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5. 23:54

안티조선의 '옥동자'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한윤형과는 7년 전부터 알던 사이다. 그가 자서전 비슷한 책을 낸다고 했을 때, 사실 어떤 이야기들이 들어있을지는 '안봐도 비디오'였다.  나는 2000년부터 2009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가 온라인에 쓴 글 대부분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한윤형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내가 그 기간 동안 온라인에 쓴 글의 거의 전부를 읽었다(아마도 내가 쓴 '기사'를 '돈 주고' 읽은 적은 거의 없을 테지만).

그러나 나같은 '온라인 특수관계인'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책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는 경이로운 체험일 것이다. 빛바랜 사진같은 과거의 정치사회적 사건들이, 이 젊은 글쟁이의 내면을 통과해 형상화되는 순간 숨기고 있던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책을 덮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은 기록되어야 한다"는 그의 모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독자들은 느끼게 되리라. 대통령 선거마다, 즉 5년마다 한번씩 정치적 진보가 '리셋'되고 10년에 한번씩 경제위기로 사회적 진보가 '포맷'되어버리는 한국같은 곳에선 더욱 그러하다. 책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읽어보면 알게 된다. 절판되기 전에 꼭 사라!

호사가들은 한윤형의 글에서 '논리'만을 보며 칭찬하고 감탄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재능은 논리가 아니라 '윤리'에 있다. 사실 논리구조가 명확히 노출되는 글은 잘쓴 글이라고 하기 어렵다. 정말 글을 잘 쓰는 이들은 확립된 논리를 절묘하게 숨겨놓는다. 강렬한 직관과 감성에 호소하되 독자가 이를 곱씹으면 탄탄한 논리가 슬며시 드러나는 식이다. 논리적으로 쓰는 능력, 논리를 내재화시키는 능력 모두가 적당한 훈련을 통해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윤리적 감수성은 쉽게 흉내낼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윤리는 '착하게 살자'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발딛고 있는 세계 사이의 긴장을 끝없이 견뎌내며 앞으로 밀어붙이는 힘이다. 그 힘이 없는 논리는 그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팩트와 지식을 직접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자들의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건 선불교에서 수행자를 평가하는 기준인 '근기(機)'와도 일맥상통하는데, 어쨌든 한윤형은 내가 아는 '온라인 20대 글쟁이' 중 가장 근기가 강한 이다(술만 보면 환장해서 그렇지). 앞으로의 책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안티조선운동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자들은 앞으로 나서라.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한윤형을 보라. 안티조선이 낳은 저 '옥동자'를. 좌절과 환멸이 적지 않은 운동이었지만, 이 젊은이 하나만으로도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는 그 자체로 안티조선운동의 '순익증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