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4. 14:41

동희오토, 미래를 교살하는 공장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321797.html

동희오토에 다녀와서 쓴 글이 <인터넷 한겨레>에 실렸다. 기획 시리즈 형태로 정리가 된 모양이다. 어찌하다보니 내가 이번 프로젝트의 '1번 타자'가 되고 말았는데, 취재한 것의 반절도 풀어내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취재한 내용의 대부분은 몇몇 매체를 통해 이미 알려진 문제점들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었고, 그 외의 부분들은 일반독자들이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운 노동계 내부 문제였다.
만약 내가 매체에 속한 기자로서 본격적으로 취재를 했다면, 동희오토의 설립과정, 특히 현재 동희오토 본사의 이사들과 간부들의 과거 행적을 추적했을 것이다. 동희오토라는 괴물이 태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교묘한, 그리고 철저한 노동착취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또 완벽하게 운영하는 능력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마디로 '프로의 냄새'가 난다. 취재를 하면할수록 심증이 굳어졌지만, 동희오토 노동자들조차 이 회사의 '머리'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이사급 인물 한두명의 행적 외에는 모든 것이 미스테리다.  아무튼, '다음 타자'들이 더 잘해주리라 믿는다. 아래는 원본.

-------------------------------



동희오토, 미래를 교살하는 공장


정지훈(가명) 씨는 스물 여섯 살이다. 소년처럼 해사한 얼굴과 대조적으로, 우람한 팔뚝에 힘줄이 툭툭 불거져 있다. 그는 현대기아 자동차 ‘모닝’을 만드는 동희오토라는 회사에서 수습직원으로 3개월을 일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6일자로 수습기간이 끝났다. 그러나 정식직원이 될 수 없었다. 수습기간이 끝나기 정확히 일주일 전, 채용취소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동희오토는 생산직 노동자의 100%를 최저임금선의 비정규직으로 꽉 채우는 기념비적 시도로 인해, 최근 몇 년 사이 경영계와 노동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기업이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850명 전원은 13개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있고, 기아의 1차 협력사인 동희오토가 이들 업체와 노무도급계약을 맺는다. 국내최초의 완성차 위탁생산업체로서 ‘모닝 대박 신화’의 주인공이다. 이곳 비정규 노동자의 상황은 열악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1년차 직원의 2008년 시간당 임금은 3770원. 올해 법정최저임금이다. 다른 완성차 업체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이직률이 극도로 높아서 3년을 넘겨 일하는 노동자가 드물다. 민주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해당하청업체를 통째로 계약해지시켜 버리면 그만이다. 노동자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된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꿈의 공장’,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절망의 공장’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제조업 분야에서 소위 ‘동희오토 방식’이 역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비정규직 유랑기

정지훈 씨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성남시, 지금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은 전남 목포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1학년까지 다녔지만, 군대에 다녀온 뒤 자퇴서를 냈다.
“집안형편이 어려웠어요. 지방의 작은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취직이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사실 졸업한 선배들을 봐도 그랬구요. 무슨 일이든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갔던 회사가 목포의 삼호조선소라는 데였어요. 처음이라 그런지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정규직이였냐구요? 아뇨, 당연히 비정규직이죠.”
정지훈 씨는 조선소에서 7개월을 일하다가 다른 직장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경기도 발안에 있는 대연 에스티라는 공장이었다. 수습기간 1년을 넘기면 정규직을 시켜준다는 이야기가 결정적이었다. 휴대전화에 쓰이는 1회용 테이프를 제조하는 곳이었는데 조선소 일에 비해 몸이 덜 힘들었고, 대우도 좋았다. “동희오토는 생일날 1만 원짜리 상품권을 주는데, 대연 에스티는 5만 원짜리 상품권을 줬어요. 보너스도 600%였구요.” 이렇게 말하며 정지훈 씨는 살풋 웃는다.
“그런데 거길 왜 그만뒀나요? 일도 그리 힘들지 않고, 대우도 괜찮았다면서요?”
“작업반장이랑 문제가 좀 있었어요. 버스가 끊길 시간까지 일을 시켜놓고 자기는 맨날 노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혼자 일을 하다가 집에 택시를 타고 가야해요. 한두 번이면 참고 넘어갔을텐데 계속 그래서 제가 한 마디 했더니 그 뒤부턴 저를 더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그의 ‘유랑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경기도 기흥의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1년을 일했고, 다시 목포의 삼호조선소에 가서 일을 했다. 서해안 전역을 떠돌며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했던 셈이다. 그런데 저임금·비정규 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동희오토에는 어떻게 오게 됐을까. 정지훈 씨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막노동을 많이 하다보니 컨베이어 벨트 타는 건 오히려 쉽게 느껴졌어요. 수습이 3개월이니까 ‘3개월만 아무 소리 말고 버티자’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원래 대연에스티에 같이 있던 형이 동희오토에 취직하자고 해서 같이 입사했는데, 그 형은 일이 힘들다고 이틀만에 그만둬버렸어요.”

