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2. 14:44

저성장 시대의 성장서사: <미생>과 <골든타임>

계간 <R> 2012 가을호  hybrid critique 01

 

저성장 시대의 성장서사
웹툰 <미생>과 드라마 <골든 타임>

 

한국에서 최근 10년 내에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인 대중문화를 꼽는다면 단연코 웹툰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가장 친숙한 대중문화이기도 하다. TV 드라마 역시 1‧2차 한류 붐을 통과하며 질적 성장을 거듭해왔다. 대중과의 접촉면이 가장 넓은 두 장르에서 심심찮게 수작이 튀어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음에 연재중인 웹툰 <미생>과 문화방송 드라마 <골든 타임>은 전혀 다른 플랫폼에 담긴 서로 무관한 문화상품이지만 하나의 열쇠말로 이야기해볼만한 작품들이다. 바로 ‘성장’, 성장담이라는 것.

 

개별 작품에 대한 미학적 비평은 이미 넘쳐나고 있다. 굳이 거기에 한 마디 더 보탤 이유는 없다. 이 글은 비평이나 대중들의 반응까지 포함한 일종의 메타비평(여기서 메타비평은 비평에 관한 이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이다. <미생>과 <골든 타임>의 인기와 호평은 일차적으로 작품의 완성도에 기인한 것이지만, 대개의 성공한 대중문화상품이 그러하듯이 시대상황을 적절히 반영한 소재와 메시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어떤 작품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아직 살지 못한 자”와 “이름 없는 자”

 

‘미생(未生)’은 바둑용어로 두 집(완생)을 만들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작가 윤태호는 그래서 작품의 부제를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로 붙였다. 매회 첫머리에 유명 바둑기사의 기보가 등장하고 문외한에게 생소한 바둑용어들도 자주 등장하지만, 이 웹툰은 바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은 한국기원의 바둑연습생이었으나 끝내 프로 바둑기사가 되지 못한 청년 ‘장그래’다. 남들이 초‧중‧고교를 다니며 정규교육을 받은 시간을 온전히 바둑에 쏟아부었음에도 번번이 입단시험에서 미끄러지며 결국 바둑의 길을 접었다. 군대를 다녀와 보니 그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학력도, 자격증 하나도 없는 막막한 상황. 죽으란 법은 없는지, 바둑 두던 모습을 눈여겨보던 지인의 소개를 통해 그는 어느 회사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부터다. 바둑 실력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청년이 종합상사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화이트컬러의 노동이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 것이다.

 

다른 한 작품 <골든 타임>은 의학 드라마이다. 교통사고나 천재지변 등으로 신체에 동시다발적인 손상을 입은 환자, 즉 중증 외상환자를 다루는 부산의 어느 종합병원 응급의학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골든 타임’은 중증 외상 환자가 생존을 위해 처치받아야 하는 시한을 의미한다. 이 시한을 넘기면 환자의 생존확률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드라마의 주인공 이민우는 의대에 들어갔지만 의사라는 직업에 흥미도 의욕도 없는 남자였다. 취미로 의학 관련 ‘미드’ 자막을 인터넷에 올리고 한방병원에서 엑스레이 오더나 내리며 편하게 살던 그였지만, 우연히 선배 대신 병원 응급실 당직을 서다 사고로 온 아이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미숙함으로 한 생명이 꺼져 들어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겪으며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결국 이민우는 우연히 휘말린 사고로 알게 된 중증 외상 전문의 최인혁이 근무하는 병원에 인턴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인턴에게 이름이 어딨냐”는 레지던트들과 정신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에 하루에도 몇 번씩 ‘멘탈이 붕괴’하는 응급실 생활이 시작된다.

 

출세에서 생존으로

 

샐러리맨의 삶을 그린 문화상품은 셀 수 없이 많다. 만화는 더욱 많다. 샐러리맨의 일상을 그린 <미생>이 그런 작품들과 비교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미생>의 스토리에 윤곽이 잡히기 시작할 무렵 많은 사람들이 했던 말이 “한국의 <시마과장>”이라는 칭찬이었다. <시마과장>은 굴지의 재벌기업에 다니는 시마 코우사쿠를 주인공으로 샐러리맨의 삶을 그린 만화로, 일본에서 1983년부터 연재되어 국민적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훗날 시마 부장, 시마 이사, 시마 사원까지 나와 ‘회사인의 바이블’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그러나 <미생>은 <시마과장>과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히로카네 켄시라는 작가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시마> 시리즈에서 회사에 명줄이 걸린 샐러리맨의 절박감이 설득력 있게 표현된 적은 거의 없다. 시마 코우사쿠는 명문대를 나와서 평탄하게 회사생활을 하며 이사까지 승진한다. 파벌을 싫어하지만 출세가도에서 배제된 것도 아니다. 출장이나 각종 업무마다 미인들이 꼬여들어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한다. 솔직히 말해서 시마 코우사쿠 시리즈는 ‘대기업 엘리트의 행복한 나날’을 그린 작품이다. 거기서 회사인의 절절한 ‘애환’이나 ‘갈등’은 그저 ‘포즈’ 또는 ‘클리셰’로만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미생>은 다르다. 장그래는 출발부터가 절박했다. 아버지 사업은 망했고 어머니는 부쩍 늙어버렸으며 자신은 아무런 스펙도 지식도 없이 종합상사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갔다. 인턴은 인턴끼리 살벌한 경쟁을 해야 하고, 그 경쟁을 뚫고 인턴 딱지를 떼 봐야 계약직 사원이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처지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다져진 승부사 기질과 날카로운 직관뿐이다. 동기로 들어간 인턴사원들은 좋은 대학에서 경영학 따위를 공부하고 영어와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한 친구들이다. 장그래는 이들의 대화만 따라가기도 벅차다. 무언가 전문용어를 쓰는 것 같은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작가 윤태호는 유명한 바둑 격언들을 절묘하게 배치하며 ‘샐러리맨의 생존술’을 풀어나간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것은 샐러리맨의 생존술이라기 보다는 ‘사회초년생의 생존술’이다. <미생>은 <시마과장>보다는 차라리 허영만의 유명한 기업만화인 <아스팔트 사나이>나 <미스터 큐>의 계보에 놓인 작품이지만, 그런 만화들에서 보이는 고도성장기 특유의 허장성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귀두컷’을 하고 와이셔츠엔 고춧가루 묻힌 멍청해 보이는 아저씨들이 회사업무에서는 얼마나 노련한 장인들인지, 때로는 얼마나 교활한 여우들인지를 윤태호는 압도적인 리얼리티로 그려낸다. 그런 그들 틈에서 온전히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것, 그래서 장그래의 목표는 출세가 아니다. 생존이다.

