대부분이 아마 이 명제에 동의할 것이다.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노숙자를 만들어낸 사회구조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택광은 강신주의 노숙자 발언이 뒤늦게 화제가 되자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제의 본질은 "강신주가 노숙자를 수치스러운 존재라고 말했다"가 아니다. 그의 진의가 "노숙자는 수치스럽다"였을 리가 있겠는가. '완전한 자기의 완성'을 추구하려면 본받지 말아야할 존재로 노숙자를 제시한 것.(2014.1.18)" "완전한 자기의 완성"은 좀 어색한 표현이지만 어쨌든 논란 당시 나온 이야기 중 칼럼의 진의에 가장 가까운 말이다. 나는 '강한 자아'라고 고쳐 부르고 싶은데, 어쨌든 이런 멘탈리티는 강신주의 최근 글과 강연을 모두 관통하는 핵심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강한 자아'는 물론 초인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자본주의 사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지배계급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강한 자아는 악의와 소외로 가득찬 자본주의 세계에서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 자아를 의미한다. 거대한 악에 저항하는 작은 개인의 숭고성! 바로 이런 이유에서 강한 자아는 필연적으로 멜랑콜리한 주체가 된다. 강신주는 "성공할 거라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미 너는 행복해 있다!" 주장하는 자기계발 강사들과 다르다. 그는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서바이벌 전문가처럼 말하길 좋아한다. 

 

제가 늘 강의를 하면서 하는 말이지만,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게 급류 같은 데 던져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본주의라는 급류에 떨어진 거죠. 원하지 않지만 휩쓸리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버티는 거, 저는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배우고 공부합니다. 

                                      

강신주 외,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철수와 영희, 2012, 206쪽

 

물론 살아남는 자아는 강한 자아이다. 하지만 단지 생존만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이 강신주의 매력이다. 어떻게 살아남는가? 다시 말해서 어떻게 인간의 존엄(dignity)을 지키며 살아남느냐가 관건이다. 강신주의 인문학이란 내가 보기엔 바로 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전부 수렴된다. 이른바 "돌직구"라 불리는 그의 멘토링 스타일이 나오는 것은 이 대목이다. 얼마 전 방영된 힐링캠프에서 어느 시청자가 '은퇴해 병들고 늙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집착하는데 너무 힘들다'고 상담을 청하자 강신주는 대뜸 "아버지를 걱정하는 게 아니고 아버지를 제거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욕망에 가면을 뒤집어씌우지 말고 그것을 직시하라는 이야기다. 강신주의 인문학에서 이 '돌직구를 맞는' 단계는 필수적이다. 화폐로 매개된 관계, 속물적 욕망으로 더러워진 내면을 객관화시키지 않으면 윤리적 주체, 자본주의라는 급류에 견딜 수 있는 강한 자아는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라는 급류에 견딜 수 있는 강한 자아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강신주에 따르면 이건 '의지'에서 나온다. 어떤 청소년이 강연에서 이렇게 물었다. "돈이 인간관계를 매개하지만 단절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한 단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강신주는 이렇게 답했다.


"이걸 스스로 의식하고 극복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만약 친구와 나 사이에 돈이라는 매개가 끼어든다, 이것 때문에 사이가 불편해진다 싶으면 의도적으로 돈을 배제하는 겁니다. 돈 때문에 만난 친구라면 돈 말고 다른 즐거움을 찾는다거나, 돈을 매개로 한 만남 대신 인간적인 만남을 찾는다거나 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그 과정에서 좀 더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겁니다."(같은 책 173쪽)

   

자아성형산업의 미래

 

강신주는 '나는 사람들에게 힐링을 하는 게 아니며 멘토도 아니'라고 말해왔다. "나를 멘토로 생각하고 강의를 들으러오면 나한테 욕 듣는다. 내가 해주는 건 네 고민은 별거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뭔가 고민이 있으면 억지로 어렵게 만들고 그걸 고민하는 척 한다."(<더 뮤지컬 2013년 5월호) 문제는 멘토 스스로가 자신이 멘토가 아니라고 부인해도 사람들이 그를 계속 멘토라고 생각하고, 그의 효용이 떨어지면 또 다른 멘토를 찾아 떠날 것이라는 점이다. 강신주가 멘토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끝없이 멘토를 욕망하는 사회야말로 숙고의 대상이며 그런 욕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바로 인문정신이다. 강신주 스스로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뭔가 '다른 것'으로 포장하고 구별짓는 일은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는 비난할 일이 아니겠다. 그러나 철학자라면 그런 자신의 '구별하고자 하는 욕망'에게도 정직한, 혹은 풍자적인 돌직구를 날려야 하지 않을까. 

 

몰락해가는 불안한 중산층에게 비교적 싼 비용으로 최대한의 지적 쾌락과 위안을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인문 멘토링'이다. 그 사회적 순기능은 분명히 적지 않다. 단언컨대 여기엔 어떤 비아냥도 없다. 카리스마적 스타강사들이 강연을 열면 그야말로 구름처럼 청중이 몰려든다. 말 잘하는 멘토들은 청중들로부터 거의 집단 엑스터시에 가까운 반응을 끌어낸다고 한다. 삶의 고통과 불안에 시달리던 어떤 이에게 강신주의 글 한줄, 말 한 마디가 구원일 수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절절한 '간증'을 보라.

 

"저는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서의 소양으로 엄마와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살아야하는 역할을 할 때  행복한줄 알고 살다가 문득 견딜 수 없게 불행하게 느껴져서 죄책감과 더 이상은 살아낼 수 없다고 울음이 나올 때 만난 게 강신주의 인문학이죠“


"더 이상 실체를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해방됐고 역할이 아닌 그냥 나로서 살려고 쌈질하면서 살고 있죠. 강신주 박사의 인문학은 그냥 인간입니다."


https://twitter.com/wj2151112/status/424359348010115072

https://twitter.com/wj2151112/status/424360369167945728

 

위의 고백에서 "강신주의 인문학" 대신 어떤 종교나 다단계 마케팅을 집어넣어도 별 위화감 없이 들린다(물론 나는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보다 강신주의 인문학이 한 사람의 개인에게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진부하고 모호한 휴머니즘이지만, 세상에 해악을 끼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내가 고통 받을 때 위무해줄 무언가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굳이 인문학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연애상담, '픽업아티스트'의 헌팅요령 강의, 자기계발 멘토링이 대중적 콘텐츠가 된지도 오래 되었다. 구글의 광고처럼, 각 개인에 적합한 상담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컨설턴트로부터 구입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이 모든 것들은 약한 자아에 관념적 보형물을 집어넣는 수술이라는 점에서 자아성형산업(ego-plastic surgery industry)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며 남들과의 끝없는 비교에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는 사람들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모든 이가 프로작을 처방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아성형산업의 미래는 무척 밝다.

 

자아성형산업의 미래가 밝은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사회의 문제해결방법이 탈사회적이고 탈정치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제도적 해결방식에 대한 극단적 불신("다 똑같은 놈들")과 각개약진의 해법("억울하면 출세해라")이 일반화되어 있다. 기업, 종교단체가 아닌 다른 형태의 사회적 조직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주변 사람들을 조직하고 작당(作黨)하는 것보다는 어떤 '큰 타자'를 호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은 '현자'에게 고통을 위로받고, 집단이 되면 왕(대통령)과 직접 대면하려 한다. 그러나 거기에 사회적인 것, 그리고 정치적인 것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남은 건 축제와 탈진의 반복이며 영원한 각개약진의 개미지옥이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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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형준님의 강신주 관련 글에 대해 코멘트하는 형식으로 보론을 덧붙여 보았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23145.html

https://www.facebook.com/hyongjun.moon/posts/3840746952848



"나는 오히려 대중 인문학 강사들의 강의태도야 말로 대중을 비하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왜 대중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왜 대중은 무조건 쉬운 말로 농담을 섞어가며 재밌게 해야, 무조건 인생이야기를 해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대중이 무지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무지한 존재로 대하는 것이다."


"찰스 디킨스와 토마스 하디는 대학교를 나오지 못했지만 영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을 남겼다. 마가렛 대처의 전기에 보면, 그녀의 아버지는 13살 이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잡화상 주인이었지만 그 박식함으로 온 동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 어떤 대통령보다 똑똑하고 지혜로웠다. 대학 학위증이 없는 소설가 장정일의 그 놀라운 독서와 지식, 통찰은 어떤가. 이런 위대한 독학자가 이젠 없다."


"텔레비전이나 팟케스트의 진행자가 ‘당신이 세상의 주인이다!’라고 말하면 감동해서 우는 낯뜨거운 짓 말고, 스스로 공부하면서 그걸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오직 그랬을 때, 노예는 비로소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강신주를 비판한 것도, 힐링을 비판한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에 나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비판한 것은 오늘날 ‘대중’의 이런 노예적 상태다."



문강형준의 글에는 바람직한 이야기도 있다. '대중인문학 강사들이야말로 대중을 비하하고 무지한 존재로 대하고 있다'는 지적은 나 역시 평소 하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문제를 지나치게 축소해서 자신의 틀 속에 욱여넣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첫째는 '영역'의 문제다. 미디어스 글에서 밝혔듯 강신주 현상에서 궁극적으로 바라보아야할 문제는 단지 '대중인문학'의 어떤 병폐만은 아니다. 오늘날 자아성형산업은 인문학 뿐 아니라 심리학, 경영학, 자서전 등등 수많은 포맷으로 가공되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 '대중인문학'의 병폐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문강형준이 찬사를 보내는 그 '독학자의 시대'에는 그런 게 없었을까? 있었다. 그때는 지금 강신주의 인문학보다 훨씬 조야한 형태의 담론들도 많았다. 문제를 대중인문학의 차원에 한정하는 것은 지식교양으로 유통되는 상당수가 자기계발과 힐링의 형식이라는 점을 놓치게 되고, 문제의 현재성을 흐려놓기 쉽다. 

둘째는 낡은 계몽주의다('낡은'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계몽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문강형준이 오늘의 처참한 대중인문학의 상태를 강조하기 위해 독학자의 예를 든 의도야 알겠지만,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통해 과거가 신비화/미화되고 '그 때는 이랬는데 요즘 애들은 왜 그러냐'는 훈계로 읽히기 쉽다. 그는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위대한 독학자가 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나온 목포상고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온 부산상고는 지역의 가난한 수재들이 많이 가던 명문학교였다. 학벌이 없음에도 높은 지성을 갖출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드는 사례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긴 한데, 현재의 학벌서열에 근거한 무신경한 비교에 문화연구자가 한몫 거들어서야 되겠는가.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위대한 독학자'의 사례로 선택될 수 있으려면 유명한 정치인, 변호사, 작가,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든가 하다못해 수상의 아버지여야 한다. 인문학 공부에 대한 규범적 태도가 엘리트주의의 함정에서 자유롭기란 그만큼 어렵다. 

'깊이 공부하고 스스로의 머리로 사유하는 대중'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하나의 이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옳다. 대중은 무지하지 않으며 복잡하고 깊은 지식을 얼마든지 흡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노예적 상태"에 대한 비판이 '인문학을 스스로 공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말하는 것은 이상한 동어반복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순전히 혹세무민하는 대중인문학 강사들의 책임인가? 물론 그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래서 강신주 현상의 비판에는 강신주의 인문학에 대한 비판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는 순간, 비판은 결국 낡은 계몽주의가 되어버린다. '너희들이 열심히 안배워서 노예'란 말과 다름없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인문학을 깊이 배우고 안배우고의 문제는 핵심이 아니다. 

독학자는 지금도 있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극소수다. 모두가 인문학을 '위대한 독학자'처럼 열정적으로 배울 수는 없고 꼭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진정한 배움'을 갈망하는 대중의 욕망과 실제로 배우는 내용이 끊임없이 괴리한다는 것이다. '진짜 인문학적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이 한국사회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문강형준은 독학자가 사라졌다 말하지만 나는 느리고 힘들어도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익히는 독학자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왜 대다수 사람들은 그 길을 가지 않는가? "쉽고 편하고 위험하지 않"은 인문학만 유행하는 것은 권력이 원하기 때문인가 대중이 원하기 때문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은 정말로 '독학자의 시대'보다 우매해졌을까? 의지가 나약해서? 미디어 때문에? 

지식인이란 이런 문제에 어떻게든 답을 하려 애쓰는 사람이지, '열심히 안해서 그렇다'고 호통치는 사람이 아니다. 반복하건대 이건 인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안과 우울을 힐링받고자 하는 대중의 갈망을 해소하려면 '진정한 인문학'만으론 부족하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해소되려면 사회의 문제해결방법이 변해야 하고 그러기위해서는 삶의 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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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문학 '공부'라는 '규범적' 차원에 강신주 현상을 국한시켜 본 걸까.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엘리트주의 대 포퓰리즘'이라는 대립쌍에 이어지고. 결국 문제는 '계몽이 곧 해방'이라는 금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현실. 가령 계몽된 시민(Enlightened Citizen)이 '깨시민'으로 불리는 현실." 


https://twitter.com/leereel/status/432428882344431616

 

문강형준의 접근이 가진 문제점을 위의 내 글보다 더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는 에오님(‏@leereel) 의 코멘트


2013. 12. 26. 06:53

'참여정부는 철도 민영화를추진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한 단상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710271655650498&id=100000030108711



오건호 박사(이하 오건호)의 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진행중이어서 잠깐 정리해둔다. 오건호는 김규항 등의 주장, 즉 철도청의 공사화가 곧 민영화 단계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지인을 통해 김규항씨의 12월 24일 경향 칼럼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페북에서 비슷한 평가를 하는 다른 페친도 보았다. 김규항씨 칼럼을 보자.

"철도 민영화는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철도를 4단계로 민영화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1단계는 철도의 시설부문과 운영부문 분리, 2단계는 철도청을 철도공사로 전환, 3단계는 철도공사의 경영 개선, 4단계는 철도 운영에 민간 참여로 경쟁체제 수립. 이명박 정부는 철도 민영화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이어받아 4단계를 추진하고 있다."([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 비판적 해소). 

여기서 1~3단계는 한국철도공사법에 의한 한국철도공사 설립을 가리키는데 철도청의 공사화를 민영화 단계로 간주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한국철도공사 설립으로 철도운영은 공사체제로 법제화되었다. 

논점은 4단계인데, 아마도 노무현정부에서 제정된 철도사업법(면허 조항)에 민간참여가 허용되었다고 이해해 그리 평가하는 듯하다. 하지만 철도사업법 모법인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철도운영 신규참여의 대상으로 철도공사가 포기한 폐지노선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모법의 취지를 무시하고 철도사업법의 면허 조항을 왜곡해석하는 게 이명박, 박근혜정부이다. 지금 수서발 KTX 면허 발급이 위법이라고 우리가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정부의 철도관련법에 따르면, 철도공사 포기노선, 민간투자사업법에 의한 민자철도 이외에는 제3자가 철도운영을 맡을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법제정 취지 역시 그러했다. 이것을 철도민영화라고 볼 수 없다. 

정리하면, 노무현정부에서 철도의 민간참여 로드맵이 추진되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철도민영화 세력들의 왜곡 논리일 뿐이다."




2004년 버전의 철도산업발전 기본법을 지금 내가 전부 참고할 수 없어서 논의가 제한적이지만, 본문과 댓글까지 포함해 오건호의 논리는 대충 다음과 같다. 


1. 참여정부 당시 제정된 법의 취지는 민영화가 아니었다

2.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수서발 KTX 면허발급은 철도사업법의 왜곡해석이다

3. 그런데 2005년 6월 이후 건설된 노선에 미국자본 참여가 허용되게 한 한미 FTA 조항이 더 심각한 문제다. 

4. 평택-부산 노선은 2005년 6월 이전 노선이니 수서-평택 노선으로만 미국자본참여를 한정해 사실상 무력화시켜야 한다


사실관계와 별론으로 이 논리는 현 상황에서 전술적 가치가 있다. 철도파업 관련한 최근 문재인의 정권비판 발언이 참여정부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극우언론과 새누리당에 의해 연일 두들겨 맞고 있다. '너도 민영화 추진했으면서 정권 못잡으니 이제와 민영화 반대하는거냐'는 비난과 조롱이다. 오건호의 논리는 이런 비난에 방어논리를 제공해주고 전선을 좀더 또렷이 그어줄 수 있다.


댓글에서 (참여정부보다 왼쪽 성향의) 여러 사람들이 오건호의 주장에 즉각 반발했다. 지금까지 진보/개혁 진영의 민영화 3단계론 내지 4단계론은 시설/운영 분리를 민영화 1단계로 설명해왔는데 그걸 민영화 단계가 아니라고 하니 참여정부 '실드'가 아니냐는 것. 실제로 대부분의 철도 민영화 사례에서 시설/운영 분리가 선행되기도 했고 말이다. 


내 생각은 현재 이렇다. 참여정부 당시 제정된 철도사업법의 취지가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은 명시화되지 않은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취지는 그렇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현실적으로 취지를 배반해버리면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상당수 법과 제도가 그런 운명에 처한다. 오건호는 참여정부 당시 철도사업법에서 철도 신규참여 노선이 철도공사 포기노선 등에 한정된다고 했지만 철도공사가 정권 및 정부의 압력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지배구조 하에서 노선은, 특히 적자노선일 경우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포기'될 수 있다. 참여정부 당시 철도 민영화의 완결이 결과적으로 저지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참여정부의 '선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불법파업'을 감수한 철도노조의 격렬한 저항과 진보진영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참여정부 철도관련 정책의 취지가 설령 민영화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민영화로 가는 2차선 도로를 4차선 내지 8차선으로 넓힌 것만큼은 사실이 아닐까.


참여정부의 책임은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건호도 지적했지만 철도 민영화에서 한미 FTA 조항이 더 위협적이다. 내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한미 FTA라는 이슈에서 가장 책임이 큰 정부는 참여정부다(공로가 크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백번 양보해 참여정부에게 철도 민영화의 의도가 없었다고 인정하더라도 한미 FTA의 주요 이슈에서 참여정부의 책임을 제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의도는 없었을지 몰라도 철도 민영화의 개연성과 위험성을 지나치게 높인 정권이 참여정부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오건호의 논리로 얼마든지 함께 철도 민영화에 반대해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민영화 반대 전선을 흐트리는 이적행위'라는 식의 폭력적인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철도 뿐 아니라 다른 공공부문의 사유화 위협 때문에라도 이 사회가 공공성을 얼마만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 치열하게 논쟁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를 들춰보지 않을 수 없다. 철도 민영화와 한미 FTA에 대해 새삼 참여정부 인사들의 성찰과 자기비판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2013. 12. 24. 08:39

철도파업, 2003년과 2013년의 차이?

문재인 의원 발언을 두고 극우언론과 일베 등이 '역공' 중이다. "너도 2003년 철도파업 때 정치파업이라며 경찰투입 했잖아!" 물론 '친노'들은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사에서 완전히 동일한 상황이 반복될 수는 없다. 상황은 늘 다르다. 한 끗만 달라져도 다른 거니까. 

반면, 상황이 같다고 판단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아래 링크한 김규항 선생같은 이다. 사족이지만 글의 마지막 부분이 흥미롭다. 촛불소녀와 대자보 청년들을 '진보의 신성가족'으로 포섭하는 저런 반복적인 '성찰의 포즈'들에 나는 언제나 위화감을 느낀다(이 문제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지 싶다). 

핵심만 말하자면, 2003년 4월과 2013년 12월의 상황은 다르다. 2003년 4.20 합의에는 박근혜 정권이라면 불가능한 수사가 들어있다("철도의 공공성을 감안해 기존 민영화 방안은 철회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사태를 봉합하고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이 부분에서 지금 박근혜 정권과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2004년 노무현 정권은 민영화의 사실상 '필수 기초공사'라 할 시설/운영 분리(상하분리)를 결국 관철한다. 파업을 노조 지도부의 이기적 정치투쟁으로 몰아가는 짓도 노무현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주요한 공통점이다(제일 아래 링크 참조. 2003년 4월 합의를 파기하고 2003년 6월 2차 파업 원인을 제공한 측이 참여정부라는 대법 판결). 가장 중요한 지점은 철도 민영화의 단계를 확실히 밟아왔다는 점이다. 최소한 이 문제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착실한 계승자다. 

노무현 정권은, 나쁘게 해석하면 기만적이었고 좋게 해석하면 타협적이었다. 이 차이를 얼마만큼 중요하게 보는가가 입장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 김규항의 글은 한미 FTA 사례를 철도 민영화와 동일시하고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FTA는 노무현 정권이 사실상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해서 거의 대부분의 과정을 완결 직전까지 밀어붙인 아젠다였다. 따라서 다른 어떤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에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 

문재인 발언으로 다시 돌아가면, 나는 그가 박근혜 정권을 꾸짖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달랐다'는 강변은 보다시피 역공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정말 자신들이 박근혜 정권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당시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는 게 먼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152133025&code=920100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017.htm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232050015&code=990100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144111.html

2012. 10. 30. 06:05

88만원 세대가 대선에 임하는 자세

<GEEK> 2012 Nov.


88만원 세대가 대선에 임하는 자세 



일본을 대표하는 장르소설 작가 기리노 나쓰오는 한 인터뷰에서 “당신의 작품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나 암울한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내 딸에게도 앞으로 ‘네가 사는 세상은 점점 안 좋아질거야’라고 말해준다.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선에 관한 글을 요청받았을 때, 지금의 20대 혹은 30대 초반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해줄 것인지, 아니면 ‘희망’을 이야기해줄 것인지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역시 내가 늘 그래왔듯 ‘사실’을 이야기해주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요즘 한국의 청춘에게 ‘희망고문’을 유포하는 ‘멘토’들이 너무 많다는 게 결정적 이유다(‘희망고문’을 가수 박진영이 만든 신조어이자 노래 제목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빌리에 드 릴라당이라는 19세기 프랑스 소설가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둥,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얘기를 늘어놓는 멘토들 대부분이 실은 그리 큰 어려움 없이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이들이거나 혹은 젊은 시절의 별 것도 아닌 고생담을 자신이 지닌 부와 명예의 액세서리로밖에 여기지 않는 이들이다. 그들은 지금 당신이 겪는 역경이 세계의 부조리함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무능력 때문이라 주장하길 좋아한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의 강연과 책에서 사회나 정치문제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자기계발” “힐링” “자아 찾기”에 열중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건 무척 자연스런 일이다. 


혹시 오해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당신들이 겪는 어려움이 온전히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며칠 전 당신이 선배나 사수, 상관에게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욕을 처먹은 건 아마 십중팔구 당신이 조직 내에서 개념 없이 처신했거나, 공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자가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했기 때문일 게다. 개인의 찌질함을 사회구조의 탓으로 돌리는 짓을 전문용어로 ‘중2병’이라고 부른다. 반면 세계를 실질적으로 진보시켜온 고귀한 인간들은 그보다 훨씬 번거로운 과정을 밟아왔다.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 고통에서 사회구조의 모순을 즉각 연역하지만, 동시에 그 모순에서 타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들은 자신과 닮은 고통스런 얼굴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함께 싸운다. 유별하게 이타적이고 윤리적인 DNA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회구조의 문제’란 그렇게밖에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를 찍든, 문재인을 찍든, 박근혜를 찍든 당신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될 경우 상황이 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오차범위 이내’다. 이명박의 5년이 유독 고통스러웠던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언론계, 문화계의 진보적 명망가들과 ‘486세대’ 지식인들이 특히 그랬다. 이들에게 박근혜 후보의 낙선은 그야말로 자신의 운명이 걸린 절체절명의 문제다. 


그러나 당신 같은 청년들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배드 뉴스’는 누구에게 투표해도 지옥이라는 것, ‘굿 뉴스’는 우리는 이미 지옥에 살고 있다는 것. 청년들의 삶이 실제로 나락에 떨어지기 시작한 건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정부라 불리던 노무현 정부 시기였다. 최악의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었고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재벌을 통제할 수 있게 한 헌법적 권리를 사실상 포기하는 각종 법안들이 통과됐으며 부동산 투기를 전혀 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IT 호황마저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더 이상 나빠질 여지조차 없이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상황은 충분히 나빴지만 앞으로 더 나빠질 수도 있다. 한국경제는 거대한 침체기의 초입에 와 있고, 부동산 투기로 부를 축적하던 ‘광란의 시절’은 완전히 끝장났다. 일본이 이미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이 불황의 끝이 대체 언제일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부조리하게도, 당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이전 세대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기회들과 열악한 선택지들만이 당신 앞에 놓여 있다. 대선후보들 누구나 이 상황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결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니 “청년실업”이니 떠들어대지만 추상적인 구호뿐이다. 가장 치명적이고 민감한 문제, 극단적으로 쏠려있는 부의 재분배 방식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진정성”이라는 모호한 레토릭으로 눙치는 모습도 보인다. 그것은 솔직함이 아니라 책임회피일 뿐이다.


2009년의 30대 그룹 대졸초임 삭감 사태는 불황을 빌미로 기성세대가 공모해 젊은 세대의 삶을 통째로 유린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참혹한 ‘범죄’였다. 재벌들은 정규직도 아닌 인턴사원을 늘리겠다는 명목으로 노조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사회초년생의 임금을 30%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솔선해서 자기들 임금부터 삭감하겠다는 임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불과 몇 년 뒤 조사해보니 청년들의 몫은 사라진 채였지만 늘린다던 일자리는 엄청나게 줄어들었음이 밝혀졌다. 이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 대선후보는 현재까지 없다. 아마 인지하지도 못한 후보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누굴 찍어도 지옥’이라고 말한 수많은 근거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신들이 순결한 희생자란 소린 아니다. 사회초년생을 비정규직화하려는 법안에 맞서 전국을 글자 그대로 ‘불바다’로 만들며 싸웠던 프랑스 청년들과 달리 한국의 청년들은 대졸초임삭감에 이렇다 할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저항해야할 때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앞의 선택지에 저런 후보들만 있는 것이고 그 후보들이 청년세대의 고통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이런 이들을 적확히 지시하는 한국어는 딱 하나다. “호구”. 세 글자로는 “호갱님”.


선거가 다가올수록 앞서 언급한 “언론계, 문화계의 진보적 명망가들과 ‘486세대’ 지식인”들은 ‘2030 세대’가 문재인이나 안철수를 지지하면 혁명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대선에서 누구를 찍든 삶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투표를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확실한 건 당신이 투표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기성세대에 의해 “호구”에서 “개새끼”로 격하될 거라는 점이다. 누굴 찍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투표는 하는 게 좋다. 그건 변화 그 자체는 아니지만 변화의 필요조건이다. 중요한 건 투표하기 전에 목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거기에 청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가 담겨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좋다.


선거와 정치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러나 정치참여를 정치팬덤과 구별하지 못하는 건 더욱 멍청한 짓이다. 대통령은 당신의 엄마나 아빠가 아니며 어떤 명시적 요구도 하지 않는데 소원을 들어주는 기부천사도 아니다. 정치인은 팬심이 아니라 공포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다. 정치가는 당신이 걸친 옷의 브랜드가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많은 친구들과 손잡고 있는지를 본다. 나의 제안은 단순하다: ‘팬클럽’ 대신 ‘네트워크’를 만들고, ‘정치인의 진정성’이 아니라 ‘나의 몫’을 요구하라. 


2012. 10. 22. 14:44

저성장 시대의 성장서사: <미생>과 <골든타임>

계간 <R> 2012 가을호  hybrid critique 01

 

저성장 시대의 성장서사
웹툰 <미생>과 드라마 <골든 타임>

 

한국에서 최근 10년 내에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인 대중문화를 꼽는다면 단연코 웹툰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가장 친숙한 대중문화이기도 하다. TV 드라마 역시 1‧2차 한류 붐을 통과하며 질적 성장을 거듭해왔다. 대중과의 접촉면이 가장 넓은 두 장르에서 심심찮게 수작이 튀어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음에 연재중인 웹툰 <미생>과 문화방송 드라마 <골든 타임>은 전혀 다른 플랫폼에 담긴 서로 무관한 문화상품이지만 하나의 열쇠말로 이야기해볼만한 작품들이다. 바로 ‘성장’, 성장담이라는 것.

 

개별 작품에 대한 미학적 비평은 이미 넘쳐나고 있다. 굳이 거기에 한 마디 더 보탤 이유는 없다. 이 글은 비평이나 대중들의 반응까지 포함한 일종의 메타비평(여기서 메타비평은 비평에 관한 이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이다. <미생>과 <골든 타임>의 인기와 호평은 일차적으로 작품의 완성도에 기인한 것이지만, 대개의 성공한 대중문화상품이 그러하듯이 시대상황을 적절히 반영한 소재와 메시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어떤 작품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아직 살지 못한 자”와 “이름 없는 자”

 

‘미생(未生)’은 바둑용어로 두 집(완생)을 만들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작가 윤태호는 그래서 작품의 부제를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로 붙였다. 매회 첫머리에 유명 바둑기사의 기보가 등장하고 문외한에게 생소한 바둑용어들도 자주 등장하지만, 이 웹툰은 바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은 한국기원의 바둑연습생이었으나 끝내 프로 바둑기사가 되지 못한 청년 ‘장그래’다. 남들이 초‧중‧고교를 다니며 정규교육을 받은 시간을 온전히 바둑에 쏟아부었음에도 번번이 입단시험에서 미끄러지며 결국 바둑의 길을 접었다. 군대를 다녀와 보니 그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학력도, 자격증 하나도 없는 막막한 상황. 죽으란 법은 없는지, 바둑 두던 모습을 눈여겨보던 지인의 소개를 통해 그는 어느 회사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부터다. 바둑 실력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청년이 종합상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화이트컬러의 노동이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 것이다.

 

다른 한 작품 <골든 타임>은 의학 드라마이다. 교통사고나 천재지변 등으로 신체에 동시다발적인 손상을 입은 환자, 즉 중증 외상환자를 다루는 부산의 어느 종합병원 응급의학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골든 타임’은 중증 외상 환자가 생존을 위해 처치받아야 하는 시한을 의미한다. 이 시한을 넘기면 환자의 생존확률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드라마의 주인공 이민우는 의대에 들어갔지만 의사라는 직업에 흥미도 의욕도 없는 남자였다. 취미로 의학 관련 ‘미드’ 자막을 인터넷에 올리고 한방병원에서 엑스레이 오더나 내리며 편하게 살던 그였지만, 우연히 선배 대신 병원 응급실 당직을 서다 사고로 온 아이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미숙함으로 한 생명이 꺼져 들어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겪으며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결국 이민우는 우연히 휘말린 사고로 알게 된 중증 외상 전문의 최인혁이 근무하는 병원에 인턴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인턴에게 이름이 어딨냐”는 레지던트들과 정신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에 하루에도 몇 번씩 ‘멘탈이 붕괴’하는 응급실 생활이 시작된다.

