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7. 08:02

웃으며 떠나기


‘일산 노옹’ 김훈 국장(김국)을 찾았습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종횡무진 얘기를 나누던 차에, 슬슬 그의 선기(禪氣)가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주된 레퍼토리 중 하나라 예전 같으면 실실 웃으며 넘겼을 터이나, 이날만은 달랐습니다. 벼락 치는 소리처럼 귀를 때리더군요. “사실에 바탕해서 의견을 만들고, 의견에 바탕해서 신념을 만들고, 신념에 바탕해서 정의를 만들고, 정의에 바탕해서 지향점을 만들자. 이게 갈 길이다. 저널리스트로서 평생의 고민이 이것이다.”                    
                                                              -<시사IN> 54호, '편집국장의 편지' 중


<시사IN> 신임 편집국장의 첫 일성이다. "신념에 바탕해서 정의를 만들고" 대목까지 읽다가 끝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국일보> 시절 군사정권을 찬양한 김훈, 그 전력을 "사과하는 대신 끌어안고 살겠다"던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을 마른 한숨처럼 토해내던 김훈이 저런 얘길 했다는 게 웃겨서 견딜 수가 없다. 선기(禪氣) 좋아하시네, 취기(醉氣)겠지. 인용한 부분 외에도 저 글 전체가 여러가지 '의미심장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이 매체의 행보가 정말이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보니 내가 <시사IN>에 기고를 해온지도 벌써 반년이다.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화가 나서 그만두는 것보다 이렇게 웃으며 그만두는 것도 어찌보면 축복이겠다. 시점을 정확히 알려준 신임국장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당분간 공부에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