 

‘최선의 세계’라는 신기루

 

해운대 세중병원 인턴 이민우의 눈동자는 항상 초점을 잃고 흔들린다. 응급환자가 들어와 기도삽관을 시도할 때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얼굴에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환자의 바이탈 사인은 순간순간 악화되는 중이다. 그러나 인턴은 말이 좋아 ‘선생’이지 “아무 것도 판단해선 안 되고 아무 것도 해선 안 되며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되는” 존재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기를 붙잡고 당직 선생님들에게 미친 듯이 ‘콜’을 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당직의가 내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수술실은 풀가동되고 있고, 모든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정신이 없다. 반면 응급외상센터는 병원 적자의 주범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항상 스탠바이 중인 이는 최인혁 교수뿐이다. 이민우가 다시 본격적인 의사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사람, 존경하는 멘토이자 스승이다.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수술로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는 최 교수지만 병원의 스태프 교수들 사이에서는 ‘왕따’이다. 응급환자를 살린다는 이유로 절차와 질서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골든타임>은 그 무엇보다 환자의 생명이 우선이고 “사람 목숨 값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최인혁)”이라는 대원칙이 ‘현실’ 앞에서 얼마나 관철하기 힘든 당위인지를 집요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인턴 이민우의) 뜨겁지만 설익은 휴머니즘에 얼음장 같은 냉수를 끼얹는 상황과 대사들이 이어진다.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최선을 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소위 ‘<골든타임>의 명대사’로 회자되는 것들은 대부분 이런 선택에 대한 문제다. “지금은 나쁜 것과 좋은 것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순간이야(최인혁)”“모든 운이 따라주고, 인생의 신호등이 동시에 파란불이 되는 때란 없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상황은 없는 거야. 만약 중요한 일이고 ‘결국’ 해야 할 일이라면. 그냥 해. 앞으로도 완벽한 때란 건 없어(박금녀)”

 

성장이란 ‘포기할 때와 장소를 깨닫는 일’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격렬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알린다. ‘시간’과 ‘돈’, 예산제약 상황을 만들어내는 이 두 가지 절대원소 앞에서 말랑한 감상주의나 모호한 휴머니즘은 가루처럼 분쇄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을 해명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골든타임>이 그리는 “실재의 사막”에서 최선의 세계는 신기루일 뿐이다.


럼스프린가: 탕자는 돌아올 수 없다

 

한국에 “미국판 청학동”이라고 종종 소개되기도 한 아만파(amish) 마을은 기독교의 한 분파로 18세기적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만파 마을 사람들은 화려하고 요란한 현대문명과 소비문화를 최대한 거부하며 금욕적이며 경건한 삶을 꾸려간다. 슬라보예 지젝은 <시차적 관점>에서 아만파 공동체의 어떤 독특한 풍습을 소개한다. 그 풍습의 이름은 ‘럼스프린가’다.

 

미국의 아만파(amish) 공동체에는 럼스프린가라고 불리는 관례가 있다(rumsringa, 독일어 herumspringen에서 온 말로서 주위를 뛰어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17세가 되면 그들의 아이들은 (그때까지 그들은 엄격한 가정규칙에 종속된다) 자유롭게 되어 밖으로 나가 그들 주위의 “영어” 세계의 방식들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허락되며 심지어 조장된다. 그들은 차를 몰고 다니며 팝음악을 듣고 텔레비전을 보며 음주와 마약과 난교를 경험한다. 몇 년 후 그들에게는 결정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이 아만파 공동체의 일원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곳을 떠나 일반적인 미국시민이 될 것인가? 두 쪽에 대한 모든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할 기회를 그들에게 주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한 해결책은 아주 편파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을 선택이라고 해야 한다면 거짓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영어” 세계의 위반적‧불법적 쾌락들에 대한 오랜 세월의 훈육과 환상 뒤에 아만파 청년들은 갑자기 그리고 준비없이 그 속으로 내던져진다. 물론 그들은 극단적으로 위반적인 행동들에 탐닉하여 “그것을 모두 시험해”보며 자신들을 섹스와 마약과 음주 속으로 완전히 내몰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삶에서 그들은 모든 내재적인 한계나 규제를 결여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자유로운 상황은 예상에 어긋한 결과를 초래하며 참을 수 없는 불안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몇 년 후 그들이 격리된 그들의 공동체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안전한 도박이다. 90퍼센트 이상의 아이들이 정확히 그렇게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생각에 항상 수반되는 어려움에 대한 완벽한 사례이다: 아만파 청소년들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부여받지만, 선택을 하는 동안 그들이 사로잡혀 있는 조건은 선택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진정 자유로운 선택을 하려면 그들은 선택이 가능한 상황 속에서 교육받았어야 하고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적절히 알고 있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시차적 관점>, 647쪽


럼스프린가 사례를 두고 지젝의 길고 긴 재담이 계속 이어지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다음과 같은 물음이다. “우리가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저항이라 인식하는 행동들이 결국 체제의 재생산과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이런 물음은 그 어떤 급진적 저항도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걸 은밀하게 인정해버린 좌파의 무기력으로부터 헤어 나오기 위한 처절한 시도다. 지젝은 의사(pseudo)-자유, 가짜의 능동성 대신 전복적인 수동성(그가 ‘바틀비 정치학’이라고 부르는 것, 예컨대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잠정적인 출발점으로 삼는다. 정말로 이를 통해 “이데올로기의 외설적 매듭을 푸는 방법”을 그가 제시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럼스프린가는 <루가복음>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에피소드의 아만파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방탕한 생활로 모두 탕진해버리고 돼지치기로 전락해버린 둘째 아들이 뼈아픈 후회 끝에 회심하고 집으로 돌아와 용서를 구한다. 아버지는 첫째 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회개한 둘째 아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여 축연까지 열어준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명백하다. 비록 죄를 지었을지라도 깊이 참회하고 회개하면 은총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성장담 역시 본질적으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철없고 성급한 천둥벌거숭이는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낯선 세계에 매혹당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 결별한 뒤 그가 마주치는 것은 거짓과 기만과 위선이다. 그는 싸우고 패하고 도망치고 쓰러진다. 환멸과 분노에 괴로워하고 날선 적의와 악전고투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이 모든 통과의례를 거쳐 그/녀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탕자가 집으로 돌아와야 끝이 난다. 계약직 사원이 어엿한 상사맨이 되거나 인턴이 한 몫 제대로 하는 전문의가 되면 성장담은 끝난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지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된다는 게 아니라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는 존재의 혁신이다. 아니, 그렇게 ‘포장’되고 ‘미화’된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성장담은 럼스프린가가 보여준 바대로 젊은이에게 진정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가 부여하는 압력을 견뎌낸 젊은이를 추려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탕자’는 더 이상 탕자가 아니다. 체제에 순치된 젊은이만이 돌아올 수 있다. 진정한 탕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전형적인 성장담은 불안과 혼돈의 세계에서 안정과 성숙의 세계로의 당당한(그리고 쓰디쓴) 편입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보수(保守)의 멜랑콜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수의 탁월한 성장담은 그 한계를 돌파한다. 탕자는 집으로, 다시 말해 익숙한 세계로 돌아오는 대신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체제가 던지는 가짜 선택지를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지를 만든다. 그리하여 역설적이게도, 탁월한 성장담은 이제 더 이상 성장담이 아니게 된다.

