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8. 17:15

업데이트 #1

트라우마가 미래를 승인하는 방식 

젖을 뗄 때가 되었는데도 공갈젖꼭지를 늘 물고있던 아이가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공갈젖꼭지에 집착하는 아이를 보며 짜증이 난다. 그래서 그는 아이의 눈 앞에서 위협적으로 가위를 흔들어 대다가 공갈젖꼭지를 싹둑 잘라버린다. 아이는 공포에 질려 큰소리로 울지만, 이 사건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그것이 어떤 의미였던가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은 젖을 완전히 떼고 난 뒤, 처음으로 다른 음식을 먹게되면서부터다. 젖꼭지의 명백한 대체물이 등장하고 그것을 스스로 인지했을 때, 비로소 아이는 상황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갈젖꼭지를 체념하고 상황이 변화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공갈젖꼭지의 절단이라는 외상(trauma)은 극복된 것이 아니라, 은폐되었을 뿐이다.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던 상실의 경험은 우연히 이웃의 아기가 물고있는 공갈젖꼭지를 보았을 때 미묘한 분열증으로 나타난다. "한없이 친근하게 생긴 저것은 나의 것이었지만, 이제 결코 나의 것이 아니야."

평온한 어느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는 초현실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수 개월 동안 그 사건의 물리적 사회적 원인에 대해 이해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상징으로, 즉 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 '이해'한 것은 몇년 후였다. 이후에 벌어진 IMF구제금융이란 미래사건이,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 붕괴란 과거사건이 무엇을 암시했는지 드러낸 것이다. 기업의 과도한 채무가 초래한 IMF를 상징하는 전조로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스펙타클은 이제 필연의 차원에 올라선다. "그때 벌써 우리나라는 썩어있었던 거야." 그렇게 성수대교와 삼풍참사는 시간을 역전해서 IMF를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시공간의 격차를 상당히 둔 그 두 사건-성수대교/삼풍백화점붕괴와 IMF-은 실상 별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사건이다. 그러나 미디어에 의해 마사지되는 스펙터클의 사회는 두 사건을 긴밀하게 엮는다. 대중-수용자의 관점에서 사건들은 질적 특성에 의해 분류되는 게 아니라 쇼크의 역치에 따라 분류되거나 기억되기 때문이다. 두 사건이 엮이면서 IMF는 명백한 전조가 드러난 실재로서 반복승인된다. 이중의 역사적 기억은 일종의 '확인사살' 효과를 가지며 사람들은 두 번 반복된 역사를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우연과 필연 사이의 차이만큼 '과잉'의, 어떤 새로운 심적 상태가 출현한다. 이제 IMF는 피할 수 없는 재난, 우리의 원죄가 야기한 '에덴에서의 추방'으로 인정되고, "글로벌 스탠더드"는 모세가 받아든 십계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 # by 쟁가 | 2007/04/3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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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지금의 '위기'국면에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2008년 10월 현재, 이명박과 강만수에게 금융-실물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는 '어떤 경향성'은, 내가 보기엔 촛불의 트라우마가 미래를 승인하는 방식이다. '그래, 역시 촛불은 옳았어!' 그리하여 촛불은 이제 꿈틀대며 역동하는 운동이 아니라 합리화-박제화된 상징의 지위에 올라서려 한다. 이런 저런 촛불 기념사업들이 출범하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다. 미래사건이 과거의 구조적 요인들의 분석이 아니라 특정한 과거의 트라우마에 의해 설명되는 것은 흔히 시대정신이란 말로 치장되는 중간계급 특유의 인식틀(frame)이 어떻게 배치되고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신자유주의가 문제"라며 뜬금포를 날린 전직 '좌파 신자유주의자' 대통령과, 강만수를 경질하면 사태가 단번에 호전되는 양 목청을 돋우는 몇몇 '전문가들'이 이런 경향성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 이데올로기적 귀결은 민주적 시장경제론과 같은, 낯익은 것들의 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