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9. 04:47

노회찬 대표의 해명, 그리고 '우리 안의 조선일보'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식에 진보정당 대표로는 유일하게 참석한 노회찬 대표 때문에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극우언론의 행사에 진보정당 인사가 참석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들이 적지 않았고, 과거 노회찬 대표가 <조선일보> 직원들 상대로 한 강연에서 "조선일보의 질이 높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곤욕을 치른 에피소드까지 다시 끄집어내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노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http://chanblog.kr/) 글 '감사와 함께 사과드립니다'에서 마은혁 판사 건을 들며 해명에 나섰고, '우리 안의 조선일보'가 있다는 취지로 자기를 때리는 '우리편 언론'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토로했다.

노 대표의 해명에 따르면, 이번에 그가 <조선일보> 행사에 참석한 것은 "마은혁 판사 사건 보도태도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고 한다. 마은혁 판사가 민주노동당 보좌관 국회농성 건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조선일보> 등은 '민주노동당 출신인 노회찬 대표의 행사에 참석한 것이 마 판사의 정치성향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이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는 식의 논리로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마 판사는 "문상답례 차원의 의례적 참석일 뿐"이라 해명했지만 결국 극우언론의 공격에 굴복한 법원에 의해 전보발령 조치되고 말았다. 

요컨대 노회찬 대표가 <조선일보> 행사에 참석한 것은 마 판사가 노회찬 대표의 행사에 의례적으로 참석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글을 읽어보니 섭섭함이 묻어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은 <조선일보>를 지지하기는커녕 <조선일보>를 통해 한 올의 정치적 이득도 취할 사람이 아니며, 실제로 이득을 취할 수도 없다. 아마 그의 해명은 진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노회찬 대표의 <조선일보> 행사 참여와 해명이 그리 신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첫째, 리스크에 비해 효과는 극히 미미한 항의방식이었다. 만일 노대표가 마은혁 판사 사건에 대해 항의하려는 목적의식이 그렇게 강했다면 <조선일보> 창간 기념식에 참석하는 방식은 피했어야 했다. 대중들에게 그 목적이 잘 전달될지 의문이고 따라서 효과가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논란이 될 가능성이 컸고 논란이 되지 않더라도 그저 <조선일보> 창간 기념식에 노회찬이 참석했다는 작은 팩트 하나만 남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회찬 대표가 마이크를 독점한 채 자신이 이곳에 참석한 이유와 마은혁 판사 사건에 대해 연설을 한 것도 아니었다(사실 공당의 대표가 남의 잔칫날 초대받아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도 예의있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 대표가 <조선일보>의 창립기념식에 참가한 것 자체만으로는 마은혁 판사 사건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나중에 노 대표의 블로그에서 본인이 쓴 글를 보고서야 사람들이 비로소 이번 사건과 마은혁 판사 사건의 관련성을 인지했다는 사실을 보면 노회찬 대표의 의도는 전혀 관철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목표와 결과물을 놓고 보면, 하중하(下中下)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둘째, 단지 한 명의 정치인이 아닌 진보를 표상하는 공인의 한 명으로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노회찬 대표의 <조선일보> 창간 기념식 참가는 노회찬 개인의 정치적 변절을 암시하거나 진보신당의 명예를 더럽혀서 문제인 게 아니다. 어차피 진성 빨갱이들, 반골들은 <조선일보>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우파, 중도우파, 좌파를 아우른 '안티조선'이라는 거대한 유산-물론 한계도 분명했지만-, 21세기 최초의 시민사회적 합의가 보다 높은 차원으로 지양되는 게 아니라 이런 돌출적 행동과 발언들이 반복되면서 '청산'되고 '무화'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극우언론의 떡고물을 받아먹을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사이비 진보' 인사들에게 '진짜 진보' 노회찬의 논리 -"이것은 정치적 지지가 아니라 의례적 참석입니다"-는 얼마나 좋은 알리바이인가. 그리고 그것은 언제든 "이것은 정치적 지지가 아니라 의례적 '기고'입니다"로 바뀔 수 있다.

최소한 1990년대 이후 <조선일보>의 전략이 진보에 대한 극단적 배제인 적은  없었다. 그들은 늘, 언제나 진보인사를 포섭하려 했다. 그것도 아주 예의바른 미소와 관용의 포즈로. 진보가 자신들의 중립성과 보편성을 돋보이게 만드는 데코레이션으로 기능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상태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줌도 안되는 , 허약한 진보세력으로서는 당장 이 구도를 바꿀 수 없다. 노회찬 대표의 생각과 달리, 현실에서 진보정당의 대표가 <조선일보>의 창간기념식에 참석하는 건 단순한 '의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노회찬 대표가 조선일보의 창간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 글자그대로 '의례'가 되는 경우의 수는 딱 하나, 노회찬과 진보신당이 정권을 잡았거나 집권세력의 일부로 참여하게 됐을 때다.

나는 노회찬 대표가 말한 '우리 안의 조선일보'에 대해 절절하게 공감한다. 소위 개혁적, 진보적이라는 신문, 인터넷뉴스, 방송이 <조선일보> 뺨칠 정도로 야비한 기사를 쓰고, 취재를 명목으로 약자의 인권을 유린하고, 혹여 거대자본-광고주의 심기를 건드릴세라 알아서 굴종하고, 작은 진보언론의 특종을 제 것인양 가로채 매명하는 꼴을 취재현장에서 질리도록, 정말이지 신물이 날 정도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행태는 본질적으로 <조선일보>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아니, 위선적으로 보여 더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 안의 조선일보'를 성찰하는 것은 말 몇 마디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그 성찰이 '우리 밖의 조선일보'와 싸우지 않는 이의 핑계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오히려 '우리 밖의 조선일보'와 치열하게 싸워야 '우리 안의 조선일보'도 맑은 눈으로 직시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한번 따져보자. 우리가 언제 제대로 싸운 적이 있었던가? 

소위 개혁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들은 사사건건 <조선일보>와 대립하는 듯 보였지만 인민의 삶을 좌우하는 사회경제적 의제 앞에서 <조선일보>와 대부분 한통속이었다. 진보세력은 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하며 개혁세력과 <조선일보>의 이런 기묘한 '적대적 공생'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여전히 '1등신문'임을 자부하며 90주년 창간 기념식을 성대히 치렀을 뿐 아니라, 방송까지 포괄하는 초거대 미디어그룹으로 도약하기 직전이다. 즉, <조선일보>와의 싸움은 여전히 우리 앞에 시급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이번에 노회찬에 대한 '내부비판'이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는 사실이야말로 '숙제'가 여전히 막중하다는 걸 시사한다. 저들을 끝장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변하기 위해서, 다시 무뎌진 날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