 

출세에서 생존으로

 

샐러리맨의 삶을 그린 문화상품은 셀 수 없이 많다. 만화는 더욱 많다. 샐러리맨의 일상을 그린 <미생>이 그런 작품들과 비교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미생>의 스토리에 윤곽이 잡히기 시작할 무렵 많은 사람들이 했던 말이 “한국의 <시마과장>”이라는 칭찬이었다. <시마과장>은 굴지의 재벌기업에 다니는 시마 코우사쿠를 주인공으로 샐러리맨의 삶을 그린 만화로, 일본에서 1983년부터 연재되어 국민적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훗날 시마 부장, 시마 이사, 시마 사원까지 나와 ‘회사인의 바이블’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그러나 <미생>은 <시마과장>과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히로카네 켄시라는 작가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시마> 시리즈에서 회사에 명줄이 걸린 샐러리맨의 절박감이 설득력 있게 표현된 적은 거의 없다. 시마 코우사쿠는 명문대를 나와서 평탄하게 회사생활을 하며 이사까지 승진한다. 파벌을 싫어하지만 출세가도에서 배제된 것도 아니다. 출장이나 각종 업무마다 미인들이 꼬여들어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한다. 솔직히 말해서 시마 코우사쿠 시리즈는 ‘대기업 엘리트의 행복한 나날’을 그린 작품이다. 거기서 회사인의 절절한 ‘애환’이나 ‘갈등’은 그저 ‘포즈’ 또는 ‘클리셰’로만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미생>은 다르다. 장그래는 출발부터가 절박했다. 아버지 사업은 망했고 어머니는 부쩍 늙어버렸으며 자신은 아무런 스펙도 지식도 없이 종합상사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갔다. 인턴은 인턴끼리 살벌한 경쟁을 해야 하고, 그 경쟁을 뚫고 인턴 딱지를 떼 봐야 계약직 사원이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처지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다져진 승부사 기질과 날카로운 직관뿐이다. 동기로 들어간 인턴사원들은 좋은 대학에서 경영학 따위를 공부하고 영어와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한 친구들이다. 장그래는 이들의 대화만 따라가기도 벅차다. 무언가 전문용어를 쓰는 것 같은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작가 윤태호는 유명한 바둑 격언들을 절묘하게 배치하며 ‘샐러리맨의 생존술’을 풀어나간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것은 샐러리맨의 생존술이라기 보다는 ‘사회초년생의 생존술’이다. <미생>은 <시마과장>보다는 차라리 허영만의 유명한 기업만화인 <아스팔트 사나이>나 <미스터 큐>의 계보에 놓인 작품이지만, 그런 만화들에서 보이는 고도성장기 특유의 허장성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귀두컷’을 하고 와이셔츠엔 고춧가루 묻힌 멍청해 보이는 아저씨들이 회사업무에서는 얼마나 노련한 장인들인지, 때로는 얼마나 교활한 여우들인지를 윤태호는 압도적인 리얼리티로 그려낸다. 그런 그들 틈에서 온전히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것, 그래서 장그래의 목표는 출세가 아니다. 생존이다.

 

‘최선의 세계’라는 신기루

 

해운대 세중병원 인턴 이민우의 눈동자는 항상 초점을 잃고 흔들린다. 응급환자가 들어와 기도삽관을 시도할 때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얼굴에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환자의 바이탈 사인은 순간순간 악화되는 중이다. 그러나 인턴은 말이 좋아 ‘선생’이지 “아무 것도 판단해선 안 되고 아무 것도 해선 안 되며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되는” 존재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기를 붙잡고 당직 선생님들에게 미친 듯이 ‘콜’을 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당직의가 내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수술실은 풀가동되고 있고, 모든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정신이 없다. 반면 응급외상센터는 병원 적자의 주범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항상 스탠바이 중인 이는 최인혁 교수뿐이다. 이민우가 다시 본격적인 의사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사람, 존경하는 멘토이자 스승이다.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수술로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는 최 교수지만 병원의 스태프 교수들 사이에서는 ‘왕따’이다. 응급환자를 살린다는 이유로 절차와 질서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골든타임>은 그 무엇보다 환자의 생명이 우선이고 “사람 목숨 값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최인혁)”이라는 대원칙이 ‘현실’ 앞에서 얼마나 관철하기 힘든 당위인지를 집요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인턴 이민우의) 뜨겁지만 설익은 휴머니즘에 얼음장 같은 냉수를 끼얹는 상황과 대사들이 이어진다.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최선을 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소위 ‘<골든타임>의 명대사’로 회자되는 것들은 대부분 이런 선택에 대한 문제다. “지금은 나쁜 것과 좋은 것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순간이야(최인혁)”“모든 운이 따라주고, 인생의 신호등이 동시에 파란불이 되는 때란 없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상황은 없는 거야. 만약 중요한 일이고 ‘결국’ 해야 할 일이라면. 그냥 해. 앞으로도 완벽한 때란 건 없어(박금녀)”

 

성장이란 ‘포기할 때와 장소를 깨닫는 일’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격렬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알린다. ‘시간’과 ‘돈’, 예산제약 상황을 만들어내는 이 두 가지 절대원소 앞에서 말랑한 감상주의나 모호한 휴머니즘은 가루처럼 분쇄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을 해명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골든타임>이 그리는 “실재의 사막”에서 최선의 세계는 신기루일 뿐이다.


럼스프린가: 탕자는 돌아올 수 없다

 

한국에 “미국판 청학동”이라고 종종 소개되기도 한 아만파(amish) 마을은 기독교의 한 분파로 18세기적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만파 마을 사람들은 화려하고 요란한 현대문명과 소비문화를 최대한 거부하며 금욕적이며 경건한 삶을 꾸려간다. 슬라보예 지젝은 <시차적 관점>에서 아만파 공동체의 어떤 독특한 풍습을 소개한다. 그 풍습의 이름은 ‘럼스프린가’다.

 

미국의 아만파(amish) 공동체에는 럼스프린가라고 불리는 관례가 있다(rumsringa, 독일어 herumspringen에서 온 말로서 주위를 뛰어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17세가 되면 그들의 아이들은 (그때까지 그들은 엄격한 가정규칙에 종속된다) 자유롭게 되어 밖으로 나가 그들 주위의 “영어” 세계의 방식들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허락되며 심지어 조장된다. 그들은 차를 몰고 다니며 팝음악을 듣고 텔레비전을 보며 음주와 마약과 난교를 경험한다. 몇 년 후 그들에게는 결정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이 아만파 공동체의 일원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곳을 떠나 일반적인 미국시민이 될 것인가? 두 쪽에 대한 모든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할 기회를 그들에게 주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한 해결책은 아주 편파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을 선택이라고 해야 한다면 거짓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영어” 세계의 위반적‧불법적 쾌락들에 대한 오랜 세월의 훈육과 환상 뒤에 아만파 청년들은 갑자기 그리고 준비없이 그 속으로 내던져진다. 물론 그들은 극단적으로 위반적인 행동들에 탐닉하여 “그것을 모두 시험해”보며 자신들을 섹스와 마약과 음주 속으로 완전히 내몰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삶에서 그들은 모든 내재적인 한계나 규제를 결여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자유로운 상황은 예상에 어긋한 결과를 초래하며 참을 수 없는 불안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몇 년 후 그들이 격리된 그들의 공동체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안전한 도박이다. 90퍼센트 이상의 아이들이 정확히 그렇게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생각에 항상 수반되는 어려움에 대한 완벽한 사례이다: 아만파 청소년들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부여받지만, 선택을 하는 동안 그들이 사로잡혀 있는 조건은 선택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진정 자유로운 선택을 하려면 그들은 선택이 가능한 상황 속에서 교육받았어야 하고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적절히 알고 있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시차적 관점>, 647쪽


럼스프린가 사례를 두고 지젝의 길고 긴 재담이 계속 이어지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다음과 같은 물음이다. “우리가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저항이라 인식하는 행동들이 결국 체제의 재생산과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이런 물음은 그 어떤 급진적 저항도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걸 은밀하게 인정해버린 좌파의 무기력으로부터 헤어 나오기 위한 처절한 시도다. 지젝은 의사(pseudo)-자유, 가짜의 능동성 대신 전복적인 수동성(그가 ‘바틀비 정치학’이라고 부르는 것, 예컨대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잠정적인 출발점으로 삼는다. 정말로 이를 통해 “이데올로기의 외설적 매듭을 푸는 방법”을 그가 제시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럼스프린가는 <루가복음>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에피소드의 아만파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방탕한 생활로 모두 탕진해버리고 돼지치기로 전락해버린 둘째 아들이 뼈아픈 후회 끝에 회심하고 집으로 돌아와 용서를 구한다. 아버지는 첫째 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회개한 둘째 아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여 축연까지 열어준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명백하다. 비록 죄를 지었을지라도 깊이 참회하고 회개하면 은총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성장담 역시 본질적으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철없고 성급한 천둥벌거숭이는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낯선 세계에 매혹당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 결별한 뒤 그가 마주치는 것은 거짓과 기만과 위선이다. 그는 싸우고 패하고 도망치고 쓰러진다. 환멸과 분노에 괴로워하고 날선 적의와 악전고투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이 모든 통과의례를 거쳐 그/녀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탕자가 집으로 돌아와야 끝이 난다. 계약직 사원이 어엿한 상사맨이 되거나 인턴이 한 몫 제대로 하는 전문의가 되면 성장담은 끝난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지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된다는 게 아니라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는 존재의 혁신이다. 아니, 그렇게 ‘포장’되고 ‘미화’된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성장담은 럼스프린가가 보여준 바대로 젊은이에게 진정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가 부여하는 압력을 견뎌낸 젊은이를 추려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탕자’는 더 이상 탕자가 아니다. 체제에 순치된 젊은이만이 돌아올 수 있다. 진정한 탕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전형적인 성장담은 불안과 혼돈의 세계에서 안정과 성숙의 세계로의 당당한(그리고 쓰디쓴) 편입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보수(保守)의 멜랑콜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수의 탁월한 성장담은 그 한계를 돌파한다. 탕자는 집으로, 다시 말해 익숙한 세계로 돌아오는 대신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체제가 던지는 가짜 선택지를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지를 만든다. 그리하여 역설적이게도, 탁월한 성장담은 이제 더 이상 성장담이 아니게 된다.

 

성장담의 근본적 불완결성

 

성장담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 의해 생산되고 또 소비되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단지 인간 삶의 보편성 때문이라 얼버무리고 넘어갈 만큼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보편성’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가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성장소설이라 불리는 <데미안>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호밀밭의 파수꾼>과 같은 작품들이 2012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만큼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물론 이 텍스트들은 과거에도 읽혔고 지금도 읽히고 있고 앞으로도 읽힐 정도의 ‘보편성’을 지녔다. 그야말로 불멸의 고전이다. 그러나 저 작품들이 당대에 갖추고 있던 핍진성(verisimilitude)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당대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달라도 너무 달라져버린 것이다. 삶의 시시콜콜한 디테일들이 조금씩 어긋나며 들어맞지 않다가, 결국 인간이라는 종적(種的) 유사성 외에 별다른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고전의 의미는 상당히 퇴색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모든 인간을 포괄할 정도로 그물이 거대해지면 역설적이게도 그 텍스트는 아무 것도 포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성장서사가 오늘날 핍진성을 상실했다는 말의 의미는 시대배경이나 문화, 사용하던 물건들의 차이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해 물리적 시간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시간의 차이 때문이며 이 말은 곧, ‘삶의 양식 혹은 태도(modus vivendi)’가 변화했다는 뜻이다. 성장은 ‘상실의 경험’이다. 그것은 아이의 단계를 마무리하고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대가이다. 이를테면 청춘의 등가교환체계인 셈이다. 상실은 언제나 쓰디쓰고 고통스럽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가는 경험이고 나도 나의 부모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닮은 단계를 밟아가며 어른이 된다. 성장담은 따라서 세대를 거듭해가며 변주되는 약속이다.

 

삶의 리듬이 거의 변하지 않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온 이후 각 세대의 경험이 과거에 비해 훨씬 이질화되었고 성장담도 변화했다.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개인’의 탄생으로 인해 성장서사는 점차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가까워졌다. 20세기의 성장담이 몇 세대를 거치면서도 그 원형이 상당 부분 유지되고 또한 그토록 엄청나게 양산된 것은 소위  20세기적 생산양식이 개인의 성장단계를 ‘보증’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근대적 의료/보육/교육체계 속에서 생물학적 나이에 따라 나뉜 발달단계가 제시되었고 개인의 삶은 이에 맞춰 전형화 되었다. 그것이 바로 근대 성장서사의 물적 기반이다. 예술은 결코 시대와 분리되지 않으며 당연히 성장담도 마찬가지다. 21세기인 지금 20세기적 성장담의 핍진성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미생>과 <골든타임>은 형식만 보자면 전형적인 20세기 성장담이다. 주인공은 처음에 백지상태(tabula rasa)이지만 멘토를 만나고 학습하고 경험하면서 선형적 성장의 단계를 밟아나간다. 목표는 프로페셔널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이들에게 데미안이나 깡디드처럼 자아를 찾기 위해 방황하거나 진리를 찾기 위해 고뇌하는 여유는 없다. 한국에서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그린 드라마들은 1990년대에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였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런 작품을 기획하지 않는다. 맨손으로 시작해 거대한 왕국을 세우는 입지전적 스토리 역시 명맥이 끊겼다. 자아를 찾을 여유도, 신화를 만들 영웅도 없다. 반면 88만원 세대의 잉여적 삶을 그린 작품들은 차고 넘친다. 20세기적 형식에 오늘의 현실을 담다보니, 성장담은 이제 생존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는 현대사회의 세대 간 적대에 관한 가장 출중하고도 문제적인 텍스트다. 이 소설은 주인공 브루노와 그의 아들, 즉 68세대와 포스트 68세대의 관계를 통해 근대적 삶의 태도가 사실상 해체되어버렸음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브루노는 우울증 때문에 어린 나이에 가진 자신의 아들을 돌보지 못했고 그의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아버지에게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게 된다. 급기야 아들은 젊은 여자를 두고 아버지와 성적 라이벌이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것도 물려줄 게 없었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어떤 존경도 비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시간의 우리(the same cage of time)” 속에서 적대하고 경쟁한다. ‘약속된 미래’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개시한다. 기성세대는 다음세대에게 무엇도 약속할 수 없다. 성장은 탈낭만화되었고 처절해졌다.

 

이제 지젝이 말한 럼스프린가는 아이러니가 된다.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자신의 저항이 체제에 포섭되고 그 재생산에 복무하게 되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그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이전 세대와 같은 기회가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다. 그것은 자신의 성장의 한 단락을 영원히 마무리하지 못한 채 영원히 성장해야하는 악몽이다. 헐리우드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처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같은 날이 반복되는 삶 말이다. 다시 말해 현재 젊은이들의 공포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체제로의 편입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성장서사라는 말이 암시하는 바는 정확히 이것이다. 탈근대의 성장담은 완결되지 못한다. 이것은 미완으로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장의 근본적 불완결성을 뜻하는 것이다.


 

2012. 4. 13. 19:12

세대와 정당정치 2002~2012: 정치적 세대동맹의 역사와 의미

[황해문화 2012년 봄호]


세대와 정당정치

2002~2012: 정치적 세대동맹의 역사와 의미



2012년은 시작부터 선거열기로 뜨겁다. 개혁․진보진영의 정치인과 정당은 일제히 ‘헤쳐모여’를 외치며 바쁘게 움직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한나라당도 “쇄신”을 부르짖으며 들썩거리고 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2002년부터 2011년에 이르는 10년 동안 크고 작은 선거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다양한 관점으로 이들 선거를 바라볼 수 있겠지만, 이 글은 세대동맹이라는 프리즘으로 10년의 선거를 돌아보고, 이를 통해 정치적 세대로 호명된 세대들이 실제로 어떤 동질성과 이질성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각 선거에서 어떤 투표행태를 보여줬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요컨대 정치적 세대동맹의 역사와 의미를 총선과 대선을 앞둔 2012년 한국사회라는 맥락 속에 적절히 위치시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002년: 2030 세대동맹의 탄생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세대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세대는 극명하게 양분되었다. 20대와 30대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고, 50대와 60대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면서 선거는 ‘세대대결’ 양상으로 치닫는다. 젊은 세대가 노무현에 열광한 것은 일차적으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가진 매력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노무현은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을 포기했던 ‘바보’ 정치인이었고, 특권과 부패로 얼룩진 정치권에 ‘비주류’의 새바람을 넣어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처음 안겨준 사람이었다.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하다고 평가받던 젊은 세대는 노무현을 계기로 유의미한 ‘정치적 덩어리’로 응집하기 시작했다. 2002년 당시 이른바 ‘2030세대’가 노무현이 가진 어떤 ‘권위’ 때문에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를 하며 여유롭게 살아가다 뒤늦게 운동에 뛰어든 그가, 또 대학을 나오지 않은 상고 출신인 그가 명문대 운동권들과 야당의 거물정치인들 틈바구니에서 민주화운동의 ‘적자’가 될 수는 없었다. 젊은 세대가 노무현에게서 본 미덕들은 탁월함과 비범함이라기보다는 소탈함과 평범함이었다. 그들이 느낀 감정도 경외감이라기보다는 친근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실제로 노무현이 지녔던 정치적 이념이 무엇이었든 간에, 젊은 세대가 노무현에게서 발견한 가치들은 진보적거나 좌파적인 어떤 가치가 아니라 ‘상식’과 ‘원칙’이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이념에 경도되었다 환멸을 느낀 상당수의 30대에게 ‘신선한’ 인물로 다가갔고, 이념에 무관심하거나 불편해하는 상당수의 20대에게는 ‘생각 있는’ 정치인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각자의 동기야 무엇이든 노무현이라는 코드로 ‘세대동맹의 앙가주망(engagement 자기구속 또는 사회참여)’이 일어났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하다. 2002년 당시 20대와 30대는 소위 ‘X세대’와 ‘386세대’라는 말로 대변되기도 했는데, 2002년 월드컵 이전만 하더라도 소비문화같은 두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묶어서 ‘2030세대’라 통칭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기사다.



지난 10년간 국내 2030세대(20대와 30대)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담은 보고서 『변하는 한국 Changing Korea 1992~2001』이 최근 발간됐다. 대홍기획 마케팅 컨설팅 그룹이 2권, 824쪽 분량으로 펴낸 이 보고서는 지난 10여 년간 40여 억 원을 들여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5대 도시군의 6만여 명을 개별면접 조사한 결과이며 지난해에는 6천 명을 조사했다.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정치적 무관심주의 ○집 없어도 자동차는 필요 ○사랑하면 혼전섹스도 가능 ○법대로 살면 손해 


                                   ‘"사랑하면 혼전관계 OK"’, 『조선일보』, 2002년 3월 29일



그러나 2030 세대의 동질성을 보여주려는 갖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실 2002년 무렵의 20대와 30대를 동질적인 세대로 묶으려는 시도는 넌센스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절대빈국 수준의 궁핍과 저개발 상태에서 탈출한 이후에 태어나 비교적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자란 세대라는 점 외에, 20대와 30대는 오히려 정치․사회․문화적 공통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른 면모를 가진 세대다. 일단, ‘대학생’이라는 집단에 대한 사회적 평판 자체가 전혀 달랐다. 20대의 대학진학률은 무려 80%에 이르지만 30대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진학률은 불과 30% 정도였다. 또 20대는 문민정부 이후, 그러니까 학생운동이 쇠락하던 시기 또는 완전히 붕괴한 뒤에 대학에 입학한 세대였다. 하지만 30대는 이들과 다르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980년 광주’라는 압도적 트라우마와 대면해야 했고, 친구들이 분신․투신자살하고 공권력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는 걸 목격했으며, 최루탄과 화염병을 실제로 보고 만지며 대학을 다닌 세대였다. 그런 점에서 30대는 오히려 ‘민청학련 세대’라 불리기도 한 40대와 좀 더 동질적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20대와 30대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이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했을 때의 그 뜨거운 열광과 흥분은 거의 ‘민족적 한풀이’라 해도 될 정도였는데, 당시 『딴지일보』 김어준이 감격에 떨며 외친 “우리는 강팀이다!”라는 선언은, 역으로 기성세대의 선진국․강대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강팀이다”라는 선언이 20대와 30대에게 주는 울림은 전혀 달랐다. 20대, 그리고 광장의 광란을 주도한 당시의 10대에게 그 선언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굳이 그렇게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알고 있었다. 다소 운이 좋긴 했지만 한국축구는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정당당히 싸웠다. 10대와 20대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라나던 시기의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나 대중문화로나 이미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386세대’와 그 윗세대에게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았다. 이들에게 미국으로 상징되는 선진국에 대한  콤플렉스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주박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는 강팀”이라고 재차 되뇌지 않으면 불안했고, 그래서 뜨거워서 터져버릴 것만 같던 광장에서조차 ‘완전연소’할 수가 없었다. 이 감수성의 차이는 작지 않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월드컵 주체‘라 할 수 있는 세대는 2030세대가 아니라 1020세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그럼 2030세대의 공통점은 없을까? 공통점이 있다. 그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매우 중요한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무엇인가? 그것은 ‘매체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매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 활용 능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단순한 ‘기술(skill)’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매체 활용 능력이면서 동시에 매체에 대한 감수성’이다. 한국사회라는 맥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두 가지 측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하나는 ‘올드 미디어에 대한 비판의식’, 다른 하나는 ‘뉴 미디어에 대한 감수성 및 활용능력’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실천적으로 상호참조(cross reference)되면서 동시적으로 강화되어왔다. 종이신문, 방송 등 기존의 주류매체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대와 열망의 근거가 되고, 역으로 새로운 매체의 영향력 확대는 기존 매체에 대한 냉소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상호참조는 한국 미디어 시장의 특이성을 잘 보여준다. 사실 다른 선진국가의 경우 뉴 미디어의 등장이라는 요소 자체는 올드 미디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직접적 원인이라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외국의 이른바 ‘정론지’는 인터넷매체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신뢰도에 결정적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뉴욕 타임즈』는 역시 그 『뉴욕 타임즈』이고, 『가디언』은 여전히 그 『가디언』이며, 『슈피겔』은 변함없이 그 『슈피겔』이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정론지와 소위 타블로이드(대중지)의 영역이 명확히 구별되어 있는 편이어서 정론지는 판매부수가 적지만 강력하고 권위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타블로이드는 엄청나게 많이 팔리지만 권위나 담론적 영향력은 적다. 정론지로서의 권위와 명성은 오랜  역사를 통해 검증되고 축적되어온 것이므로 뉴 미디어가 등장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일단 한국의 올드 미디어 시장은 정론지/타블로이드로 구별되지 않는다. 한다하는 매체는 죄다 정론지를 표방하며 전국구 종합일간지만 수십여 개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매체들은 동시에 대중지이기도 하다. 상위 몇몇 매체는 수백만 부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매머드급 언론사로, 근엄한 표정을 하고 ‘중립보도’의 기치를 공공연히 내걸지만 들여다보면 타블로이드 뺨치는 ‘황색보도’를 일삼는다. 굳이 표현하자면 ‘황색정론지’이겠다. 이렇게 한국의 주요 신문들은 그동안 ‘권위’와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왔는데, 문제는 이들 매체가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울지 모른다. 이들은 군부독재정권 때는 권언유착(權言癒着)으로 급속히 사세를 불린 뒤, 형식적 민주화를 이루자 무소불위의 ‘밤의 권력’으로 전횡을 휘둘러왔다. 언론권력은 이제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정치권력을 막강한 여론주도력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올드 미디어의 ‘정당성 위기’는 이렇듯 스스로 초래한 위기였다. 이런 행태에 전면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안티조선운동이다. 2002년은 안티조선운동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고, 그때의 2030세대는 그 한가운데를 온 몸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영향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 없는 세대였다. 언론학자이자 대중지식인으로서 강준만은 이미 1990년대 중후반부터 대학가와 시민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상당수의 운동권 동아리들은 강준만의 『언론플레이』나 손석춘의 『여론읽기혁명-왜 지금 언론개혁인가』 등의 책을 세미나의 필수 ‘커리’로 선정해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이렇게 ‘학습’한 대학생들은 안티조선운동의 주요 논객으로, 또 활동가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또 다른 측면, ‘뉴 미디어 감수성과 활용능력’ 또한 2030세대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다. 어느 사회든 뉴미디어에는 젊은 세대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접촉한다. 2011년 9월 한국광고주협회가 밀워드브라운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만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SNS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SNS 이용자 중 20대가 58.2%로 과반수를 점했다. 30대는 27.8%, 40대는 11.8%, 50대 이상은 2.4%로 나타났다. 2002년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단지 그때는 SNS의 시대가 아니었을 뿐이다. 지금보다 인터넷 보급률이 훨씬 낮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뉴미디어의 세대분절 현상은 오히려 최근보다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 김대중 정부 시기 국가차원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은 IT산업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과 동시에 진행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속도와 규모로 고속인터넷이 전국에 보급된다. 매체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기반시설은 무엇을 의미할까? 간단히 말해 전국 배달망이 그냥 깔려버렸다는 뜻이다. 비싼 윤전기는 필요 없었다. 인터넷 주소와 HTML만 있으면 내가 만들어낸 콘텐츠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 큰 초기자본 투자가 필요한 신문 및 방송 산업과 달리 훨씬 적은 비용으로 매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몇몇 사람들이 인터넷 미디어라는 새롭고 막막한 영역에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은 가장 대표적인 인터넷 언론으로 초기부터 각광받았고, 지금은 종이신문 못지않은 영향력을 지닌 미디어로 성장했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극적으로 꺾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 직후 영국의 『가디언』은 ‘세계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World's First Internet President Log On)’라는 기사를 전 세계에 송고했다. 글자 그대로였다. 2002년 대통령 선거는 『조선일보』으로 상징되는 올드미디어와 『오마이뉴스』로 상징되는 뉴미디어의 대결이었다. 이 선거는 “한국정치사상 초유의 인터넷선거”라 불렸을 정도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인터넷이 승리한 선거가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가 승리한 선거’였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힘은 주류매체에 대한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인터넷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였던 개인들의 힘이었다. 이들은 노무현을 위해 뉴스를 ‘퍼 나르고’, 조중동 게시판에 반박글과 댓글을 쓰고, 온라인 성금을 모았다. 노무현 후보의 팬클럽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신드롬이었던 ‘노사모’는 인터넷 공간에서 발군의 행동력과 여론주도력을 보이며 맹활약했다. 노무현 후보 공식홈페이지 '노하우(www.knowhow.or.kr)'와 기타 소규모 지지 사이트들까지 합치면 노무현을 인터넷에서 띄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조직된 그룹의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공교롭게도, 혹은 필연적이게도 선거권을 가진 이들 중에서 가장 인터넷을 잘 다루던 세대가 20대와 30대였다. 유례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통에 기성세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댔지만, 젊은 세대는 그것을 흥분되는 도전 또는 축제로 받아들였다. 안티조선운동과 뉴미디어 혁명이라는 두 개의 현상이 절묘하게 겹치는 시기, 미디어 리터러시를 공통기반으로 하는 ‘2030 세대동맹’이 탄생했다. 그리고 ‘5060 세대동맹’을 끝내 꺾고야 만다. 이 치열했던 세대 간 투표연대에 대해 “인터넷으로 무장한 2030세대가 오프라인 중심의 5060세대를 무너뜨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2002년 대선이 끝난 며칠 후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국회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은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권력을 창출하는 핵심 미디어로 87년 대선에서는 광장의 확성기가, 92년 대선은 신문이, 97년 대선은 TV가, 2002년 대선에서는 인터넷이 부각되었다. 인터넷과 네티즌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패인이었다. 어차피 20∼30대 네티즌은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인터넷의 열기와 실제 상황은 다를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상식과 판단을 뒤집어 버렸다. 진짜 일을 낸 것이다. 20∼30대를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그 동안 지역패권·금권·관권선거 등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를 한꺼번에 쓸어버리려 했다. 

            

                   김형오, ‘한나라 패인은 인터넷 대책 부재’, 『오마이뉴스』 2002년 12월 29일




2012년 세대동맹, 2007년과 다를까


세대동맹이 다시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10년이 지난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탄생을 전후해서다. 이번에는 ‘2040세대’다. 이들 세대가 이른바 ‘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이 당선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다른 세대와 확연히 구별되는 투표성향을 보였고, 여당의 ‘강남몰표’를 압도하는 위력을 보였다. 세대별 투표결과가 알려지자 ‘2040세대가 세상을 바꾼다’며 이른바 개혁성향 매체들은 흥분에 찬 어조로 특집기사들을 쏟아냈다. 한 마디로 ‘진보적 세대동맹’의 가능성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해다. 2040세대 뿐 아니라 온갖 형태로 정치적 주체들이 호명되거나 동원될 것이다. 그 자체로 좋고 나쁜 현상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호명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것인가이다. 2012년의 2040세대는 2002년 2030세대와 얼마나 다를까? 코호트(cohort), 즉 인구학적 연령집단으로 견주자면, 10년 전인 2002년의 2030세대에 당시 10대였던 집단을 합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2002년의 10대부터 30대까지의 집단이 나이를 먹어 2012년의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연령집단이 된 것이다. 2040세대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다시금 투표연대를 과시하며 박원순 시장을 당선시켰다. 


여러 매체들이, 특히 개혁성향의 매체들이 선거결과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2040세대의 이념성향, 특히 40대인 과거 ‘386세대’의 진보성에 방점을 찍었다. 예컨대 『내일신문』은 ‘경제위기가 40대를 왼쪽으로 밀었다’ 제하의 기사에서 2010년과 2011년의 여론조사결과를 비교해 40대의 진보성에 주목한다. “40대의 진보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40대는 복지(49.3%)와 성장(50.7%)을 비슷하게 선택했다. 1년 전 현대정치연구소 조사에서 복지(38.2%)보다 성장(61.8%)이 압도적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그러나 정작 이 기사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측면은 기사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단정지어버리는 ‘40대의 진보성’ 따위가 아니다. 불과 1년 새 보수에서 진보로 순식간에 옮겨가는 엄청난 이념적 '진폭'이야말로 주목해야할 지점이다. 이 말은 곧, 이들 세대가 언제든 보수로 돌아설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것은 또한 세대의 이념성향이라는 것이, 계급정치가 정착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별로 신뢰할 수 없는 지표라는 것을 보여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40세대의 진보성을 보여준 선거가 아니었다. 애당초 2040세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사실상 강요된 선택지였다. 진보적 대안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어떤 세대의 진보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심지어 기만적이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범야권 단일후보라는 박원순 시장의 진보성에는 많은 이들이 의문부호를 찍은 바 있다. 특히 박원순 시장 취임 직후 서울시의 가락시장 종상향 문제를 놓고 경제학자 우석훈은 “박원순 시장이 토건세력에 먹히고 있다”며 연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한국사회의 세대적 정치참여를 논할 때 이념성향보다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요소는 미디어 리터러시였고, 여전히 그러하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조중동 등 소위 주류언론의 선거 보도에 대한 비판과 견제 역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선 곤란하다. 단지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능동적 정치참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인터넷은 시민의 능력 및 정보이용 가능성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인터넷이 시민의 인지적 능력 뿐 아니라, 시민의 참여 동기와 관심 까지도 변화시킬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


           브루스 빔버, 『인터넷 시대 정치권력의 변동』, 이원태 역, 삼인, 2007, 375쪽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2007년 대통령선거는 이에 대한 적절한 사례일 것이다. 혹자는 그 선거를 두고 “인터넷이 사라진 선거”라고까지 표현한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홈페이지 ‘노하우’의 1일 평균 접속자는 30만 명, 페이지뷰는 200만 뷰에 달했지만 2007년 대선에서 후보 홈페이지 월 방문자 수는 평균 10만을 넘지 못했다(윤성이, 「17대 대선에 나타난 온라인 선거운동의 특성과 한계」, 『한국정치학회보』 Vol.42)」). 2002년에 비해 뉴미디어 인프라가 더 강력해지고 더 두터워졌음에도, 2007년 대선에서는 왜 인터넷 선거의 성격이 옅어진 것일까? 2002년에는 눈부신 효과를 발휘했던 미디어 리터러시 세대동맹이 왜 2007년에는 작동하지 않았을까? 

