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5. 12:07

잡감 20091125


1. 지난 5월 기준 전체 취업자는 1년 전에 비해 21만 9천 명 감소했다. 그런데 그 중 여성이 21만 1천명이다. 수치가 너무 경악스러워서 KDI 보고서 요약본까지 찾아봤는데 정말 사실이었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기회만 생기면 한국을 뜨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그토록 많은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2. 데이비드 하비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사실 부를 창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부를 재분배하는 데 있다'고 통찰력 있게 지적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자의 주장과는 달리 여러 실증적 근거들은 신자유주의 혁명이 생산혁명이 아니라 분배혁명이라는 점을 웅변한다. 재분배의 강도와 효과, 규모는 거의 러시아혁명만큼이나 강력한 것이었다. 좌파들이 혁명을 패션화할 때 우파들은 묵묵히 혁명을 수행했다.

3. 오늘날의 반지성주의의 양상을 좀더 섬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다. 과거 반지성주의자들의 멘탈리티는 "잘난 척하기는! 그런 현학적인 지식 없이도 내 몸으로 익힌 지혜로 잘 살아왔어"였다. 오늘날 반지성주의의 멘탈리티는 그것과 사뭇 다르다. 이를테면 "나는 너만큼이나 혹은 너보다 더 계몽된 주체다"이다. 즉, 나도 배울만큼 배웠으니 깝치지 말라는 거다. 이런 멘탈리티는 냉소주의와 곧장 연결되며 또한 도착증적으로 '탈계몽'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탈계몽된다는 것은 요컨대 자신이 계몽된대로, 알고있는 지식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 일부러 계몽이 강요하는 룰을 위반하는 것이다. 계몽이 부과한 룰만을 골라 위반함으로써 자신이 계몽된 주체임을 과시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어떤 이가 온당하게 그것을 지적하면 반성하거나 성찰하기는 커녕 파시스트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라도 된 양 격렬한 반발심과 공격성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이들 냉소적-반지성주의적 주체에게 이것은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쾌락의 문제이며 그것을 지적당하는 것은 마치 자기가 선호하는 체위의 부적절함을 지적당하는 것 같은 불쾌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주체의 문제는, 예전보다 훨씬 더 윤리의 영역에서 미학의 영역으로 옮겨온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