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3. 18:43

잡감 1103

1. 어제는 대낮부터 지하철이 끊길 때까지 술을 진탕 때려먹고 집에 와서 뻗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보니 재킷이 현관문 손잡이에 걸려있다. 아니, 이게 왜 여기에? 재킷을 방에 걸어놓으려고 집어드는데 팔부분에 이물질이 매달려있다. 아니, 이건 또? 난 오바이트를 한 적이 없으니 어디에선가 묻혀온 것이리라. 곧장 세탁소로 가서 옷을 맡겼다. 막걸리를 그렇게 때려먹었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은 걸 보니, 그사이 양조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했거나 나의 체질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

2. 후진 미감(美感)을 스스로 폭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블로그 따위에서 그런 걸 보는 건 이중으로 불쾌한 경험인데, 우선 후진 감수성 그 자체로 불쾌하고, 그 후진 감수성을 자신의 전문분야와 억지로 엮어 정당화하는 것 때문에 또 불쾌하다. 글을 세련되게 쓰지 못하거나 기초적인 맞춤법이 틀리는 것 등에 진심으로 혐오감을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글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천박한 감수성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럽다. 대개 미감을 취향의 문제로 단순화시키는 사람들이 많지만, 미감이야말로 어떤 사람이 가진 지성을 총체화시키는, 다시말해 지성을 지성이게 만드는 '현자의 돌'이다.

3. 조만간 운전면허를 딸 작정이다. 남자아이들은 움직이는 기계를 좋아하게 되어 있고 나도 예외가 아니지만, 어릴 적 교통사고를 당해 코마상태에 빠졌던 경험 때문에 본능적으로 차에 대한 공포감 같은 게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동차라는 탈것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갖게 된 면도 크다. 그런데 면허가 없어서 극도로 힘들었던 경험을 최근 잇따라 하면서, 분하지만 이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기로 했다. 실제로 스티어링 휠을 쥐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있을 때 면허만이라도 따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