자격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능동적 정치참여를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하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동기’다. 능력만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정치참여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동기가 필요하다. 물론 미디어 리터러시를 ‘동기’가 아닌 ‘능력’이라 일도양단해버릴 수는 없다. 주류매체에 대한 비판의식이라는 면에서, 또 뉴미디어의 활용과 정치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주는 정치효능감(political efficacy)이란 측면에서 ‘동기’의 성격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캠벨(Cambell)은 정치효능감을 “정치적 사회적 변화는 가능하며 개별시민은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이라 정의한다(『Voter Decides』, 1954). 다시 말해,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정치참여의 ‘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다. 그러나 그것이 동기의 전부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대선에서도 200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춘 세대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2002년 수준의 강렬한 정치참여를 보이지는 못했다. 정치참여의 동기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기를 완결시키려면 강력한 ‘대립적 의제(conflictive agenda)’가 필요하다. 2002년의 노무현과 이회창의 대결구도에서는 그게 있었다. 2007년 대선에서 많은 사회적 의제들이 난무했지만 대립적 의제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 결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엄청난 표차로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질적인 젊은 세대 간의 동맹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기반이자 공통점이다. 그러나 미디어 리터러시와 대립적 의제라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클리어하지 않으면 세대동맹만이 아닌 ‘세대동맹을 통한 역동적 정치참여’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무엇인가


선거의 해인 2012년에 대립적 의제가 형성될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한나라당조차 복지를 화두로 삼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2002년 대선보다 의제의 대립각이 커질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2007년 대선보다는 뜨겁게 달아오를 거라 예상할 수 있다. 이 예상의 중심에 안철수 현상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탄생시킨 결정적 계기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안철수였다. 그는 불과 2개월 사이 ‘착한 CEO’, 혹은 ‘청춘의 영원한 멘토’에서 대권 1순위로 뛰어올랐다. 그야말로 신드롬이라 할 엄청난 반향이었다. 역시 그 흐름을 주도한 세대는 2040세대였다. 

안철수에게서 대중은 무엇을 본 것일까? 일부 좌파들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복종한 대중이 ‘착한 이명박‘으로서의 안철수를 요청하고 있다고 분석했고 나름 일리가 있지만 동의하기는 어렵다. 신자유주의라는 틀로 안철수 현상을 분석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알갱이들을 놓치게 된다. 안철수는 경쟁의 효과를 신봉한다는 점에서 물론 시장주의자이다. 하지만 그의 지론은 경쟁력 강화에 방점이 찍힌다기보다 ’경제생태계의 회복‘에 찍힌다. 안철수의 발언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의 생각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것이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단지 신자유주의보다 이전인 정도가 아니다. ‘분배의 균등’과 ‘참여의 균등’이란 차원이 빠져있다는 점에서는 20세기 중반의 서구 복지국가체제보다도 이전의 것이다. 그렇다면 안철수가 말하는 자본주의는 대체 무엇인가? 정확히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념은 없지만 그나마 가장 유사한 이념은 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특히 안철수의 다분히 도덕주의적인 경영철학은 『국부론』보다는 『도덕감정론』의 아담 스미스와 더 가까워 보인다.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는 인간사회를 단지 효용가치와 효율성만을 높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 내지 시스템으로 파악하려는 철학체계를 비판한다.”(박순성, 『아담 스미스와 자유주의』, 2003, 108쪽) 한국의 우파들에 의해 왜곡된 것과 달리 아담 스미스는 ‘동감(sympathy)의 윤리’를 강조한 『도덕감정론』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국부론』 내에서도 온전히 시장만능주의자였던 적은 없다. 안철수의 이른바 ‘상인군자(商人君子)의 자본주의’는 일본경제가 아직 잘나가던 시기에 주목을 받았던 로버트 오자키의 ‘인간적 자본주의’와도 유사성을 보이는데 인간적 자본주의란 “자본 지향을 사람 지향으로 대체한” 체제로서 인적자원을 최고로 중요시하는 인식에 기초하는 것이다(물론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진 이후 오자키의 주장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게 됐다).


안철수가 하는 이야기들이 한국에서 보수우파들의 반감을 사고 진보좌파의 호감을 얻고 있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서 말하고 있는 원칙만으로도 재벌권력이 장악한 ‘기업사회’인 한국에서는 거의 혁명에 가까운 진보성을 띠기 때문이다. 대중이 안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성공한 개인’이어서가 아니라 ‘반칙하지 않고 성공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착한 승자’다. 한국처럼 뒤틀린 사회에서 반칙 없이 성공한다는 것은 마치 ‘네모난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으로 들린다. 하지만 사실은 정상적인 근대화를 거쳤다면 당연하게 여길 일이 아닌가? 안철수는 우리가 갔어야 할 근대의 살아있는 표상이다. 게다가 지금 보니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안철수가 ‘복고적 미래’인 것은 그래서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정점에 달한 시기에조차도 신자유주의적 열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적인 열망이 대중들의 내면에 공존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복지체계를 파괴하고 노동자를 공격해 자본의 흐름을 ‘효율화’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기득권에 의해 왜곡된 기존의 지대추구행위(rent seeking)를 일소하는 현실 개혁적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외부효과(외부세력)를 통해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런 사고방식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재벌의 구태를 개혁하려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서도 발견된다. 서구선진사회와는 다른 과정, 즉 압축적 근대화과정은 굴곡진 민족서사와 한(恨) 많은 개인서사들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파괴되거나 손상된 많은 것들을 다시금 복원하고 정상화시키려는 시도와 요구는 그래서,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사고방식이자 그 자체로 공동체의 보편서사이기도 한 것이다. 예컨대 친일청산문제에 대한 대중의 강렬한 정서적 반응도 이런 사고방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정상근대(正常近代)에 대한 이런 열망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열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공히 현실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이념이다. 그러나 정상근대에 대한 열망은 그런 종류의 변화를 추동하는 정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탈구된 현실을 안정화시키려는 정념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열망이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대립적 의제가 될 수 있느냐이다. 신자유주의가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 오늘날, 안철수 현상이 내재한 이런 측면은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에 대해 활발한 토론과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선이라는 제로섬 게임 속에서 누구나 동의할만한 하나마나한 주장으로 얼버무려지고 끝내 아무런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지 못할 가능성 역시 엄존한다. 



‘매개 없는 정치’가 부른 세대론의 과잉


한국사회에서는 세대가 호출되는 일이 유독 빈번하다. 세대담론을 계급담론과 대비해 폄하하거나, 세대를 코호트(cohort) 같은 인구학적 개념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대론은 그 자체로 오류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대라는 틀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서 2007년 『88만원 세대』에 처음 등장한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은 승자독식의 사회가 청년세대의 사회적 기회를 얼마나 앗아가며, 얼마나 공동체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지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훨씬 이전에 등장한 ‘386세대‘라는 말도 1980년대 학생운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일익을 담당하고 이후 사회에 대거 진출한 어떤 세대집단을 가리킴으로써 나름 유의미한 참고가 되어왔다는 점을 본다면 단순히 “호사가들의 언어유희”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역시 세대라는 개념은 위험천만하다. 사회진보의 주체로 요청되는 세대론과, 정치적 동원 또는 상업적 마케팅의 대상으로 호출되는 세대론은 현실에서 그리 쉽게 구별되지 않으며 사실 처음부터 후자였거나 점차 전자에서 후자로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세대론이 나왔을 때 우리는 그 텍스트는 물론이고 컨텍스트, 다시 말해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세대를 호출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 컨텍스트에는 역사성, 즉 ‘과거’와 ‘현재’가 포함되어야 한다. 같은 대상을 두고 과거에 이렇게 발언했던 이들이 오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주의 깊게 의심해보아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왜 세대는 이렇게 끊임없이 정치적 주체로 호출되는 것일까? 정치학자 최장집은 이렇게 말한다.



최근 민주화 이후 세대들의 정치적 양태에서 볼 수 있듯이, 세대의 문제는 투표행태를 포함하여 한국정치의 변화를 가져올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이 세대의 문제는 대안 세력의 조직화를 잘 허용하지 않는 한국 시민사회의 구조에서 집단적 연대가 만들어지는 한국적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대의 집단적 연대는 한국 시민사회의 불가예측성, 부동성 혹은 안정성 결여, 격발성, 평시에 억압되어 분출될 수 없었던 집단적 열정의 찰나적 분출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역시 시민사회에서 운동부문이 갖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시민사회의 비판적 운동부문은 도시의 교육받은 중산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들이 운동을 위해 결집하는 이슈는 압도적으로 비非정치적이거나 아나가 반反정치적이 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갖는 이념적 퍼스펙티브에서 노동과 같은 계급문제를 운동의 이슈로 포괄하기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시민사회의 운동부문 역시 노동운동과의 연대형성에 관심이 없고, 결국 노동운동의 강화보다는 고립에 기여하고 있다.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2005, 235~236쪽



요약하자면 최장집은 비정치적이거나 반정치적인 이슈에 천착하는 시민사회의 특성과 대안세력의 조직화가 잘 되지 않는 문제점을 들어 세대가 선거의 주요변수로 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장집의 기본입장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사회의 ‘이익대표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의 주요 갈등이 사회화되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배제되며, 그것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생각한다. 10% 대에 불과한 노조조직률(2011년 현재 9%대로 하락), 그리고 정책참여와 노사관계 모두에서 노동이 배제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오늘날 한국정치의 모습은 시민들의 실제 삶과 괴리된 정치 엘리트들끼리의 과장된 갈등과 유화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회복이다. 정당이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잘 대변하고 공익과 공공선에 대한 경쟁적 논의들을 정책대안으로 조직하는 역할을 할 때, 비로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최장집은 촛불을 ‘포퓰리즘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정당정치로의 수렴을 강조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평소 지론을 그대로 피력한 것이었지만 발언 직후 그는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과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폄하했다’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전통적으로 ‘거리의 정치’를 강조해온 좌파 운동진영 역시 강하게 반발하며 ‘정당정치만이 정치가 아니며 운동 역시 정치’라는 테제로 맞섰다. 공정하게 말해서 최장집은 운동의 정치 또는 거리의 정치를 부정했다기보다 정당정치에 강조점을 뒀다고 해야 옳다. 그는 “정당정치가 잘 작동하는데 왜 거리로 나선 것이냐”고 시민들을 비난한 것이 아니었고 그런 식의 견해를 어디서도 표명한 적이 없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 냉소한 적도 있다. “오늘날 한국의 정당들을 보면서 누군가 나에게 정당이 굳이 있어야 하느냐, 그냥 후보들끼리 자유롭게 나와서 선거하면 되지 않느냐, 정당을 대표하는 후보가 되어야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더 좋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말을 선뜻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최장집, 2005, 250쪽) 그러나 최장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정치를 운동정치보다 우선시하고 있다. 이익대표체계(정당은 그 대표적 형태의 하나이다)의 정상화를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처리하는 것이, 역동적이지만 우발적이고 불안정한 운동정치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훨씬 이로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정치의 복원, 즉 정당 시스템이 시민의 요구를 잘 반영하고 대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무장혁명을 통해 일시에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을 제외하면, 직접민주주의와 인민의 자기통치 원리 등의 민주주의 교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급진적 좌파들조차 대부분 이런 원론을 부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정작 고민해 봐야할 문제는 ‘정당정치 대 운동정치’ 따위가 아니다.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크게 세 가지 질문으로 정식화해볼 수 있겠다. 첫째, 대의제 하에서 인민의 의사가 대표되지 못할 때 대의제의 복원은 소위 ‘운동의 정치’ 외에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가? 둘째, ‘운동의 정치’는 오직 대의제의 복원을 목적으로 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는가? 셋째, 지금 거리에서 표출되거나 혹은 정당으로 대의되고 있는 인민은 누구이고 그렇지 못한 인민은 누구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은 최장집의 입장을 겨냥한 것이지만 세 번째 질문은 최장집과 그의 비판자에게 공히 해당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것은 별도의 작업이 되어야 하며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세 개의 질문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어떤 문제적 측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질문이라는 점이다. 바로 ‘매개 없는 정치’ 말이다. 매개 없는 정치는 한 마디로, ‘개인이 국가와 일대일로 접촉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다. 한국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정당이나 이익집단에 대해 극심한 불신감을 갖고 있다. 제도에 대한 이 만연한 혐오감에는 주류언론도 단단히 한 몫을 한 것은 물론이다. 아무튼 한국이란 사회에는 소위 ‘사익추구집단’을 믿느니 차라리 ‘자력구제’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 그럼 ‘운동권’은 신뢰받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들은 사익추구집단이어서 라기보다는 ‘무능하고, 무력하고, 촌스럽다’는 이유로 신뢰를 얻지 못한다. 촛불시위라는 형식은 한국사회의 매개 없는 정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잘 보여준 현상이었다.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경향에 대해 오랫동안 날카롭고 깊게 파고든 이는 역시 최장집이었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세대의 문제는 대안 세력의 조직화를 잘 허용하지 않는 한국 시민사회의 구조에서 집단적 연대가 만들어지는 한국적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구절은 정치적 세대가 어떤 이유에서 호명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2012년 선거를 앞두고 거의 모든 언론에서 ‘2040세대’만을 읊조리고 있는 현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의 ‘세대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세대상황은 그 세대가 공히 처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환경, 즉 객관적 상황이다. “세대상황은 단순히 코호트의 유사성으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상황에 따라 객관적으로 구성되는 삶의 기회를 ‘숙명적(Mannheim)’으로 공유한다는 의미”이다(전상진, 「세대사회학의 가능성과 한계」, 한국인구학 재25권 2호, 2002, 212). 2040세대는 세대상황이 제각각일 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동질적이라 하기 어렵다. 아니, 세대의 이념성 자체가 워낙 변동이 심해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해야 더 정확하다. 예컨대 20대는 2007년 대선 직후부터 201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소위 ‘20대 개새끼론’의 당사자로 기성세대에게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다. 18대 총선 직후에는 ‘20대 투표율 19%’라는 인터넷 루머를 근거로 진보적 지식인들이 20대를 일제히 비난하는 해프닝(『경향신문』, ‘20대 투표율 19%는 대의정치 위기’)이 벌어졌을 정도로 20대는 ‘보수’‘무개념’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였다. 그런데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20대가 희망이다”라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불과 2년 사이에 20대의 진보성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극과 극을 오간 셈이다. 40대 역시 다르지 않다. 가장 이념화된 세대라는 평가를 받는 이 세대조차 앞서 『내일신문』 보도를 예로 든 것처럼 불과 1년 새 보수에서 진보로 옮겨갔다. 단기간에 이념성향이 큰 폭으로 진동하는 이런 특징은 세대를 이념으로 묶어 “진보적 세대동맹”이라 추켜올리는 짓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거듭 반복하지만 2040세대의 거의 유일한 공통기반이 있다면 미디어 리터러시이다. 이념적으로는 부동층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선거의 의제가 얼마나 대립적인가가 관건이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안철수 현상에 내재한 ‘정상근대에 대한 열망’이 선거 국면에서 어떻게 작동하게 될 것이냐이다. 한국정치는 3개월 단위의 예측도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2012년에 안철수 현상을 추동한 모종의 이념형이 실체화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그것은 기존의 ‘진보’ 또는 ‘개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형태일 것이다. 

2040세대가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특성 때문에 언론 등에서 지나치게 과잉대표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두어야 한다. 2040세대론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위험한 지점은 계급적으로 대표되어야할 주체들이 한나라당과 반(反)한나라당이라는 ‘종말론적 아마겟돈’ 속에 매몰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반이명박 정서에 편승해 정치공학적 이득을 취하려는 여러 세력들은 그래서 계속 세대론을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세력들 중 대다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개혁성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정책을 엄청난 사회진보의 약속인 양 포장하고 있으며 선거가 다가올수록 그 ‘허풍’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정치적 세대동맹에 대한 지나친 열광과 기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할 이유다.


                            박권일  『자음과 모음 R』 편집위원․『88만원 세대』 저자


2011. 10. 23. 19:55

"니들은 정치 몰라도 돼!"에 숨겨진 몇 가지 전제들


청소년 정치참여 보장을 위한 토론회(2011.10.23. 건국대 법학관 403호) 발제문.

주최: 표현의 자유 연대, 권영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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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은 정치 몰라도 돼!”에 숨겨진 몇 가지 전제들
청소년 정치참여의 의의


이른바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한 치도 진보하지 않은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사회의 감수성일 것이다. ‘고운(고등학교운동)세대’가 학벌 시스템을 재생산하는 대학입시를 거부하고 학교에서 잘린 전교조 선생님들과 눈물을 흘리며 연좌농성을 하던 때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청소년들은 두발규제와 교사의 구타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도! 아직도 학벌 시스템에 항의하며 명문대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나오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입시 스트레스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청소년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를 요청받았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그러므로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다. 아직도 한국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에 대해 선배세대로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것이다. 자그마치 20여 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과연 선배세대는 치금 청소년인 후배들에게 촬영기능 달린 휴대전화 이상의 자기방어수단을 제공하였는가? 참기 어려운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해 한 마디 거들 수 있는 것은 어쨌든 영광스러운 일이다. 결국 우리는 원칙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한발 한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 청소년=1백 년 전의 미국 청소년”

지난 해 10월 12일, 『Detroit Free Press』온라인 판에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 앨봄이 쓴 칼럼이었다. 「Korea's kids just like ours, 100 years ago」라는 제목의 그 글은 “한국교육을 따라 배워야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이었다. 2010년 당시에도 한국에 살며 직접 한국의 현실을 곁에서 지켜본 미치 앨봄은 “한국 아이들은 백 년 전 미국 아이들 같다”는 제목처럼 한국의 청소년들이 겪는 입시교육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오바마는 극성스런 부모, 치열한 대입경쟁, 압도적 학습량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한국식 교육’의 적극적인 지지자다. 실제로 현재 미국교육의 위기가 낮은 교육열과 적은 학습량에 있다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었기 때문에 오바마의 한국교육 찬양은 그만큼 화제를 불렀고, 미국 내에서도 동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바마의 이야기와 유사한 주장들이 출판되거나 매체를 점령하면서 하나의 담론을 형성했다. 예를 들어 에이미 추아가 쓴 『타이거 마더』는 글자그대로 호랑이 같은 엄마가 자녀들을 스파르타식으로 조련해 명문대에 보내는 이야기다. 원래 미국에도 ‘하키맘’이니 ‘풋볼맘’과 같은 극성스런 치맛바람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명문대에 보내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 중국 등 동북아시아 이민자 부모의 노력과 근성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요컨대 광적인 교육열로 유명한 동아시아적 학력재생산 양식이 미국 주류사회에서 일종의 ‘대안적 교육철학’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치 앨봄의 칼럼은 이런 흐름에 대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단호하게 ‘노’를 외치고 있다. 그가 직접 목격한 한국 청소년들의 생활은 끔찍한 것이었다.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끝없는 경쟁에 노출되어 십 수 년 간 입시교육의 노예가 되거나 사회적 낙오자가 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그에게 정상으로 보였을 리 없다. 그는 낮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주중이고 학교에 갇혀 지내는 걸 당연시하는 한국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이것이 미국교육 시스템의 모델이 될 수 있느냐고 되묻고 있다. 그리고 “내 아이가 글로벌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고 제 자식들을 영어를 쓰는 미국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한국인들의 이상한 정서를 꼬집는다. 앨봄이 보기에 이것은 20세기 초 미국 이민자 가정이 아이에게 낙오자(a loser)가 되고 싶지 않으면 대학에 가라고 닦달했던 풍경을 연상시킨다. 결론적으로 그는 한국식 교육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한국교육을 배우는 것은 곧, “잘 웃고, 열심히 스포츠를 즐기고, 좀 더 자신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줄 아는” 청소년 대신에 늘 비교당하고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하는 청소년을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퇴행하는 것이다.
미치 앨봄은 한국의 입시교육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하였지만, 이건 단지 페다고지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문제는 어떤 사회가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이고 실은 이것이야말로 핵심적 문제이다. 청소년을 미숙한 존재,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전근대적 사회에서 한국사회는 과연 얼마나 앞으로 나아간 것일까? 청소년의 정치참여라는 주제에서도 우리는 마찬가지의 의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여전히 한국의 청소년들은 정치참여에서 제도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철저히 배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먹고 어른 되면 가지는 금세 가지게 되는 권리인데 뭐가 문제냐’며 무신경하게 문제 자체를 외면하면서, 거의 반세기 동안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수성은 한 뼘도 자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선입견, 사회에서 유통되는 담론에서 항상-이미 전제된 숨은 편견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 보자.


숨은 편견 1: “청소년은 판단능력이 부족하다”

선거연령을 높여 잡아 청소년들의 정치참여를 제도적으로 배제하는 근거로 흔히 가장 많이 드는 것이 바로 ‘미성숙’‘판단능력 부족’이다. 청소년들은 아직 정치적 선택을 합리적으로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참정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의외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이유에 납득을 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이것이 굉장히 이상한 논리라는 걸 금세 깨달을 수 있다.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판단력이 부족하지 않은 상태’를 전제한다. 그럼 판단력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 즉 정상적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자국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정규 공교육을 이수한 사람인가? 그것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판단력이란 게, 성인들 사이에서도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어떤 사회의 ‘표준적 판단능력’을 누군가가 결정해 놓았다면 모를까, 정상적 판단력이라는 범주 자체를 명확히 정의할 방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법 논리로는 정해놓았다.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미성년자가 이른바 민법상 3대 무능력자이고, 선거권에 제한을 받게 된다. 그러나 법적 기준이 명백히 실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 정당성과 논리적 정당성이라는 층위에서 말해본다면, 공동체 구성원에게 사회적 권리와 자격을 부여함에 있어서 어떤 ‘능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을 감고 낭떠러지를 걷는 것보다 더 위험한 태도이다. ‘탐욕스럽고 불결하며 공동체의 미덕을 파괴하는 유태인’에 대한 집단적 배제(나아가 삶으로부터의 영원한 배제)를 가능케 한 인종주의적 감수성과 그야말로 백지 한 장 차이이기 때문이다.
‘느슨한 경험칙’으로 재단했을 때, 일반적 청소년은 일반적 성인에 비해 여러 사회적 제도나 정책, 사건들을 판단할 때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고려를 하지 못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청소년의 정치적 판단능력이란 것이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 정도의 판단력 부족상태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만약 법적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한 명과 평범한 청소년 한명에게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는 급박한 기로의 선택을 맡겨야 한다면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청소년에게 나와 사회의 운명을 걸겠다. 농반진반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판단력을 충분히 갖춘’ 대한민국 성인들이 투표해서 뽑은 대통령이 이명박이라면, 그 판단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숨은 편견 2: “책임(의무)이 없으니 권리도 없다”

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로 자주 드는 것 중 또 하나는 “책임이 없으니 권리도 없다”는 논리다. 이는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보는 게 아니라 사회적 보호대상으로 보는 관점의 거울상이라 할 수 있다. 때때로 청소년들이 최소한의 인권과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면 어김없이 냉소적 반응이 튀어나온다. “니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죄 지어도 청소년이란 이유로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잖아. 그만큼 사회가 보호해주니까 권리도 적은 게 당연한 거야.” 이런 논리는 일종의 호혜적  원칙처럼 들리기 때문에 겉보기에 꽤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가 않다.
사회적 권리와 의무는 지금 보면 마치 일대응 대응관계 혹은 호혜성의 관철처럼 보이겠지만 권리와 의무가 형성된 역사를 들여다보면 권리와 의무와 호혜적으로 발생한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권리와 의무는 항상 비대칭적으로 발생하거나 소멸했으며 양자의 관계는 사후적으로 정당화되곤 했지 선험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이런 의무를 지니니까 당연히 저런 권리가 생긴다’는 식으로 사회적 제도가 생겨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사회적 책임이 상당 부분 면제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청소년이 결정한 것은 아니다. 사회가 일방적으로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지 청소년이 보호를 요청하고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는 의미다. 요컨대 이것은 어떤 종류의 사회적 계약이 아니다. “책임이 없으니 권리도 없다”는 말이 최소한의 정당성을 가지려면 먼저 청소년에게 책임과 권리의 평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책임이 없으니 권리도 없다”는 말은 사회계약이 아닌 것을 마치 사회계약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공정성을 내세우며 공정성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어떤 기원 내지 원초적 상황을 은폐하고 있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권리와 의무가 반드시 어떤 필연성을 가지고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논리적․윤리적 필연 때문이 아니라 대개 현실적 필요 때문이었다. 청소년에게 책임과 의무가 없기 때문에 권리도 없다는 말은 “때문에”라는 말 덕분에 마치 논리필연적인 주장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다. 의무가 생긴 뒤 권리가 생길 수 있고, 반대로 권리를 확보한 뒤 의무가 부과될 수도 있다. 청소년에게 권리가 먼저 주어지고 나중에 의무가 부과된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히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청소년은 (예컨대 17세 참정권처럼) 의무보다 조금 먼저 주어진 권리를 먼저 누리면서 사회적 의무와 책임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숨은 편견 3: “정치적 권리는 절박한 사안이 아니다”

정치적 권리를 많은 사람들은 일종의 2차적 권리라고 생각한다. 생존권 또는 먹고사는 문제보다 훨씬 덜 중요한 권리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같은 것들은 ‘배부르고 등 따신’ 연후에나 고려할만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여전히 박정희의 망령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이유이며, 아직도 일각에서 그가 주창한 소위 ‘한국형 민주주의’를 무슨 대단한 업적인양 숭앙할 수 있는 근거다.
정치의 역사를 크게 ‘두 번의 분리’로 일별해 본다면, 첫 번째 분리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일 것이다. 그럼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 ‘정치와 경제의 분리’다. 시장원리가 사회의 금과옥조가 되면 될수록 정경분리 이데올로기는 더욱더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기업과 시장의 일에 국가와 정치는 끼어들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에 가장 득세한 이데올로기였다. 오늘날 박정희 신화는 두 번째 분리와 관련되지만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거의 완벽한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였다는 점이겠다.
어쨌든 정치적 권리를 소유권 같은 경제적 권리보다 하찮게 생각하는 인식은 바로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정말로 정치적 권리는 경제적 권리보다 하위의 권리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정치적 권리를 배부른 소리라 치부하는 것은 현실을 오도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정치적 권리의 장에서 시민들은 한 사람 당 한 표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쉽게 말해 ‘n분의 1의 주체’이다.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완전히 평등하다는 걸 전제한다. 그러나 경제적 권리의 장에서 시민들은 ‘1원당 1표’ 씩이다. 돈이 많으면 그만큼의 권리를, 돈이 없으면 그만큼 권리가 줄어든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주장하는 세력은 경제적 권리의 장에서 이미 강자의 지위를 획득한 자들이다. 그들은 부자든 빈자든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통해 그들이 궁극적으로 획득하려는 것은 현재의 권력을 영속화하는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결코 아니다. 정치를 경제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권리를 절박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그들은 부와 권력을 절대 놓지 않으려는 부자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멍청이다. 사회적 절대적 빈곤이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 그러나 부의 집중이 갈수록 심화되는 지금, 정치는 만연한 불공정과 불평등을 시정할 수 있는 절박한 투쟁의 장이 되었다. 사회진입을 앞둔 청소년들에게는 두 말할 나위 없이, 그야말로 목숨만큼 소중한 권리다.


숨은 편견 4: “정치는 더러운 것이다”

‘내 자식에겐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부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제 자식들을 박물관, 미술관, 전시회, 클래식 공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데려간다. 하지만 신문의 뉴스를 보라고 하지는 않는다. 특히 정치면은 눈길도 주지 말라고 한다. “정치는 더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모의 자식들은 자라서 미시마 유키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던, 도쿄대 법대 출신의 파시스트 소설가 말이다.
청소년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이 당장 하는 소리가 “발랑 까졌다”“되바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니깟 게 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나서냐’고 역정을 낸다. 심지어 고등학교 학생회에서 학교의 잘못에 작은 문제제기만 해도 ‘어린놈이 정치꾼 되려고 그러느냐’는 소릴 듣는다. 경제적 욕망을 드러내면 ‘경제관념 있다’고 칭찬을 받지만, 정치적 욕망을 드러내면 욕을 먹는다. 이런 경험을 몇 번 겪으면 어지간히 ‘나대는’ 청소년도 쉽사리 정치 얘길 꺼내지 못한다. 그리고 은연중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몸에 배어든다.
물론 정치는 때로 더러운 일이 된다. 때로 모양새가 좋지 않은 일도 벌어진다. 정치의 세계에는 수학공식처럼 똑 떨어지는 결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개인 잘못은 아니지만 책임을 뒤집어쓰는 일도 생긴다. 왜 유독 정치가 더러운 것이 됐을까. 그것은 이미 더러운 짓을 일삼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정치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기예와 미덕을 어렸을 때 훈련받지 못하고 이미 뇌와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다음, 돈 걱정 없는 노후의 소일삼아 정치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치 자체가 더러운 게 아니다. 더러운 짓 하던 이들이 정치로 몰려드는 시스템이 더러운 것이다. 그렇게 정치를 더러운 게토로 만들면 누구에게 가장 이익이고 누구에게 가장 손해일까. 답은 명백하다. 모든 피해는 사회적 약자가 보게 된다. “정치는 더러운 것”이란 논리는 청소년들에게 좀 더 가치 있는 다른 일에 매진할 것을 권하는 비교적 ‘선량한 어른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주장이다. 그러나 본질은 명확하다. 청소년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방식의 탈정치 버전일 뿐이라는 것.


시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진다

청소년들의 정치참여가 선거권 내지 선거연령의 문제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선거연령이란 건 특정 나이로 제한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선거연령을 더 낮추려는 쪽과 덜 낮추려는 쪽의 지루한 공방이 될 운명이다. 물론 그런 제도적 진전이 가지는 실제 효과와 상징성은 너무나 크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정치참여가 단지 한 두 살 어린 유권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생활에서 접하는 정치적 활동들, 예컨대 정당 활동이나 학생자치 등의 차원이다. 이런 활동들을 활발히 하며 청소년들이 정치적 감수성을 체화하고 자신의 권리를 민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선거권 확대의 진정한 내용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중고등학생들이 보는 사회경제 교과서에는 노동조합이 어떻게 구성되며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가 마치 노동운동 조직의 파업 매뉴얼처럼 설명되어 있다. 그런 교과서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청소년들은 우파정부가 시행하려던 비정규직 악법에 맞서 거리로 나왔고 끝내 막아낼 수 있었다. 한 사회의 진보는 진보적인 대통령 한명 뽑는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 진보라는 것이 얼마나 모래성 같은 것인지를, 얼마나 쉽게 후퇴할 수 있는 것인지를 우리는 현 정권을 포함한 세 번의 정권을 거치며 충분히 경험했다. 사회진보의 가장 튼튼한 기반은 불평등과 부조리에 예민한 시민들의 비판정신과 연대의식이다. 다음 세대를 배제하지 않고 어떻게든 참여시키려는 정치, 청소년들의 생활에 뿌리내리는 정치적 권리의식이야말로 그런 진보적 시민의 출현을 비로소 가능케 한다. 시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까닭이다.

2011. 6. 10. 12:17

한국인에게 대학이란 무엇인가[황해문화 2010 봄호]

대학교육은 이미 보편교육이다. 공부하길 원하는 모든 시민에게 양질의 대학교육이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작년 글이지만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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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대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의 사회적 위상과 가치의 변동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80%를 넘는다. 지난 20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났다. 단순한 사실이지만 그 함의는 결코 적지 않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지나치게 추상적인 질문처럼 보인다. 좀 더 명확히 해보자.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에게 대학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 문장에서 키워드는 “오늘날”“한국사회”“개인”“대학”“가치”, 이 다섯 개가 될 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더 똑바로 하기 위해 주의사항  두 개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첫째, 과거 한국에 존재했던 “대학”의 역사적 형태들을 특권화․이상화하지 않을 것. 둘째, “가치”의 기준을 하나로 환원하지 않을 것.

과거 대학의 역사적 형태들을 특권화․이상화시키는 않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주의사항인 이유가 있다.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논한 글들의 상당수가 과거의 대학교육을 받은 세대, 특히 교수인 경우가 많고 거의 예외없이 신자유주의에 점령당한 한국의 대학교육을 개탄하고 있다. 그것 자체는 좋지만 그러다보니 은연중에 마치 옛날의 대학교육이 지금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주장이 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위상이 높은 것과 교육의 질이 높은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학교육 문제처럼 역사화(historicization)와 현재화(contemporization)가 동시에 필요한 경우, 이런 태도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 특히 과거의 대학교육을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태도는 속된 말로 ‘꼰대들의 불평’으로 들릴 수밖에 없으므로 설득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소통부터 어려워지고 만다.

