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3. 10:34

무상급식 반대의 몇 가지 논리


무상급식이 다가온 선거 최대의 이슈로 점화했다. 무상급식하면 당장 나라가 엎어질 것처럼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부자정당-극우언론들을 보니, 확실히 아프긴 아팠나보다.  하긴 "애들 굶는데 무슨 선진일류국가냐"라는 무상급식의 윤리는, 흡사 "인민이 굶는데 무슨 사회주의냐"라는 말처럼 통렬한 데가 있다. 무상급식 반대론은 현재까지 나온 것들만 놓고 보면 크게 세 종류로 나눠볼 수 있는 것 같다.

1. "무상급식? 요런 씹어먹을 빨갱이 놈들!"
2. "부유층 자녀 공짜점심은 형평에 어긋나고 돈 낭비니까 절대 안돼!"
3. "복지정책 '몸통' 놔두고 지엽말단적인 무상급식만 주장하는 건 유치빵꾸똥꾸!"

1번은 아무리 잘 봐줘도 논리라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  짐승이 긴장하면 털과 꼬리를 바짝 세우듯, 그저 동물적 반응일 따름이다. 슬픈 건, 한국의 보수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요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논의해볼만한 게 2번과 3번이다. 2번부터 보자. 부유층 자녀에게 공짜점심 주는게 형평에 어긋나니까 안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럴해저드"라고 주장하는 자들까지 있다. '고양이 쥐 생각해준다'는 말은 요럴 때 쓰라고 있는가보다. 세금을 왕창 걷을 필요도 없이, 한국이 지금 가진 여윳돈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에게 질 좋은 급식을 평등하게 먹일 수 있다. 우리 비록 동북아 변방의 소국이지만 이제 그 정도 능력은 되는 사회다. 만에 하나 돈이 조금 모자라도 걱정없다. '걱정도 팔자'인 부유층이 제 자식 위한다 생각하고 세금을 더 내면 될 게 아닌가. 만일 부유층 자녀에게도, 빈곤층 자녀에게도, 중산층 자녀에게도 학교에서 똑같은 점심밥을 제공하는 것이 정말로 국가가 저지르는 부정의(不正義))라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입으로 떠들 게 아니라 위헌소송을 하면 된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후진 사회라지만 그 정도의 근대적 구제수단 정도는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헌법을 글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아마 학교 무상급식만큼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정책이 드물다는 걸 깨닫게 될 터이다.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부유층 자녀 공짜점심이 형평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부유층들'의 속내엔 이런 생각도 포함돼있는 게 아닐까? "'개나소나' 먹는 학교급식을 내 아이에게 먹이긴 싫다!" "못사는 애들만 대충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이면 되잖아?" 정상국가에서라면야 이런 의심은 과도하게 악의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 새끼만 특별하게 키우려는 욕망이 유달리 강한 한국사회이기에, 노블리스 오블리쥬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조차 외면하는 부유층이 절대다수인 낙후한 사회이기에, 이런 의심은 필연적일 정도로 자연스럽다. 한편으로 이들이 이런 군색한 논리까지 동원해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있는 건 무상급식 의제의 '통로효과'를 두려워해서일 수도 있다. 다른 복지정책들이 줄줄이 밀려올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진보정당과 시민단체가 디자인한 무상급식 체계를 보면 교육, 환경, 건강과 같은 중대하고 절박한 사회적 가치들 뿐만이 아니라, 국가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철학과 입장의 문제까지 얽혀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본다면 이런 사실 때문에 무상급식 문제가 보기보다 훨씬 치열하고 첨예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번 논변은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에서 처음 목격된 새로운(?) 유형의 무상급식 비판이다. "무상급식=빨갱이"론보다야 나은 수준이지만, 논리의 '변태성'이라는 면에서는 단연 독보적이다. 요컨대 '통크고 과격한 복지개혁을 하지않고 쩨쩨하게 무상급식 따위에 목숨걸고 있냐'는 것이다. '국립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다운 대인배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3/22/3661603.html?cloc=olink|article|default 

무상급식이 마치 민주당이 급조해낸 의제인것처럼 몰아가는 것부터가 오류이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하는 건 "유럽국가들의 근사한 사회보장"을 부러운듯 언급하다 뒤에 가서 무상급식을 "비겁"하고 "유치"하다며 비난하는 정신분열적 행태다.  이제 걸음마 시작한 아이를 우사인 볼트와 비교해놓고, 이 아이는 왜 비겁하게 올림픽 출전 안하냐고 투정하는 격이다. 대체 누가 비겁한 건지 모르겠다. 친구의 심근경색과, 건강보험의 재정 문제와, 일본의 관상동맥 수술기술과, 4대보험개혁과, 유럽복지국가 이야기를 거쳐서 결국 내뱉는 이야기는 딱 하나다. '민주당 너네들 얍삽해서 시러!' 물론 이런 논리의 배후엔 '공짜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민도를 경멸하는 송호근 특유의 '국민성 환원주의'가 깔려 있다(예전에 그가 한국사회의 수많은 병폐들을 국민의 평등주의 탓으로 환원해 설명했던 걸 상기해보라). 이걸 반대논변이라고 언급해야하는 현실이 비참하지만, 아무튼 한국-우파-언론-지식인의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샘플 중 하나로 기록해두기로 한다.

현재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의의 논리나 명분 어느 쪽을 봐도 무상급식 찬성파 쪽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부자정당-극우언론의 이념공세를 분쇄하는 게 아니라 무상급식의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실행하는 것이다. 특히 무상급식의 '질'이라는 문제는 향후 가장 첨예하게 불거질 문제이므로(단순히 품질을 높이는 것 뿐 아니라 급식에 우리농산물 사용시 FTA조항과 충돌 등과 같은 실무적 문제까지 포함하여) 단계별 로드맵+상황별 시뮬레이션의 형태로 세밀하게 정책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 몇몇 정치인들과 진보적 씽크탱크에게 이런 작업을 맡겨두기만 해선 안된다. 특히 지금 선관위에서 무상급식 서명운동을 금지하는 과잉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보다 많은 시민들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게끔 다양한 방식들이 고민되어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