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6. 06:53

'참여정부는 철도 민영화를추진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한 단상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710271655650498&id=100000030108711



오건호 박사(이하 오건호)의 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진행중이어서 잠깐 정리해둔다. 오건호는 김규항 등의 주장, 즉 철도청의 공사화가 곧 민영화 단계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지인을 통해 김규항씨의 12월 24일 경향 칼럼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페북에서 비슷한 평가를 하는 다른 페친도 보았다. 김규항씨 칼럼을 보자.

"철도 민영화는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철도를 4단계로 민영화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1단계는 철도의 시설부문과 운영부문 분리, 2단계는 철도청을 철도공사로 전환, 3단계는 철도공사의 경영 개선, 4단계는 철도 운영에 민간 참여로 경쟁체제 수립. 이명박 정부는 철도 민영화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이어받아 4단계를 추진하고 있다."([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 비판적 해소). 

여기서 1~3단계는 한국철도공사법에 의한 한국철도공사 설립을 가리키는데 철도청의 공사화를 민영화 단계로 간주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한국철도공사 설립으로 철도운영은 공사체제로 법제화되었다. 

논점은 4단계인데, 아마도 노무현정부에서 제정된 철도사업법(면허 조항)에 민간참여가 허용되었다고 이해해 그리 평가하는 듯하다. 하지만 철도사업법 모법인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철도운영 신규참여의 대상으로 철도공사가 포기한 폐지노선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모법의 취지를 무시하고 철도사업법의 면허 조항을 왜곡해석하는 게 이명박, 박근혜정부이다. 지금 수서발 KTX 면허 발급이 위법이라고 우리가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정부의 철도관련법에 따르면, 철도공사 포기노선, 민간투자사업법에 의한 민자철도 이외에는 제3자가 철도운영을 맡을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법제정 취지 역시 그러했다. 이것을 철도민영화라고 볼 수 없다. 

정리하면, 노무현정부에서 철도의 민간참여 로드맵이 추진되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철도민영화 세력들의 왜곡 논리일 뿐이다."




2004년 버전의 철도산업발전 기본법을 지금 내가 전부 참고할 수 없어서 논의가 제한적이지만, 본문과 댓글까지 포함해 오건호의 논리는 대충 다음과 같다. 


1. 참여정부 당시 제정된 법의 취지는 민영화가 아니었다

2.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수서발 KTX 면허발급은 철도사업법의 왜곡해석이다

3. 그런데 2005년 6월 이후 건설된 노선에 미국자본 참여가 허용되게 한 한미 FTA 조항이 더 심각한 문제다. 

4. 평택-부산 노선은 2005년 6월 이전 노선이니 수서-평택 노선으로만 미국자본참여를 한정해 사실상 무력화시켜야 한다


사실관계와 별론으로 이 논리는 현 상황에서 전술적 가치가 있다. 철도파업 관련한 최근 문재인의 정권비판 발언이 참여정부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극우언론과 새누리당에 의해 연일 두들겨 맞고 있다. '너도 민영화 추진했으면서 정권 못잡으니 이제와 민영화 반대하는거냐'는 비난과 조롱이다. 오건호의 논리는 이런 비난에 방어논리를 제공해주고 전선을 좀더 또렷이 그어줄 수 있다.


댓글에서 (참여정부보다 왼쪽 성향의) 여러 사람들이 오건호의 주장에 즉각 반발했다. 지금까지 진보/개혁 진영의 민영화 3단계론 내지 4단계론은 시설/운영 분리를 민영화 1단계로 설명해왔는데 그걸 민영화 단계가 아니라고 하니 참여정부 '실드'가 아니냐는 것. 실제로 대부분의 철도 민영화 사례에서 시설/운영 분리가 선행되기도 했고 말이다. 


