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8. 23:01

갸우뚱한 그 균형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38958.html

김진석의 <기우뚱한 균형>이란 책을 읽어보진 않아서 뭐라 하기가 그런데, 강준만은 정말 '기우뚱한 균형'이 없어서 한국사회가 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칼럼에 따르면 '기우뚱한 균형'이란 것은 그냥 중간에 서있기만 하는 중도와는 다르다고 한다. 이를테면 '우충좌돌'하는 능동태-진행형으로서의 중도주의적 관점과 태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중립적 지식인에 대한 로망이야 이해하겠지만,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이끌었던 엘리트들이야말로, 정확히 지금 강준만이 이야기하는 그 '기우뚱한 균형'류의 주장을 언제나 강조해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 궁금하다. 그리고 그 10년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도.

물론 진보진영 일각에서 툭하면 제국주의나 파시즘을 들먹이는 개념의 빈곤 혹은 레토릭의 인플레에 대해서는 나도 무척 짜증이 나지만, 그것이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나이브한 개념의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다. 강준만이 칼럼에서 결론격으로 내미는 사회적 대타협, 이것은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줄기차게 많이 나온 얘기이고, 내가 알기로 정권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시도는 실패했는가.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근본주의적 투쟁만 일삼아서? 틀렸다. 엄청난 수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정권에 힘을 실어주었다. 반면 비정규직 투쟁은 격렬해질수록 더 격렬하게 밟혔다. 매년 열리던 비정규직대회는 언제나 선혈낭자한 생지옥이었다. 그때 적지 않은 수의 이른바 중립적 지식인들이 침묵하거나 "시대가 변했는데 아직도 폭력투쟁이라니"라며 조소를 보냈다. 가장 극렬하게 싸우던 노동자 집단을 정부가 알아서 밟아주는데 부자들과 대기업들이 왜 타협을 하겠는가. 그들이 스웨덴 형 대타협에 관심있었던 건, 북유럽형 선진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직 자본을 거의 무상으로 세습해줄 권리를 공식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한국사회가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정말 알고 싶은가? 그놈의 '기우뚱한 균형'류 주장을 입에 달고살던 이들이 처음부터 '개혁'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정권초기 관료들과 기업의 아우성 때문에 자고 일어나보면 증발하던 개혁정책들이 증거다. 탄핵을 촛불로 막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만 했던가. 답은 간단하다. 그냥 편한 길로 간 것이다. 기업-우파-관료들은 직접적인 위협이었지만, 진보좌파는 실질적인 위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의 문제'를 담론전략의 문제로 전치시켜버리면 '기우뚱한 균형'과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강준만이 그리 순진한 학자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 칼럼을 통해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