 

성장담의 근본적 불완결성

 

성장담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 의해 생산되고 또 소비되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단지 인간 삶의 보편성 때문이라 얼버무리고 넘어갈 만큼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보편성’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가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성장소설이라 불리는 <데미안>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호밀밭의 파수꾼>과 같은 작품들이 2012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만큼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물론 이 텍스트들은 과거에도 읽혔고 지금도 읽히고 있고 앞으로도 읽힐 정도의 ‘보편성’을 지녔다. 그야말로 불멸의 고전이다. 그러나 저 작품들이 당대에 갖추고 있던 핍진성(verisimilitude)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당대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달라도 너무 달라져버린 것이다. 삶의 시시콜콜한 디테일들이 조금씩 어긋나며 들어맞지 않다가, 결국 인간이라는 종적(種的) 유사성 외에 별다른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고전의 의미는 상당히 퇴색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모든 인간을 포괄할 정도로 그물이 거대해지면 역설적이게도 그 텍스트는 아무 것도 포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성장서사가 오늘날 핍진성을 상실했다는 말의 의미는 시대배경이나 문화, 사용하던 물건들의 차이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해 물리적 시간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시간의 차이 때문이며 이 말은 곧, ‘삶의 양식 혹은 태도(modus vivendi)’가 변화했다는 뜻이다. 성장은 ‘상실의 경험’이다. 그것은 아이의 단계를 마무리하고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대가이다. 이를테면 청춘의 등가교환체계인 셈이다. 상실은 언제나 쓰디쓰고 고통스럽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가는 경험이고 나도 나의 부모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닮은 단계를 밟아가며 어른이 된다. 성장담은 따라서 세대를 거듭해가며 변주되는 약속이다.

 

삶의 리듬이 거의 변하지 않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온 이후 각 세대의 경험이 과거에 비해 훨씬 이질화되었고 성장담도 변화했다.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개인’의 탄생으로 인해 성장서사는 점차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가까워졌다. 20세기의 성장담이 몇 세대를 거치면서도 그 원형이 상당 부분 유지되고 또한 그토록 엄청나게 양산된 것은 소위  20세기적 생산양식이 개인의 성장단계를 ‘보증’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근대적 의료/보육/교육체계 속에서 생물학적 나이에 따라 나뉜 발달단계가 제시되었고 개인의 삶은 이에 맞춰 전형화 되었다. 그것이 바로 근대 성장서사의 물적 기반이다. 예술은 결코 시대와 분리되지 않으며 당연히 성장담도 마찬가지다. 21세기인 지금 20세기적 성장담의 핍진성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미생>과 <골든타임>은 형식만 보자면 전형적인 20세기 성장담이다. 주인공은 처음에 백지상태(tabula rasa)이지만 멘토를 만나고 학습하고 경험하면서 선형적 성장의 단계를 밟아나간다. 목표는 프로페셔널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이들에게 데미안이나 깡디드처럼 자아를 찾기 위해 방황하거나 진리를 찾기 위해 고뇌하는 여유는 없다. 한국에서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그린 드라마들은 1990년대에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였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런 작품을 기획하지 않는다. 맨손으로 시작해 거대한 왕국을 세우는 입지전적 스토리 역시 명맥이 끊겼다. 자아를 찾을 여유도, 신화를 만들 영웅도 없다. 반면 88만원 세대의 잉여적 삶을 그린 작품들은 차고 넘친다. 20세기적 형식에 오늘의 현실을 담다보니, 성장담은 이제 생존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는 현대사회의 세대 간 적대에 관한 가장 출중하고도 문제적인 텍스트다. 이 소설은 주인공 브루노와 그의 아들, 즉 68세대와 포스트 68세대의 관계를 통해 근대적 삶의 태도가 사실상 해체되어버렸음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브루노는 우울증 때문에 어린 나이에 가진 자신의 아들을 돌보지 못했고 그의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아버지에게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게 된다. 급기야 아들은 젊은 여자를 두고 아버지와 성적 라이벌이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것도 물려줄 게 없었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어떤 존경도 비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시간의 우리(the same cage of time)” 속에서 적대하고 경쟁한다. ‘약속된 미래’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개시한다. 기성세대는 다음세대에게 무엇도 약속할 수 없다. 성장은 탈낭만화되었고 처절해졌다.

 

이제 지젝이 말한 럼스프린가는 아이러니가 된다.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자신의 저항이 체제에 포섭되고 그 재생산에 복무하게 되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그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이전 세대와 같은 기회가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다. 그것은 자신의 성장의 한 단락을 영원히 마무리하지 못한 채 영원히 성장해야하는 악몽이다. 헐리우드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처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같은 날이 반복되는 삶 말이다. 다시 말해 현재 젊은이들의 공포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체제로의 편입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성장서사라는 말이 암시하는 바는 정확히 이것이다. 탈근대의 성장담은 완결되지 못한다. 이것은 미완으로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장의 근본적 불완결성을 뜻하는 것이다.


