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31. 09:57

잡감 20091231

1. 이명박이 이건희 단 한명을, 그것도 올림픽 핑계를 대며 사면시켰다. 이 사건은 한국인의 냉소주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번 건이 조금 더 뻔뻔해서 그렇지 정권마다 이런 '9회말 투아웃 역전 만루홈런' 같은 사면은 예외가 없었다. 이런 일이 태연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윤리니 정의 같은 가치들은 그저 조롱의 대상이지 실천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건희가 감옥간다고 해서 당신 삶이 나아지냐고, 국민들한테 득될 게 뭐가 있냐고, 중앙일보 등의 족벌신문들이 적반하장 따져 묻는다. 자신을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일수록 이 질문에 반박하기가 어려워진다. 자기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좌파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왜? 사회정의나 법치를 실현하는 것과 개인의 경제적 득실을 굳이 연관시키고 계산하려는 강박 자체가 문제의 진짜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한 영원히 저들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2. 오늘날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되는 대부분이 실은, 경영학이다. 그런데 "경영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되는 대부분이 실은, 신앙이나 미신에 가깝다. 반면에 정작 신에 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그리고 최후의 철학자들처럼 보인다.

3. 2009년의 나는 이택광 선생님 말마따나 "나무늘보"처럼 지냈다. 특별히 '올해의 영화' '올해의 책' 이라며 호들갑 떨며 꼽을만한 건 없었다. 그저 읽고, 보고, 듣고, 아주 조금씩 썼다. 사랑하는 이와 요리를 하고 여행을 가고 온갖 주제에 대해 수다를 떨며 술을 마셨다. 아, '끊은' 것도 있다! 담배. 그리고 몇몇 인간들에 대한 기대와 유대. 그래서 2009년은 제법 즐거웠다. 2010년엔 뭔가 바뀔까?  아무쪼록 나쁜 것들만 바뀌기를.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추하게 늙어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