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이 '새롭기 위한 고통'을 폄훼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에 바치는 찬사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고통은 물론, 내가 새롭다고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 의해 오래 전에 만들어졌음을 깨달은 순간의 허탈과 망연자실을 포함한다.
<88만원 세대>를 쓰던 무렵, '88만원 세대'라는 제목은 물론이고 '다안성'과 같은 개념들, '희망고문'과 같은 비유 하나하나조차 쉽게 떠오른 것은 결코 아니다. 사타구니 습진, 편두통, 과민성대장증후군 등등에 괴로워하며 고민을 거듭하다 어느 순간, 이를테면 사타구니를 벅벅 긁는다든지, 괄약근을 오므리며 화장실로 달려간다든지, 펜잘을 입에 털어넣는 순간 문득 하나의 착상이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반면 책상 앞에서는 언제나 시행착오 뿐이다. 그렇게 결과물은 언제나 수많은 좌절의 화학반응이다.
나는 대가에게도 애송이에게도 공평한, '등가교환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대가는 대가의 레벨에서, 애송이는 애송이의 레벨에서 스스로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양은 일정하다는 의미다. 새롭기 위한 고통은 언제나 괜찮은 결과를 보장한다. 단, 자신의 레벨을 착각하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