두 번째 주의사항인 가치 기준을 하나로 환원하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기준과 관점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대학의 가치는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전히 기업의 입장에서 오늘날 한국의 대학교육을 평가하면 기업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혹평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대중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대학입학의 확대는 시민들의 교육수준 향상과 직결되므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대학교육은 단순히 시장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없는 한 사회의 총체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획일적인 잣대, 예를 들어 시장적 가치로만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것은 일견 명쾌하고 심지어 ‘과학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가장 위험한 태도다.


대학은 어떻게 변했나

우선 대학의 위상 변화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 ‘위상’이라는 말은 대개 사회의 지배적 이념과 주류적 정서를 기준으로 평가된 것이다. 반면 ‘가치’는 좀 더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으로, ‘위상’보다는 좀 더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위상이 낮아진다고 해서 꼭 가치가 낮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구체적 논의를 위해 먼저 대학교육의 위상 변화를 역사적으로 훑어보고, 대학교육을 둘러싼 담론들의 왜곡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지금의 대학교육에 어떤 가치를, 어떤 관점에서 부여해야 하는지를 논해야 할 것이다.


1. 사회적 측면: 우월성에서 정상성으로

트로우(M. Trow)는 엘리트교육과 대중교육을 구분하는 기준을 취학률에 두었다. 일정 비율 이상이 취학하면 엘리트교육기관에서 대중교육기관화 되었다고, 혹은 되고 있는 중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마다 그 비율은 다를 수 있지만 트로우는 대략 15%를 기준으로 둔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에서 상급교육기관으로 진학하는 비율이 15%를 넘으면 그 상급교육은 더 이상 엘리트교육이라 말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대학진학율이 15%를 넘은 시점은 1980년이다. 즉 그 시점부터 대학은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다. 그리고 50%를 넘은 시점부터는 보편화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교육이 보편화 단계에 들어선 시기는 1995년(55.1%  *교육인적자원부, <우리나라 고등교육 현황 및 주요국의 발전사례 2002>)이다.

2000년을 기점으로 대학진학률은 80%를 넘기게 되는데, 이 정도 수치라면 대학교육이 사실상 ‘보통교육’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대학생집단을 사회의 엘리트 후보군 내지 지식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사라졌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대학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선택된 사람’이었다. 집안의 자식들을 전부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부모는 드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최소한 장남만큼은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부모들이 많았다. 극심한 국가적 빈곤 속에서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부모세대의 ‘가방끈 컴플렉스’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자식의 대학입학-손꼽히는 명문대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은 단순히 적성과 필요에 따른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결코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하고’ ‘무거운’ 사건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가족 전체가 총력을 기울여 대비해야하는 가족사적 이벤트였다. 단 한 단어로 표현해야한다면, 대학입학은 ‘우월성’의 증명이었다. 그것은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고등교육의 장에 마침내 진입한 ‘선택된 자’의 자랑스런 존재증명이었고, 동시에 온갖 고생을 무릅쓰며 자식을 최고교육기관에 입학시킨 부모의 의지와 노력에 대한 명예로운 훈장이었다. 물론 그 우월성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철저하게 서열화한 ‘상대적 우월성’이었다.

사회가 바라보는 대학생의 위상도 지금과는 현저히 달랐다. 대학생은 졸업 후에 나라와 기업을 운영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일종의 엘리트 예비집단으로 취급되었다. 또한 사회의 공적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개입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무관한 공적 이슈에 대해 지사적 열정으로 발언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개입은 그들이 이해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순수성을 덜 의심받았고 더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일기에 적었던 “대학생 친구”라는 단어는 당시 대학생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던 어떤 심상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과거 사회가 대학생에게 부여했던 우월성은 그들이 단순히 소수의 선택받은 엘리트 예비집단 이어서라기보다는 고등교육을 통해 축적한 지식과 능력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한 반대급부의 성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오늘날 대학교육을 이수하는 것은 ‘우월성의 지표’가 아니라 평균성, 정상성의 지표라는 사실이다. 대학에 가지 않는 쪽이 훨씬 소수다.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균적 사회구성원으로 인준받기 위해 대학에 간다. 물론 대학에 가지 않는, 혹은 가지 못하는 소수가 비정상으로 취급받는 현실은 분명 잘못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차별을 시정하는 것과 대다수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것, 이 두 개의 명제는 전혀 모순이거나 이율배반이 아니다. 얼마든지 동시에 추구될 수 있는 목표인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의 대학교육에 어떤 가치를, 어떤 관점에서 부여할 것인가이다.


2. 문화적 측면: 중심에서 변방으로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는 물론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에는 명백히 다른 ‘두 문화(biculture)’가 공존하고 있었다. ‘운동권 문화’와 ‘비운동권 문화’ 말이다. ‘비운동권 문화’는 주류 대중문화와 통기타와 청바지로 흔히 표현되곤 하는 낭만주의적 청년문화를 말한다. 과거에도 주류 대중문화의 위력은 대단했고, 그런 대중문화가 가장 먼저 소비되는 공간 중 하나가 대학이라는 점 역시 변함이 없다. 즉, 일종의 ‘상수’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 대학가요제의 인기에서 알 수 있듯 대학생들이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낭민주의적이고 체제순응적인 청년문화가 대중문화의 주류가 되는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점이겠다.

‘운동권 문화’는 소위 사회주의 미학과 한국의 전통적․민족주의적 문화가 결합된 학생운동진영 고유의 문화예술양식을 말한다. 특히 자주계열의 영향으로 북조선의 문화적 색채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한국 학생운동의 문화는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독특하며 혼종적인 대학문화가 됐던 것이다. 운동권 문화는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완전히 쇠락하게 되지만, 꽤 오랫동안 대학문화의 핵심적 자리에 군림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정치사회적으로 학생운동이 최절정에 이르렀던 시대적 환경 때문이지만, 운동문화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문화생태계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감수성이 존재해야 하고, 창작-전파-향유의 매체가 존재해야 하며, 창작의 동기부여와 창작자의 재생산 역시 활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하나의 순환과정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비로소 하나의 문화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운동권 문화가 완전히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순환체계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구라는 생태계가 태양이라는 외부의 ‘타자(他者)’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운동권 문화는 비운동권 문화, 즉 주류 대중문화와 낭민주의적 청년문화가 이미 대학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다. 기존의 청년문화를 비판하고, 그것과 갈등하고 때로는 그 장점을 흡수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했기 때문에 운동권 문화는 더욱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학생운동이 빠른 속도로 몰락하고, 불안정노동의 전면화 로 졸업 후 안정된 일자리(decent job)를 잡을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자 대학문화 역시 급격히 폐색하기 시작했다. 운동권 문화도, 낭만주의적 청년문화도 모두 대학에서 사라졌다. 20대의 구매력이 약해지면서 대학생은 주류 대중문화의 타겟팅 집단에서도 10대, 30대, 40대 등 다른 세대보다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창작활동은 물론 문화담론의 생산력도 과거에 비해 훨씬 약화됐다. 대학생의 숫자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공간 자체는 문화의 변방이 되고 만 것이다.


3. 정치․경제적 측면: 저항에서 적응으로

학생운동이 신화화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과거의 대학생운동과 오늘의 그것은 가장 크게 대별되는 요소 중 하나다. 1980년대 이전의 한국 대학생들은 정치적 격변마다 중요한,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반 국민들에게 대학생은 단지 예비사회인이 아니라 예비지도층이었기 때문에, 일상에서의 일탈에도 대체로 관대한 편이었고, 대학생 스스로도 지식인이자 엘리트로서의 자기강박이 강했다. 지식인으로서의 자기강박은 한 마디로 국가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 또는 콤플렉스에 기인한 것이었다. 분단국, 그것도 친일파의 주도로 건국된 대한민국은 단지 자랑스런 모국만은 아니었다. 또한 엘리트로서의 자기강박은 근대화에 대한 사명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오랜 식민통치와 참혹한 전쟁 경험, 그리고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의 빈곤은 근대화를 필사의 과제로 만들었다.

엘리트이자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은 대학생 스스로에게 어떤 모순을 필연적으로 부과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발전에 헌신해야 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부정의에 저항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부독재가 장기화하면서 대학은 점차 전투적 체제저항의 산실로 변해갔고, 민주주의의 쟁취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이뤄 내야할 시대정신이 됐다. 다른 국가의 경우, 학생운동보다 노동계급의 운동이 훨씬 더 격렬한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았으나 한국의 경우 유례없는 좌익탄압과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온건한 노동조합운동마저 제대로 뿌리내리기 힘든 실정이었다. 사회운동을 대학생들이 주도하는 경향은 상당 기간 한국학생운동의 전통이 됐다. 그리고 이들 중 정치사회문화 등 각계에 진출한 사람들이 세력화하면서 이른바 민주화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대학의 수와 규모가 커지면서 대학생들의 숫자도 많아졌다. 베이비붐 세대라 불렸고 훗날 ‘386’세대라 불렸던 대학생들은 1980년대가 막 시작하자마자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바로 광주항쟁이었다. 군사정권이 미국의 묵인 하에 시민을 무차별 학살한 이 사건은 한국사의 전기이기도 했지만, 학생운동의 전기이기도 했다. 대학은 군사정권과 싸우기 위해 작은 군대가 되어야 했다. 전대협이라는 강력한 전국대학생조직이 만들어졌고 캠퍼스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정치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가 됐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학생운동은 전성기를 맞게 되고 이후 문민정부 출범까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다가 1996년 연세대학교 범민족대회가 파국으로 끝나며 쇠락하게 된다. 당시 연세대 사태는 유례없는 폭력진압과 캠퍼스 봉쇄로 이어지고, 결국 오랜 대치 끝에 사상최대의 검거자 숫자를 기록하며 당시 전국학생운동조직이던 한총련은 회복하기 힘든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후 학생운동조직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었고, 경제위기까지 겹쳐 대학은 점차 과거의 정치성을 잃고 ‘취업공동체’화하기 시작한다.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해방 이후 한국 대학교육의 성과는 그야말로 눈부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존자원이 없는데다 오랜 식민지 수탈과 연이은 내전으로 완전히 피폐해진 국가에서 소위 ‘인적자원’의 가치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식민지 시기 동경제국대학의 모델을 본떠 만든 경성제국대학은 해방 이후 국가적 필요에 의해 비대해졌고, 농지개혁 당시 지주세력이 자신의 농지를 싸게 매입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수의 사립대학을 설립하면서 고등교육기관의 전체 규모는 급속히 팽창했다. 축적해놓은 부가 없는 국민 개인의 차원에서 대학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자 신분상승의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경제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일자리의 양 뿐 아니라 질도 동시에 높아지고 있었고, 대학졸업장만 있으면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최상위에 있는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은 시장경제를 포방하고 있었지만, 독재정권에 의해 사실상의 계획경제가 운용됐던 국가였기 때문에, 경제발전은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정부의 차관이 특정 산업 혹은 재벌에게 집중 투입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학연 지연을 통해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가 발생했지만, 기업은 높은 교육수준의 인력을 싼값에 활용할 수 있었으므로 세계 제조업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이제 동아시아 경제기적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로 꼽히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학교육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가적 필요에 의해 대학의 교과과정이 좌지우지된 탓에 체계적인 학문의 발달은 요원했다. 자연과학의 경우 기초학문보다는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응용학문에 집중투자했고, 인문학은 자생성을 기르기보다 외국 유행담론의 중개상 역할을 하기 바빴다.

대학의 이런 명암은 고스란히 한국사회의 명암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개도국을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하는 순간, 한국 대학교육의 한계는 여실히 증명되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더 이상 경쟁력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의 세계 경쟁력 평가’를 보면 2009년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27위인데 반해 대학경쟁력(사회부합도)은 57개국 중 51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또 OECD 교육지표를 보면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미국 다음으로 비싸 세계2위이고, 특히 민간 부담비율이 1.9%에 달해 OECD 평균의 4배에 달하는 압도적 1위였다. 민간부담비율이 높다는 건 국가가 대학교육에 투자하지 않고 그 부담이 모두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대학을 졸업해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 수준인 계약직 노동자가 되거나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아르바이트비 정도의 돈만 받고 일하다가 계약해지 당하기 일쑤다. 대학을 졸업해도 웬만한 ‘스펙’을 쌓지 않으면 취업 자체가 어려워 지다보니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졸업을 유예하는 일이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능력주의, 학력주의, 학벌주의

근대적 공교육의 맹아는 영국의 퍼블릭 스쿨이었다. 이름은 ‘퍼블릭(공공의) 스쿨’이지만, 올바른 번역어는 ‘사립학교’다. 1442년 헨리 5세가 설립한 이튼 칼리지가 대표적인데, 헨리 5세는 “1년 수입이 5마르크 이상인 사람은 입학자격이 없다”고 선언했다. 빈곤층에 무상교육을 하기 위한 학교였던 셈이다. 하지만 왕의 이런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튼칼리지는 금세 귀족형 사립학교로 변질되고 말았다. 학교당국과 귀족들은 빈곤층 자녀들을 퇴학시키기 위해 온갖 치사한 방법들을 다 고안해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점심시간에 출석을 부르는 것이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는 빈곤층 자녀들이 점심을 먹으러 집에 다녀오는 틈을 타 잽싸게 출석을 부르고, 결석으로 처리해 버렸던 것이다. 물론 일정 횟수 이상 결석한 학생들은 즉시 퇴학 처리되었다. 학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교장들과 귀족들의 선민주의가 결합한 결과, 최초의 공공교육기관은 이렇게 출발부터 기형적인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교육기관의 높은 진입장벽을 없애야한다는 지상명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력해지고 명백해졌다. 그 명제가 강화되는 과정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봉건제가 허물어지고 각국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발발한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선언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선언은 그 자체로 고귀했다. 하지만 노동계급은 애초에 배제된 반쪽짜리 선언이었다. 부르주아계급은 단지 귀족들과 교회의 기득권을 빼앗기 위한 강력한 명분,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적 무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쨌든 부르주아는 새롭게 부상한 개혁세력이자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총아였다. 그들의 전략은 성공했다. 낡은 제도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부르주아의, 부르주아를 위한, 부르주아에 의한 제도들이 속속 탄생했다. 맑스가 지적한 것처럼,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역사는 눈부시게 진보했다. 부르주아들은 왕족과 귀족들의 허세와 무위도식에 넌더리를 내 온지 오래였다. 또한 성직자-지식인의 고담준론과 위선을 경멸했고 ,장인들의 비효율과 폐쇄성을 증오했다. 부르주아들은 모든 미신과 인습을 발가벗겨 백일하에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발가벗겨졌다. 자신이 노동계급을 착취한다는 사실만 빼고 말이다.

이런 부르주아에 의해 학력주의가 차츰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흔히 학력주의를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차별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학력주의는 근대 부르주아 혁명의 산물이다. 신분에 의한 차별을 부르주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무능한 귀족들보다 자신들이 훨씬 능력이 뛰어나다고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차별을 반대한 게 아니라 신분에 의한 차별만을 반대했다. 대신에 능력에 의한 차별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러나 그 능력이라는 것을 누가 판단해주는가. 부르주아는 확고한 답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장합리성’이다. 시장에서 승리하면 유능하며, 시장에서 패배하면 무능하다. ‘시장’이란, 백 퍼센트의 확률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름난 장인이 몇 년에 걸쳐 혼신을 다해 만들어낸 제품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면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 반면 아무리 허술하고 천박한 제품도 시장에서 팔리면 훌륭한 제품이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부르주아의 인권선언은 사실 제대로 풀어쓰면 "시장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인 것이다. 문제는, 매 순간마다 시장의 판단을 물어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뭔가 간소한 검증도구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학력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가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의 ‘구별짓기’ 전략이 됐다. “질 좋은 교육”을 받고 “교양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 다시 말해 귀족취향에 대한 선망을 만족시켜주면서도 가난한 노동계급을 가급적 배제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가 바로 학력주의였다. 비유하자면 능력주의는 학력주의의 ‘정신’이고 학력주의는 능력주의의 ‘육체’이다. 능력주의와 학력주의는 이렇게 시장합리성을 은유하는 이데올로기들로서 근대 이후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게 되었다.

반면 학벌주의는 능력주의/학력주의와 다른 이데올로기이다. 능력주의/학력주의는 개념상 상위에 있는 시장합리성에 복종할 수밖에 없지만, 학벌주의는 시장합리성마저 무위에 돌리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학벌주의의 경우, 고교 졸업 이후 처음 들어가는 대학의 이름과 레벨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그리고 이 등급은 평생을 쫒아 다니는 신분, 일종의 카스트가 된다. 한번 서울대는 영원한 서울대, 한번 지잡대면 영원한 지잡대다(지잡대: ‘지방의 고만고만한 대학’을 의미하는 비하어). 시장에서 승리해 유능함을 증명한 기업인조차도 중졸 또는 고졸인 학력을 숨기거나 ‘세탁’하는 게 바로 한국적 학벌주의의 현실인 것이다. 그 뿐인가. 청소년들이 입시스트레스로 목숨을 끊는 참극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고질적인 한국 교육문제를 논할 때,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는 모든 해악의 근원으로 지목되어 비난이 집중되곤 했다. 공교육의 목적이 국립서울대학교로 상징되는 대입시험 하나로 수렴되어버리는 현상이 무려 수 십 년간 지속되어왔기에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2010년 현재, 학벌주의에 반대하는 기존의 관점과 논리로는 결코 학벌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학은 공공성이다

학벌주의에 반대하는 논리가 공유하고 있는 관점은, 학벌주의가 능력에 따른 정당한 평가가 아니라 신분제적 성격의 부당한 평가라는 점이다. 즉, 학벌주의의 대당에 내세운 논리는 바로 능력주의다. 앞서 살펴본 대로 능력주의는 근대적 이데올로기이며 신분제적 차별에 반대해 시장합리성을 내세웠던 부르주아 계급의 논리였다. 하지만 능력에 따른 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는 능력주의를 일관되게 고수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결국 그것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와 약탈적 축재를 통해 이미 부를 축적한 ‘시장경제의 능력자’들의 정당성을 승인해줄 뿐이다. 이른바 ‘시원적 축적’이 이미 끝난 상황에서 한국의 부자들은 이미 2세대 이후로 넘어왔다. 그리고 이들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부를 통해 지식, 교양, 학력까지 쌓아올렸다. 이들의 학력은 이미 국내를 넘어섰다. 더 이상 서울대 입학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끝났다’라는 말은 결국 ‘부’의 격차가 ‘능력’의 격차로 표현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학이 엘리트교육기관의 역할을 하던 시절, 자식을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은 수익성이 꽤 높은 투자행위였다. 어쨌든 출발점이 지금보다는 평등했기 때문에 능력주의라는 관점은 사회적으로도 정당화되기 쉬웠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완벽히 끝나버렸다. 지금처럼 부의 격차가 극심한 반면 대학교육은 보편화된 상황에서 능력주의의 관점으로 대학교육을 바라볼 경우,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서열’이 ‘아이비리그를 정점으로 한 서열’로 무늬만 바뀔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먹고살기 힘든 서민들이 끝없는 학력 인플레이션의 계단을 따라 아이비리그까지 쫒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하다해도 지속되지 못한다. 능력을 재는 기준 자체가 무한히 학력으로 환원되어버리는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답이 될 수 없다. 답은 사실 우리의 현실 속에 이미 나와 있다. 대학진학률이 80%가 넘는 현실 말이다.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면 대학교육을 신분상승의 도구로 바라보던 시각을 과감히 내던지고 공공성과 보편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학력인플레 또는 학력과잉 담론도 이런 관점에서보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노골적으로 “요즘은 개나 소나 대학에 간다”고 이죽거린다. 그러면서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혹은 가지 말아야할 아이들이 괜히 대학에 가서 부모 등골만 빼먹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런 비난은 정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겁하기까지 하다. 현실적으로 대학 졸업장이 없이는 취직 뿐 아니라 사회의 평균인 취급도 받기 힘든 상황에서 대학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이미 여러 통계들이 밝혀주고 있듯이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격차는 1990년대 이후 급격히 벌어져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이 1.5배 이상 차이가 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린이들에게 대학을 그렇게 강조해놓고 이제 와서 “대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식으로 힐난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력인플레 담론은 이를테면 일자리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때문에 확산된 담론인데, 세계 어떤 곳도 교육의 목적을 취업이라 명시한 나라는 없다. 교육의 목표는 어떤 사회가 각기 지향하는 공적 가치에 놓이는 게 당연한 것이다. 또한 국가는 최대다수의 주권자에게 최대한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걸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대학진학률이 높아졌다는 것은 어떤 사회의 고등교육 기회가 확대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환영해야하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엄청나게 잘못된 일인 것처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오히려 비난을 받아야하는 것은 한국의 기업집단들이다. 노동자의 교육비용을 공교육에 전가해 결과적으로 선진국 기업 같으면 자신들이 투자해야 할 비용을 국민전체에 부담시키면서도,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지네 어쩌네 불만만 쏟아놓기 바쁘니 말이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 과거와 같은 위상은 부여되지 않는다. 대학생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소수의 우월한 집단이라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많아졌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걸까? 그렇다고 하긴 어렵다. 오히려 고등교육의 보편화라는 측면에서는 역사적 진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과거 대학생들에게 사회가 부여한 위상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모델이 지속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엘리트교육과 대중교육의 비율이나 관계는 해묵은 논쟁거리이긴 하지만, 소위 선진국들이 예외 없이 엘리트교육의 보편화를 경험했으며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통해 대응해온 나라들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어쨌든 대학진학률이 80%가 넘는 현재 시점에서 한국사회가 과거의 대학교육 형태로 회귀할 수는 없다. 이미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더 나쁜 형태로, 예컨대 극단적 형태의 사유화와 민영화의 형태로 변질되어 그 부담이 다수 대학생과 학부모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공공성 테제를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2011. 3. 20. 19:15

소셜 맥거핀(Social Macguffins)[시사인 183호]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행 열차를 타고 가다가 한 사람이 선반에서 짐을 발견한다. “저게 뭐요?”“아, 그거 맥거핀입니다.”“맥거핀이 뭐죠?”“스코틀랜드 고지대에 사는 사자를 잡기 위한 도구죠.”“스코틀랜드 고지대엔 사자가 없는데요?”“음, 그렇다면 맥거핀은 아무 것도 아니군요.”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 중 하나인 맥거핀에 관한 일화다. 워낙 유명해서 영화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번쯤 들어봤을 용어다. 맥거핀은 영화의 줄거리에서 별다른 의미가 없지만 관객의 눈을 잡아끌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관객들만 알고 있는, 탁자 밑의 폭탄 같은 것들이다. 여기서 하려는 얘기는 영화 속 맥거핀은 아니고, ‘소셜 맥거핀(Social Macguffins)’에 대해서다. 물론 내가 방금 지어낸 말이다(줄여 부르기도 좋지 않은가, “소맥”!). 글자 그대로 “사회의 맥거핀” 또는 “사회적 맥거핀”인데,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사이비 적대(pseudo hostilities)’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계급, 젠더, 인종 등 수많은 적대들이 중첩되거나 교차하면서 사회적 적대관계의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다. 소셜 맥거핀은 이런 첨예한 적대들과 달리 실체가 없거나 매우 사소한 적대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사회적 갈등인양 부풀려진 것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셜 맥거핀이 범람할수록 용산참사나 쌍용차 해고사태와 같은 우리가 주목하고 귀 기울여야 할 ‘진짜 적대’들은 은폐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진심이 만들어낸 가짜

사이비 적대, 가짜 적대의 가장 극적인 판본들이 박정희 정권과 노무현 정권 시기에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파병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1965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차지철이 느닷없이 파병 반대에 나섰다. 대미교섭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박정희가 측근인 차지철에게 ‘쇼’를 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부갈등을 연출하는 것은 박정희의 특기였는데, 1963년 3월의 소위 ‘군 일부 쿠데타 음모사건’이 그 시초였다. 박정희가 민간인 정치해금을 추진하려하자 군 일부가 반발해 박정희를 죽이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것은 박정희가 이른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 위한 명분 쌓기 용도였다. 박정희가 실제로 살해될 뻔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에 비견되는 노무현 정권 시기의 소셜 맥거핀 역시 파병 건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유시민의 행보는 차지철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어떤 때는 대통령의 대미협상 부담을 덜기위해 국민들이 파병에 반대해줘야 한다고 말했다가, 그 후에는 “네오콘의 보복” 운운하며 파병에 찬성하기도 했다. 유시민의 소셜 맥거핀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반대여론의 국면에 따라 이라크 파병 반대와 찬성을 지속적으로 오락가락하면서 가짜 전선을 만들어냈고, 우리 군인의 생명과 김선일 씨의 죽음을 놓고 반전평화 세력이 그은 전선을 집요하게 교란시켰다. 또 하나의 사례로는 황우석 사태 당시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홍혜걸의 “국론통일” 주장이 있다. 이를테면 ‘선진국이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질투해서 황우석 흠집내기에 나선다’는 식의 논리였다. 황우석을 둘러싼 한국과 선진국 사이의 가짜 적대를 설정해 사람들을 호도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전형적인 소셜 맥거핀이었다.

소셜 맥거핀은 이처럼 대부분 국익이나 공익을 빙자해 출현한다. 주의해야할 점은, 대부분의 소셜 맥거핀은 숭고한 내적 동기로부터 탄생한다는 점이다. 툭하면 있지도 않은 내부갈등을 조작했던 박정희조차, 그런 거짓말을 한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조국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라고 망설임 없이 답할 것이다. 확신하건대 1백 퍼센트 그의 진심일 것이다. 소셜 맥거핀은 ‘그럴듯한 가짜’일 뿐 아니라 ‘진심이 만들어낸 가짜’다. ‘진정성’ 같은 심정윤리를 통해 사회문제를 판단하길 좋아하는 한국사회야말로, 소셜 맥거핀이 자라날 최적의 토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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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편집 이전 원본이다.
**조만간 YES24에서 사회비평 연재를 하나 시작한다(늦어도 다다음주부터).  사실 "소셜 맥거핀"이란 말은 그 연재를 위해 고안됐다. 일간지나 주간지 칼럼보다는 긴 호흡의 글이 될 테고, 이변이 없는 한 주1회 업데이트될 것이다.

2011. 3. 8. 04:34

베짱이의 노동[시사인 179호]

서른두 살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홀로 빈곤과 병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이웃집 문에 붙여놓은 마지막 메시지는 ‘창피하지만 남은 밥과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였다. 많은 이들이 가난한 예술가의 비극에 놀라고 슬퍼했다. 그녀의 동료들은 이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규정했다. 영화 스태프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금 이슈가 되었다. 복지 체계의 미비함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게 다 MB 때문”이라는, 지하철 안내방송만큼 감흥 없는 이야기도 반복되었다.

그런데 정작 내 주의를 끈 것은 최씨의 부고 기사 아래에 붙은 인터넷 댓글들이었다. 명복을 비는 댓글 사이사이로, 고인을 질책하고 훈계하는 댓글이 끝없이 매달렸다. 몸이 그 지경이 될 동안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글만 쓰고 있었는가, 재능이 없다 싶으면 포기해야지 왜 맨땅에 헤딩을 하는가, 이웃에 밥 달라는 쪽지 쓸 힘이 있으면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했어야지….

당사자를 원색적으로 욕하는 전형적인 인터넷 악플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 댓글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최고은씨를 ‘세상물정 모르고 꿈만 좇는 철부지’로 치부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곧, 노동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이 어디에서 균열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뭔가 창조적인 일,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라는 통념 말이다.

     
 ‘예술하는 베짱이’ 비웃는 ‘노동하는 개미’

“너는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잖아.” 영화노조를 하는 이에게 비정규 투쟁하는 이가 했다는 말이다. 그 뒤에 생략된 말은 아마 이것이겠다. “그러니 너보다 내가 더 고통 받는 노동자야.” 그래도 비정규 투쟁하는 이는 낫다. 영화 만드는 일 역시 ‘노동’이라고는 생각하니 말이다. 많은 평범한 사람에게 음악이나 영화 같은 문화산업 종사자들은 대체로 둘 중 하나로 인식된다. 경천동지할 작품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예술가이거나, 아니면 제 앞가림도 못하는 백수건달이거나. 물론 대부분 후자 쪽이다.

저 수많은 백수건달을 조롱하고 비웃을 수 있는 근거는 이른바 ‘등가교환’의 노동 윤리다. 내가 지금 겪는 고통만큼 나중에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보상심리이며, ‘공짜 점심은 없다’는 자기 확신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노동하는 개미’의 편에 서서 ‘예술하는 베짱이’를 의기양양하게 단죄한다. “하고 싶은 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면 돈 좀 적게 받아도 되는 거 아냐?” 하지만 사실 내가 지금 유예한 쾌락이 나중에도 남아 있을 거란 보증은 전혀 없다. 또한 내가 지금 겪는 고통이 보상받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힘들게 한 노동이 더 가치 있는 노동인 것도 아니다. 힘들게 하든 즐겁게 하든, 그 결과물은 사회적으로 가치가 매겨질 뿐이다. 오히려 즐겁게, 자발적으로 한 작업의 부가가치가 더 큰 경우가 많다. 바로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노동자가 노동자에 머물지 말고 스스로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고, 더 나아가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고은씨에게 ‘꿈만 좇는 철부지’라 말하는 건 턱도 없는 소리다. 그녀는 자본주의의 승자 독식 논리가 가장 살벌하고 첨예하게 관철되는 문화산업의 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악전고투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병들에게 산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먼저 알리고 죽는 잠수함의 토끼처럼, 최고은씨와 달빛요정 같은 예술가들은 우리 앞에 펼쳐질 지옥도를 이렇듯 온 힘을 다해 경고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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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제목은 원래의 제목으로, 매체에 실린 것과 다르다.

**위 본문에 인용된 최고은 씨의 쪽지내용은 최초보도한 <한겨레> 기자가 윤색한 버전이다. 이 원고가 내 손을 떠난 며칠 후, <민중의 소리>에 의해 실제 쪽지 내용이 최초보도와 다르다는 게 밝혀졌다.

***그녀가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최소한의 생존조건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악랄한 시스템 때문이지 개인의 처신 때문이 아니다. <한겨레>처럼 노동자의 죽음까지도 위계 서열화하는 조악한 시선(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65882.html) 이 여전히 지속되는 한 제2, 제3의 최고은이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불행을 경쟁하는 것만큼 인간을 황폐하게 만드는 짓은 없다. 노동자의 죽음을 비교하는 짓 또한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의 혹독함에 치여 숨진 그/그녀의 죽음을 똑똑히, 하나하나 기억하자. 단, 비교하진 말고.


2011. 1. 11. 12:01

위키리크스가 알려준 진짜 '비밀'[시사인 173호]


새해기념 블로그 포스팅. 그러고보니 시사인 칼럼의 블로그 업뎃도 오랜만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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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가 알려준 진짜 '비밀'

시사주간지 <타임>의 2010년 ‘올해의 인물’에 소셜네트워크 사이트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가 선정됐다.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진 의제를 폭넓게 살펴보는 척 하다가 최종적으론 자기들 입맛에 딱 맞는 인물만을 낙점하는 편협성으로 악명이 자자한데,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커버그라니! 2010년 올해의 인물은 누가 보더라도 단연코, 지구 전체를 충격과 경악으로 몰아넣은 위키리크스(Wikileaks)의 설립자 줄리언 어샌지였다(여기서 잠깐 우리는 <타임>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어샌지가 엄청난 표차로  ‘올해의 인물’ 1위를 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해커이자 저널리스트인 줄리언 어샌지가 설립한 위키리크스는 미군의 바그다드 공습영상 등 충격적인 극비자료를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하나의 ‘거대한 전선(戰線)’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대권력에 대한 “집단지성의 통렬한 역습”에 열광하고 환호했다. 기밀공개에 의해 치부가 노출된 사람들, 조직들, 국가들은 기를 쓰고 위키리크스를, 그리고 상징적 존재이자 실질적 운영자인 어샌지의 신변을 확실한 통제 아래에 두기 위해 그물을 치고, 함정을 파고,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다시피 한 이 추격전은 현실의 외피를 쓰고 있었을 뿐, 본질적으로 슈퍼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의 대결이었다. 노엄 촘스키 같은 양심적 지성이나 마이클 무어 같은 영리한 자유주의자들이 탄압받는 슈퍼히어로의 편에 섰다. 안티히어로 진영은 악당 특유의 음험한 침묵과 이면의 집요한 행동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한 마디로 슈퍼히어로와 안티히어로의 캐릭터성과 대결양상 등의 형식미적 측면은 완벽에 가까웠다. 문제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기밀의 내용이었다.