 

2012. 4. 13. 19:12

세대와 정당정치 2002~2012: 정치적 세대동맹의 역사와 의미

[황해문화 2012년 봄호]


세대와 정당정치

2002~2012: 정치적 세대동맹의 역사와 의미



2012년은 시작부터 선거열기로 뜨겁다. 개혁․진보진영의 정치인과 정당은 일제히 ‘헤쳐모여’를 외치며 바쁘게 움직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한나라당도 “쇄신”을 부르짖으며 들썩거리고 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2002년부터 2011년에 이르는 10년 동안 크고 작은 선거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다양한 관점으로 이들 선거를 바라볼 수 있겠지만, 이 글은 세대동맹이라는 프리즘으로 10년의 선거를 돌아보고, 이를 통해 정치적 세대로 호명된 세대들이 실제로 어떤 동질성과 이질성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각 선거에서 어떤 투표행태를 보여줬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요컨대 정치적 세대동맹의 역사와 의미를 총선과 대선을 앞둔 2012년 한국사회라는 맥락 속에 적절히 위치시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002년: 2030 세대동맹의 탄생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세대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세대는 극명하게 양분되었다. 20대와 30대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고, 50대와 60대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면서 선거는 ‘세대대결’ 양상으로 치닫는다. 젊은 세대가 노무현에 열광한 것은 일차적으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가진 매력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노무현은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을 포기했던 ‘바보’ 정치인이었고, 특권과 부패로 얼룩진 정치권에 ‘비주류’의 새바람을 넣어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처음 안겨준 사람이었다.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하다고 평가받던 젊은 세대는 노무현을 계기로 유의미한 ‘정치적 덩어리’로 응집하기 시작했다. 2002년 당시 이른바 ‘2030세대’가 노무현이 가진 어떤 ‘권위’ 때문에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를 하며 여유롭게 살아가다 뒤늦게 운동에 뛰어든 그가, 또 대학을 나오지 않은 상고 출신인 그가 명문대 운동권들과 야당의 거물정치인들 틈바구니에서 민주화운동의 ‘적자’가 될 수는 없었다. 젊은 세대가 노무현에게서 본 미덕들은 탁월함과 비범함이라기보다는 소탈함과 평범함이었다. 그들이 느낀 감정도 경외감이라기보다는 친근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실제로 노무현이 지녔던 정치적 이념이 무엇이었든 간에, 젊은 세대가 노무현에게서 발견한 가치들은 진보적거나 좌파적인 어떤 가치가 아니라 ‘상식’과 ‘원칙’이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이념에 경도되었다 환멸을 느낀 상당수의 30대에게 ‘신선한’ 인물로 다가갔고, 이념에 무관심하거나 불편해하는 상당수의 20대에게는 ‘생각 있는’ 정치인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각자의 동기야 무엇이든 노무현이라는 코드로 ‘세대동맹의 앙가주망(engagement 자기구속 또는 사회참여)’이 일어났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하다. 2002년 당시 20대와 30대는 소위 ‘X세대’와 ‘386세대’라는 말로 대변되기도 했는데, 2002년 월드컵 이전만 하더라도 소비문화같은 두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묶어서 ‘2030세대’라 통칭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기사다.



지난 10년간 국내 2030세대(20대와 30대)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담은 보고서 『변하는 한국 Changing Korea 1992~2001』이 최근 발간됐다. 대홍기획 마케팅 컨설팅 그룹이 2권, 824쪽 분량으로 펴낸 이 보고서는 지난 10여 년간 40여 억 원을 들여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5대 도시군의 6만여 명을 개별면접 조사한 결과이며 지난해에는 6천 명을 조사했다.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정치적 무관심주의 ○집 없어도 자동차는 필요 ○사랑하면 혼전섹스도 가능 ○법대로 살면 손해 


