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8. 20:47

기축늑약, 그리고 광어논란

어제 모 기자님과 서로 다른 출판사의 편집자 두 분과 함께 새벽까지 술을 때려먹었다. 다들 비슷한 시기 같은 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동년배인데다 '글장사'하는 사람들이라 할 얘기가 참 많았다.  내가 약간 과장된 이야기를 해버려서 술자리에 돌연 광기가 번들거리기 시작하더니 막판엔 메모지에다 각서를 써서 나에게 서명을 하라 윽박지르는 참극이 벌어졌다. 전부 술에 취해 있었으니 가능한 시트콤인데, 정작 각서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저는 2009년 안에 반드시 이런이런 내용의 책을 집필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였던 것 같다. 내가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냐"며 종이를 확 낚아챈 뒤 구겨서 어딘가에 숨겼는데 모 기자가 그걸 다시 찾아내는 바람에 결국 서명을 하고 말았다-_-;; 역시 맞고 자란 나는 그런 폭력적인 공기에 약했던 거다. 이제부터 그 사건을 '기축늑약'이라 칭하기로 한다.

사실 그날의 주된 화제는 따로 있었고 다들 공감하며 즐겁게 떠들고 마셨다. 그런데 어쩌다 광어 얘기가 나왔다. 닭도리탕 먹고 광어 얘기가 왜 튀어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자연산 광어가 확실히 양식보다 맛있긴 하고, 눈으로 쉽게 구분하는 법은 배를 보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자연산은 비교적 균질한 모래바닥에서 일정 영역을 차지하고 서식하므로 배가 민짜로 하얗고, 양식은 비좁은 공간에 서로 겹쳐진 채 길러지는 경우가 많아서 배에 얼룩이 생긴다, 뭐 이런 이야기다. 회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상식으로 통하는 이야기라서 나도 그동안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던 내용이다.

그 순간 바닷가 출신인 모 기자가 강하게 태클을 걸었다. 자연산 배에 얼룩이 있고 양식 광어 배가 민짜라는 것이다. 오잉? 그, 그럼 내가 반대로 알고 있었던겨? 워낙 강하게 주장을 해서 나도 살짝 자신감이 없어질라 그랬다(이 인간 평소에 조용조용해서 목청이 그렇게 좋은줄 몰랐다). 모 기자는 그러면서 자연산이라고 파는 것들도 사실은 양식이나 매한가지라고 덧붙였다. 자연산이라고 파는 광어가 실은 반양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은 나도 어느 정도 동의가 됐다. 치어방류로 인해 자연산이나 양식이나 종이 획일화된 점도 맞는 말이다. 자연산과 양식, 또는 양식과 반양식의 맛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종자가 달라서가 아니라 먹이의 차이라는 점에도 서로 동의를 했다. 그런데, 자연산/양식산의 구별법은 서로 반대로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래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는 비뚤어진 성격이라, 집에 와서 '광어 배'로 검색까지 했다. 나 역시 바닷가 출신이고 분유 떼자마자 각종 희귀 어패류를 섭렵해온 사람이다. 이건 자존심(?) 문제인 거다. 확인해보니 내 말이 맞았다. 물론 양식광어도 기르는 환경이 자연산과 비슷하다면 배가 민짜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산 광어의 배에 얼룩이 있다는 주장이 틀렸음에는 변함이 없다. 모 기자께서는 이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시게... (농담같은 글이니 굳이 댓글 다실 필요는 없삼)ㅎㅎㅎ 아래는 참고링크.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1&Total_ID=3156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