폭로한 건 체제의 기만성이라기보다 허약성

위키리크스에 유출된 절대다수의 기밀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질서가 실은 ‘빅 브라더’나 ‘매트릭스’ 같은 전능하고 억압적인 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권력들의 비이성과 우발성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기엔 냉정한 판단력과 철의 규율을 갖추고 주도면밀하게 세계질서를 뒤에서 조종하는 프리메이슨이나 성당기사단 같은 엘리트 집단 대신에, 맨날 이웃 나라 외교관 ‘뒷담화’나 까는 한심한 관료들이 있을 뿐이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지배계급들은 논리는커녕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는데다가 거듭되는 현실에서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열정에 이끌려 정책적 실패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위키리크스가 보여준 건 세상이 굴러가도록 만드는 어떤 심오한 비밀이라기보다는 ‘그런 비밀 같은 건 없다’는 허탈한 진실이었다. 어샌지는 권력자들의 거짓과 기만을 폭로하겠다는 단순한 열정으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그 단순한 열정이 드러낸 것은 복잡한 현실 속 역학이었고, 체제의 기만성이라기보다 차라리 허약성이었다. 드러난 그 허약성은 역으로, 그간 약해진 인민들의 자기지배에 대한 자신감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어떤 좌파들은 위키리크스가 자본주의 체제의 위협이 아니라 좀 덜 나쁜 자본주의, 보다 합리화된 자본주의를 위한 운동에 불과하다고 한계를 지적한다. 실제로 줄리언 어샌지는 지난 11월 29일 <포브스> 인터넷 판에 실린 인터뷰에서 “당신은 자유로운 시장의 지지자인가?”라는 질문에 “전적으로 그렇다(Absolutely)”라고 답한 바 있다. 그는 또 “위키리크스는 보다 자유롭고 윤리적인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 설계되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정상화하기 위한 자본주의자들의 영웅적 노력이 그 의도와 다르게 자본주의를 파국으로 이끌 거라 상상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당신이 만약 좌파라면, 팔짱을 낀 채 이죽대기보다 이 ‘순진한 자본주의자들’과 어깨를 겯고 함께 싸워야 한다.

2010. 12. 11. 23:30

냉소적 주체는 어떻게 눈먼 정의가 되었나 [자음과모음R]

냉소적 주체는 어떻게 눈먼 정의가 되었나
타블로 사태와 악플러의 사회심리학


이른바 ‘타블로 사태’가 일단락됐다. 햇수로는 3년 넘게 끌어온 사건이다.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끓다 사라져갔다. 가장 고통 받은 사람은 타블로 본인과 그의 가족이다. 이 사태를 통해 누구도 이득을 본 사람은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가 피해자다. 타블로의 팬들, 지인들, 이 사태를 계속 지켜봐야했던 시민들, 심지어 힙합 가수의 학력이 거짓이라는 걸 밝혀내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투입한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타블로 사태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신상털기(인터넷에 특정인의 사적인 정보를 폭로하는 적대행위)’들과 공통점도 있지만, 유달리 특이한 점도 많은 사건이었다. 한국사회의 모순을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사태의 특정 국면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사태는 ‘극소수 정신병자가 인터넷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으로 단순히 정리될 수도, 정리되어서도 안된다. 냉소적 주체가 사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타블로 사태는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시민이라는 주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 그 전에 먼저 사태의 전말부터 들여다보기로 하자.


‘타블로 사태’의 전말

힙합그룹 에픽 하이의 리더 타블로는 데뷔 초부터 자신이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영문과 석사 출신이라 밝혀 화제가 되었다.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 스타가 된 후에도 타블로의 학력은 언론에 의해 거듭 노출되었고, 특히  평균적으로 5~6년 이상 걸린다고 알려진 스탠퍼드 대학교 영문과 학·석사 동시이수 프로그램(co-terminal master program)을 불과 3년 반 만에 졸업했다고 타블로 자신이 밝힘으로써 더욱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2007년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등과 같은 유명인사와 연예인의 학력조작 스캔들이 줄줄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 몇몇 사람들이 타블로의 학력에 대해 인터넷에서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타블로는 이에 대해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간간히 인터뷰 등을 통해 억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타블로 학력 의혹은 끊이질 않았고 이에 타블로가 2010년 4월 “거짓소문으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한 네티즌을 고소하기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타블로 학력논란은 다시금 수면위로 급부상한다.

2010년 5월에는 왓비컴즈(whatbecomes), 일명 ‘왓비’라 불리는 네티즌에 의해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카페가 개설됐고, 곧 상진세(상식이 진리인 세상)라는 카페도 개설되어 이 두 카페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타블로 학력 의혹이 확대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왓비컴즈’는 타블로 사태 전반에 걸쳐 핵심적 역할을 한 네티즌으로 사실상 타블로 학력의혹을 제기한 집단의 리더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타블로는 트위터 등을 통해 “나와 가족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며 참담한 심정을 여러 차례 밝혔고 나름의 해명도 시도했지만 논란은 수십 개의 쟁점들로 진화하며 확산되었다. 학력 의혹을 제기하는 카페 회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타블로 학력 의혹 관련 게시글이 노출되는 경우가 매우 잦아졌다. 2010년 8월에는 타블로의 학력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서울 주요 도심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MBC스페셜’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직접 가서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내용을 2010년 10월 1일, 10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방송, 학력의혹 상당 부분이 해명되면서 여론이 급격히 타블로 편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 방송 직후 타진요 회원 수가 18만 명을 넘기는 등 타블로 사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서초경찰서는 “타블로의 학력은 사실”이라 발표했고, 수사과정에서 ‘왓비컴즈’는 50대 후반의 미국국적 남성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편 상진세 회원들은 한국경찰의 수사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며 미국의 FBI에 수사 의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찰이 인터폴을 통해 ‘왓비컴즈’를 체포하겠다며 압박하자, 10월 11일 ‘왓비컴즈’는 <시카고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타블로가 이겼다”“더 이상 학력인증요구를 하지 않겠다”“한국과 연을 끊고 지역을 떠나겠다” 등의 입장을 밝혔다. 2010년 10월 22일 상진세는 공식사과문을 발표하고 카페를 폐쇄했다. 타진요의 일부 회원들은 여전히 “타블로 측에 의한 매수설” 등을 주장하며 ‘타진요2’ 카페를 개설하는 등 반발하고 있지만, 법적 절차만 남겨놓은 채 사태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이상이 타블로 사태의 간략한 요약이다. 하지만 역시 흥미로운 점은, 학력논란의 전개과정이나 쟁점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저렇게까지 한 가수의 학력 의혹에 매달리게 만드는 기제가 무엇인가라는 점이겠다.


악플러, 최고로 사회화된 인간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긴 <냉소적 이성 비판>에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우리 시대는 냉소의 시대가 되었다.” 냉소주의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좀 더 부연하자면, 자신이 하는 짓이 속아서 하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 왜?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별반 달라질 게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소적 주체들에게 이데올로기적 기만을 폭로하고 도덕적 정당성을 강변하는 계몽주의는 별로 효과가 없다. “결국 돈 때문에, 제 밥그릇 때문에 저러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바로 전형적인 냉소주의자의 태도다.

이런 태도 아래에는 진위(眞僞), 선악(善惡), 미추(美醜)라는 고전적  판단범주에 대한 의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의심은 물론 데카르트 이후의 것이다. 냉소주의자들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또는 무엇이 원본이고 복제인지) 알기조차 어려운, ‘자본주의의 외부가 없는 세계’에서 사실상 유일한 가치 기준은 가격(price)이라는 사실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런 가치기준이 어떻게 부조리한 현실을 지탱하고 있는지 까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타자가 나의 눈먼 믿음을 배반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 때문이며 이 불안이야말로 냉소주의를 믿음과 현실의 간극을 봉합하는 주체의 전략으로 기능하게 만든다. 냉소적 주체가 근대 이후 인간주체의 중요한 전형이 된 까닭은,  이런 태도가 타자가 개별 주체에 가하는 구조적 압력을 효과적으로 견디고 적응하도록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타자가 가하는 압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타자의 욕망이다. 우리는 타자에게 끝없이 묻는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그래서 냉소적 주체가 가장 안도하는 순간은 타인이 어쩔 수 없는 속물(snob)임을 폭로하는 순간이다. 이것은 얄팍한 거짓을 밝혀내 일말의 정의를 실현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타자의 욕망이 무엇인지 정말로 깨달아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상대와 나의 ‘등가교환’이 가능하다는 사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질서 아래에서의 ‘평등한’ 사회적 관계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는 의미에서의 안도다. 이것은 또한 의도나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우리는 동일한 질서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기도 하다. 냉소적 주체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탈주술화하는’ 주체인 셈인데, 냉소주의라는 태도는 교환관계가 가능할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 건 도약(salto mortale)’을 해야 하는 주체가 들어놓은 일종의 보험이기도 한 셈이다.

이른바 인터넷 악플러들의 스테레오타입은 ‘사회부적응자’‘맹목적 광신도’이다. 이를테면 어둡고 담배연기 자욱한 골방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음침한 사람이거나 혹은 충혈된 눈으로 수십 개의 원도우 창을 띄워놓고 모니터를 향해 욕설을 지껄이는 사람이다. TV 공익광고 등에서 표현되는 이미지가 정확히 그것이다. 타블로 사태에 대한 일부 정신과의사들의 글이나 코멘트를 보면, 학력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 중 핵심인사 몇몇은 마치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인양 묘사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진단은 매체를 통해 접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온전한 전문가적 소견이라 보기 어렵다. 한 가지 명확한 점은, 타블로의 학력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사람들은 결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대체로 고학력의 화이트컬러 또는 지식인이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알려졌다. 즉, 이들은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를 스스로 잘 안다 여기는 사람들이다.

악플러들이 쓴 글을 읽어보면 ‘사회부적응자’이거나 ‘맹목적 광신도’이기는커녕 현대사회의 가장 전형적인 인간형, 즉 냉소적 주체들이라는 점을 금세 알 수 있다. 어떤 사안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런 부분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담론화하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오히려 악플러들은 공교육체계가 요구하는 도덕이나 상식 따위를 아주 우수하게 내면화한 사람들, 다시 말해 주류질서와 논리를 체화한 인간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는, 한 마디로 가장 사회화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세상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돈과 외모와 학벌이 지배하는 곳이다. 또한 이들은 타블로가 우수한 성적으로, 그것도 조기 졸업했다고 주장한 스탠포드 대학교가 얼마나 대단한 ‘학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이 타블로에게 가진 반감의 정체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학벌주의에서 비롯한 열등감, 콤플렉스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보여준 언술들을 종합해보면 그리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형 평등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일반적 의미에서 평등주의는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갖는 건 불공평하다”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형 평등주의 1)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이다. 자매품으로 “내 새끼도 서울대 가야 한다”와 “나도 MBA 따야 한다” 등이 있다. 즉, 일반적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 삼는 데 비해, 한국형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 삼는다. 전자의 처지에 서면 필연으로 부자가 가진 것을 일정 부분 빼앗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못 가진 자에게 분배할 테니까. 그러나 후자의 처지에 서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부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은 곧 자신의 숭고한 목적을 훼손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타블로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스탠포드를 졸업하고 힙합 가수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자의식을 매우 강한 어조로 밝힌 적이 적지 않았다. “아니 왜 스탠포드씩이나 나와서 힙합같이 저급한 음악을 하냐”고 묻는 방송관계자에게 타블로가 격렬하게 항의했다는 이야기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였다. 거칠게 말해서, 타블로는 초일류 명문대학교 학벌과 힙합이라는 흑인 음악 중에 후자를 택한 사람이었다. 학벌주의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넘어 분노를 살만한 일이었다. 요컨대 타블로 사태에서 학벌주의가 문제라면 그 내용은 타블로의 학벌이 너무 좋다는 게 아니었다. 그 좋은 학벌을 마치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한국인이 마땅히 승복해야할 ‘숭고한 질서’를 하찮게 취급했기 때문에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기서 타블로는 학벌질서의 승리자인 동시에 교란자이다. 학벌주의에 포획된 냉소주의자들이 진정으로 분노하는 경우는 자신과 비슷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자신보다 나은 학벌을 획득했을 때가 아니다. 냉소적 주체는 그런 부조리한 상황을 어떻게든 합리화시킬 수 있는 수십 가지 방식을 체화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예를 들어 학벌이나 돈과 같은 주류의 상징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사실은 서울대를 못 나온 열등감 때문에 서울대 비판을 하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다. 정작 냉소주의자들이 가장 패닉에 빠지는 순간은, 자신들의 평등주의적 열망이 가리키는 숭고한 상징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자들이 그 상징질서 피라미드 최상층 스펙을 이미 획득한 사람일 경우다. 이 경우 냉소적 주체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 냉소를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보다 근본적 차원의 성찰로 승화시키는 기적은 물론,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체로 냉소적 주체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굴복’이냐 아니면 ‘적대’냐. 

굴복이 의미하는 것은 그런 타자를 인정하고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로 추인하는 것이다.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는 사람이 화려한 스펙을 포기하고 자기를 희생하였구나”라고 감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사회적 질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연대나 지지라기보다는 차라리 열광 혹은 팬덤에 가까운 태도이다. 실제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정치인의 경우, 자신의 명백한 정치적 이익을 내던지는 일종의 ‘정치적 희생제의’를 감수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 이런 희생제의를 통해 획득한 자산은 정치적 정당성이 아니라 ‘정치적 순결성’ 혹은 소위 ‘국민에 대한 순정’이다.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대중의 정치적 지지라는 게 그렇게 형성되어왔다. 한편 그렇게 굴복하지 않은 경우엔 매우 공격적인 방식으로 적대감이 표출된다. 2010년 3월 사회적 파장을 몰고온 김예슬 선언에 대한 수많은 대학생들의 냉소-“나도 포기할 학벌이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비아냥-가 바로 그런 감수성에 기반한 것이었다.


‘도착증적 정의(正義)’ 너머

타블로 사태가 우리에게 새롭고 낯설며 의미심장한 사건인 까닭은 냉소적 주체들이 어떻게 ‘눈 먼 정의의 사도’로 변신할 수 있는지, 그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 때문이다. 냉소적 주체의 평등주의적(동시에 속물적인) 열망 자체가 타자에 의해 무의미해지고 해체될 위기에 놓였을 때, 냉소적 주체는 스스로가 어떤 실익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고 중립적으로 사회정의를 요청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그 주체는 타자의 시선을 늘 염두에 두기에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편, 자기정당성의 표식으로 극단적 반실용주의자의 면모와 종교적 열정을 방불케 하는 신실성(sincerity)을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이 지루하고 처절한 진위공방이 누구에게도 이익을 안겨주지 못한다는 바로 그 점이야말로, 타진요 또는 상진세의 문제제기를 사심 없이 순수한 ‘진실추구’ 혹은 ‘정의구현’으로 만들었던 핵심적인 측면이었다. 이것은 가히 ‘도착증적 정의’라 부를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진리추구의 형식은 이른바 뉴사이언스운동에서 과학의 힘을 맹신하는 종교인의 모습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바 있다.

타블로에게 요구한 ‘진실(타진요)’과, 세상에 요구한 ‘상식(상진세)’의 공통점은 그것이 한국인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적 가치들이라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인터넷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시민이라는 ‘중립적 주체’에 관한 판타지의 확대재생산이다. “나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나는 영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으로 시작하는 대중들의 발언은 실제로 아주 정치적이고 당파적임에도 불구하고 강박적으로 중립성을 가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태도가 전부는 아니다. 독도 문제나 영화 <디 워>, 황우석을 말할 때는 중립적 주체라기보다는 애국주의 또는 국익주의 2)적 태도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립적 시민’에 대한 판타지는 하나의 경향으로 비교적 명확히 감지된다. 그들은 왜 그렇게 중립적 시민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광기어린 반공주의가 지배해온 역사적 배경도 작용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공적 가치의 내용보다 그 가치를 주장하는 ‘자격’을 더 문제 삼는 기묘한 결벽증도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추측된다. 이 결벽증은 사회에 냉소적 주체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생긴 역설이 아닐까. 진실을 추구하고 상식을 주장하는 사람이 알고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라는 냉소주의적 확신이, 중립성에 대한 판타지를 반대편에서 강화하는 상황 말이다.

문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개별적인 악플러들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표면적인 해프닝일 따름이다. 주목해야 하는 건 오늘날 시민들이 개인적으로는 냉소적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적 가치를 활발히 주장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해보더라도 확연히 다른 지점이며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면 냉소주의가 도착증적이고 맹목적인 정의로 귀결되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신실성(sincerity)과 진정성(authenticity)같은 담론들을 동원해가며 정의(justice)를 주장하는 자의 자격을 따지는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 이런 식의 태도는 기껏해야 주체의 윤리적 성찰 이상의 것을 말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냉소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대신에 정의의 내용, 이를테면 공정성(fairness)이 과연 이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유효하고 덜 요효한지 등에 대해 치열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이 악플과 욕설이 넘쳐나는 쓰레기장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근대적 시민주체가 활발하게 재구성되는 담론공간이며 현실과 결코 분리될 수도 분리해서도 안되는 또 하나의 현실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냉소주의 시대의 시민적 주체의 재구성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타블로 사태가 남긴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다.

 
1) 한국형 평등주의:
  (박권일, 부자에게 유리한 한국형 평등주의, <시사IN> 56호 2008.10.06.
  강준만, 한국형 평등주의, <한겨레> 2008.12.14.)

2) 국익주의:
  공동체 그 자체나 공동체의 어떤 숭고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이 개인과 기업의 경쟁력과 이윤축적에 도움을 줄 거라는 믿음을 근거로 삼는 애국주의. ‘내가 나라를 사랑하는 데에는 명백하고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경쟁의 프레임에 기반한, ‘국가경쟁력 담론’으로서의 애국주의.
(박권일, 국가가 침몰한 자리에서 인양된 낯선 아이러니, <자음과 모음 R> 2호)
 


*<자음과 모음 R> 3호 

2010. 7. 28. 11:00

국가가 침몰한 곳에서 인양된 낯선 아이러니[자음과모음R]

'다음 세대를 위한 인문교양지' <자음과 모음 R> 창간호에 실린 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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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침몰한 곳에서 인양된 낯선 아이러니


천안함 사태는 ‘뉴스의 블랙홀’이라 불렸다. 몇 달 동안 거의 모든 사건사고들이 천안함이라는 대형이슈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평소 같으면 전국이 발칵 뒤집힐만한 대형사건들도 반짝 관심 받다 익명의 뉴스들 속으로 사라져갔다. 천안함 사태가 이 정도로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건 단지 희생자들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건의 발생과 대처과정이 발달한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공유되었으며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거대한 모자이크를 이루며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산해냈다. 한국의 시민들은 한 나라의 정부와 군대가 젊은 청년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어느 정도까지 무능할 수 있는지를 그야말로 실시간(real time)으로 목격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탄식했다. “도대체 이게 국가인가!”

침몰 후 약 두 달이 지나서 정부와 군은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천안함이 침몰한 원인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이라 발표했다. 며칠 뒤 이명박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해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면서 “남북교역과 교류를 중단하고 이 사안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해 북한의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남북관계는 극도로 얼어붙었고, 사실상의 준 전시상황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정부와 군의 유례없이 강경하고 단호한 태도는 “북한의 소행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증거는 침몰 해역 인근에서 인양한, ‘1번’이라는 펜글씨가 선명히 적혀있는 어뢰의 잔해였다. 무시무시한 진실이,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른 범인이 드디어 밝혀진 셈이다.

20년 전이었다면 슈퍼마켓의 라면과 생필품이 사람들의 사재기로 모조리 동이 나고, 전국의 학교에 일제히 휴교령이 내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런데 2010년 5월 말 현재,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선거 시기 특유의 어수선함을 제외한다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비교적 평온한 일상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부발표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보내는 데 주저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폰 뒷면에 파란색 펜으로 “1번”이라 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이게 바로 북한산 아이폰”이라며 정부발표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관련한 풍자와 패러디가 봇물을 이루자 경찰과 검찰은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며 강경한 태도로 단속에 나섰고 이런 ‘과잉대응’에 대해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반면 대다수 외국 언론들은 한반도의 긴장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고 앞 다투어 보도했지만 그 초점이 ‘북한의 비겁한 공격’이라든가 ‘1번 어뢰’ 따위가 아니었다. 대부분 한반도의 긴장이 유럽과 미국 증시에까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으며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는 것은 세계경제에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경고였다.

분명, 뭔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국내와 국외, 그리고 남한정부와 남한시민들 사이의 반응이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인식과 판단의 온도차가 이토록 심한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왜 세계 언론들은 ‘1번 어뢰’, 즉 한국과 미국의 첨단 감시망에 전혀 포착되지 않고 1200톤급 초계함을 단 한방에 두 동강 낸 북한의 군사무기에 대해 이토록 관심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왜 한국의 많은 시민들은 모여서 북한을 규탄하기보다 이명박 정부와 군 지휘부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사람들의 이 뿌리 깊은 불신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국가라는 이름의 ‘양치기소년’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경우는 손으로 꼽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 중에서도 열이면 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게 바로 ‘위험에 대한 감각’이다.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아찔하게 깎아지른 북한산 바위벽을 슬리퍼를 신고 뒷짐을 진 채 태연히 오르내리는 한국노인들을 본 어느 일본인은 “내 평생 이렇게 무서운 광경은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카 레이싱을 방불케 하는 한국인의 운전습관을 보고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무엇보다 그들을 경악하게 하는 건 북한의 도발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태도다. 일본인들 눈에는 당장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가는데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태연자약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일본인들의 경우, 일상에서 보이는 한국인들의 이런 면을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에도 똑같이 적용해 “남한 사람들은 전쟁위험에 대한 감각도 마비되었다”는 식으로 판단해버리기도 한다. 한국인 중에서도, 특히 ‘안보’를 강조해온 세력일수록 이런 식의 설명에 찬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과연 그럴까? 일단 북한의 군사력을 매우 과장하면서 김정일 정권을 지속적으로 ‘악마화’해왔던 일본 미디어가 일본인들의 인식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휴전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전쟁위험을 느끼는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크다. 이건 한국인들이 지속적인 북한의 도발을 경험한 탓에 전쟁위험을 느끼는 감각이 상대적으로 무뎌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식의 피상적인 설명으로는 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다. 그보다는 전쟁위험을 느끼는 감각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좀 더 ‘세밀하다’고 표현해야 더 타당할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예를 들어, 전쟁위협을 실제로 겪을 일이 없는 외국인들에게 전쟁이라는 것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둘 중 하나의 가능성밖에 없는 사태다. 물론 한국인들에게도 남북한 간의 전쟁이라는 건 어쨌든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공포스런 사건이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이 차츰 고조되고 다시금 완화되는 여러 단계를 역사적으로, 그리고 몸으로 체험해왔기 때문에, 상황판단이 ‘전쟁 아니면 평화’라는 식으로 단순화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다. 바꾸어 말해본다면, 남북간의 어떤 충돌이 하나의 사건으로 명백히 드러났을 때조차도 그 사건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고려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런지는 차치하고, 남한사람들은 전쟁이 벌어질지 벌어지지 않을지에 대한 징후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 경향이 있다. 요컨대 남북간의 갈등에 대해 한국사회에는 사회적으로 축적되고 학습된 독특한 감각, ‘남북갈등의 맥락을 고려하는 감각’이 존재한다. 이런 감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수십 년간 거짓말을 일삼아온 정권들이었다.

남한에서는 선거 시기에 간첩사건 등을 조작·발표해 선거결과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 소위 ‘북풍공작’이 끈질기게 존재해왔고 그 시도들이 대개는 그것을 시도한 측이 만족할만한 결과로 귀결되어왔다. 그것은 군사정권, 그리고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보수세력의 특기였다. 수많은 사례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별나게 황당했던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1986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벌어진 평화의 댐 사기극이다. 당시 이규호 건설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 금강산댐(임남댐)의 저수용량이 200억 톤이며 이를 한 번에 방류할 경우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고 발표했다. 국회의사당은 지붕만 남고 63빌딩의 3분의 2가 잠긴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모형실험까지 동원되어 방송됐고, 남한사회 전체가 글자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언론에 출연해 초당 230만 톤의 물이 12~16시간 내에 서울을 덮칠 것이라며 거듭 경고했고, 당연하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끔찍한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88서울올림픽을 망치기 위한 북한의 수공작전”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는 이유로 꼽혔고, 전국에서 수많은 반공집회가 조직되었다. 당시 KBS와 MBC,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충실한 스피커’로 기능했다. 이들 언론들은 연일 북한을 규탄하고 금강산댐 위협을 기정사실화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월간 <말>과 같은 진보매체와 소수의 운동권들 외에 누구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류언론들은 곧장 ‘대응댐’ 논리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우리 쪽에서도 댐을 만들어 북한의 수공을 막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평화의 댐이었다. 정부와 언론들은 1986년 12월부터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국민모금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해외동포, 심지어 교도소 제소자까지 성금을 냈다. 달동네 어린이가 자기 생활비를 털어 평화의 댐 모금을 했다는 기사가 뭉클한 ‘미담’으로 소개되어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그렇게 ‘코 묻은 돈’까지 긁어모아 만든 금액이 약 639억 원. 그러나 금강산댐 사기극을 통해 남북대결구도를 극단적으로 강화하고 집권을 연장하려던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결국 권좌에서 물러났다. 국가가 주도한 이 기막힌 사기극은 몇 해 지나지 않아 거짓임이 밝혀지게 된다. 이 황당한 소동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는 1988년 8월1일자 기사에서 “평화의 댐은 불신과 낭비의 사상최대의 기념비적 공사”라 비꼬았다. 1993년에는 감사원 조사를 통해 금강산댐의 저수량은 최대로 잡아도 약 50억 톤 정도이며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평화의 댐 사기극처럼 남한정부가 북한을 이용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거나 집권기간을 연장하려 했던 시도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 남한사회는 그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었다. 북한의 무력도발이 사실인 경우도 물론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권이 모종의 의도를 갖고 체계적인 조작으로 ‘북풍’을 만들어낸 경우는 그 이상으로 많았다. 그래서 일단 ‘북풍’이 불면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진다. 시기와 의도와 맥락을 신중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속고 또 속아온 사람들이기에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의 학습의 결과이므로.

‘빅 브라더’에서 ‘무능한 가장’으로

군사독재시기에는 정권이 아무리 말도 안되는 거짓말로 시민들을 속여도 잘 먹혀들었다. ‘평등’ ‘자유’ ‘평화’ ‘민주’ 같은 가치가 아니라 ‘반공’이 국시(國是)이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어쨌든 그 시절 국가는 능수능란한데다 잔혹하고 힘이 센 ‘양치기 소년’이었다. 혹여 자신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자가 나타나면 잡아다 고문하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아예 죽여 버렸다. 만약 기업이 정부의 부당한 요구를 듣지 않으면 사장을 불러다 고문했고, 정 말을 듣지 않는다 싶으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회사를 망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힘을 합쳐 국가의 부당함에 저항하면 광주에서처럼 군대를 동원해 무참히 학살했다. 국가는 무소불위였고, 전지전능한 것처럼 보였다. 이를테면 그 시절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브라더(Big Brother)’였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미국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던 미국은, 한국의 군사정권이라는 양치기 소년의 ‘신원보증인’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이건 ‘절대적 복종의 대가’였다. 이 신원보증인의 적극적인 비호와 방조 속에서, 양치기 소년은 1980년 광주에서처럼 많은 시민들을 학살해놓고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의 후광이건 어쨌건 과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자국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전지전능한 존재에 가까웠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결정적 국면을 지나게 되고, 오랜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른바 ‘시민사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의 힘이 강력해질수록 과거 군사정권 시기의 지나치게 편중되고 강력했던 국가권력은 점차 민간으로 옮겨지고 분산되어갔다. 달리 표현하면 그 과정은 비정상적인 국가가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정상국가화’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역사를 참조하고 우리의 현실을 고려해서 국가의 올바른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 국가의 힘은 어디까지 제한되어야 하고 어디까지 발휘되어야하는지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차분히 합의에 이르기도 전에 한국사회는 엄청난 사회적 격변에 직면하게 된다. 1997년 가을의 IMF 외환위기가 닥친 것이다.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일단이기도 한 이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강력한 트라우마”라고 표현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정도로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우리의 인식체계와 사고방식이 전면적이라 할 정도로 변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IMF 외환위기였다. 대통령이 돈을 꾸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가서 굴욕적인 태도로 머리를 숙이고, 사람 좋던 이웃집 아저씨는 하루아침에 사업이 망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멀쩡히 잘 먹고 잘 살던 삼촌이 카드빚에 시달리다 노숙자가 되고, 백화점 문화센터와 헬스클럽을 오가는 게 유일한 일과이던 큰 고모가 감자탕 집에 주방일을 나가게 됐다. 국가가 부도나는 이 초유의 사태 앞에서 국가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국가가 휘두르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이제 ‘국가라는 총체적 권력’이 ‘화폐라는 경제적 권력’ 앞에 철저히, 혹은 처절히 무릎 꿇는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것은 회사에 간다고 말하고선 산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지치고 굽은 등을 바라보는 것처럼 서글픈 광경이었다.

국가는 국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자기 자신조차 구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마침내 폭로되고 말았다. 냉혹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개인이 알아서 발버둥치는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반 김영삼 정권 시기에 관료와 경제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IMF 외환위기를 통해 비로소 사람들의 생활에 실제로 큰 영향을 끼치는 생존원칙으로 변형되어 내면화되기 시작했다.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원리가 새로운 시대의 국민교육헌장이 되었다. 자기계발서와 처세서가 베스트셀러를 독점하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였다. 이렇게 국가는 ‘빅 브라더’에서 ‘무능한 가장’이 되었다. 국가가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따위는 이미 일고의 가치도 없는 케케묵은 사안이 됐다. 그 대신 국가가 시장과 재벌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지 말아야하는지’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고 대부분 그대로 실행되었다. 이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정당성을 판단해주는 ‘정당성의 보증기관’은 법도, 상식도, 윤리도 아닌 ‘시장’이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관과 무디스나 스탠더드 앤 푸어스 같은 신용평가기관이었다. 분명 국가의 위상은 평가절하 되었다. 하지만 이를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국가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좀 더 객관화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는 이 또한 하나의 ‘진보’라고 할 수 있었다.

적대 vs. 경쟁: 새로운 애국주의의 탄생

국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대중문화적 차원에서 처음 드러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광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는 거대한 군중의 출현은 단순히 국가주의라거나 민족주의의 표출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이질적인 현상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문화비평가 이택광은 그 현상을 ‘월드컵 주체의 탄생’이라 명명하기도 하는데, 그는 월드컵 주체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유학시절의 흥미로운 경험을 소개한다. “유학시절 나는 한국에서 온 어린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386주체한테서 흔하게 발견되는, 선진국에 한수 배우러 온 분위기를 전혀 풍기지 않았다. 당시 이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나를 비롯한 여러 386주체에게 이것은 분명 놀라운 징후였다.”

