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4. 23:58

일상 1204

1. 어제에 이어 오늘도 랑시에르 강연에 다녀왔다. 그는 최근 2년간 내가 붙들고 있던 주제 중 하나에 대해 20년 넘게 사유해온, 이른바 '그랜드 마스터'다. <88만원 세대>에서 내가 (자신조차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서) 충동적으로 써내려간 '아무도 아닌 자' '이름없는 자'라는 수사는 다름아닌 랑시에르가 오랫동안 정밀하게 세공해온 것이었다. 물론 나는 랑시에르가 해답을 쥐고 있다고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헤겔이 "위대한 히스테리 환자"인 건, 헤겔이 특정한 인격 혹은 스승에게서 '해답'을 구하는 걸 끝내는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답을 구했다' '스승을 만났다'고 생각한 순간이야말로 위험하다. 그건 자기 사유의 종말을 알려주는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유란, 쉼없이 아포리아들을 포착하고 돌출시키는 작업이다. 랑시에르는 해답은커녕 내가 붙들고 있던 주제를 더욱 교란시키고, 미궁에 빠뜨린다. 너구리 봉지를 뜯었는데 스프 대신 다시마가 10개 들어있을 때, 이런 기분일 것 같다.

2. 이택광 선생님이 울산에 다녀와서 쓴 글이 <인터넷한겨레>에 실렸다. 근데 그 사이에 다녀온 팀들도 있을텐데, 그건 왜 안실렸지?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325698.html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글이다. 386들에게 광주, 그리고 울산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그들의 감수성은 그래서 언제나 '지박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이후 세대인 우리들에게 그런 장소는 어디일까. 아무리 떠올려봐도 월드컵과 촛불의 광화문 밖에 없다. 방구석 자기 컴퓨터 앞은 아닐테니. 그러나 광화문은 보편체험의 공간이라 하기엔 한계가 뚜렷한 곳이다. 기본적으로 포스트 IMF 세대들에게는 유령이 출몰하는 공간이 없다. 386이 지박령의 세대라면, 이후 세대는 접신과 빙의의 세대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타자의 목소리로만 발화할 수 있었다. 종교인류학적으로 다른 존재다. 그러니 386이 만든 공포영화 혹은 귀신영화가 이후 세대에게 먹힐 리가 있나. 조만간 이 얘기로 글을 하나 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