                                   ‘"사랑하면 혼전관계 OK"’, 『조선일보』, 2002년 3월 29일



그러나 2030 세대의 동질성을 보여주려는 갖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실 2002년 무렵의 20대와 30대를 동질적인 세대로 묶으려는 시도는 넌센스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절대빈국 수준의 궁핍과 저개발 상태에서 탈출한 이후에 태어나 비교적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자란 세대라는 점 외에, 20대와 30대는 오히려 정치․사회․문화적 공통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른 면모를 가진 세대다. 일단, ‘대학생’이라는 집단에 대한 사회적 평판 자체가 전혀 달랐다. 20대의 대학진학률은 무려 80%에 이르지만 30대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진학률은 불과 30% 정도였다. 또 20대는 문민정부 이후, 그러니까 학생운동이 쇠락하던 시기 또는 완전히 붕괴한 뒤에 대학에 입학한 세대였다. 하지만 30대는 이들과 다르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1980년 광주’라는 압도적 트라우마와 대면해야 했고, 친구들이 분신․투신자살하고 공권력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는 걸 목격했으며, 최루탄과 화염병을 실제로 보고 만지며 대학을 다닌 세대였다. 그런 점에서 30대는 오히려 ‘민청학련 세대’라 불리기도 한 40대와 좀 더 동질적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20대와 30대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이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했을 때의 그 뜨거운 열광과 흥분은 거의 ‘민족적 한풀이’라 해도 될 정도였는데, 당시 『딴지일보』 김어준이 감격에 떨며 외친 “우리는 강팀이다!”라는 선언은, 역으로 기성세대의 선진국․강대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강팀이다”라는 선언이 20대와 30대에게 주는 울림은 전혀 달랐다. 20대, 그리고 광장의 광란을 주도한 당시의 10대에게 그 선언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굳이 그렇게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알고 있었다. 다소 운이 좋긴 했지만 한국축구는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정당당히 싸웠다. 10대와 20대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라나던 시기의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나 대중문화로나 이미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386세대’와 그 윗세대에게는 그걸로는 충분치 않았다. 이들에게 미국으로 상징되는 선진국에 대한  콤플렉스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주박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는 강팀”이라고 재차 되뇌지 않으면 불안했고, 그래서 뜨거워서 터져버릴 것만 같던 광장에서조차 ‘완전연소’할 수가 없었다. 이 감수성의 차이는 작지 않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월드컵 주체‘라 할 수 있는 세대는 2030세대가 아니라 1020세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그럼 2030세대의 공통점은 없을까? 공통점이 있다. 그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매우 중요한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무엇인가? 그것은 ‘매체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매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 활용 능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단순한 ‘기술(skill)’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매체 활용 능력이면서 동시에 매체에 대한 감수성’이다. 한국사회라는 맥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두 가지 측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하나는 ‘올드 미디어에 대한 비판의식’, 다른 하나는 ‘뉴 미디어에 대한 감수성 및 활용능력’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실천적으로 상호참조(cross reference)되면서 동시적으로 강화되어왔다. 종이신문, 방송 등 기존의 주류매체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대와 열망의 근거가 되고, 역으로 새로운 매체의 영향력 확대는 기존 매체에 대한 냉소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상호참조는 한국 미디어 시장의 특이성을 잘 보여준다. 사실 다른 선진국가의 경우 뉴 미디어의 등장이라는 요소 자체는 올드 미디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직접적 원인이라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외국의 이른바 ‘정론지’는 인터넷매체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신뢰도에 결정적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뉴욕 타임즈』는 역시 그 『뉴욕 타임즈』이고, 『가디언』은 여전히 그 『가디언』이며, 『슈피겔』은 변함없이 그 『슈피겔』이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정론지와 소위 타블로이드(대중지)의 영역이 명확히 구별되어 있는 편이어서 정론지는 판매부수가 적지만 강력하고 권위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타블로이드는 엄청나게 많이 팔리지만 권위나 담론적 영향력은 적다. 정론지로서의 권위와 명성은 오랜  역사를 통해 검증되고 축적되어온 것이므로 뉴 미디어가 등장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일단 한국의 올드 미디어 시장은 정론지/타블로이드로 구별되지 않는다. 한다하는 매체는 죄다 정론지를 표방하며 전국구 종합일간지만 수십여 개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매체들은 동시에 대중지이기도 하다. 상위 몇몇 매체는 수백만 부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매머드급 언론사로, 근엄한 표정을 하고 ‘중립보도’의 기치를 공공연히 내걸지만 들여다보면 타블로이드 뺨치는 ‘황색보도’를 일삼는다. 굳이 표현하자면 ‘황색정론지’이겠다. 이렇게 한국의 주요 신문들은 그동안 ‘권위’와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왔는데, 문제는 이들 매체가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울지 모른다. 이들은 군부독재정권 때는 권언유착(權言癒着)으로 급속히 사세를 불린 뒤, 형식적 민주화를 이루자 무소불위의 ‘밤의 권력’으로 전횡을 휘둘러왔다. 언론권력은 이제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정치권력을 막강한 여론주도력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올드 미디어의 ‘정당성 위기’는 이렇듯 스스로 초래한 위기였다. 이런 행태에 전면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안티조선운동이다. 2002년은 안티조선운동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고, 그때의 2030세대는 그 한가운데를 온 몸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영향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 없는 세대였다. 언론학자이자 대중지식인으로서 강준만은 이미 1990년대 중후반부터 대학가와 시민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상당수의 운동권 동아리들은 강준만의 『언론플레이』나 손석춘의 『여론읽기혁명-왜 지금 언론개혁인가』 등의 책을 세미나의 필수 ‘커리’로 선정해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이렇게 ‘학습’한 대학생들은 안티조선운동의 주요 논객으로, 또 활동가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또 다른 측면, ‘뉴 미디어 감수성과 활용능력’ 또한 2030세대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다. 어느 사회든 뉴미디어에는 젊은 세대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접촉한다. 2011년 9월 한국광고주협회가 밀워드브라운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만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SNS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SNS 이용자 중 20대가 58.2%로 과반수를 점했다. 30대는 27.8%, 40대는 11.8%, 50대 이상은 2.4%로 나타났다. 2002년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단지 그때는 SNS의 시대가 아니었을 뿐이다. 지금보다 인터넷 보급률이 훨씬 낮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뉴미디어의 세대분절 현상은 오히려 최근보다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 김대중 정부 시기 국가차원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은 IT산업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과 동시에 진행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속도와 규모로 고속인터넷이 전국에 보급된다. 매체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기반시설은 무엇을 의미할까? 간단히 말해 전국 배달망이 그냥 깔려버렸다는 뜻이다. 비싼 윤전기는 필요 없었다. 인터넷 주소와 HTML만 있으면 내가 만들어낸 콘텐츠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 큰 초기자본 투자가 필요한 신문 및 방송 산업과 달리 훨씬 적은 비용으로 매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몇몇 사람들이 인터넷 미디어라는 새롭고 막막한 영역에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은 가장 대표적인 인터넷 언론으로 초기부터 각광받았고, 지금은 종이신문 못지않은 영향력을 지닌 미디어로 성장했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극적으로 꺾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 직후 영국의 『가디언』은 ‘세계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World's First Internet President Log On)’라는 기사를 전 세계에 송고했다. 글자 그대로였다. 2002년 대통령 선거는 『조선일보』으로 상징되는 올드미디어와 『오마이뉴스』로 상징되는 뉴미디어의 대결이었다. 이 선거는 “한국정치사상 초유의 인터넷선거”라 불렸을 정도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인터넷이 승리한 선거가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가 승리한 선거’였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힘은 주류매체에 대한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인터넷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였던 개인들의 힘이었다. 이들은 노무현을 위해 뉴스를 ‘퍼 나르고’, 조중동 게시판에 반박글과 댓글을 쓰고, 온라인 성금을 모았다. 노무현 후보의 팬클럽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신드롬이었던 ‘노사모’는 인터넷 공간에서 발군의 행동력과 여론주도력을 보이며 맹활약했다. 노무현 후보 공식홈페이지 '노하우(www.knowhow.or.kr)'와 기타 소규모 지지 사이트들까지 합치면 노무현을 인터넷에서 띄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조직된 그룹의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공교롭게도, 혹은 필연적이게도 선거권을 가진 이들 중에서 가장 인터넷을 잘 다루던 세대가 20대와 30대였다. 유례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통에 기성세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댔지만, 젊은 세대는 그것을 흥분되는 도전 또는 축제로 받아들였다. 안티조선운동과 뉴미디어 혁명이라는 두 개의 현상이 절묘하게 겹치는 시기, 미디어 리터러시를 공통기반으로 하는 ‘2030 세대동맹’이 탄생했다. 그리고 ‘5060 세대동맹’을 끝내 꺾고야 만다. 이 치열했던 세대 간 투표연대에 대해 “인터넷으로 무장한 2030세대가 오프라인 중심의 5060세대를 무너뜨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2002년 대선이 끝난 며칠 후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국회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은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권력을 창출하는 핵심 미디어로 87년 대선에서는 광장의 확성기가, 92년 대선은 신문이, 97년 대선은 TV가, 2002년 대선에서는 인터넷이 부각되었다. 인터넷과 네티즌에 대해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패인이었다. 어차피 20∼30대 네티즌은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인터넷의 열기와 실제 상황은 다를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상식과 판단을 뒤집어 버렸다. 진짜 일을 낸 것이다. 20∼30대를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그 동안 지역패권·금권·관권선거 등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를 한꺼번에 쓸어버리려 했다. 

            

                   김형오, ‘한나라 패인은 인터넷 대책 부재’, 『오마이뉴스』 2002년 12월 29일




2012년 세대동맹, 2007년과 다를까


세대동맹이 다시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10년이 지난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탄생을 전후해서다. 이번에는 ‘2040세대’다. 이들 세대가 이른바 ‘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이 당선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다른 세대와 확연히 구별되는 투표성향을 보였고, 여당의 ‘강남몰표’를 압도하는 위력을 보였다. 세대별 투표결과가 알려지자 ‘2040세대가 세상을 바꾼다’며 이른바 개혁성향 매체들은 흥분에 찬 어조로 특집기사들을 쏟아냈다. 한 마디로 ‘진보적 세대동맹’의 가능성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해다. 2040세대 뿐 아니라 온갖 형태로 정치적 주체들이 호명되거나 동원될 것이다. 그 자체로 좋고 나쁜 현상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호명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것인가이다. 2012년의 2040세대는 2002년 2030세대와 얼마나 다를까? 코호트(cohort), 즉 인구학적 연령집단으로 견주자면, 10년 전인 2002년의 2030세대에 당시 10대였던 집단을 합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2002년의 10대부터 30대까지의 집단이 나이를 먹어 2012년의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연령집단이 된 것이다. 2040세대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다시금 투표연대를 과시하며 박원순 시장을 당선시켰다. 