여기서 이택광이 묘사하고 있는 건 바로 ‘콤플렉스가 없는 세대’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예를 들어, 일제 식민지 세대에게 일본은 평생 극복하기 어려운 굴욕감과 열등감을 안겨주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1945년 무렵~1960년대 말 사이에 태어난 세대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던 세대에게 콤플렉스를 안겨준 나라는 미국이었다. 이들은 일본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반면에 미국에 대해서는 반감과 두려움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가졌다. 소위 ‘386 세대’의 격렬한 반미주의의 반대편에는 그에 못지않게 격렬한 선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세대들의 일본과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는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구 선진국에 대한 공통적인 열등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세대들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세계최강대국이며 남한과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콤플렉스를 안겨줄 정도로 심각하고 무거운 존재는 아니다. 다른 선진 국가들에 대한 시각도 대체로 이런 수준에 머무른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다른 나라나 다른 사람, 다시 말해 외부를 바라보는 프레임(frame)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여기서 말하는 프레임이란 쉽게 말해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특정하게 틀 지우는, 일종의 ‘생각의 거푸집’이다). 그것을 ‘적대의 프레임’과 ‘경쟁의 프레임’으로 도식화시켜볼 수 있다.

과거 세대는 타자를 바라볼 때 ‘친구’와 ‘적’의 이분법을 적용한다. 그래서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이고, 적의 적 또한 나의 친구다. 이 ‘친구/적’의 구분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을 논할 때 언급했던 유명한 이분법을 연상시킨다. 반면 그 이후 세대들은 ‘친구/적’의 이분법보다 ‘협력자/경쟁자’의 이분법에 더 익숙하다. 이 두 가지 사고는 얼핏 비슷할 것 같지만 실은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이다. ‘친구/적’의 이분법은 기본적으로 ‘적대의 정치’이며 자기가 속한 집단이 지향하는 정의를 관철시키려는 투쟁이다. 이 싸움은 가치를 둘러싼 전면전이며 그것은 ‘싸움의 룰을 만드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싸움이다. 그러므로 이 투쟁에서 ‘룰’을 준수하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누가 룰을 만드냐이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의 고유한 차원이 열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적대의 정치가 극단으로 흐를 경우, 그것은 상대를 절멸시키는 잔혹성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한편, ‘협력자/경쟁자’의 이분법은 달리 표현하자면 ‘경쟁의 경제’이고, 이 프레임이 전제하고 있는 주체는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개인이지 집단이 아니다. 개별적인 사람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협력하거나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룰(rule)’이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는 신성불가침의 권리이기 때문에 그것이 서로 충돌했을 때 판단을 내려줄 심판의 존재가 필수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프레임이 바라보는 ‘사회’라는 것은, 월드컵 축구경기와 같이 명백한 규칙이 있는 스포츠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서 이런 프레임으로는 집단끼리의 정치적 갈등이라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고, 룰 자체를 바꾸는 싸움을 벌이거나 정당화하기도 어렵다.

양쪽 프레임 중 어느 것이 우월하고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세대가 다르다고 해서 어느 한쪽 프레임에 일방적으로 치우쳐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기존의 애국주의 혹은 국가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관이 현실에 출몰했다는 점이다. 그 새로운 국가관은 2002년 월드컵 때와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2005년 황우석 사태, 2007년 인터넷을 달군 심형래 감독의 ‘디워’ 논란 등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것은 과거처럼 공동체의 생존이나 명예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엄숙하고 낡은 애국주의’가 아니었다. 악랄한 북괴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반공주의적 애국주의도 아니다. 새로운 애국주의는 앞서 말한 경쟁의 프레임에 기반한, ‘국가경쟁력 담론’으로서의 애국주의다. 그렇다고 이 애국주의가 단순히 자기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경쟁력이 강하다는 자부심의 표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나라를 사랑하는 데에는 명백하고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태도에 가깝다. 요컨대 공동체 그 자체나 공동체의 어떤 숭고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이 개인과 기업의 경쟁력과 이윤축적에 도움을 줄 거라는 믿음을 근거로 삼는 애국주의인 것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국익주의’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새로운 애국주의의 출현에는 명백한 물적 배경이 존재한다. 세계경제와 동아시아 대중문화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지위의 상승이다. 국내적으로 한창 경제성장에 매진하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이란 국가는 세계시장에서 존재감조차 없었다. 1987년 3,364달러였던 1인당 GDP는 2002년 11,485달러에 이르렀고, 2000년대 들어 한국의 경제규모는 계속 세계 10위권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또한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아시아 대중문화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어서 ‘한류 문화제국주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불과 20년 전인 1990년의 한국 상황과 비교해보아도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한편으로 이것은 남북한 간의 엄청난 경제적 격차로 인해 ‘체제경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의 남한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북한의 ‘체제의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반드시 통일해서 같이 살아야할 한민족으로 북한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보다는 통일과정에서 치러야할 천문학적 비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이들에게 북한은 굶어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 집에 데려올 생각은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먼 친척’일 뿐이다.

‘국익은 믿고 국가는 믿지 못하는’ 아이러니

2005년 ‘황우석 사태’가 한창이던 당시 일간지에 실린 글 하나가 많은 시민들의, 특히 황우석 교수에게 우호적이던 사람들의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중앙일보>의 의학전문기자 홍혜걸이 쓴,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지난 해 기자는 영국 학술잡지 <네이처>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중략) 의도는 명확했다. 그들은 황우석 교수의 업적보다 난자의 출처가 궁금했던 것이다. 겉으론 생명윤리를 내세우지만 속으론 연구진에 대한 흠집내기 의도가 역력해 보였다.(중략) 우리가 뿌린 씨앗인데 남들에게 열매를 빼앗길 수 없다. 먼저 분열된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홍혜걸의 글은 얼핏 낡은 애국주의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줄 신기술의 개발과 이에 대한 선진국의 ‘질투’를 자의적으로 설정한 뒤에 세계시장의 이 치열한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한다는 ‘1등 강박증’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새로운 애국주의, 즉 국익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논리들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었는데, 2007년 심형래 감독의 SF영화인 ‘디워’ 개봉 당시 이 영화의 완성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던 네티즌들의 논리 역시 정확히 홍혜걸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앞서 젊은 세대의 특징으로 들었던 선진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옅어지는 현상과, 황우석 사태 등에서 보이는 국익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상은 얼핏 서로 상충하는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두 가지 현상은 모두 국가라는 ‘초월적 권력’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의 태도변화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이 보여준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들 중에서 그나마 건강하고 긍정적이라 평가할 수 있는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이제 사람들은 정부와 군의 공식조사발표조차도 덮어놓고 믿기 보다는 이상한 점을 캐묻고, 맥락을 따지고, 국가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추궁한다. 국가를 물신화하거나 신비화시키지 않고 언제든 잘못을 저지르고 시민들을 기만할 수 있는 하나의 행위주체로 평가한다는 면에서, 분명 이러한 태도는 진일보한 것임이 틀림없다. 절대주의 시대나 군사독재시기처럼 국가의 명령에 의문조차 제기하지 못하던 시절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태도가 내장하고 있는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그것은 이것이 은폐하고 있는 어떤 진실 때문이다. ‘시장권력이 국가권력보다 위에 있다’는 진실.

이에 대해 세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해서, 소위 ‘민주화세력’이 이해한 민주주의는 이랬다. 시민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억압했던 국가권력이라는 괴물을 해체하고, 그 괴물의 힘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 그들은 이 목표를 위해 국가라는 괴물과 치열하게 싸우다 죽거나, 다치거나, 멀리 도망쳤다.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크고 작은 희생에 경의를 표해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국가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과 국가권력을 시장으로 넘겨주는 것을 동일시했다는 점이었다. 민주화세력 분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 또한 그것이 민주주의라 생각했다. 민주화 10년은 곧 ‘민영화 10년’이었다. 그 결과는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비극적이다. 국가와 재벌의 살림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데 정작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빈곤해졌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working poor)의 나라, 불안정노동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 “국가는 못 믿겠지만, 국익은 지켜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가장 서글픈 코미디가 된다. 국부(國富)가 개인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국익’이란 건 결국, 실질적 내용이 없는 하나의 물신(fetish)에 불과한 까닭이다. 새로이 출현한 ‘국익주의’는 그래서 낡은 애국주의만큼이나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이런 태도는 천안함 사건을 바라볼 때도 예외가 아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로 고조되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전쟁에 반대했다. “전쟁만은 안된다!” “한반도의 평화가 최우선이다!” 옳고 당연하다.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로 꼽은 내용이 의미심장하다. 경제가 파탄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얼마든지 다음과 같이 바뀔 수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해야.’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활력을 잃어가던 경제를 살린 전쟁은 얼마나 많았던가.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계몽된 시민의 모습으로 ‘국가권력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때,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이 은밀히 의지하고 있는 건 시장권력에 대한 확신이다. 한편, 시장권력에 대한 믿음이 근거하고 있는 건 국가권력의 악덕 또는 무능이다. 무한히 빙글빙글 도는 일종의 순환논리인 셈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라는 현상을 “깨어있는 시민들의 이성”이라 일방적으로 미화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10. 5. 16. 05:43

김예슬과 꼰대들


1명을 칭찬하기 위해 나머지 99명을 싸잡아 욕하는 것, 그리고 99명을 욕하기 위해 1명만을 칭찬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이념과 연령을 막론한 꼰대들의 특징이다. 진보 쪽에 한정하자면, 평소 20대를 욕하던 진보인사일수록 그 반작용으로 10대들 혹은 김예슬 씨같은 20대에 대한 찬사가 과도해진다. 적절한 임상사례로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가 있다. 그는 "20대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며 소위 20대 포기론을 떠들고 다니면서도 한국의 10대를 마치 외계에서 떨어진 존재인 양 20대와 구분지어 과도하게 칭찬한다. 이런 행태들은 대개가, 20대를 이념적으로 비난함으로써 (한때 급진적이라 스스로 믿었던) 자신의 보수성 혹은 반동성에 대한 알리바이를  획득하려는 시도이다.

꼰대들의 심리야 어쨌든간에 그들에게 칭찬받던 자와 욕만 먹던 자는, 실제로 비슷한 이념과 감성을 갖고 있더라도, 같이 연대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양쪽 모두 서로를 보며 "난 저 녀석과 너무나 달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공통체험이 점점 희박해지는 세대에게 이건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꼰대들은 으레 그렇게 '어린 놈들'을 분리통치해왔는데, 꼭 나이 많은 꼰대만 그런 건 아니다. 그런 꼰대들의 담론을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내면화한 젊은 세대 역시 자신들을 그런 식으로 타자화시킨다. '어린 꼰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적절한 임상사례들은 널려 있다. "자기계발 담론은 현실에 대한 절대적 긍정" "루저 담론은 현실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라는 조악한 분법을 통해 "20대에 비판적 사유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어느 문화연구자는, 오직 김예슬을 상찬하기 위해 모든 20대를 싸잡아 "괴물" 또는 "경쟁의 노예"로 규정하고 있다. 그 연구자가 기성세대보다는 젊은 세대에 가깝다는 점에서, 또한 주체화 공정에 대한 역동적 분석은 고사하고 개인의 돌출적 각성 외에 20대 주체화 가능성에 대한 어떤 전망조차 내놓지 않는(못한)다는 점에서, "경쟁의 노예 혹은 괴물로서의 20대" 론은 비판이라기보다 그저 신경질적인 자기혐오-동종혐오에 불과하다. 또한 그것은 김예슬과 다른 20대간의 '차이'를 재확인하고 더욱 강화할 수는 있어도 김예슬과 다른 20대를 이어줄 수 있는 어떤 연결망도 생산하지 못하는 '불임의 담론'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자들에 맞서 김예슬을 '특이성'도 '징후'도 아닌 보편성으로 읽어내야 한다. 과거에도 김예슬은 존재해왔고('학출'의 모습으로 혹은 다른 모습으로),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생겨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예슬선언은 '신화화'가 아니라 '역사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나 가진 역량'을 래디컬하게 실현하고 있는 그/녀들을 공평하게 지지하자. 좀 더 공평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좀 덜 '오버'하고,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역량'이 실현되는 형태가 김예슬 선언처럼 조금 소란스러울 수 있고, 여전히 존재하는 익명의 학출노동자처럼 무척 조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징후'니 뭐니 법석떨 일은 아니다. 정말 '징후'적인 건 '자기 입맛에 맞는 김예슬들'에게만 지루하고 두루뭉술한 찬사를 끝없이 쏟아부어 박제화하려는 사람들, '좌파' 혹은 '진보'라 불리는 그 늙거나 어린 꼰대들이다.
2010. 5. 14. 13:02

'김예슬 선언'이라는 텅빈 기표 [시사인 139호]


2010년 3월 ‘김예슬 선언’을 보자마자 나는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이 글을 적는 순간에도 지지하는 마음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후 출간된 그녀의 책과 매체 인터뷰 등을 읽는 건 꽤나 불편한 경험이었다. “래디컬”한 그녀의 사상이나 신념을 보고 나 자신을 성찰하게 되어 그랬던 건 아니다. 나의 불편함에는 몇 가지 다른 이유들이 있다.

첫째, 그녀의 말과 글들이 주는 모종의 거부감 때문이다. 대개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자의식을 지나치게 날 것 그대로 노출시키는 텍스트였고, 분절된 짧은 호흡의 사유들이 권위적이고 딱딱한 어휘에 실려 쉼 없이 내뱉어지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말과 글에 담긴 사상이나 감성들은 “래디컬”한 게 아니라 낭만적이라 해야 옳다. 급진주의와 낭만주의는 어떻게 다를까?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급진주의가 ‘예외 없는 집단적 변혁을 위한 근본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라면, 낭만주의는 ‘예외적 개인들의 의지와 결단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태도’이다. 그래서 급진주의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의 정합성을 중요시하지만, 낭만주의자는 추구하는 가치의 진정성을 중요시한다. 역사적으로 낭만적 자의식은 뛰어난 예술을 낳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사회의 변혁을 만들어낸 경우는 거의 없다.

수많은 곳에서 인용되는 김예슬의 다음과 같은 글을 보자. “우리 사회의 진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않다.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 때문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린다.” 이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진보인사가 있을까? 없다. 반박할 수 없는 이유는 저 문장이 타당해서가 아니라 저 말에 별 의미값이 없기 때문이다. 반박할 구체적 사실이 있어야 반박할 게 아닌가. 그저 ‘옳은 얘기구나’ 고개를 끄덕일 밖에. 화려한 레토릭으로 비판을 대체하는, 전형적인 케이스다.

내 불편함의 두 번째 이유는 ‘명문대생’ 김예슬을 향한 일각의 냉소에 대한 그녀의 태도에 있었다. “김예슬이 떠난 그 학교에 저는 가고 싶습니다” “저도 김예슬씨처럼 포기할 학벌이나 있었으면 좋겠네요”“삼류대생이 저런 선언했으면 과연 어땠을지…” 등과 같은 반응이 인터넷에서, 특히 20대를 중심으로 매우 격렬하게 분출됐다. 이러한 냉소적 반응들은 그 자체로 한국사회의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라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를 드러내줌과 동시에, 김예슬 선언의 ‘어떤 이면’을 환기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냉소적 시선이 ‘김예슬 선언’의 실존적 울림과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유의미한 문제제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김예슬은 자신이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기득권을 포기했다. 그 기득권이 어떤 이에게는 학력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외모일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돈이나 부동산, 또는 인맥 같은 사회자본일 수 있겠지만 그것을 포기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인 것이다. ‘김예슬 선언’의 유물론적 보편성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그런데 김예슬은 명문대생 운운하는 반응에 대해 참으로 생뚱맞게도 “대학에 가지 못한 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한다.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이었다. 이게 왜 그녀가 사죄해야하는 일인 걸까. 명문대생이라서? 솔직히 말해 나는 김예슬의 이 사죄가 사회운동가적 태도가 아니라 종교인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중생의 죄를 대속하고, 타인의 죄도 내 탓이라 머리를 숙이는 종교인. 그렇다면 ‘투쟁’과 ‘연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건 ‘희생’과 ‘나눔’이 될 터이다.

결국 우리들 중 누구도 ‘김예슬 선언’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그녀의 말과 글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치열하게 토론했어야 했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선생님’들은 감탄과 찬사를 쏟아내기에 바빴고 또래들은 외계인이라도 본 양 신기해하거나 차갑게 냉소했다. 김예슬은 자신이 사죄하지 않아도 될 일을 사죄하고, 정작 성찰해야할 지점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김예슬 선언’은 누구나 언급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텅빈 기표가 되었다. 


*매체 편집 이전의 원본임.

2010. 4. 15. 14:34

당신과 나의 전쟁, 그리고 우리의 전쟁 [시사인 135호]


자고 일어나면 대형사고가 빵빵 터지는 대한민국에선 작년의 사건도 아득히 멀어 보인다. 태준식 감독의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의 전쟁>은 어느새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버린 쌍용자동차 사태를 다시금 우리 앞에 생생히 소환한다. 장밋빛 투자계획을 늘어놓으며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자본은 2009년 초, 투자약속을 이행하기는커녕 자동차 제조기술만 빼간 뒤 일방적인 철수선언을 한다. 중국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정부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고, 이 모든 피해를 정리해고라는 형태로 노동자들이 뒤집어쓰게 되었다.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그들은 결국 평택공장을 점거해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이른바 ‘옥쇄파업’이라 불린 77일간의 처절한 싸움은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섬처럼 고립됐고, 결국 경찰과 용역의 불법적이고 무차별적인 폭력에 의해 진압되고 만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건 큰 싸움이, 노조 단일사건으로는 최대인 94명 구속, 34명 구속수감이라는 쓰디쓴 기록을 남긴 채 또다시 패배로 끝나버린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었다. 전국이 노란 애도의 물결로 뒤덮여 있는 상황에서 쌍용차 사태는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여론에서 증발해버렸다. 강상구 씨는 <당신과 나의 전쟁>의 논평자로 등장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셔서 애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생각 중 하나는 좋은 세상 만들자는 것이다. 그게 정말 올바른 것이었으면 그 물결이 쌍용자동차(공장) 앞에서 넘실거려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인이 공공성을 사고하는 방식

유감스럽게도 먹고살기 힘든 평범한 서민들에게 ‘쌍용차의 전쟁’은 ‘당신의 전쟁’이지 ‘우리의 전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우리의 전쟁’은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이명박 정권이라는 ‘악(惡)’으로부터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분향소를 지키는 등의 애도행위는 ‘우리의 전쟁’은 될지언정 ‘나의 전쟁’은 아니다. 무슨 말일까. 요컨대 오늘날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당신의 전쟁’과  ‘우리의 전쟁’, ‘나의 전쟁’이라는 말은 각각 다른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우리의 전쟁’은 공적인 것이며 대의명분의 문제이거나 좀 더 나아가선 ‘숭고’의 영역에까지 이른다. 반면, ‘나의 전쟁’은 사적인 것이며 먹고사는 문제, 구질구질한 ‘세속’의 영역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하는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담론과 ‘공과 사의 철저한 구분’이라는 고전자유주의적 담론, 거기에 ‘먹고사는 얘기 하는 건 천박한 짓’이라는 식의 이상한 유교사상까지 기묘하게 뒤섞여있는, 그야말로 한국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나의 전쟁’은 곧장 ‘우리의 전쟁’이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계급적·실존적 삶이 공공의 문제로 곧장 ‘번역’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덕을 쌓거나 그게 아니라면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내 전쟁의 정당성을 보증해주어야 나의 전쟁이 비로소 우리의 전쟁으로 승화될 수 있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곧 사회적 문제이며 정치적 의제라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할 때,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가장 피해를 본 서민과 빈곤층이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심지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게 된다. 사회적 약자니까 지지하고 연대해야한다는 식의 태도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야말로 가장 공적인 문제라는 인식, 그것이 ‘나의 전쟁’과 ‘당신의 전쟁’을 ‘우리의 전쟁’으로 만들고 함께 싸워 이길 힘을 줄 수 있다.


*제목, 소제목은 매체에 실린 것과 다름.

2010. 4. 8. 16:07

반복되는 국가의 무능과 '불신' 신드롬

수첩의 메모를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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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태는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국가는 자신의 무능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냈는데, 한미FTA 논란, 황우석 사태, 광우병 논란, 미네르바 신드롬, 용산참사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들(정확히는 그 사건들에 대한 대응)은 국가라는 거대하고 강력한 공적기구가 전능하기는커녕 최소한의 위기관리능력조차 결여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만 불러일으켰다. 이는 진보의 불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관점은 전혀 다르지만, 극우냉전세력이 '국가의 역할'에 가지는 불만, 이를테면 사회각계각층에서 암약하는 빨갱이와 불순분자들을 숙청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국가권력에 대한 불만은 오히려 진보개혁세력보다 더욱 격렬한 양상으로 표현됐다. 음모론은 일종의 관행이 됐고, 각각 좌파 버전과 우파 버전으로 만들어져 유통되었다.

이러한 국가에 대한 신뢰의 위기는 형식민주주의 이전의 정부에서 발생한 대국민 사기극-수많은 북풍공작들과 '평화의 댐' 해프닝 같은 사건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 당시에도 정부의 정보은폐와 여론호도, 극우언론의 선동이 판을 쳤지만, 의도적으로 기획되어 군관언의 합동작전 속에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국가의 '무능'이라기보다 오히려 국가의 '유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불거지기 시작한 국가에 대한 신뢰의 위기에서는 냉전이데올로기가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신 그 자리를 애국주의가 차지하게 된다. 그 애국주의는 악랄한 북괴와 싸워이기기 위해 뭉쳐야한다는 식의 선악논리가 아니라, 세계시장경쟁에서 이겨야한다는 식의 국가경쟁력 담론이다.

국가의 무능이 반복적으로 부각되면 사회담론의 측면에서는 정부 통제 '바깥'의 능력있는 집단(기업, 전문가집단)이나 국가(미국), 혹은 "우리편 전문가"(미네르바)를 호출하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전경련과 경총같은 단체의 선전구호인 '기업은 1류인데 정부는 3류'와 같은 민영화만능주의가 더욱 설득력을 지니는 토양을 조성하게 된다. 개인의 전략이라는 측면에서는 환멸을 느끼고 탈주(이민 등)하거나 영화 <괴물>에서와 같이 직계가족 외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식의 가족주의의 형태로 약육강식의 세계에 적응하려는 태도를 더욱 내면화시키게 된다.

또한, 자신이 믿는 가치의 '정당성을 보증해줄 기구'를 제도 바깥에서 소환하려는 반근대주의적 경향도 짙어진다. 예컨대 촛불집회 막판에 촛불시민들이 다른 시민단체나 운동단체가 아니라 정의구현사제단의 위로에 눈물을 흘리고 전적인 신뢰를 보여준 것, 김용철씨가 삼성비리를 폭로하는 과정에서 의지할 단체로 정의구현사제단을 선택한 것 등은 종교인이 상대적으로 세속적 싸움에서 불편부당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는  '사회제도 바깥의 어떤 초월성'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보증받으려는 태도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국가의 무능은 단순히 어느 정권의 인력풀이 유능하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서, 공식적 권력, 다시 말해 선출된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구조적 요인이 있는게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요인을 제거하지 못하는 한, '천안함'은 영원히, 끊임없이 침몰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2009. 12. 16. 14:29

'아Q84'의 사회 [시사인 118호]


 

장관이었다. 지하철 같은 칸에서 무려 다섯 사람이 동일한 책을 펼쳐들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면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다섯 명의 타인들, 네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이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손에 틀어쥔 책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였다. 그렇게나 많이 팔렸다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가 나왔을 때도, 김훈과 공지영의 신작소설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때조차도 이렇게 ‘달이 두 개 뜬’ 것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 실현됐을 법하지는 않다.

한국어판 로열티 10억 원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화제를 뿌렸던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찍은 분량을 모조리 소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에서 이미 수백만 부가 팔렸고, 한국에서도 몇 달 째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중이다. 일본에서는 <1Q84>와 관련된 책만 벌써 7권 이상 출간되는 등 한일 양국의 독자들이 하루키 월드(Haruki World)의 새 판본에 보낸 지지와 성원은 그야말로 스펙터클할 지경이다. 반면 이른바 문학계의 반응은 기묘하리만치 조용하다. 본격적인 작품비평은 전무하다시피 한데, 단지 <1Q84> 한국판을 낸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학계간지에 작품론과 작가론이 실렸을 뿐이다.


소비하되 해명하지 못하는 이유


대중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는 작품에 대한 문단의 냉담함은 사실 하루키에 국한한 일은 아니다. 국내의 몇몇 작가의 밀리언셀러 소설들이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될지언정 비평과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문학성이 부족해서일까? 비평하고 토론할 ‘꺼리’ 조차 없어서? 물론 그렇지 않다. 가열차게 비평되고 논의되는 작품들의 문학성이 밀리언셀러들보다 압도적으로, 차마 같이 언급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뛰어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답은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있다. 그들은 대중의 지지와 자신의 판단을 정면 대결시키는 게 부담스러운 게다. 대중의 취향을 거스르는 글을 써서 욕을 먹고 분란에 휘말리느니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얘기다. 개인 차원에서야 현명한 대응방식이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하루키의 소설 뿐 아니라 큰 규모로 대중들이 움직인 사회현상 또는 문화현상을 두고 응당 펼쳐져야 할 지적 담론이 이렇게 위축되는 일이 언젠가부터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땅에서 요즘처럼 활발히 토론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여러 매체에는 토론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인터넷에도 비슷한 공간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이런 채널의 다양성과 접근성 자체가 토론의 심화를 방해하는 질곡이기도 하다. 분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주제들이 끝없이 이전 주제들을 뒤로 밀어낸다. 사건들은 사유되기는커녕 소비될 시간조차 부족하다. 한편으로 평균학력이 훌쩍 높아지고 인터넷 사용에 익숙해진 대중들은 스스로를 ‘잘 교육받고 계몽된 주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비판이나 사유를 과거만큼 존중해주지 않는다. 의학, 금융경제 등과 같은 이슈일 경우 아직까지 대중들이 전문가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주지만, 주제가 소설이나 영화, 혹은 사회적․정치적 이슈 등일 경우 훈련된 전문가의 견해가 자신의 개똥철학에 부합하면 옳은 것이고 아니면 ‘공허한 말장난’ 정도로 치부되어 버린다. 어쩌다가 전문가가 대중들의 취향을 비난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대중은 그의 개인신상정보와 과거 실수들 하나까지 찾아내 ‘조리돌림’시켜 버린다.

이러다보니 이쪽 분야에서 전문가들은 아예 대중들과의 접촉 자체를 회피하면서 속으로는 경멸하고, 대중들은 체계 없고 부정확한 지식들을 가지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평론가 행세를 한다. 둘 다 일종의 ‘정신승리법’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우리사회는, 이를테면 <1Q84>라는 소설에 왜 이토록 열광하는지 스스로 해명하지도 못하는 아Q가 됐다.

*2009년 12월 9일 작성.
**제목은 매체의 것과 다름.

2009. 12. 16. 14:27

자기소개서에 관한 짧은 명상 [시사인 114호]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글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쓰기 까다로운 놈이 하나 있다. 바로 자기소개서다.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취직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쓴 적이 많은데 그때마다 진땀을 뺐다. 문제는 그렇게 힘들여 썼음에도 초등학생의 작문만도 못한 글이 되기 일쑤였다는 점이다. “나는 19xx년 부산에서 단란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운운 하는 전형적인 서류전형 탈락자의 자기소개서에서부터, 자기소개서의 아방가르드라 할 만큼 파격적인 형식실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버전의 자기소개서를 써봤지만 내용은 대동소이 허접스러웠던 것이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동네 백일장을 휩쓸며 어디 가서 글 못쓴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던 나로서는 참기 힘든 굴욕이었다. 왜 그럴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다가 떠오른 이유는 “내 인생이 서사화하기엔 지나치게 굴곡 없이 평탄하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한 마디로 내 인생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아슬아슬한, 절체절명의 고비나 갈등 따위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너무 따분해서 하품이 나오는 인생이다. 잘 먹이고 잘 입히며 고생 없이 키워주신 부모님이 갑자기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몇 해 뒤 우연히 어떤 주제에 대해 자전적인 에세이를 한편 쓰게 됐을 때,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기소개서와 달리 그럭저럭 읽을 만한 물건이 나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자기소개서가 늘 그 모양 그 꼴인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다.


‘상품이 아닌 서사’를 위해


그것은 자기소개서라는 독특한 형식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오직 취업을 목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과거를 전시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어떠한 여백이나 외부가 없다. 그 어떤 공감도, 신비도 없다. 발가벗겨진 상품 하나가 뎅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이런 형식과 맥락 속에서 한 개인의 서사가 개별의 가치와 생기를 지니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자기소개서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나에게 괴로운 일이었던 것은, 그것이 오직 하나의 목적에만 봉사하도록 틀 지워진 글이기 때문이며, 어떤 쾌락의 여지도 주지 않은 채 내가 나의 삶을 타자화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소개서가 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조바심을, 성찰이 아니라 상찬을, 사유가 아니라 소외를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믿지 않는 것 같지만, 인간은 과거에도 지금도 ‘효용을 계산하는 기계’보다는 ‘수다 떨기 좋아하는 동물’에 더 가까운 존재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기쁨을 느끼고 보다 풍성해지는 존재인 거다. 세계적인 석학 리처드 세넷은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삶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되면서 “사람들 삶의 서사가 끊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올바로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짜리 분석이다. 왜냐하면 엄청난 환경적 재앙을 야기하며 구가된 과거 서구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존재했던 ‘삶의 서사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라는 기묘한 형식의 글을 보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따라서 단순히 “삶의 서사를 회복하자”는 것이어선 안된다. ‘상품이 아닌 서사’를 상상하는 것, 자본주의의 외부 혹은 비상구를 꿈꾸는 그러한 전복적 상상력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2009년 11월 11일 작성
**제목은 매체의 것과 다름.

2009. 12. 16. 14:25

신자유주의, 지구온난화, 그리고 MB [시사인 110호]


 

카페 구석진 소파에 앉아 멍을 때리다 보면, 사람들이 무섭게 똑똑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들어봐도, 그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들어봐도 그렇다. 다들 외국어도 곧잘 하고 상식과 문화적 소양도 풍부하다. 셔츠에 김칫국물을 묻힌 어떤 아저씨가 며칠 전 폴 크루그먼의 블로그에 올라온 농담을 인용하며 MB정부를 슬쩍 비꼴 때,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젊은 세대는 말할 나위도 없다. 체 게바라에서부터 5세대 아이팟 나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르는 게 없다. 오죽하면 소설에 이런 대목이 등장할까.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김영하, <퀴즈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이제 더 윤리적이기까지 한 것처럼 보인다. 스타벅스같은 다국적 커피체인에서 커피를 마시기보다 공정무역커피를 마시는 ‘착한 소비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고, 뉴스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떠들어댄다. 그 뿐인가. 이제는 기업이 돈만 벌겠다고 덤벼서는 망하기 딱 좋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착한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요즘 잘나간다는 경영학자들이 입을 모은다.

더욱 놀라운 점은 지난 10여 년 동안 불안정노동을 폭발적으로 양산시키고 거리에 나선 비정규노동자를 폭력진압하고 한미 FTA를 밀어붙였던 정권들에게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그 정권들을 열심히 옹호했던 사람들조차, 정권이 바뀌자마자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흉은 바로 신자유주의와 MB정권”이라고 핏대 세워 호소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필요한 건 선명성이 아니라 구체성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빵빵한 지식과 윤리의식까지 갖춘 시민들이 이렇게나 늘어났는데 어째서 세상이 이 모양인 걸까. 어째서 촛불은 꺼지고 MB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걸까. 뉴스 보다가 열불이 터지는 건 MB 때문이며,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신자유주의라는 사실은 요즘의 기묘한 날씨가 다 지구온난화 때문인 것만큼이나 명백한 일이다. MB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간단한 상식을 정말로 모른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신자유주의, 지구온난화, MB,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우리가 처한 사회적 문제들 거의 대부분이 설명된다. 참 선명하고 편리하다. 하지만 그 설명은 사실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너무 추상수준이 높아서 정보값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념과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식의 설명은 “날씨가 참 좋네요” 보다도 무의미한 말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에 대해, 지구온난화에 대해, 그리고 MB에 대해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정보들 중에서 엄밀히 검증된 것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사회의 모순을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태도는 과학적이지도 않거니와 대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그런 태도는 초월적 지성을 가진 집단이나 개인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으로 귀결되거나 신자유주의가 사라지면, MB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물구나무 선 미륵신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건 현란한 개념어나 최신정보의 습득 따위가 아니다. 이를테면 과연 우리가 옆집 아주머니에게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를 발설하지 않고 신자유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가다.


