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27. 12:32

근대문학, 추리소설, 대체역사

직선적인 인과관계의 연쇄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열망은 중세적 사유의 핵심 중 하나다. 물론 모든 인과관계의 시작에 신이 있다. 그런데 중세 이후, 그러니까 신이 죽은 세계에서도 이 강박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강렬해졌다. 창조론이 진화론으로, 연금술이 화학으로 급격히 대체될수록 기계론-인과론적 사유가 더욱 긴요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공공연한 엔터테인먼트로 만든 것이 바로 추리소설이다. 반면 그것에 저항한 것이 근대문학이었다. 요사이 한국에서 범람하는 대체역사물은 추리소설의 외양을 갖춘 경우가 많지만 실은 단 하나의 필연세계를 질서정연하게 설명하는 추리소설과는 완전히 다르다. 요즘 한국사람들은 가공인물이 현실적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혜원 신윤복이 실은 여자였다'는 설정에 흥미를 드러낸다. 단 하나의 필연세계를 질서정연하게 설명하기를 포기하면 자연히 패러렐월드(평행세계)가 등장하는 법이다. 근대문학이 '세계와의 대결'이었다면, 추리소설은 '세계의 장악'이다. 그리고 대체역사물은 '세계로부터의 탈주'다. 한국은 근대문학이 두터운 저변을 형성한 것과 달리 추리소설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일본이 한국정도의 경제력일 때의 추리소설 소비양상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 즉, 한국은 '세계와의 대결'에서 곧장 '세계로부터의 탈주'로 점프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