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4. 20:18

국가의 귀환 [시사IN 41호]

2008년 6월 중순 현재, 대의민주제의 핵심인 정당정치가 실종된 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대한민국이 ‘이중권력(dual power)' 상태라고 말한다. 정부 권력과 시민 권력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는 거다.
내가 알기로 이중권력이라는 말의 용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 쇼군-천황 체제의 기묘한 권력분점을 묘사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꽤 유서 깊다. 약 90년 전에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란 가명으로 활동하던 러시아의 대머리 아저씨가 최초로 이 말을 사용했다. 우리의 맥락은 전자와는 무관하므로 후자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혁명전야? 에이, 설마! 대다수 ‘빨갱이’들조차 지금이 혁명전야라고 진심으로 믿진 않을 것이다. 오늘날 OECD 가입국에서 ‘혁명’이란 단어는 광고문구 또는 비유적 과장일 뿐이다. 체 게바라의 여전한 인기는 혁명의 절박한 요구 때문이 아니라 티셔츠로 소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태를 두고 “한국 민족주의 정서의 표출”이라 주장한다. 북조선에 알 수 없는 친근감을 가진 일부 운동권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의 마지막 분단국이고, 오랜 세월 외세에 시달려온 나라다. 그러나 북조선의 쇠락과 함께, 단일민족국가에 대한 한국인의 판타지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 월드컵, 한류, 황우석 사태, ‘디워’ 논란 등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강한 국가’에 대한 열망이지 과거와 같은 민족주의가 아니었다. 한국인에게 민족 혹은 통일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이지만 더 이상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 어렵다. 이제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한 국가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그러므로 민족주의니 민족정서를 언급하는 것은 최근 10년간 대한민국에 얼마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 변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중국가(dual state)’다. 이것은 위기에 처한 중산층과 ‘막장’에 몰린 빈곤층이 90%를 이루고, 금융위기 이후 압도적 부를 축적한 10%로 구성된 사회다. 그리고 매일 천 원 김밥을 먹는 사람과 만 오천 원 브런치를 먹는 사람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그런 사회다. 이중권력이 아니라 실은, 이중국가가 문제인 것이다.
단순히 ‘10대90의 사회’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벌어진 급격한 사회경제적 충격이, 국가의 역할에 대한 한국사회의 합의를 걷잡을 수 없이 붕괴시켰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적 욕망만이 소용돌이치던 혼란의 와중에서 사회가 지켜내야 할 공공성은 무참히 찢겨나갔다. 그 빈자리에 자리 잡은 게 바로 강한 국가, 일류국가에 대한 달뜬 기대였다. ‘국가의 후퇴’가 ‘강한 국가의 열망’으로 나타나는 것은 초국적 자본이 판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동북아 중심국가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정부는 이런 국민의 열망을 잘 감지했지만, 시장주의와 국가주의 사이에서 분열병적으로 오락가락하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해괴한 농담을 만들어냈고, 급기야 한미 FTA까지 밀어붙였다. 5년 내내 혼란스러워하던 중산층은 정권이 바뀌고서야 자신이 사는 나라의 실체를 깨달은 듯 이렇게 외친다. “이게 뭥미?”
거리집회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는 쇠고기 재협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 민영화, 의료 민영화 등 수십 가지에 이른다. 거칠게 묶으면 모두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얘기다. 가히 국가의 귀환이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여기엔 중요한 질문이 빠졌다. 대체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