*2009년 10월 13일 작성.
**제목은 매체의 것과 다름.

2009. 5. 14. 02:08

촛불의 매트릭스: 한국형 평등주의 보론


내가 만든 용어 중에 '88만원 세대' 말고는 변변한 '히트상품'이 없지만, 그나마 좀 알려진 게 '한국형 평등주의'다. (참고: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96 )  작년 10월쯤 쓴 글이니까 촛불이 정점을 찍고 내려왔을 무렵이다. '촛불은 대체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다시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독특한 평등주의는 '사회구성원의 불평등'을 문제삼기보다 '부자'와 '나' 사이의 불평등만 문제삼는 평등주의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부자아빠 평등주의''이기적 평등주의'랄까. 꽤나 냉소적인 단어이지만, 단지 냉소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은 아니다.

강준만은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한 한국사람들이기에 사회문제에 있어서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각개약진하려고 한다"면서 '협동의 문화' 반대편에 '한국형 평등주의'를 놓는다. (http://sun4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23) 물론 그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형 평등주의의 원인과 그 결과를 좀더 세밀하게 분석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언제든 '속류 한국학'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공적 영역과 공인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하다"라는 건 단지 현상을 다른 방식으로 기술한 것일 뿐, 한국형 평등주의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형 평등주의를 근대 한국인의 고유한, 그리고 나쁜 습속으로 환원해버리면 결국 협동의 문화를 기르자는 식의 계몽성 캠페인으로 귀결되고 만다.

그럼 한국형 평등주의, 부자아빠 평등주의, 이기적 평등주의의 배경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중간계급의 양극화'다. 그 기원은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이와 연결된 개혁정권 10년에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간 동안 서서히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졌던 중간계급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단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기인식의 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한다. 정치적 자기인식은 1987년의 민주화운동의 주요 동력 중 하나라는 사실로 집약되고, 사회문화적 자기인식은 KBS의 1991년도 드라마 제목인 <우리는 중산층>으로 상징된다. "우리가 한국사회의 주류'라는 자부심도 이때 형성되었다. 전통적인 블루컬러 노동계급 중 조직화한 일부는 중간계급적 라이프 스타일로 점차 수렴되어 갔다. 이때 한국에서 평등주의라는 것은 '전국민이 중간계급이 되는 것'이다. 기준은 명백했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중간계급의 짧았던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은 1997년 외환위기라는 외상적 사건에 의해 1차적으로 종결된다.

이후 10년, 이른바 개혁정권 10년은 극심한 사회경제적 구조변화를 통해 '덩어리'가 해체되는 기간이었다. 그 와중에 중간계급 중 상당수가 저소득층으로 떨어졌고, 일부는 위로 올라섰다. 물론 중간계급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지만 이미 '소셜 스탠더드'로서의 의미는 사라져버렸다. 그렇게나 행복해보이던 이웃집 아저씨가 정리해고당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멀쩡히 잘살던 친척이 카드빚으로 노숙자가 되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삶 자체의 불안이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 새로운 삶의 문법이 됐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철저히 깨닫는다. 다같이 잘 먹고 잘 살수 있다고 믿었던 아름다운 시절은 끝나버렸다. 이제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부자 아빠냐, 아니면 자살하는 아빠냐.

'먹고사니즘'은 그리하여 숭고의 영역에 올라서고, 밥벌이의 지겨움은 삶의 예술로 승화한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출신 저술가인 이시카와 마스미가 기성세대가 된 전공투 세대가 일상에서 보여주는 행태를 '생활보수주의'라 이름붙인 적이 있다. 중간계급이 된 소위 386세대의 먹고사니즘은 생활보수주의와 절묘하게 겹친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위해 운동했던 그들조차 이제 부자와 나 사이의 불평등에만 반응한다. 그러면서 이제 이념의 시대는 끝났고 경제의 시대라고 말한다. 아직도 평등과 해방을 말하는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친구야, 밥은 먹고 다니냐?" 아직도 냉전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수구꼴통'들에겐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사람은 못되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 이런 식의 '합리성'과 '가치중립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대타자를 향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 대타자는 미국도 아니고 옛소련도 아니다. 다름아닌 시장규율이다.

한국형 평등주의는 단순히 개인의 이기심을 노골적으로 노출해서 문제인 게 아니다. 한국인이 '신자유주의적 시장규율을 내면화하는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에 문제적인 것이다. 정치를 '평등의 과정'이라 정의할 때(랑시에르), 한국형 평등주의는 정치를 대체하는 논리로 기능한다. 물론 당위적 차원에서는 시장논리가 정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1997년, 그리고 이후 10년의 경험칙이 그 당위를 정면에서 부정한다. 1987년의 에너지가 탄생시킨 정치권력이 시장권력을 통제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피부로 절감했을 때, 생활인들은 현실을 깨닫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규율을 바꿔 적응하려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적응의 규율이 일종의 상식으로 일반화되었을 때, 이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적응하려 하지 않는 자, 혹은 집단에 대한 배제의 논리로 표현된다. 따라서 한국형 평등주의가 가리키는 것, 또는 그 필연적 결과물은 이것이다. '정치가 불가능해지는 지점', 그리고 탈정치의 이데올로기적 조건.

탈정치는 제도정치(국회의원들의 활동 등등)와 공공성에 대한 혐오와 냉소에서 곧장 발생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경제라는 영역과 정치라는 영역 간의 '관계'에서 출현한다. 요컨대 정치권력이 압도적 시장의 힘에 의해, 그리고 오직 그에 대비되어서만 상대화된다는 것이다. 이 때 경제와 정치의 선언적 분리(물론 이 분리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불가능하다)가 선행한 다음, 경제에 대한 정치의 개입이 더이상 정당화되지 못하는 시점, 다시말해 경제는 보편성을 획득한 반면 정치는 주관성, 당파성, 부패와 불투명성, 사익추구로 프레이밍되었을 때 비로소 탈정치가 현현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008년 촛불집회의 슬로건이었고 주제가였던 헌법 제1조가 기묘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열린다. 알다시피 헌법제1조 1항과 2항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혹자는 헌법 제1조가 촛불집회에 등장한 걸 두고 "모호하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무엇"으로 보기도 하지만, 과연 그럴까. 헌법은 사실명제의 형태로 당위명제를 주장하고 있다. 헌법 제1조 2항이 사실명제라면 아마 이래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시장에 있고 모든 권력은 시장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선언은 정치가로서 무책임한 것이었지만 관찰자로서 정직한 것이었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대부분의 국민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만약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중간계급이 정말로 관철해야할 당위로 '믿었다면', 헌법 제1조를 목놓아 외칠 필요조차 없다. 100만명이 청와대로 몰려가서 그냥 권력을 접수하면 된다. 중간계급은 헌법이라는 낡은 대타자를 온전히 '믿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시장합리성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은 이것이 진짜 문제다. 그러므로 촛불시민들이 헌법 제1조를 노래하며 이명박에 분노했던 진짜 이유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이명박 대통령, 당신은 사실 최고권력자가 아니야. 왜냐하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지 오래거든. 넘버투 주제에 우릴 이렇게 무시해?"  제1권력인 시장권력과 매순간 소통하는 소비자-시민 입장에서, 귀와 눈을 틀어막은 저 이명박이란 이름의 정치권력은 얼마나 분통터지는 존재인가.

촛불은 중간계급의 불안이 물화한 사건이다. 그 불안은 정확히 말해서 계급적 인식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명박이 '대한민국 주류시민'의 신념체계를 훼손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그 신념체계는 민주주의에 대한 소박한 믿음 따위가 아니라 내면화된 시장 합리성이다. 중간계급에게 이명박은 오소독스한 시장주의자이긴커녕 글로벌 스탠더드를 완전히 무시하고 권력을 사적으로 전유하려는 자였다. 희망적인 건-이걸 희망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그 합리성만으로는 이명박을 거꾸러뜨릴 수 없다는 게 증명됐다는 점이다. 촛불에 참여한 중간계급 중 일부가 노동계급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점은 그래서 의미 있는 것이다. 

2009. 4. 28. 15:12

강남에 왜 김밥천국이 많을까

          '우여곡절' 끝에 오마이에 실렸다. 원고 쓴지 4일이 지나버린 시점..orz
          (경향, 내 이 은혜 잊지 않으마.)
          오후 3시 현재 '가장 많이 본 기사' 10위에 턱걸이. 사회면에선 3위.
          무거운 주제에 비하면 나름 선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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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에 왜 김밥천국이 많을까?

          ['질주' 릴레이 기고 ①] 다중과 고통 받는 비정규직, 연대를 꿈꾼다

          박권일 

          재벌들이 모여 예비 노동자들의 초임을 대폭 삭감한다고 발표해도, 정부가 '비정규직 고용 4년 기간연장'을 밀어붙이려 해도, 정규직 노조의 입에선 '말이라도 총파업' 선언조차 나오지 않는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 촛불시민, 지식인, 백수까지 나섰다(밝혀두건대 필자는 30대 초반의 백수다).

          각자가 처한 상황의 작은 차이를 넘어 서로 어깨를 걸었다. 모르는 이가 보면 영락없는 오합지졸이다. 하나의 깃발 아래,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인 '철의 노동자' '강철대오'와는 영 거리가 머니 말이다. 대신에 우리는 형형색색의 퀼트 천처럼 자신을 엮어 하나의 깃발이 됐다. 그것이 바로 모두의 삶을 처참하게 찢고 있는 불안정노동, 일하고 또 일해도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의 악순환에 맞서 싸우기 위한 질주,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 프로젝트다.

            
          지난 2월 14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비정규직·최저임금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우성

           프로젝트 '질주' : 연대의 새로운 방식

           2009년 4월 21일, 프로젝트 '질주'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첫 번째 목적지인 대구를 향해 출발했다. 대구-구미-서산-광주-평택-안산-인천-서울로 이어지는 9박 10일 여정의 시작이었다. 이주노동자와 장애노동자를 포함해 전국의 불안정·미조직 노동자들을 만나고, 투쟁사업장에서는 같이 집회도 하는 것이 일정의 주된 내용이다.

           한마디로 가장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는 곳에 달려간다는 게 기본취지다. 이 전국 순회라는 개념은 과거 전해투(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의 단골메뉴였다. 해고노동자들이 전국을 돌며 다른 사업장의 해고노동자들을 만나고 서로 연대하는 형태였다. '질주'도 형식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구성원의 다양성이다.

           동희오토, 기륭전자, 코오롱과 같은 2000년대 중후반 노동운동의 상징격인 해고노동자 뿐 아니라, 진보신당 등의 정당, 촛불시민연석회의 등의 자발적 참여시민, 르포작가, 블로거, 백수, 소설가, 대학교수 등 다양한 직업과 계층에 속한 개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자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호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규직 노동자도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으며, 제조업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자영업자, 학술노동자, 예술노동자도 있다. 이념지향은 대체로 진보적이지만 의외로 보수적인 사람도 있으니 역시 하나로 묶을 수 없다. 대체 이들 집단을 뭐라 불러야 할까.

           스피노자가 '발견'했고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가 20세기 후반 새로이 조명한, '다중(多衆 multitude)'이 현재로선 가장 가까운 명칭이 아닐까 싶다. 수동적이고 획일화된 '대중(mass)'과 달리 자신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공통의 가치를 위해 능동적으로 네트워킹하고 연대하는 집단, 그것이 바로 다중이다. 과거에 노학연대 혹은 지식인-노동자의 연대사업은 각 소속집단의 의결에 의해 참여가 결정되었고, 연대의 방식이나 기간, 참여주체의 선별까지도 '조직의 결단'에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질주'의 참여형태는 조직적 결의와 개인적 결단이 혼재된 형태다. 물론 네트워크의 노드(node 결절점), 다시 말해 제각각인 사람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모이게 하는 역할은 존재한다. '질주'의 상황실장이자 진보신당의 비정규담당인 이상욱씨다. 하지만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그가 단순참여자가 되고 이번에 참여한 사람 중 하나가 자발적으로 이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모든 과정에서 온라인 활동은 필수요소다. 어쨌든 기존 대형노조의, 조직노동자 중심의 연대활동과는 사뭇 다른 방식임은 분명하다.

           단장님 실종사건

           첫날인 21일 오후 대구에 도착했을 때 일행이 버스에서 처음 내린 곳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 정문. 이주노동자 폭력단속을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최근 동영상이 공개돼 파장을 낳았던 중국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무참한 폭력이 새삼 떠오른다. 어디 대전뿐이랴. 전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법무부 직원들의 '법보다 주먹' 앞에 속수무책이다.

           등록된 이주노동자이건 미등록 이주노동자이건, 그들의 처지를 개선시키지 않고선 비정규노동자의 처지도 개선될 수 없다. 그들이 사실상 한국의 최저임금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를 자신들의 안전판으로 여기고 방관한다면, 지금 한국의 정규직 노조들처럼 정당성을 잃고 고립되는 건 시간문제다. 누구보다 기업이 이 사실을 귀신같이 알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회를 마치고 숙소인 건설노조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질주실천단' 단장이 보이지 않는다. 기아자동차 모닝의 생산공장이자 100% 비정규직 사업장으로 '악명'이 자자한 충남 서산의 동희오토. 한국 비정규노동문제의 핵으로 떠오른 그곳 사내하청 지회장인 이백윤씨가 '질주'의 단장이다.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이 바로 그였다.

           얼마 전 서울모터쇼에서 모닝 자동차에 돼지피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멋지게 성사시킨 서른둘의 '훈남'이다. 자연스럽게 단장으로 추대돼 9박 10일을 끌어가게 됐다고 한다. 저녁식사 자리에서야 그의 근황을 들었다.

           "이백윤 단장은 지금 서산경찰서 유치장에 있습니다. 구속적부심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해요."

           이상욱 상황실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전해준 소식.

           "모터쇼에서 선지피 좀 뿌렸다고 잡아간 건가요?"

          "아뇨. 그 건은 아니고 작년 12월에 미신고로 집회한 걸 가지고 검찰이 구속기소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유치장에서 아무런 저항도 안 했는데 경찰한테 집단폭행을 당했답니다. 꽤 다친 것 같은데요, 부상치료 요구는 묵살됐습니다."

           4개월 전의 미신고 집회 건으로 지금에서야 구속적부심이라니, 서산경찰 전원이 넉 달 동안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왔단 말인가. 하여간 서울경찰이나 서산경찰이나 사람 두들겨 패는 건 일등이다. 참가자들끼리 자기소개를 하고 회의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이백윤의 선한 얼굴이 아른거린다. 밤 11시 쯤 그가 끝내 구속되고 말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프로젝트 첫날부터 단장 구속이라니, 이놈의 나라가 제대로 '환영인사'를 해주는구나 싶어 오기가 생긴다.

           뜻밖의 사태로 첫발부터 단장이 공석이 되는 바람에 새로 뽑아야 했다. 같은 동희오토의 조합원인 이청우씨가 단장을, 기륭전자의 윤종희씨가 부단장이 됐다. 둘 다 군기 팍팍 잡는 스타일이라 좀 무섭다. 다음날 오전 6시부터 분단위로 일정이 이어진다. 일정표를 모니터 너머로 보던 내가 투정 한마디 한다.

           "이건 뭐 A급 연예인 스케줄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낄낄대며 한마디씩 거든다. 예상치 못한 비보가 있었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밝다. 수년간 거리에서 싸워온 사람들 특유의 낙천성, 그들을 보며 자신의 삶도 함께 변하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함이 기분 좋게 섞여든다. '질주'의 첫날은 그렇게 깊어갔다.

           '포맷'되는 노동자, 반복되는 비극

           대구엔 성서공단이라는 큰 공단이 있다. 1980년대 1차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해서 2000년대에 4차 단지까지 생겼다. 울산처럼 고부가가치 금속산업에 특화된 지역이 아니라 영세사업장들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는 곳이다. 2500여개 업체의 80% 정도가 50인 이하 기업이고, 6만 여 노동자 중 불과 130여명만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다.

           대구 특유의 보수주의까지 작용해서 노조설립은 물론 가입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세사업장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극한의 노동환경에 처해있다. '질주'와 조우한 성서공단 노동조합의 박찬희 위원장은 성서공단의 불안정노동자를 "경제위기에 가장 고통받는 노동자"라고 정의한다.

           "전자부품, 섬유, 기계, 생활용품에서 어묵에 이르기까지 업종도 천차만별입니다. 특히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가 많습니다. 1%가 채 되지 않는 노조조직률에서 무법적 해고는 일상다반사예요. 성서공단에서 한국의 노동법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집에서 쉬세요. 일거리 생기면 다시 부르겠습니다'라는 일방적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자 노동조합에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물으러 옵니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그리고 불법적으로 해고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전태일이 일하던 1970년대 평화시장, 1980년대 구로공단, 2000년대 성서공단…. 아침에 주인공이 일어날 때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이 무한히 반복되는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친재벌·반노동이라는 '국가종교 제1교리'와 결합해서 10년에 한번 꼴로 노동환경을 글자그대로 '포맷'해 왔다. 10년간 조금씩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는가 싶으면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국가와 기업집단은 그 위기를 핑계로 10년의 진보를 단번에 '무(無)'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려 버린다.

           1970년대 '공순이'란 사회적 경멸과 성차별, 인권유린에 시달리면서도 동일방직 사태의 주역으로 우뚝 섰던 여성노동운동의 기념비적 세대는 2009년 현재, 최저임금을 받으며 빌딩과 대학교의 청소용역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야만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게 바로 야만이다. 그 야만은 또한 지방도시의 외딴 공장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 비정규 노동자가 넘쳐난다.

           이민을 떠나지 않는 한, 정규직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온전히 그 불안과 공포에서 도망칠 수 없다. 이미 대한민국 자체가 거대한 비정규노동의 현장이며 참혹한 삶의 공장이기 때문이다. '질주' 프로젝트가 마지막 이틀을 보낼 장소가 서울인 건, 단순히 서울에서 일정을 시작해서가 아니다. 서울이 곧 현장이어서다.

           가장 돈 많은 지역에 저가 음식 가게가 많은 까닭은?

            
          김밥 집의 다양한 차림표. 1000원에서 2000원으로 한끼를 떼울 수 있는 이와 같은 저가 김밥전문점들이 강남에 무수히 많이 생겼다.
          ⓒ 오승준
          제조업의 산업주도성이 점차 쇠퇴하고 소위 지식기반경제가 심화될수록, 노동문제의 '현장'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른바 글로벌라이제이션과 포스트 포디즘의 특징인데,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 문제이고 서구 도시사회학에서는 핵심테마가 된 지 오래다. 이제 일터는 극소수의 '핵심 노동'과 절대다수의 '주변부 노동'으로 극단화한다.

           중간층 노동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며 이는 중간계급의 붕괴 혹은 분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쨌든 1명의 엘리트가 먹고 입고 놀고 소비하는 것을 보조하는 '밑바닥 노동'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그런 노동은 대체로 단기 아르바이트와 같은 저임금 불안정노동이 된다.

          그런 노동자들은 과거 중간계급처럼 대도시 주변의 위성도시에 거대한 베드타운을 형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안되기 때문에 대도시의 열악한 주거지역에 거주하게 되며 그런 지역은 점점 슬럼화하기 시작한다. 엄청난 부를 벌어들이는 신흥엘리트들은 중간계급의 주거지역보다 도심에 급격히 늘어나는 펜트하우스를 자신의 여러 거처 중 하나로 삼는다.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노동자 집단이 같이 일하고 또 생활하는 셈이다.

           서울이 이런 형태의 도시가 되어간다는 단적인 예가 있다. 강남 핵심지역에 있는 엄청난 숫자의 '김밥천국'이다. 김밥천국이라는 특정상호가 아니더라도 1000원에서 2000원으로 한끼를 떼울 수 있는 저가 김밥전문점들이 강남에 무수히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 지역에 이런 점포가 많은 건 무엇을 시사하는가.

           한끼 식사에 평균 이하의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비강남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강남은 훨씬 이질적인 계급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고시텔과 같은 열악한 주거형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근거 중 하나다.

           즉, 서울 강남은 드러나지 않을 뿐 울산이나 서산 못지않은 각종 노동문제의 화약고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문제는 결국 불안정노동의 문제이며, 불안정노동은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 뿐만 아니라 전문직군이라 불리는 금융서비스업, IT산업, 사교육산업 등의 공식경제 부문은 물론 비공식경제에 발을 걸친 각종 오락·향락산업에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된다. 따라서 이 모든 곳은 불안정노동의 '현장'이고 '공장'이다.

           '질주' 프로젝트는 '현장에 내려가서'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에게 손 내밀어주는 온정사업이 아니다. 이 문제를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알리는 데 그쳐서도 안된다. 이건 우리 모두가 처한 어떤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체감하는 여정이다. 노동의 비정규화는 단지 일부 지역에서 고통받는 몇몇 노동자의 현안이 아니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규정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고통분담 운운하며 비정규직을 늘리고 대졸초임을 깎아내는 저들은, 설령 우리가 불안과 공포에 굴복해 안구와 신장을 팔고 영혼까지 내어주어도 결코, 결단코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19688

          2009. 4. 13. 01:12

          박연차 로비사건: 민주화운동세력의 도덕성에 관하여


          로비사건은 결국 노 전대통령 패밀리의 스캔들이 됐다. 수사중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언론에 나온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다. '충격'이라는 건 충격적일 정도로 낯익은 풍경이라는 의미다. 한국땅에서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들의 운명은 늘 그렇게 비슷하다. 뭔가 예감했던 것인지 사건이 불거지기 얼마 전에 그는 "정치 절대로 하지 마라"는 말을 남겼는데, 결국 이 말은 정치인 노무현이 남긴 마지막 충고가 됐다. 어쨌든 이로써 '노무현의 시대'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는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으로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세력에 아무런 부채감을 갖지 않게 될 것"이고 그것은 한마디로 "민주화운동세력에게 재난적 상황"이라고 말한다. 일견 틀린 이야기는 아니며 민주화운동세력에 속한 사람들이 대체로 동의할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상적인 시각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런 시각을 비판하는 세 가지 논점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민주화운동세력의 대표성이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에게 있는가'라고 되묻는 경우. 즉 이것은 노무현 시대의 종막이지 민주화운동세력의 종막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입장은 '우리들이야말로 민주화운동세력의 적통을 잇는다'고 생각하는 세력 중 일부가 품을 법한 시각이다. 혹은, 노동운동세력과 좌파들이 동참했던 민주화운동의 과실을 특정세력이 모두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일부의 시각일 수도 있겠다. 따지고보면 노무현 정권에 핵심에 들어갔던 이른바 '386세대'들은 민주화운동 당시에 '주류'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식의 주장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비겁하다. 좌파들이건 민주화운동세력의 주류이건간에 민주화운동세력/독재-산업화세력의 구도 속에서는 모두 민주화운동세력에 포함되는 건 분명하며, 직간접적으로 정권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고 상당수는 정권의 유지에 협력해온 게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시대가 이런 식으로 끝났다고 해서 '사실 그들한테는 민주화운동세력의 정통성이 없었어'라고 말하는 건 그저 졸렬한 책임회피 밖에 되지 않는다.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최악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을테지만, 그걸 입 밖에 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둘째,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세력에 아무런 부채감을 갖지 않게 된 시점이 정말로 지금에 와서인가, 박연차 로비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서야 민주화운동세력이 "재난적 상황"을 맞은 거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지금, 2009년 4월 중순이라는 시점에서 민주화운동세력이 재난적 상황에 처한 것 자체는 맞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박연차 로비 사건 이전에 민주화운동세력은 이미 재난적 상황이었다" "부채감 따위는 참여정부 5년 동안 말끔히 날아갔다"고 말이다. 민주화운동세력이 보기에 정말 '말도 안되는 인물'이었던 이명박이 큰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가 아닌가. 부채감은커녕,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온 기간이 '개혁정권 10년'이라면 어쩔 것인가. 물론 이에 대해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부채감은 도덕성 차원의 문제고, 참여정부에 대한 불신은 능력 차원의 문제이니 서로 다른 문제'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예전부터 의문스러웠던 게 있다. 정말로 민주화운동세력이 도덕성에서 우위였기 때문에 지지를 얻어온 것일까. 그것은 혹시 어느 순간부터 민주화운동세력 스스로가 자신에게 부여한 셀프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다시말해 현재 민주화운동세력이 처한 재난적 상황의 중심에 도덕성 문제가 놓여 있다는 주장은 과연 옳은 걸까.

          세번째 비판은 두번째와 연결되는 것이며 이런 의문에 관한 거다.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세력을 지지했던 이유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과연 부채감이었냐는 것.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민주화운동세력의 이러한 '자기인식의 불철저성'이야말로 위기의 진짜 원인일 수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민주화세력은 더 도덕적이지만 국가운영능력은 상대적으로 미흡하고, 산업화세력은 비도덕적이지만 국가운영능력은 낫다'는 식의 일종의 비교우위적 인식구도가 정말로 한국사람들의 정치적 지지를 추동하는 보편적인 인식틀인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다. 김영삼정부(독재세력과의 야합이었지만)까지 포함하면, 물경 15년간 민주화운동세력의 상징적 인물이 잇달아 국가의 수장이 되어 나라를 운영해왔는데(게다가 퇴임 후엔 여지없이 가족비리사건이 터졌다), 국민들이 단지 부채감 같은 이유로 지지하고 당선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사실 부채감이란 건 대체로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정서다. 일반적인 생활인들은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 게 익숙치 않다. 사람들의 생각은 이런 쪽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그동안 너무 오래 고생했어. 이 사람들 '한'도 풀어줘야지."

          한풀이와 도덕적 채무의식을 청산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비록 도둑놈이라도 크게 한을 품고 죽으면 그걸 풀어주고 싶어하는 게 한국사람 정서다. 한풀이나 부채감 청산이나 모두 도덕판단의 일종이긴 한데 전자가 유니버설한 시혜에 가깝다면 후자는 기본적으로 호혜성(기브앤테이크)에 닿아있는 문제이고 그래서 일종의 교환 형식을 띤다. 현실은 전자였을 수도 있고 후자일 수도 있고 양쪽 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설령 사람들이 부채감과 죄의식 때문에 지지해 줬다고 치자. 그 채무관계는 두명 혹은 세명의 대통령 당선으로 청산된 것이다. 문제는 별다른 고민없이 자신의 도덕성에 과잉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딴 건 몰라도 이건 우리가 낫다'는 식의 자부심으로 그치면 좋은데 그것이 우월의식으로 왜곡되는 게 문제다. 그것은 민주화운동세력처럼 살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의 죄의식만 자극할 뿐이고 그것이 지나치면 '뭔가를 더 갚아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외면과 냉소로 흐르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자신의 도덕성을 다른 잘못들의 알리바이로 이용하는 것이다. 참여정부를 비롯해 민주화운동세력 대다수가 이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민주화운동세력이 상대적으로 도덕적이란 이미지는 실제로 그들 대다수가 도덕적이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며 분명 국민들로 하여금 호의적 평가를 하게 만든 이유다. 그러나 한국제도정치에서 그것은 플러스알파의 요소지, 지지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돈 안받아먹는 것, 물론 중요하다. 더이상 전직 대통령의 비리가 이렇게 폭로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돈 안(덜) 받아먹은 도덕성만이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정당화 기제가 된 상황 자체가 이미 '막장'이라는 얘기다. 그 상황을 제로베이스로 놓고 치열한 반성을 했어야 하는데 '전가의 보도'같은 도덕성이 이렇게 무너진 지금이 돼서야 패닉에 빠지거나 재난적 상황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장례식에서 망자의 관에 못질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설상가상 유시민은 박연차 로비사건이 터진 사건 이후 "노무현 대통령을 모신 시간은 큰 영광이자 행운""이번 사태는 민주당 재보선에 오히려 호재" 등의 발언을 하고 있다. 박연차로비사건이 재난이 아니라, 이 모든 풍경들의 총합이야말로 진짜 재난적 상황 아닐까. 민주화운동세력이 정말 우려해야하는 건 국민들의 부채감이 사라지는 따위가 아니다. 정상정치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되려 민주화운동세력이 '아직까지도' 부채감 같은 것에 의지하는 걸 비판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정말 우려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이 운동할 때 했던, 그리고 정치할 때 했던 약속과 공약의 대부분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정권핵심세력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긴커녕 눈알을 부라리며 합리화는 데 바빴다. '노무현 너마저!"라는 탄식과 분노 뒤로 참여정부, 그리고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냉정하고 집요한 역사적 평가와 비판이 생략되거나 소홀히 취급되어선 안되는 이유다.


           
          2009. 3. 1. 15:29

          20대는 어디서 싸워야 하는가


          대졸초임삭감은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반복된 '20대 죽이기'의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이에 맞서겠다 마음먹은 20대는 어디에서 싸워야 하는가. 전경련? 국회? 청와대? 아니다. 민주노총이다. 자본주의가 끝장나기 전까지, 계급투쟁을 해야 한다는 명제는 언제 어디서나 옳다. 그러나 그것이 '계급간투쟁'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계급투쟁의 대부분은 사실 내부에서 자신의 몫과 자리를 요구하는 계급내부투쟁이며, 그런 '교통정리'가 선행되지 않는 계급간투쟁은 시작할 것도 없이 분열과 패배를 뜻한다.

          현재 한국의 조직된 노동계급은 부르주아와 일대결전을 벌일 역량도 의지도 없다. 한편 한국의 부르주아는 이 거대하고 급박한 위기국면에서 유례없이 살벌한 생존경쟁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다. 도무지 계급간투쟁 씩이나 할만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20대 몇몇이 전경련 앞에 가서 항의해봐야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남루한 미래가 거의 확정된 이들 '불안정노동 예비군'이 어딘가에 '드러누워야' 한다면, 그 장소는 민주노총이어야 한다. 그곳에 드러누워 노래를 부르고, 함성을 지르고, 반성과 실천을 요구하고, 자신의 몫을 주장해야 한다.

          한국의 20대는, 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노동자가 아닌 CEO가 될거라 야무지게 착각하고 있더라도, 예비노동자의 미래를 깡그리 파괴하는 상황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조직노동자들의 대표집단에 그런 요구를 할 권리가 있다. 아무리 그 요구와 주장이 순진할지라도, 그 행위 자체가 한국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커다란 상징효과를 연출하며 돌이킬 수 없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20대의 그런 행동을 완전히 외면하기 어렵다. 아직은 그런 감수성과 인식이 다소나마 남아있는 조직이기도 하거니와 민주노총 입장에서도 지금처럼 철저히 무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차라리 20대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나아가 20대의 설익은, 그러나 처절한 절규를 정말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민주노총은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붙잡을 수도 있을테다. 그러니 이것은 단순한 적대가 아니라 '상생전략'이다.
          2009. 1. 30. 11:04

          88만원 세대론이 우물에 빠진 날

          <레디앙>에 실린 글 의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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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만원 세대론이 우물에 빠진 날

          *존칭을 생략하니 양해 바랍니다.