내 생각은 현재 이렇다. 참여정부 당시 제정된 철도사업법의 취지가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은 명시화되지 않은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취지는 그렇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현실적으로 취지를 배반해버리면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상당수 법과 제도가 그런 운명에 처한다. 오건호는 참여정부 당시 철도사업법에서 철도 신규참여 노선이 철도공사 포기노선 등에 한정된다고 했지만 철도공사가 정권 및 정부의 압력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지배구조 하에서 노선은, 특히 적자노선일 경우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포기'될 수 있다. 참여정부 당시 철도 민영화의 완결이 결과적으로 저지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참여정부의 '선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불법파업'을 감수한 철도노조의 격렬한 저항과 진보진영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참여정부 철도관련 정책의 취지가 설령 민영화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민영화로 가는 2차선 도로를 4차선 내지 8차선으로 넓힌 것만큼은 사실이 아닐까.


참여정부의 책임은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건호도 지적했지만 철도 민영화에서 한미 FTA 조항이 더 위협적이다. 내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한미 FTA라는 이슈에서 가장 책임이 큰 정부는 참여정부다(공로가 크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백번 양보해 참여정부에게 철도 민영화의 의도가 없었다고 인정하더라도 한미 FTA의 주요 이슈에서 참여정부의 책임을 제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의도는 없었을지 몰라도 철도 민영화의 개연성과 위험성을 지나치게 높인 정권이 참여정부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오건호의 논리로 얼마든지 함께 철도 민영화에 반대해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민영화 반대 전선을 흐트리는 이적행위'라는 식의 폭력적인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철도 뿐 아니라 다른 공공부문의 사유화 위협 때문에라도 이 사회가 공공성을 얼마만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 치열하게 논쟁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를 들춰보지 않을 수 없다. 철도 민영화와 한미 FTA에 대해 새삼 참여정부 인사들의 성찰과 자기비판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2013. 12. 24. 08:39

철도파업, 2003년과 2013년의 차이?

문재인 의원 발언을 두고 극우언론과 일베 등이 '역공' 중이다. "너도 2003년 철도파업 때 정치파업이라며 경찰투입 했잖아!" 물론 '친노'들은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사에서 완전히 동일한 상황이 반복될 수는 없다. 상황은 늘 다르다. 한 끗만 달라져도 다른 거니까. 

반면, 상황이 같다고 판단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아래 링크한 김규항 선생같은 이다. 사족이지만 글의 마지막 부분이 흥미롭다. 촛불소녀와 대자보 청년들을 '진보의 신성가족'으로 포섭하는 저런 반복적인 '성찰의 포즈'들에 나는 언제나 위화감을 느낀다(이 문제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지 싶다). 

핵심만 말하자면, 2003년 4월과 2013년 12월의 상황은 다르다. 2003년 4.20 합의에는 박근혜 정권이라면 불가능한 수사가 들어있다("철도의 공공성을 감안해 기존 민영화 방안은 철회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사태를 봉합하고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이 부분에서 지금 박근혜 정권과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2004년 노무현 정권은 민영화의 사실상 '필수 기초공사'라 할 시설/운영 분리(상하분리)를 결국 관철한다. 파업을 노조 지도부의 이기적 정치투쟁으로 몰아가는 짓도 노무현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주요한 공통점이다(제일 아래 링크 참조. 2003년 4월 합의를 파기하고 2003년 6월 2차 파업 원인을 제공한 측이 참여정부라는 대법 판결). 가장 중요한 지점은 철도 민영화의 단계를 확실히 밟아왔다는 점이다. 최소한 이 문제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착실한 계승자다. 

노무현 정권은, 나쁘게 해석하면 기만적이었고 좋게 해석하면 타협적이었다. 이 차이를 얼마만큼 중요하게 보는가가 입장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 김규항의 글은 한미 FTA 사례를 철도 민영화와 동일시하고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FTA는 노무현 정권이 사실상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해서 거의 대부분의 과정을 완결 직전까지 밀어붙인 아젠다였다. 따라서 다른 어떤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에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 

문재인 발언으로 다시 돌아가면, 나는 그가 박근혜 정권을 꾸짖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달랐다'는 강변은 보다시피 역공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정말 자신들이 박근혜 정권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당시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는 게 먼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152133025&code=920100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017.htm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232050015&code=990100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1441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