컨베이어 벨트 위로 날아간 세대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지훈 씨는 어째서 잘린 거예요? 채용취소 통보를 받았다면서요.”
“결근은 한 번도 안했고 몸이 너무 아파서 허가를 받고 조퇴를 딱 한번 했는데 채용취소 이유를 보니까 ‘근무불성실, 약속 불이행’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솔직히 어이가 없었어요.”
정지훈 씨 생각에 자신이 채용취소 통보를 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해복투 형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해복투, 즉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는 글자그대로 동희오토의 해고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결성한 단체다. 2008년 11월 10일 현재 여섯 명의 해고자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지훈 씨의 말에 따르면 각 라인의 반장과 조장들이 노동자를 수시로 불러서 ‘해복투랑 어울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때로 협박도 한다고 한다. 평소에 누가 해복투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지 감시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지훈 씨는 “내가 해복투 형들이랑 밥을 같이 먹은 걸 가지고 뭐라 그러기에 ‘왜 밥 먹는 것 가지고 그러느냐, 그런 식으로 감시하지 마라’고 쏘아붙여줬다”고 한다. 전후사정을 보면 그 사건이 채용취소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불합리한 일에 맞서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그 불합리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희오토에는 정지훈 씨와 같은 또래들이 가장 많다. 생산직 노동자 중에서 삼십대 중반 이상은 거의 없고 대부분 이십대 중반에서 이십대 후반이다.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얼굴들을 보면, 하나같이 젊다. 젊다 못해 앳된 얼굴들도 적지 않다. 동희오토 해복투 이백윤 의장의 말에 따르면, 그들 대부분이 고졸학력 이하의 이십대다. 사회경제적 여건이 가장 나쁠 때 사회로 진출하게 된 88만원 세대, 그 중에서도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속한 젊은이들이다.
88만원 세대가 대학교와 고시원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88만원 세대 중의 88만원 세대’는 동희오토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있다. 그들은 세대 내부 경쟁과 세대 간 경쟁 뿐 아니라 ‘인종간 경쟁상황’에 놓여있다. 동희오토 노동자의 20%는 외국인 노동자다. 이 사실은, 88만원 세대가 ‘삼중경쟁’의 톱니바퀴에 끼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 대다수는, 당연한 말이지만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정지훈 씨와 같은 젊은이가 스스로 입을 열어 그 고통과 분노와 불안을 전하지 않는다면, 아마 대다수의 시민들 역시 그들 존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광화문에서 촛불이 타오를 때 122km 떨어진 서산에서도 촛불이 타올랐다. 그러나 그 사이엔 물리적 거리보다 더 아득한 심연이 존재한다. 그 심연에 다리를 놓는 지난한 작업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 불안지도’를 만들면?

동희오토라는 기업이 나쁜 이유는 그들이 효율성을 추구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런 기업이 불안을 양산해서 사회전체의 생산력을 급속도로 불임화 시키기 때문이다. 정지훈 씨의 예만 봐도 그렇다. 5년 넘게 노동현장에 있었음에도, 그는 숙련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지금처럼 불안정 노동을 전전할 경우, 그는 평생동안 숙련노동자가 되기 어렵다. 가처분소득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구매력 또한 낮아진다. 동희오토와 같은 기업이 확산되면 한 세대 전체가 더욱 가난해질 것이다. 그 사회적 부담을 부자들과 기업이 지려할까. 단언컨대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부담은 지금의 중간계급과 그 이하 계급, 그리고 그들의 자녀세대가 짊어지게 된다. 동희오토의 ‘모닝대박’은 우리의 미래를 교살한 대가였다.
하루빨리 해야 할 일은, 동희오토 노동자들과 작은 연대를 시작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와 같은 방식의 노동착취가 확산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떠돌고 있다. 서산에서, 울산에서, 여수에서, 목포에서, 창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제2, 제3의 동희오토다. 아직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은 곳이 많다.
노동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위키페디아처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대한민국 불안 지도’를 만드는 건 어떨까. 우선 이 지도는 전국을 떠도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작은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실용적인 이유 외에도 그 지도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연대의 방식이다. 노동, 생태, 인권, 교육 등 각 분야의 ‘불안 지도’를 만들 수도 있다. 별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는 시대다. 더듬더듬 지도라도 만들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