여러 매체들이, 특히 개혁성향의 매체들이 선거결과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2040세대의 이념성향, 특히 40대인 과거 ‘386세대’의 진보성에 방점을 찍었다. 예컨대 『내일신문』은 ‘경제위기가 40대를 왼쪽으로 밀었다’ 제하의 기사에서 2010년과 2011년의 여론조사결과를 비교해 40대의 진보성에 주목한다. “40대의 진보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40대는 복지(49.3%)와 성장(50.7%)을 비슷하게 선택했다. 1년 전 현대정치연구소 조사에서 복지(38.2%)보다 성장(61.8%)이 압도적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그러나 정작 이 기사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측면은 기사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단정지어버리는 ‘40대의 진보성’ 따위가 아니다. 불과 1년 새 보수에서 진보로 순식간에 옮겨가는 엄청난 이념적 '진폭'이야말로 주목해야할 지점이다. 이 말은 곧, 이들 세대가 언제든 보수로 돌아설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이것은 또한 세대의 이념성향이라는 것이, 계급정치가 정착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별로 신뢰할 수 없는 지표라는 것을 보여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40세대의 진보성을 보여준 선거가 아니었다. 애당초 2040세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사실상 강요된 선택지였다. 진보적 대안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어떤 세대의 진보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심지어 기만적이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범야권 단일후보라는 박원순 시장의 진보성에는 많은 이들이 의문부호를 찍은 바 있다. 특히 박원순 시장 취임 직후 서울시의 가락시장 종상향 문제를 놓고 경제학자 우석훈은 “박원순 시장이 토건세력에 먹히고 있다”며 연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한국사회의 세대적 정치참여를 논할 때 이념성향보다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요소는 미디어 리터러시였고, 여전히 그러하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조중동 등 소위 주류언론의 선거 보도에 대한 비판과 견제 역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선 곤란하다. 단지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능동적 정치참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인터넷은 시민의 능력 및 정보이용 가능성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인터넷이 시민의 인지적 능력 뿐 아니라, 시민의 참여 동기와 관심 까지도 변화시킬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


           브루스 빔버, 『인터넷 시대 정치권력의 변동』, 이원태 역, 삼인, 2007, 375쪽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2007년 대통령선거는 이에 대한 적절한 사례일 것이다. 혹자는 그 선거를 두고 “인터넷이 사라진 선거”라고까지 표현한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홈페이지 ‘노하우’의 1일 평균 접속자는 30만 명, 페이지뷰는 200만 뷰에 달했지만 2007년 대선에서 후보 홈페이지 월 방문자 수는 평균 10만을 넘지 못했다(윤성이, 「17대 대선에 나타난 온라인 선거운동의 특성과 한계」, 『한국정치학회보』 Vol.42)」). 2002년에 비해 뉴미디어 인프라가 더 강력해지고 더 두터워졌음에도, 2007년 대선에서는 왜 인터넷 선거의 성격이 옅어진 것일까? 2002년에는 눈부신 효과를 발휘했던 미디어 리터러시 세대동맹이 왜 2007년에는 작동하지 않았을까? 

자격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능동적 정치참여를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하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동기’다. 능력만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정치참여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동기가 필요하다. 물론 미디어 리터러시를 ‘동기’가 아닌 ‘능력’이라 일도양단해버릴 수는 없다. 주류매체에 대한 비판의식이라는 면에서, 또 뉴미디어의 활용과 정치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주는 정치효능감(political efficacy)이란 측면에서 ‘동기’의 성격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캠벨(Cambell)은 정치효능감을 “정치적 사회적 변화는 가능하며 개별시민은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이라 정의한다(『Voter Decides』, 1954). 다시 말해,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정치참여의 ‘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다. 그러나 그것이 동기의 전부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대선에서도 200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춘 세대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2002년 수준의 강렬한 정치참여를 보이지는 못했다. 정치참여의 동기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기를 완결시키려면 강력한 ‘대립적 의제(conflictive agenda)’가 필요하다. 2002년의 노무현과 이회창의 대결구도에서는 그게 있었다. 2007년 대선에서 많은 사회적 의제들이 난무했지만 대립적 의제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 결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엄청난 표차로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질적인 젊은 세대 간의 동맹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기반이자 공통점이다. 그러나 미디어 리터러시와 대립적 의제라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클리어하지 않으면 세대동맹만이 아닌 ‘세대동맹을 통한 역동적 정치참여’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무엇인가


선거의 해인 2012년에 대립적 의제가 형성될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한나라당조차 복지를 화두로 삼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2002년 대선보다 의제의 대립각이 커질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2007년 대선보다는 뜨겁게 달아오를 거라 예상할 수 있다. 이 예상의 중심에 안철수 현상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탄생시킨 결정적 계기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안철수였다. 그는 불과 2개월 사이 ‘착한 CEO’, 혹은 ‘청춘의 영원한 멘토’에서 대권 1순위로 뛰어올랐다. 그야말로 신드롬이라 할 엄청난 반향이었다. 역시 그 흐름을 주도한 세대는 2040세대였다. 

