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0. 15:10

아즈마 히로키

http://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250


아즈마 히로키의 책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외엔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 정말 재미있어서 손에 쥐자마자 빨려들어간다. 그의 핵심주장보다도, 오히려 심상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언급에서 의외의 수확이 좀 있었다.

한국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20대를 맞이한 세대의 상당수에게 일본 대중문화는 단순히 '생경한 외국문화' 이상의 무엇이다. 미처 거리두기를 할 여지도 없이 그 속에서 숨 쉬며 자라났기 때문이다. 일종의 '태내환경'이었던 셈인데, 그 점에서 이들은 일본대중문화 평론을 처음으로 시작했던 일부 386 세대 등의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취향과 인식태도를 갖게되었다.

아즈마 히로키는 1971년생이니까 오타쿠 1세대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1960년생)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볼 수 있다. 안노 히데아키의 경우, 전공투 세대와 같은 선배 세대와 사회의식을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었고, 그 자신이 오타쿠이면서 오타쿠를 부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욕망에 따른 부정이 아니라, 윤리나 사회의식에 따른 부정이었다. 그러나 아즈마 히로키의 경우는 다르다. 책을 읽어보면 감이 바로 온다., 이 인간, 미소녀게임 하느라 식음을 전폐하는 전형적인 오타쿠다.

물론 글에서는 온갖 서구 석학의 이름과 개념들이 현란하게 소용돌이치고 오타쿠적 인식의 근저에 깔린 위험을 날카롭게 비평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비평은 사회의식이나 건강한 윤리 따위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이건, 태아가 엄마의 자궁을 발로 걷어차며 즐거워하는 행위에 가깝다.

"자네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인문학(철학이나 사상) 연구 대신에 미소녀 게임이나 분석하고 있다니 재능이 아깝네"
꼰대들의 이런 핀잔에 아즈마 히로키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았을까.
"능력있는 너네들이나 연구 많이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