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7. 23:27

엄마는 못말려

저녁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하소연이다.

"아들! 니가 느그 엄마 좀 말려봐라! 내 말은 콧등으로도 안듣는다안카나!"

강력한 '절대모권 가족'인 우리집에서 종종 발생하는 상황이다. 근데 이번엔 무슨 일로? 부친 말씀인즉, 어머니가 뜬금없이 꽤 큰 규모의 MTB 아카데미에 가입해 자전거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는 거다. 엥? 환갑 다 되도록 자전거 한번 안 타보신 양반이?

"푸하하, 아부지, 근데 자전거라니, 엄마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래요?"
"모올라! 내가 다친다꼬 그래 말리도 안듣는다! 수영장 끊어가 잘 다니다가 와 저라노, 느그 엄마? 그라고 동네에서 살살 타는 것도 아이고 한 시간도 넘게 버스타고 가가 굳이 거기서 자전거 배운다카이 이거 완전 본격적으로 타겠다는 거 아이겠나? 나이묵어가꼬 고마 쌀쌀 수영이나 하고 국선도나 요가 같은 거나 하믄 얼마나 좋노..."

울 아부지, 마작부터 낚시까지, 골프와 스쿠버다이빙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레저를 섭렵해오신 분이다.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계신다. 물론 돈이 얼마나 깨질지도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게 결국 아버지의 용돈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도 아마 직감하셨겠지...ㅜ.ㅜ 아버지와 통화를 끊고, 바로 어머니 휴대폰으로 연결했다.

"아들래미다."
"어, 아들이가? 우짠 일로 먼저 전화를 다 했지비?" ("~했지비?"는 모친의 기분이 괜찮음을 알려주는 정체불명의 종결어미)
"와, 우리 엄마 자전거 타러댕긴다매? 아부지가 걱정이 장난이 아니드라."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 음, 설마설마했는데 이 아줌마가 진짜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파트 옆동 사는 20년지기 친구한테 뽐뿌 제대로 받으신 거였다. 처음엔 말리려했지만,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차마 못그러겠다. 그저,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것도 일리가 있으니까 관절에 무리 안가게 살살 타시라고만 했다. 하긴 엄마는 말린다고 들을 분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자기가 납득해야만 그만두는, '전제군주형 장녀' 캐릭터. 절대모권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사실 얼마 전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지는 사건이 벌어져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있다. 당신께서도 많이 놀라셨는지, 그렇게 즐기시던 술(어머니랑 대작하다 기절한 적도 있음-_-)도 끊으시고, 돈 없다고 버티는 아들한테 기어코 용돈 타내서(-_-) 헬스장에도 등록하셨다. 본인이 스스로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신 걸 보며 안도하면서도, '울 엄마 포쓰도 많이 죽었네'라고 생각하며 묘하게 울적하기도 했다. 근데 오늘 보니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역시, 울 엄마는 못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