안철수에게서 대중은 무엇을 본 것일까? 일부 좌파들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복종한 대중이 ‘착한 이명박‘으로서의 안철수를 요청하고 있다고 분석했고 나름 일리가 있지만 동의하기는 어렵다. 신자유주의라는 틀로 안철수 현상을 분석할 경우 지나치게 많은 알갱이들을 놓치게 된다. 안철수는 경쟁의 효과를 신봉한다는 점에서 물론 시장주의자이다. 하지만 그의 지론은 경쟁력 강화에 방점이 찍힌다기보다 ’경제생태계의 회복‘에 찍힌다. 안철수의 발언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의 생각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것이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단지 신자유주의보다 이전인 정도가 아니다. ‘분배의 균등’과 ‘참여의 균등’이란 차원이 빠져있다는 점에서는 20세기 중반의 서구 복지국가체제보다도 이전의 것이다. 그렇다면 안철수가 말하는 자본주의는 대체 무엇인가? 정확히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념은 없지만 그나마 가장 유사한 이념은 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특히 안철수의 다분히 도덕주의적인 경영철학은 『국부론』보다는 『도덕감정론』의 아담 스미스와 더 가까워 보인다.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는 인간사회를 단지 효용가치와 효율성만을 높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 내지 시스템으로 파악하려는 철학체계를 비판한다.”(박순성, 『아담 스미스와 자유주의』, 2003, 108쪽) 한국의 우파들에 의해 왜곡된 것과 달리 아담 스미스는 ‘동감(sympathy)의 윤리’를 강조한 『도덕감정론』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국부론』 내에서도 온전히 시장만능주의자였던 적은 없다. 안철수의 이른바 ‘상인군자(商人君子)의 자본주의’는 일본경제가 아직 잘나가던 시기에 주목을 받았던 로버트 오자키의 ‘인간적 자본주의’와도 유사성을 보이는데 인간적 자본주의란 “자본 지향을 사람 지향으로 대체한” 체제로서 인적자원을 최고로 중요시하는 인식에 기초하는 것이다(물론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진 이후 오자키의 주장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게 됐다).


안철수가 하는 이야기들이 한국에서 보수우파들의 반감을 사고 진보좌파의 호감을 얻고 있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서 말하고 있는 원칙만으로도 재벌권력이 장악한 ‘기업사회’인 한국에서는 거의 혁명에 가까운 진보성을 띠기 때문이다. 대중이 안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성공한 개인’이어서가 아니라 ‘반칙하지 않고 성공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착한 승자’다. 한국처럼 뒤틀린 사회에서 반칙 없이 성공한다는 것은 마치 ‘네모난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으로 들린다. 하지만 사실은 정상적인 근대화를 거쳤다면 당연하게 여길 일이 아닌가? 안철수는 우리가 갔어야 할 근대의 살아있는 표상이다. 게다가 지금 보니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안철수가 ‘복고적 미래’인 것은 그래서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정점에 달한 시기에조차도 신자유주의적 열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적인 열망이 대중들의 내면에 공존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복지체계를 파괴하고 노동자를 공격해 자본의 흐름을 ‘효율화’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기득권에 의해 왜곡된 기존의 지대추구행위(rent seeking)를 일소하는 현실 개혁적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외부효과(외부세력)를 통해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런 사고방식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재벌의 구태를 개혁하려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서도 발견된다. 서구선진사회와는 다른 과정, 즉 압축적 근대화과정은 굴곡진 민족서사와 한(恨) 많은 개인서사들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파괴되거나 손상된 많은 것들을 다시금 복원하고 정상화시키려는 시도와 요구는 그래서,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사고방식이자 그 자체로 공동체의 보편서사이기도 한 것이다. 예컨대 친일청산문제에 대한 대중의 강렬한 정서적 반응도 이런 사고방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정상근대(正常近代)에 대한 이런 열망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열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공히 현실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이념이다. 그러나 정상근대에 대한 열망은 그런 종류의 변화를 추동하는 정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탈구된 현실을 안정화시키려는 정념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열망이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대립적 의제가 될 수 있느냐이다. 신자유주의가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 오늘날, 안철수 현상이 내재한 이런 측면은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에 대해 활발한 토론과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선이라는 제로섬 게임 속에서 누구나 동의할만한 하나마나한 주장으로 얼버무려지고 끝내 아무런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지 못할 가능성 역시 엄존한다. 



‘매개 없는 정치’가 부른 세대론의 과잉


한국사회에서는 세대가 호출되는 일이 유독 빈번하다. 세대담론을 계급담론과 대비해 폄하하거나, 세대를 코호트(cohort) 같은 인구학적 개념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대론은 그 자체로 오류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대라는 틀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서 2007년 『88만원 세대』에 처음 등장한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은 승자독식의 사회가 청년세대의 사회적 기회를 얼마나 앗아가며, 얼마나 공동체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지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훨씬 이전에 등장한 ‘386세대‘라는 말도 1980년대 학생운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일익을 담당하고 이후 사회에 대거 진출한 어떤 세대집단을 가리킴으로써 나름 유의미한 참고가 되어왔다는 점을 본다면 단순히 “호사가들의 언어유희”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역시 세대라는 개념은 위험천만하다. 사회진보의 주체로 요청되는 세대론과, 정치적 동원 또는 상업적 마케팅의 대상으로 호출되는 세대론은 현실에서 그리 쉽게 구별되지 않으며 사실 처음부터 후자였거나 점차 전자에서 후자로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세대론이 나왔을 때 우리는 그 텍스트는 물론이고 컨텍스트, 다시 말해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세대를 호출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 컨텍스트에는 역사성, 즉 ‘과거’와 ‘현재’가 포함되어야 한다. 같은 대상을 두고 과거에 이렇게 발언했던 이들이 오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주의 깊게 의심해보아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왜 세대는 이렇게 끊임없이 정치적 주체로 호출되는 것일까? 정치학자 최장집은 이렇게 말한다.



최근 민주화 이후 세대들의 정치적 양태에서 볼 수 있듯이, 세대의 문제는 투표행태를 포함하여 한국정치의 변화를 가져올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이 세대의 문제는 대안 세력의 조직화를 잘 허용하지 않는 한국 시민사회의 구조에서 집단적 연대가 만들어지는 한국적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대의 집단적 연대는 한국 시민사회의 불가예측성, 부동성 혹은 안정성 결여, 격발성, 평시에 억압되어 분출될 수 없었던 집단적 열정의 찰나적 분출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역시 시민사회에서 운동부문이 갖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시민사회의 비판적 운동부문은 도시의 교육받은 중산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들이 운동을 위해 결집하는 이슈는 압도적으로 비非정치적이거나 아나가 반反정치적이 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갖는 이념적 퍼스펙티브에서 노동과 같은 계급문제를 운동의 이슈로 포괄하기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시민사회의 운동부문 역시 노동운동과의 연대형성에 관심이 없고, 결국 노동운동의 강화보다는 고립에 기여하고 있다.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2005, 235~236쪽