          88만원 세대론이 결국 우물에 뛰어들고 말았다. 그것도 <조선일보>가 파놓은 '독우물'에. 오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최근 일어난 어떤 사건 때문이다. 글이 좀 긴 편이니 사태의 전말을 일단 한 줄로 요약하자. '<조선일보>가 한껏 띄우고 있는 어떤 세대담론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우석훈이 <한겨레> 지면을 통해 격려와 지지를 보낸 사건'이다. 사실 극우언론이 진보담론을 멋대로 전유하고 이용하는 게 어제오늘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모종의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가지고 미리 세팅해놓은 담론구도에 다른 사람도 아닌 우석훈이 자진해서 발을 담갔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짚어두자. 나는 88만원 세대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으로서 어떤 소유권을 행사하려는 건 아니다. 그 책을 읽은 개인들이 어떤 식으로 이 말을 소화하든 그것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한 개인이 아닌 <조선일보>라는 언론매체에서 기획연재를 맡은 변희재가, <88만원 세대>의 우석훈을 간접 동원해서 88만원 세대론을 기묘한 방향으로 비틀어놓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웃고 넘어갈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이런 글을 써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한동안 함께 작업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지식인인 우석훈에게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이 영 불편하고 어색하다. 공저자 두 명의 시덥잖은 갈등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이쯤에서 '전선'을 좀 명확히 그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무엇보다 나는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이 아직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조금 더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은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일말의 진보적 의미를 읽어냈을 많은 독자들에 대한 작은 '애프터 서비스'다.


          변희재의 '노이즈 마케팅'


          '실크로드 CEO포럼 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는 변희재는 <조선일보>에 '실크세대를 찾아라'라는 기획연재를 진행중이다. 변희재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테니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TV 탤런트 분석서 <스타비평>이 데뷔작이며 2000년대 초반 '안티조선' 논객으로 활동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안티포털 운동가'로, 요즘엔 <조선일보> 논객으로 활약중인 인사다. 최근작으로는 <코리아 실크세대 혁명서>가 있다.


          그가 <조선일보>와 함께 최근 열심히 밀고 있는 담론이 소위 '실크세대론'인 것 같다. 자신이 소개한 글에 따르면 '실크세대'란 "70년대 이하 생들로 386세대들과 달리 인터넷과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나가는 대한민국의 젊은세대를 말한다"한고 한다. (아래 링크 참고)


          낡은 386은 가라 20-30대 실크세대가 간다

          실크세대론과 88만원 세대론의 소통을 위하여

           

          아무래도 실크로드 CEO포럼이란 단체에서 따온 말인 것 같다. '실크로드 CEO포럼'은 그럼 뭘까.


          "71년생 이하의 기업가들의 조직으로서 청년 창업의 붐을 조성하기 위해 2007년 6월 3일 출범하였다. 기업가들 이외에도 71년생 이하 대중문화 평론가, 시의원, 언론운동가 등등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하여 명실상부한 세대조직으로 성장하고 있다."


          사실 이걸 읽어봐도 뭐하는 단체인지 감이 오질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저기에 '건설업체 사장'만 끼어있으면 어디 지역토호모임으로 손색이 없다는 점이겠다. 변희재는 2008년에 나에게 몇번 연락을 시도했다.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게 2007년 8월이니, 책이 나왔을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88만원 세대 담론이 시쳇말로 확 뜨고나자 연락을 취해왔다는 이야기다. 아마 우석훈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 나는 그즈음 변희재가 어떤 단체를 꾸려 모종의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별 반응이 없자 그는 이번엔 "88만원 세대론을 폐기처분해야한다"며 실크로드CEO포럼 명의의 공개토론서를 어딘가에다 발표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그 글을 나도 읽어보긴 했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대꾸하기조차 민망한 글이었다. 요컨대 "88만원 세대는 386을 예찬하고 20대를 폄하하는 나쁜 용어이니 폐기하라. 그리고 비겁하게 숨지말고 우리와 같이 세대명칭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정도다.


          내 잠정적 대답은 "고생하시는데, 일단 책부터 끝까지 읽으셔야죠"였지만, 사실 그런 대답조차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변희재의 수법은 똑똑한 중학생도 알고 있는 그것, '노이즈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만약 변희재가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었다면 내 대답은 달랐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그가 지난 수년간 곳곳에서 그 수법을 너무 많이 써먹는 바람에 소위 이 바닥의 알만한 사람들은 전혀 '낚이질' 않게 됐다는 거다.


          ‘근성남’ 변희재, 우석훈을 낚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변희재가 하고싶은 말은 결국 "88만원 세대 대신 내가 만든 실크세대를 써야한다"는 소리가 전부다. 설령 토론을 한다해도 386에 대한 비난, 세대명칭에 대한 공방 밖에 나올 게 없다. 실크세대라는 명칭을 홍보하기 위해, <조선일보>가 그토록 싫어하는 386세대를 비난하기 위해, 88만원 세대가 일방적으로 동원될 뿐이다. 그러면 책의 핵심이라 할 20대들이 처한 구조적 모순들에 대한 논의는 연기처럼 날아갈 게 분명하다. 그런 사태야말로 상상가능한 최악의 경우다.


          그런데 1월 14일자 <한겨레>에 실린 우석훈의 칼럼이 '최악의 경우'를 현실로 만든 것 같다. '20대 당사자 운동과 변희재의 실크세대'라는 글이 그것이다. 그동안 변희재는 박권일보다 훨씬 학식과 명망이 높은 우석훈을 집중공략 했을테고, 우석훈이 변희재의 근성과 열정에 감동을 했거나, 아니면 귀찮아서라도 한 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사실 이 글이 실크세대론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이라 보긴 어렵다.  텍스트 자체의 밀도를 봐도 변희재의 활동에 대한 그저그런 수준의 '덕담'이라 보는게 공정하리라.

          하지만 이 심심하기 짝이 없는 글 하나가 가져올  효과는 작지 않다. 88만원 세대론은 이제 조선일보의 실크세대 기획의 '부록'으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또한 이것이 우석훈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응이라 할지라도 변희재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이 글을 써먹을 것이다.


          '20대 진보 활동가'의 근황


          우석훈은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변희재와 그의 동료들이 ‘실크 세대’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운동처럼 하는 것도 일종의 당사자 운동이다.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운동에는 좌파 버전이 있을 수 있고, 우파 버전이 있을 수 있고, 또 전혀 상관없는 중도 ‘소통 그룹’이 있을 수 있다. 창업 운동이 먼저 움직인 형국이고, 다른 운동은 이제 막 움을 틔우는 상황이라는 게 내가 이해하는 현 상황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확인해본 상황은 우석훈의 판단처럼 한가롭지가 않다. 특히 우석훈이 관여한 20대 당사자 운동들은 변희재의 '그 단체'보다 먼저, 더 왕성하게, 더 20대답고, 더 진보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악전고투, 아니 지리멸렬하고 있다. 20대 당사자 운동단체인 '희망청'의 경우를 보자.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힘을 얻어 뭔가 해보려했던 20대 활동가들이 "우리가 무슨 이벤트대행업체냐"며 자괴감에 빠져있다가 최근 한 명만 빼고 전원 그만뒀다고 한다.


          '20대 저자' 데뷔 프로젝트 역시 참담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알기로 애초에 우석훈이 관여한 팀이 세 개였다. 그런데 정작 구성원들은 자기들 외에 다른 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게되어 '설마 우리를 경쟁시키고 있었던 건가?'라는 의심까지 했다고 한다. 내가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두 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상 공중분해됐고, 나머지 한 팀이 출판사 담당 편집자의 개인적 열정과 지원에 힘입어 겨우 살아남은 상태다. 물론 책이 언제 나올지, 나올 수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나 역시 이 팀에 '코가 꿰어' 끝까지 함께 가야하는 상태다. 나는 이들 당사자운동이 지리멸렬하는 것이 우석훈의 책임이라 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지금 우석훈이 <조선일보>-변희재와 함께 'CEO 운운'할 때는 아니지 않은가, 묻고 있는 거다.


          88만원 세대론의 '약한 고리'


          위에 적은 것들이 이번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핵심이라 할 수는 없다. 심지어 88만원 세대가 실크 세대가 되든, 앙고라 세대가 되든 그것조차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근본적인 문제는 <88만원 세대>가 글자그대로의 '세대론'에 갇혀버리는 상황이다.


          처음 우리가 <88만원 세대>를 기획할 때 나는 20대, 구체적으로 20대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기자생활을 할 때 가장 열심히 썼던 기사들이 비정규직, 저학력, 여성노동자 문제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도 작용했다. "열악하고 위험한 지역일수록 봉사점수가 높아 취업에 유리하다"며 전쟁중인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는 어느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그 아득한 느낌, 내 안의 무언가가 송두리째 무너지던 기억이 그것이다.


          우석훈은 "20대보다는 10대에 희망을 걸어야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었고, 실제로 <88만원 세대>는 10대의 동거권 문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우석훈의 통찰이 20대 문제를 분석할 때도 날카롭게 발휘되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공히 세대론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계급문제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책이 얼마나 팔리지 않을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결과 떠올린 방책이 불안정노동의 전면화라는 다분히 계급적인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糖衣)'를 입힌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우석훈은 우파들조차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하려면 '세대'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그의 영민한 지적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그 작업이 말처럼 순조로울 리 없었다. 세대론에 집중하다보니 세대 내부의 양극화, 20대와 50대에서 쌍봉형으로 나타나는 불안정노동과 같은 주요 문제들이, 언급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아쉽다. 그래도 새로운 형태의 계급모순들을 세대모순의 형태로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힘이 센 세대, 이른바 386세대 비판은 필수적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변희재가 주장하는 '이게 다 386, 특히 진중권 때문이다' 식의 억지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88만원 세대가 뚫어내야 하는 벽은 386세대 개개인이 아니라, 386세대가 싸우며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20대에게 굴레와 질곡이 되어버린 사회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88만원 세대론은 단순히 세대끼리 싸움붙이는 담론 외에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88만원 세대론이 진짜 ‘소통’해야하는 사람들


          <조선일보>는 괜히 1등신문이 아니라서 <88만원 세대>가 출간되자마자 이 부분을 치고들어왔다. 2007년 8월 24일자에 실린 박해현 문화부 차장의 칼럼 '포스트 386의 봉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잠깐 그때로 돌아가보자.


          "현실 공간에서 386과 포스트 386은 경쟁사회의 원리에 따라 한판 승부를 벌일 때가 됐다. 정치·사회적으로 기득권 세력이 된 386세대가 포스트 386세대를 위해서 한 일이 없다는 비판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나온다. 386과 포스트 386의 투쟁은 정치적 이념적 차원에서 이른바 ‘진보 정권 10년’에 대한 판정을 대행한다."


          나는 이 칼럼 하나에 <조선일보>가 세대론에 집착하는 이유가 모두 들어가 있다고 단언한다. 이 칼럼의 대단한 점은 이후 무수히 쏟아지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세대론이 노리는 부분까지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변희재의 '실크세대론' 같은 글을 무려 기획연재물로 실어주는 건 <조선일보>가 젊은 필자 하나를 북돋아주고 싶어해서가 아니다. 20대 이하의 세대들이 자신이 처한 사회구조적 모순에 눈감아 버린 채 오직 386 세대만을 증오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우리가 처한 문제를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다.


          게다가 "능력과 전문성도 없는 386세대"와 "무한한 잠재력과 전문성을 가진 젊은 세대"로 구별짓기하는 변희재식 세대론은 세대론이 아니라 차라리 변형된 인종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저 발언을 보면서 나는, ‘능력도 없으면서 탐욕스러운 유태인’과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지만 유태인들 때문에 고난을 겪는 아리아인‘을 명확히 구별한 콧수염 달린 어떤 사내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프랑스철학의 거인 자크 랑시에르는 인간 능력의 차이를 과장하고 강조하는 담론들이 얼마나 무용하며 해로운 것인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만인의 역량'을 각기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지 분류하고, 차별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의 능력은 동일하다. 다만 그 세대가 처한 환경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386세대의 성찰을 요구하고 그들이 88만원 세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으며 잡아주어야 한다고 했던 <88만원 세대>의 주장과, 386 세대는 사회적 해악이며 투쟁의 대상일 뿐이라는 주장의 차이를 이해하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나는 우리가 정말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나 변희재같은 사람들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통해야할 사람들은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전략) 이날 모임에선 세대간 불평등의 심각성을 부각시킨 '88만원 세대론'이 도마에 올랐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담론"이란 의견이 많았다. 노동시장의 '인사이더'에 대한 보호장치가 두터워 청년 세대의 신규 진입이 쉽지 않은 유럽과 달리, "외환위기를 계기로 일자리 보호장치가 파괴된 한국의 경우엔 불평등이 모든 세대에 걸쳐 증가하고 있다"(김영미)는 이유에서다. "젊은층이 88만원 세대라면, 고령층은 50만원 세대"(박경숙)라는 지적과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우파 담론에 88만원 세대론이 이용당하고 있다"(한준)는 비판도 이어졌다. (후략)"

          (<한겨레>, '한국사회 불평등 핵심고리를 천착하라'-비판사회학회 불평등연구회, 2009.01.12)


          학자들 뿐만 아니다. 충남 서산에는 100% 비정규직 고용에, 법정최저임금‘만’ 주기로 악명이 자자한 동희오토라는 공장이 있다. 거기서 콘베이어벨트를 타고있는 노동자들 대다수가 20대, 즉 88만원 세대에 속하지만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청년들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중 한명으로서 내가 늘 부끄럽고 고민스러운 건, <88만원 세대>를 가장 열심히 읽는 20대가 이른바 명문대생이란 점이었다. 정작 88만원 세대에 한없이 가까운 20대들일수록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지 않는다. 지난 일년 반 동안 나를 괴롭혀온 숙제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좀체 사라지지 않을 화두다. 자, 이 글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한줄 요약이다.
          “<조선일보>와 변희재는, ‘소통’하기 전에 줄부터 서시라.”

          2008. 11. 14. 14:41

          동희오토, 미래를 교살하는 공장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321797.html

          동희오토에 다녀와서 쓴 글이 <인터넷 한겨레>에 실렸다. 기획 시리즈 형태로 정리가 된 모양이다. 어찌하다보니 내가 이번 프로젝트의 '1번 타자'가 되고 말았는데, 취재한 것의 반절도 풀어내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취재한 내용의 대부분은 몇몇 매체를 통해 이미 알려진 문제점들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었고, 그 외의 부분들은 일반독자들이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운 노동계 내부 문제였다.
          만약 내가 매체에 속한 기자로서 본격적으로 취재를 했다면, 동희오토의 설립과정, 특히 현재 동희오토 본사의 이사들과 간부들의 과거 행적을 추적했을 것이다. 동희오토라는 괴물이 태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교묘한, 그리고 철저한 노동착취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또 완벽하게 운영하는 능력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마디로 '프로의 냄새'가 난다. 취재를 하면할수록 심증이 굳어졌지만, 동희오토 노동자들조차 이 회사의 '머리'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이사급 인물 한두명의 행적 외에는 모든 것이 미스테리다.  아무튼, '다음 타자'들이 더 잘해주리라 믿는다. 아래는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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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희오토, 미래를 교살하는 공장


          정지훈(가명) 씨는 스물 여섯 살이다. 소년처럼 해사한 얼굴과 대조적으로, 우람한 팔뚝에 힘줄이 툭툭 불거져 있다. 그는 현대기아 자동차 ‘모닝’을 만드는 동희오토라는 회사에서 수습직원으로 3개월을 일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6일자로 수습기간이 끝났다. 그러나 정식직원이 될 수 없었다. 수습기간이 끝나기 정확히 일주일 전, 채용취소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동희오토는 생산직 노동자의 100%를 최저임금선의 비정규직으로 꽉 채우는 기념비적 시도로 인해, 최근 몇 년 사이 경영계와 노동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기업이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850명 전원은 13개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있고, 기아의 1차 협력사인 동희오토가 이들 업체와 노무도급계약을 맺는다. 국내최초의 완성차 위탁생산업체로서 ‘모닝 대박 신화’의 주인공이다. 이곳 비정규 노동자의 상황은 열악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1년차 직원의 2008년 시간당 임금은 3770원. 올해 법정최저임금이다. 다른 완성차 업체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이직률이 극도로 높아서 3년을 넘겨 일하는 노동자가 드물다. 민주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해당하청업체를 통째로 계약해지시켜 버리면 그만이다. 노동자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된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꿈의 공장’,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절망의 공장’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제조업 분야에서 소위 ‘동희오토 방식’이 역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비정규직 유랑기

          정지훈 씨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성남시, 지금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은 전남 목포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1학년까지 다녔지만, 군대에 다녀온 뒤 자퇴서를 냈다.
          “집안형편이 어려웠어요. 지방의 작은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취직이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사실 졸업한 선배들을 봐도 그랬구요. 무슨 일이든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갔던 회사가 목포의 삼호조선소라는 데였어요. 처음이라 그런지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정규직이였냐구요? 아뇨, 당연히 비정규직이죠.”
          정지훈 씨는 조선소에서 7개월을 일하다가 다른 직장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경기도 발안에 있는 대연 에스티라는 공장이었다. 수습기간 1년을 넘기면 정규직을 시켜준다는 이야기가 결정적이었다. 휴대전화에 쓰이는 1회용 테이프를 제조하는 곳이었는데 조선소 일에 비해 몸이 덜 힘들었고, 대우도 좋았다. “동희오토는 생일날 1만 원짜리 상품권을 주는데, 대연 에스티는 5만 원짜리 상품권을 줬어요. 보너스도 600%였구요.” 이렇게 말하며 정지훈 씨는 살풋 웃는다.
          “그런데 거길 왜 그만뒀나요? 일도 그리 힘들지 않고, 대우도 괜찮았다면서요?”
          “작업반장이랑 문제가 좀 있었어요. 버스가 끊길 시간까지 일을 시켜놓고 자기는 맨날 노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혼자 일을 하다가 집에 택시를 타고 가야해요. 한두 번이면 참고 넘어갔을텐데 계속 그래서 제가 한 마디 했더니 그 뒤부턴 저를 더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그의 ‘유랑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경기도 기흥의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1년을 일했고, 다시 목포의 삼호조선소에 가서 일을 했다. 서해안 전역을 떠돌며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했던 셈이다. 그런데 저임금·비정규 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동희오토에는 어떻게 오게 됐을까. 정지훈 씨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막노동을 많이 하다보니 컨베이어 벨트 타는 건 오히려 쉽게 느껴졌어요. 수습이 3개월이니까 ‘3개월만 아무 소리 말고 버티자’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원래 대연에스티에 같이 있던 형이 동희오토에 취직하자고 해서 같이 입사했는데, 그 형은 일이 힘들다고 이틀만에 그만둬버렸어요.”

          컨베이어 벨트 위로 날아간 세대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지훈 씨는 어째서 잘린 거예요? 채용취소 통보를 받았다면서요.”
          “결근은 한 번도 안했고 몸이 너무 아파서 허가를 받고 조퇴를 딱 한번 했는데 채용취소 이유를 보니까 ‘근무불성실, 약속 불이행’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솔직히 어이가 없었어요.”
          정지훈 씨 생각에 자신이 채용취소 통보를 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해복투 형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해복투, 즉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는 글자그대로 동희오토의 해고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결성한 단체다. 2008년 11월 10일 현재 여섯 명의 해고자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씨의 말에 따르면 각 라인의 반장과 조장들이 노동자를 수시로 불러서 ‘해복투랑 어울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때로 협박도 한다고 한다. 평소에 누가 해복투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지 감시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지훈 씨는 “내가 해복투 형들이랑 밥을 같이 먹은 걸 가지고 뭐라 그러기에 ‘왜 밥 먹는 것 가지고 그러느냐, 그런 식으로 감시하지 마라’고 쏘아붙여줬다”고 한다. 전후사정을 보면 그 사건이 채용취소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불합리한 일에 맞서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그 불합리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희오토에는 정지훈 씨와 같은 또래들이 가장 많다. 생산직 노동자 중에서 삼십대 중반 이상은 거의 없고 대부분 이십대 중반에서 이십대 후반이다.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얼굴들을 보면, 하나같이 젊다. 젊다 못해 앳된 얼굴들도 적지 않다. 동희오토 해복투 이백윤 의장의 말에 따르면, 그들 대부분이 고졸학력 이하의 이십대다. 사회경제적 여건이 가장 나쁠 때 사회로 진출하게 된 88만원 세대, 그 중에서도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속한 젊은이들이다.
          88만원 세대가 대학교와 고시원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88만원 세대 중의 88만원 세대’는 동희오토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있다. 그들은 세대 내부 경쟁과 세대 간 경쟁 뿐 아니라 ‘인종간 경쟁상황’에 놓여있다. 동희오토 노동자의 20%는 외국인 노동자다. 이 사실은, 88만원 세대가 ‘삼중경쟁’의 톱니바퀴에 끼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 대다수는, 당연한 말이지만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정지훈 씨와 같은 젊은이가 스스로 입을 열어 그 고통과 분노와 불안을 전하지 않는다면, 아마 대다수의 시민들 역시 그들 존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광화문에서 촛불이 타오를 때 122km 떨어진 서산에서도 촛불이 타올랐다. 그러나 그 사이엔 물리적 거리보다 더 아득한 심연이 존재한다. 그 심연에 다리를 놓는 지난한 작업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 불안지도’를 만들면?

          동희오토라는 기업이 나쁜 이유는 그들이 효율성을 추구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런 기업이 불안을 양산해서 사회전체의 생산력을 급속도로 불임화 시키기 때문이다. 정지훈 씨의 예만 봐도 그렇다. 5년 넘게 노동현장에 있었음에도, 그는 숙련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지금처럼 불안정 노동을 전전할 경우, 그는 평생동안 숙련노동자가 되기 어렵다. 가처분소득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구매력 또한 낮아진다. 동희오토와 같은 기업이 확산되면 한 세대 전체가 더욱 가난해질 것이다. 그 사회적 부담을 부자들과 기업이 지려할까. 단언컨대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부담은 지금의 중간계급과 그 이하 계급, 그리고 그들의 자녀세대가 짊어지게 된다. 동희오토의 ‘모닝대박’은 우리의 미래를 교살한 대가였다.
          하루빨리 해야 할 일은, 동희오토 노동자들과 작은 연대를 시작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와 같은 방식의 노동착취가 확산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떠돌고 있다. 서산에서, 울산에서, 여수에서, 목포에서, 창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제2, 제3의 동희오토다. 아직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은 곳이 많다.
          노동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위키페디아처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대한민국 불안 지도’를 만드는 건 어떨까. 우선 이 지도는 전국을 떠도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작은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실용적인 이유 외에도 그 지도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연대의 방식이다. 노동, 생태, 인권, 교육 등 각 분야의 ‘불안 지도’를 만들 수도 있다. 별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는 시대다. 더듬더듬 지도라도 만들밖에.

          2008. 10. 12. 23:04

          기묘한 균형 [시사IN 56호]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정부의 발언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화가 나서? 아니, 웃겨서.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감세효과의 53%가 중산층과 서민에게 돌아간다”면서 밝힌 중산층의 기준이 “통계청 과표구간으로 연소득 8천8백만원 이하”란다. 연소득 8천 6백만원으로 잡아도 실제연봉은 1억이 넘어간다. 이 발언이 기사화된 직후 아니나다를까, 수많은 사람들이 모멸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중산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류인생이었다”는 식이다. 여론은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부자를 중산층으로 둔갑시키는 ‘강부자 정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애초에 중산층이란 용어 자체가 매우 허술한 개념이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강부자 정권’이라 불리는 이 정부가 하는 일마다 부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즉, 부자들이 부자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대한민국 서민들이 ‘중산층’이란 말에 얼마나 민감한데, 거기에 대고 “소득 8천8백만원” 운운했으니 작정하고 벌집을 쑤신 꼴이 아닌가.

          어느 사회이건 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사회전체의 이익으로 포장하기 마련이다. 그 ‘포장’이 얼마나 교묘하고 설득력이 있는가가 바로 지배계급의 역량을 재는 척도다. 따라서 유능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급소’와 ‘성감대’가 어디인지 귀신같이 파악하고 있다. 대영제국의 신화는 무력으로만 이루어진 게 결코 아니었다. 식민지에 관한 방대한 지식의 집적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 이렇게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식이야말로 지배계급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기이익을 관철할 수 있게 만드는 열쇠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그리고 한국의 부자들을 보면 도무지 지배계급의 역량이란 걸 눈 씻고 봐도 발견할 수 없다. 지배계급이 이렇게 무식한데 어떻게 이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배당하는’ 사람들의 의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개 한국의 부자들은 “평등주의 근성이 나라를 망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나라 망친다는 건, 자기가 망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저건 ‘한국형 평등주의’가 얼마나 부자에게 유리한 이념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일반적 의미에서 평등주의는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갖는 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형 평등주의는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이다. 자매품으로 “내 새끼도 서울대 가야 한다”와 “나도 MBA 따야 한다” 등이 있다. 즉, 일반적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삼고, 한국적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 삼는다. 전자의 입장에 서면 필연적으로 부자가 가진 것을 일정 부분 빼앗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못 가진 자들에게 분배할 테니까. 그러나 후자의 입장에 서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부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은 곧 자신의 숭고한 목적을 훼손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부자되기’ 처세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그리하여 한국형 평등주의는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수탈하는 상황을 야기하고, 부자들에게는 어떤 위험도 초래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게 바로 이것, 한국형 평등주의였다. 존재를 배반하는 피지배계급의 의식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지배계급의 무능을 상쇄시키는 한, 지배-피지배 관계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슬프고 기묘한 균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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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에 실린 나의 마지막 칼럼.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쓴 티가 난다. 이제 진짜로 굿바이.

          2008. 9. 13. 17:23

          사민주의부터 재정립해야

          얼마 전 술자리에서 몇권의 책을 전해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이었다. 여러 필자가 쓴 글을 취합한 책은 대체로 허접한 경우가 많은데, 특히 최근에 나온 <MBC MB氏를 부탁해(프레시안북)>는 글의 질이나 구성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역대 최악에 꼽힐만한 책이었다. 차라리 안나오는 게 MBC를 위해서 나았을 거란 생각조차 든다. 그러나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은 그 정도로 막나가는 책은 아니다. 나의 전 직장 상사이자 역량있는 저널리스트였던 이종태가 책을 총괄했던 덕이 아닌가한다.

          책에 실린 여러 글이 흥미로웠지만, 내 눈길을 가장 잡아끈 글은 책의 가장 마지막에 자리잡은 이종태의 글 '국가-시민사회 논쟁과 국가주의적 개인주의 옹호'였다. "스웨덴의 소장학자 라르스 트레가르드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국가분석을 통해 제시한 도발적인 테제, 즉 강한 개인과 강한 국가의 상호보완성 테제를 소개"한 글이다. 글의 서두는 일단 이진경을 '까면서' 시작한다.

          "자본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이진경의 말처럼 쉽사리 포기하는 것은 옳은가? 그렇다면 자본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이른바 진보세력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전면적으로 사회를 거부하는 은자로 살거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인가?"

          "트레가르드에 따르면 스웨덴인들은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 자체를 복지국가와 민주주의에 강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와 복지가 파괴되면 스웨덴 민족의 정체성 자체도 증발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스웨덴의 경우 전통적으로 민족 혹은 종족을 일컫는 에스노스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을 일컫는 데모스의 개념적인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통합되어 있다. ...스웨덴 민족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끌어안는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트레가르드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종태는 한국의 진보세력이 국가를 개인을 억압하는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국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봉사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서유럽의 경험에 기반한 바깥사상에 물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과 국가-민족을 반드시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종태가 '한국의 진보세력'이라 부르는 사람들 중 대체 어느정도가 저런 생각을 하는걸까. 현재 한국의 대표적 진보정당이라고 하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딱 두개가 있다. 이들 정당이 국가-민족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긴다면 왜 저들은 그깟 '부르주아 의회'에 참여하려고 저렇게 기를 쓰고 있는걸까. 답은 뻔하다. 이종태는 논적을 오해하고 있거나 최소한 과대평가하고 있다. 그게 아니면, 이진경이 한국 진보세력의 대표선수라고 굳게 믿고 있거나. 과거부터 이진경의 논리를 극도로 혐오했던 평소 이종태의 성향을 봐서는 '이참에 좀 밟자'고 생각했을 수는 있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진경만을 대상으로 글을 쓰면 될 일이다. 한국진보세력 전체를 싸잡기엔 이종태의 이번 그물은 너무도 협량하다. 논적의 허상을 만들어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린 다음 뻥, 터뜨리는 짓은 본인은 재미있을지 모르겠으나 보고있는 주변 사람들은 허탈하기 짝이 없다. 중고딩들이 논술시간에 이런 걸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라고 배운다.

          글에서 이종태는 한국인의 민족-국가관이 영미나 서유럽보다는 스웨덴과 유사하다고 단언한다. 스웨덴의 민족성이 "복지국가와 민주주의에 강하게 연결된 민족성"이라고 했는데, 그럼 한국의 민족성이 그렇다는 것일까. 하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인의 민족성은 복지국가가 아니라 '울릉도 동남쪽의 어느 외로운 섬'과 훨씬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이종태는 87항쟁에서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특수화해서 논거로 들지만, 아마 대다수의 제3세계 민주화운동에서 국기를 '안든' 경우를 찾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이건 민족-국가에 대해 특정 민족이 다른 민족과 차별되는 각별한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민족-국가 이데올로기가 제3세계에 이식된 자본주의의 폭력적 축적과정에 대해 일정한 대항논리, 요컨대 모든 민족구성원을 향한 형평성을 약속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종태는 87년 한국에서 사람들이 요구한 "민주주의"와 트레가르드가 말하는 스웨덴의 "민주주의"를 별다른 논증없이 동일시하며 논리를 비약한다. 그런 식이면 국가명에다 아예 민주주의 네 글자를 박아놓은 북조선이야말로 "민족정체성에 민주주의가 강하게 연결된 나라" 아닌가.

          어떤 민족의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한가 아닌가, 혹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얼마나 유사한가 따위를 말하는 것은 기실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무익한 짓이라는 걸 이종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에 사민주의를 뿌리내리는 데 정작 필요한 것은 스웨덴과의 민족감정적 유사성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조건들의 상이성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내부에 복지국가 이데올로기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이유 중 하나는 서유럽과의 차이를 역사화-서사화한 데 있다. 즉, 이종태가 바라는 한국형 사민주의가 리얼리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스웨덴과 한국의 차이를 더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우리가 스웨덴과 닮기 위해서는 스웨덴과 달라야 한다.' 그 작업은 사민주의를 '선언'하는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얼마 전에 공식지면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http://xenga.tistory.com/entry/국가의-귀환-시사IN-41호), 기본적으로 나도 한국사회가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극단적 아나키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좌파들도 동의할 것이다. 특히 '국가의 역할'에 대한 연구와 대중화에서 장하준, 이종태 등의 지식인들이 누구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의 자칭 사민주의자들은 요즘 좀 좌충우돌하는 것 같다. 뉴라이트 매체에 기고를 한다든가, 엔엘-피디, 한줌도 못되는 포스트모던 좌파들에 버럭 역정을 낸다든가 하는 짓에 시간낭비할 겨를이 어딨는가. 포스트모더니즘 까는 짓, 유행 지나간지 한참 됐다. 자꾸만 기존 좌파들과 각을 세우는데 골몰하다보면, 이종태 등은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스탈린주의자'로만 포지셔닝될 뿐이다. 담론투쟁의 영역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전통적으로 약하다. 논리와 감성이 섹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건 뉴라이트랑 (제3의 지면에서) 하시라. 그게 이길 가능성도 높을 뿐더러 더 생산적일 것이다.

          반면 현실구성의 영역, 구체적으로는 조직을 불리고 정책을 생산하는 장에 좀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 분야에서 한국의 사민주의자는 주사파보다 무능하다. 정말 현실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먹물집단'이라는 인식부터 바꾸고 현실정치인을 키워내는 일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 주대환이 최근 보여주는 정치감각을 보면, 사민주의하기가 혁명보다 훨씬 어려워 보이니 말이다. 좌파 재정립 이전에 사민주의 진영부터 교통정리 좀 하란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