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26. 17:02

[메모]진보의 경제성장전략

<시사IN>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48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85

"성장전략이 있어야 집권할 수 있다=집권할 수 없는 건 성장전략이 없어서다"
"진보진영이 안되는 건 비판만 해대기 때문이다"
 
1. 저 비판이 계속해서 겨냥하는 "진보진영"은 어디를 가리키는가. 민주당을 가리킨다면 지난 10년간 온갖 성장전략을 내놓았고 대부분 실패했다(대개 민족문제로만 치부되는 통일정책 역시 궁극적으로는 안보와 성장전략이 결합된 내부식민지 전략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을 가리킨다면 현재로선 집권은커녕 이들 당의 생존 조차 불투명하기 때문에 독일식 선거제도라도 도입한 다음에 추궁할 일이다.

2. 국가주도형 산업정책을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려면 강력한 정치적 헤게모니가 필수불가결하다. 지난 10년간 정치권력은 탈권위, 규제완화, 다시말해 '글로벌스탠더드'의 명목으로 재벌과 금융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과거의 명시적 수단들을 자진해서 포기했다. 더구나 포기된 수단들 상당수는 다시는 돌이키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광범위한 정치혐오, 시민운동의 쇠락, 진보정당의 지체, 5년단임제로 인한 정책연속성의 부재라는 치명적 제약조건도 있다. 이미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게다가 성장전략을 관철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지반조차 없는 상황에서 내놓는 성장전략이, 오직 집권을 위한 레토릭 또는 국가주의로의 이념적 회귀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3. '성장전략이 있어야 집권할 수 있다=집권할 수 없는 건 성장전략이 없어서다'라는 명제는 증명된 적이 없다. 이명박의 747공약은 성장전략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집권에 성공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잃은 이유 중 하나는 성장전략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고도성장 신화를 깨는데 실패하고 나름의 성장전략을 실현시키는데도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장전략의 유무는 관심을 기울여야할 문제임이 분명하지만 생각만큼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건 시대에 부합하는 성장전략을 관철시킬 수 있느냐 여부다. 더욱 중요한 건 성장전략이 무조건적 규제완화와 동의어가 아니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방만해진 시장권력에 대한 규준과 제어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기의 성장전략은 제아무리 정교하고 '성장친화적'이라 해도 오지않은 미래에 대한 시장규제적 기획일 수밖에 없으며, 고삐 풀린 재벌과 관료집단은 결코 설득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은 이미 지난 10년간, 특히 참여정부 시기 여실히 증명되었다. 그 집단은 상대가 강하면 굴복하고 약하면 짓밟는다. 성찰과 고민과 토론과 설득이 아니라 철저히 힘의 논리와 이해관계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거나 왜곡된다. 그럴듯한 성장전략만 있으면 기득권세력도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착각을 이제 버릴 때도 되었다. 오히려 진보가 '성장'을 강조하면 할수록, 낡은 어떤 구도-민주화세력 vs. 산업화세력-를 재생산할 뿐이며, '성장이 없으면 분배도 없다'는 기득권세력이 선점한 이념적 프레임에 포획될 수밖에 없다. 사회경제분야의 정책에서 한나라당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열린우리당-민주당, 이 꼴이 된 게 단순히 성장전략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참고>
http://blog.ohmynews.com/cjc4u/tag/%EC%A0%95%EA%B8%80%EC%9E%90%EB%B3%B8%EC%A3%BC%EC%9D%98


4. 따라서 집권과 집권 이후 개혁의 성공을 담보하는 필요조건은 경제성장전략이 아니라 재벌과 관료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사모의 예에서 증명되었듯 감성적 지지계층과 인기정치인의 세몰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역동적인 시민사회, 건강한 우파, 강력한 진보정당이라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기득권세력을 구조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그러나 권위주의 시절과는 다른 형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명분을 용의주도하게 쌓아나가야 한다. 성장전략은 그렇게 '바닥에서 박박 기는' 과정에서 나와야지만 실현가능한 것이 되며, 지지세력을 뛰어넘어 신뢰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사회가 되면 진보가 강박적으로 경제성장을 대안으로 내세울 이유도 없어질 터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참여정부 5년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이다. 몇몇 이데올로그들이 성장전략 문건 쌈박하게 만든다고, 또는 개혁진보세력이 당장 집권한다고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경제성장전략과 레토릭 개발에 집착하는 태도는 영미의 특수한 정치문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한국사회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프로젝트라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