요약하자면 최장집은 비정치적이거나 반정치적인 이슈에 천착하는 시민사회의 특성과 대안세력의 조직화가 잘 되지 않는 문제점을 들어 세대가 선거의 주요변수로 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장집의 기본입장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사회의 ‘이익대표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의 주요 갈등이 사회화되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배제되며, 그것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생각한다. 10% 대에 불과한 노조조직률(2011년 현재 9%대로 하락), 그리고 정책참여와 노사관계 모두에서 노동이 배제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오늘날 한국정치의 모습은 시민들의 실제 삶과 괴리된 정치 엘리트들끼리의 과장된 갈등과 유화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회복이다. 정당이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잘 대변하고 공익과 공공선에 대한 경쟁적 논의들을 정책대안으로 조직하는 역할을 할 때, 비로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최장집은 촛불을 ‘포퓰리즘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정당정치로의 수렴을 강조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평소 지론을 그대로 피력한 것이었지만 발언 직후 그는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과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폄하했다’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전통적으로 ‘거리의 정치’를 강조해온 좌파 운동진영 역시 강하게 반발하며 ‘정당정치만이 정치가 아니며 운동 역시 정치’라는 테제로 맞섰다. 공정하게 말해서 최장집은 운동의 정치 또는 거리의 정치를 부정했다기보다 정당정치에 강조점을 뒀다고 해야 옳다. 그는 “정당정치가 잘 작동하는데 왜 거리로 나선 것이냐”고 시민들을 비난한 것이 아니었고 그런 식의 견해를 어디서도 표명한 적이 없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 냉소한 적도 있다. “오늘날 한국의 정당들을 보면서 누군가 나에게 정당이 굳이 있어야 하느냐, 그냥 후보들끼리 자유롭게 나와서 선거하면 되지 않느냐, 정당을 대표하는 후보가 되어야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더 좋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말을 선뜻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최장집, 2005, 250쪽) 그러나 최장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정치를 운동정치보다 우선시하고 있다. 이익대표체계(정당은 그 대표적 형태의 하나이다)의 정상화를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처리하는 것이, 역동적이지만 우발적이고 불안정한 운동정치보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훨씬 이로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정치의 복원, 즉 정당 시스템이 시민의 요구를 잘 반영하고 대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무장혁명을 통해 일시에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을 제외하면, 직접민주주의와 인민의 자기통치 원리 등의 민주주의 교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급진적 좌파들조차 대부분 이런 원론을 부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정작 고민해 봐야할 문제는 ‘정당정치 대 운동정치’ 따위가 아니다.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크게 세 가지 질문으로 정식화해볼 수 있겠다. 첫째, 대의제 하에서 인민의 의사가 대표되지 못할 때 대의제의 복원은 소위 ‘운동의 정치’ 외에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가? 둘째, ‘운동의 정치’는 오직 대의제의 복원을 목적으로 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는가? 셋째, 지금 거리에서 표출되거나 혹은 정당으로 대의되고 있는 인민은 누구이고 그렇지 못한 인민은 누구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은 최장집의 입장을 겨냥한 것이지만 세 번째 질문은 최장집과 그의 비판자에게 공히 해당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것은 별도의 작업이 되어야 하며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세 개의 질문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어떤 문제적 측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질문이라는 점이다. 바로 ‘매개 없는 정치’ 말이다. 매개 없는 정치는 한 마디로, ‘개인이 국가와 일대일로 접촉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다. 한국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정당이나 이익집단에 대해 극심한 불신감을 갖고 있다. 제도에 대한 이 만연한 혐오감에는 주류언론도 단단히 한 몫을 한 것은 물론이다. 아무튼 한국이란 사회에는 소위 ‘사익추구집단’을 믿느니 차라리 ‘자력구제’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 그럼 ‘운동권’은 신뢰받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들은 사익추구집단이어서 라기보다는 ‘무능하고, 무력하고, 촌스럽다’는 이유로 신뢰를 얻지 못한다. 촛불시위라는 형식은 한국사회의 매개 없는 정치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잘 보여준 현상이었다.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경향에 대해 오랫동안 날카롭고 깊게 파고든 이는 역시 최장집이었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세대의 문제는 대안 세력의 조직화를 잘 허용하지 않는 한국 시민사회의 구조에서 집단적 연대가 만들어지는 한국적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구절은 정치적 세대가 어떤 이유에서 호명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2012년 선거를 앞두고 거의 모든 언론에서 ‘2040세대’만을 읊조리고 있는 현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의 ‘세대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세대상황은 그 세대가 공히 처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환경, 즉 객관적 상황이다. “세대상황은 단순히 코호트의 유사성으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상황에 따라 객관적으로 구성되는 삶의 기회를 ‘숙명적(Mannheim)’으로 공유한다는 의미”이다(전상진, 「세대사회학의 가능성과 한계」, 한국인구학 재25권 2호, 2002, 212). 2040세대는 세대상황이 제각각일 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동질적이라 하기 어렵다. 아니, 세대의 이념성 자체가 워낙 변동이 심해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해야 더 정확하다. 예컨대 20대는 2007년 대선 직후부터 201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소위 ‘20대 개새끼론’의 당사자로 기성세대에게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다. 18대 총선 직후에는 ‘20대 투표율 19%’라는 인터넷 루머를 근거로 진보적 지식인들이 20대를 일제히 비난하는 해프닝(『경향신문』, ‘20대 투표율 19%는 대의정치 위기’)이 벌어졌을 정도로 20대는 ‘보수’‘무개념’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였다. 그런데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20대가 희망이다”라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불과 2년 사이에 20대의 진보성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극과 극을 오간 셈이다. 40대 역시 다르지 않다. 가장 이념화된 세대라는 평가를 받는 이 세대조차 앞서 『내일신문』 보도를 예로 든 것처럼 불과 1년 새 보수에서 진보로 옮겨갔다. 단기간에 이념성향이 큰 폭으로 진동하는 이런 특징은 세대를 이념으로 묶어 “진보적 세대동맹”이라 추켜올리는 짓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거듭 반복하지만 2040세대의 거의 유일한 공통기반이 있다면 미디어 리터러시이다. 이념적으로는 부동층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선거의 의제가 얼마나 대립적인가가 관건이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안철수 현상에 내재한 ‘정상근대에 대한 열망’이 선거 국면에서 어떻게 작동하게 될 것이냐이다. 한국정치는 3개월 단위의 예측도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2012년에 안철수 현상을 추동한 모종의 이념형이 실체화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그것은 기존의 ‘진보’ 또는 ‘개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형태일 것이다. 

2040세대가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특성 때문에 언론 등에서 지나치게 과잉대표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두어야 한다. 2040세대론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위험한 지점은 계급적으로 대표되어야할 주체들이 한나라당과 반(反)한나라당이라는 ‘종말론적 아마겟돈’ 속에 매몰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반이명박 정서에 편승해 정치공학적 이득을 취하려는 여러 세력들은 그래서 계속 세대론을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세력들 중 대다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개혁성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정책을 엄청난 사회진보의 약속인 양 포장하고 있으며 선거가 다가올수록 그 ‘허풍’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정치적 세대동맹에 대한 지나친 열광과 기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할 이유다.


                            박권일  『자음과 모음 R』 편집위원․『88만원 세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