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2. 13:02

반MB의 이유

조갑제류의 극우보수진영, <조선일보>, 한나라당 일부 실세들이 이명박을 흔들어대고 있다. 10년만에 되찾은 정권에 대한 저들의 분노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런데 조금 들여다보면 분노의 이유가 제각각이다.

조갑제류는 글자 그대로의 '우국충정'이다. 물론 이 우국충정은 그들의 무뇌성과는 별개다. 내가 노빠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조갑제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노빠들의 가장 큰 문제는 진정성을 자기들만 독점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지만). 어쨌든 이명박을 향한 조갑제류의 가장 큰 불만은, 광장에 나온 "무뢰배"을 쥐잡듯 때려잡지 못하는 정권의 미온성 때문이다. 이들이 보기에 압도적 폭력의 행사로 국가의 권위를 드러내지 못하는 정권은 '아랫것들'한테 얕잡아 보이게 되어 있다. 머슴들이 반항하면 호되게 멍석말이를 시켜 '반병신'을 만들어놔야 하는데, 주인이 안채에 들어앉아 문을 닫아걸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지는 거다. 마름들 몇몇이 나서서 몽둥이를 휘둘러대고는 있지만 확실히 기를 꺾기엔 부족하다. 즉, 조갑제류가 이명박을 비판하는 논리는 다름아닌 치안의 논리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이명박의 진정성이 없어서이고, 진정성이 안보이는 이유는 이념이 흐리멍덩해서다. 

<조선일보>의 논리는 조갑제류보다는 세련된 모습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요악가능하다. 경영의 논리다. 대통령이 국정 전반의 매니지먼트를 못하고 있다는 거다. 경영을 못하고 있다는 건 같은 편에 속하는 집단들의 사적 이익들을 조정하고 계산해서 '효율적'으로 국정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조선일보>의 숙원인 방송진출을 이루려면 미디어법이 빨리 통과되어야 하는데, 어영부영 여름으로 넘어갈 것 같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조선일보> 김대중은 "MB가 스스로 나가주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탄핵 등 구체적 절차를 밟으며 전국민적 동참을 유도하는 적극적 액션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등 거의 조갑제와 유사한 멘탈리티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사실 그를 제외한 <조선일보> 기사의 전반적인 논조는 철저히 '실용적'이었다. 경영의 논리로 이명박을 비판하는 건 <조선일보>만이 아니다. 재계도 불안이 불만으로 전화하기 직전인 상황이고, 만약 지금 추진하고 있는 '유사 대운하' 프로젝트마저 엎어진다면 건설족들과 지역토호들이 일거에 반이명박 세력으로 돌변하게 된다. 치안 논리보다 어쩌면 훨씬 무서운 게 바로 경영의 논리다.

한나라당 현 실세들의 불만은 갖가지 수사로 포장하긴 하지만 딱 하나, 정치공학의 논리다. 박근혜 때문에 당이 언제 결딴날지 모를 판국이고 당 지지율도 급전직하하고 있다. 그럴 때는 한국특유의 정치구조상 청와대가 일종의 원외구심의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명박은 뭐하나 만회할만한 업적은커녕 "나는 정치에 소질도 없고 잘 모른다"라는 소리나 하고 앉았으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을 게다. 언론보도만 보고있으면 요즘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 문광부 밖에 없는것처럼 보일 정도다. 한예종 박살내는 일에 이렇게나 열내는 것 자체가 이미 '막장'이다. 참여정부가 '막장테크' 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회경제적 개혁보다 정치문화적 구별짓기에 열올린 점도 무시못할 이유 중 하나였다.

결론적으로 이명박은 지금 사면초가 상황이다. 정권 2년차에 우파들에게조차 공격받고 있다. 하루종일 이명박 욕 하는데만 열 올리는 사람한테는 참 고소한 일이겠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독선'을 넘어 '자폐'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이명박의 최근 발언, "저는 정치에 소질도 없고 잘 모른다"라는 발언은 정치적 자폐의 명백한 징후로 보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만큼이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 이렇다 할 대안정치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사태를 더욱 절망적으로 만든다. 개혁진영의 개편은 기정사실로 보이지만 여전히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 그 모든 움직임은 박근혜라는 '깔대기'로 수렴될 뿐이다. 우파들이 '반MB'를 외치고 있다. 우리도 '반 MB'를 외치고 있다. 바야흐로 명실상부 '전국민의 반MB' 시대다.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이명박의 논리, 치안의 논리, 경영의 논리, 정치공학의 논리 모두가 '정치가 아닌 무엇들'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반MB'를 외치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자문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