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11. 17:56

'기레기'들에 관한 쓸데없는 잡감

유사언론, 유사보도라는 표현이 유행이다. 지상파는 거의 전두환 시절로 돌아갔다. 내가 전두환 시절을 살아봐서 안다. '거의' 돌아갔다. 더 나빠진 면도 있다. 기자들이 광고 걱정하며 기사를 쓰는 풍경 말이다. 물론 예전에도 그런 일은 있었다. 그러나 수치스럽다는 감각이 존재했다.  '내지르는' 후배에 대한 선배들의 애정이나 지지도 실은 그런 감각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기자가 광고를 따러 다니는 풍경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옛날이 좋았다'는 식의 미화는 물론 아니다. 난 언론사나 기자들이 과거에 비해 내부관행이나 개인의 역량이란 측면에서 훨씬 진보했다고 생각한다. 


정보통신기술, 미디어환경의 변화는 분명 중대한 변수다. 그러나 무엇보다 언론이 이런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것은 현실권력, 대중, 언론 삼자가 서로를 핑계로 자신의 질적 하락에 조금씩 너그러워지고 또 조금씩 용서해버렸던 역사가 상호작용하고 축적된 결과다. 


여전히 보석 같은 기사들, 출중한 기자들이 즐비한 언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중은 외면하고 권력은 탄압한다. 팩트 체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칼럼 모음들, '찌라시'에 돌아다닐 법한 음모론을 모아다 '신내린 예언'으로 과장하는 팟캐스트들이 '대안언론'을 표방한다. 가장 저열한 기사, 가장 저질인 기자들이 "기레기"란 이름으로 조롱거리가 되며 미디어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 


미디어란 모순적인 공공재다. 미디어는 철저하게 민영화되어야 비로소 공공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민영화는 사유화와 다르다.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인민이 공동소유하고 운영하는 본래적 의미의 민영화다. 미디어는 최종심급이 되면 절대적으로 타락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서로를 감시할 머리가 셋 달린 켈베로스의 개가 되어야 한다. 자고로 '영물'을 만드는 데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자본이 필요하고 인민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둘 중 하나라도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우리에게 '제대로 된 언론'에 대한 합의라는 게 애초에 존재했던가? 


어떤 이들은 '이제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시대'라며 낡은 형식의 언론 모델이 종언을 고했다고, 혹은 종말에 가까워졌다고 선언한다. 기성언론 모델이 너무 낡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데 전면적으로 동의한다.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동감이다. 나 또한 창발적 개인들이 기존 미디어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 생각한다. 충분할 정도로 많은, 충분할 정도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충분할 정도의 여가를 확보한다는 전제만 충족된다면 말이다.  

2013. 12. 26. 06:53

'참여정부는 철도 민영화를추진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한 단상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710271655650498&id=100000030108711



오건호 박사(이하 오건호)의 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진행중이어서 잠깐 정리해둔다. 오건호는 김규항 등의 주장, 즉 철도청의 공사화가 곧 민영화 단계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지인을 통해 김규항씨의 12월 24일 경향 칼럼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페북에서 비슷한 평가를 하는 다른 페친도 보았다. 김규항씨 칼럼을 보자.

"철도 민영화는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철도를 4단계로 민영화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1단계는 철도의 시설부문과 운영부문 분리, 2단계는 철도청을 철도공사로 전환, 3단계는 철도공사의 경영 개선, 4단계는 철도 운영에 민간 참여로 경쟁체제 수립. 이명박 정부는 철도 민영화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이어받아 4단계를 추진하고 있다."([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 비판적 해소). 

여기서 1~3단계는 한국철도공사법에 의한 한국철도공사 설립을 가리키는데 철도청의 공사화를 민영화 단계로 간주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오히려 한국철도공사 설립으로 철도운영은 공사체제로 법제화되었다. 

논점은 4단계인데, 아마도 노무현정부에서 제정된 철도사업법(면허 조항)에 민간참여가 허용되었다고 이해해 그리 평가하는 듯하다. 하지만 철도사업법 모법인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철도운영 신규참여의 대상으로 철도공사가 포기한 폐지노선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모법의 취지를 무시하고 철도사업법의 면허 조항을 왜곡해석하는 게 이명박, 박근혜정부이다. 지금 수서발 KTX 면허 발급이 위법이라고 우리가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정부의 철도관련법에 따르면, 철도공사 포기노선, 민간투자사업법에 의한 민자철도 이외에는 제3자가 철도운영을 맡을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법제정 취지 역시 그러했다. 이것을 철도민영화라고 볼 수 없다. 

정리하면, 노무현정부에서 철도의 민간참여 로드맵이 추진되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철도민영화 세력들의 왜곡 논리일 뿐이다."




2004년 버전의 철도산업발전 기본법을 지금 내가 전부 참고할 수 없어서 논의가 제한적이지만, 본문과 댓글까지 포함해 오건호의 논리는 대충 다음과 같다. 


1. 참여정부 당시 제정된 법의 취지는 민영화가 아니었다

2.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수서발 KTX 면허발급은 철도사업법의 왜곡해석이다

3. 그런데 2005년 6월 이후 건설된 노선에 미국자본 참여가 허용되게 한 한미 FTA 조항이 더 심각한 문제다. 

4. 평택-부산 노선은 2005년 6월 이전 노선이니 수서-평택 노선으로만 미국자본참여를 한정해 사실상 무력화시켜야 한다


사실관계와 별론으로 이 논리는 현 상황에서 전술적 가치가 있다. 철도파업 관련한 최근 문재인의 정권비판 발언이 참여정부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극우언론과 새누리당에 의해 연일 두들겨 맞고 있다. '너도 민영화 추진했으면서 정권 못잡으니 이제와 민영화 반대하는거냐'는 비난과 조롱이다. 오건호의 논리는 이런 비난에 방어논리를 제공해주고 전선을 좀더 또렷이 그어줄 수 있다.


댓글에서 (참여정부보다 왼쪽 성향의) 여러 사람들이 오건호의 주장에 즉각 반발했다. 지금까지 진보/개혁 진영의 민영화 3단계론 내지 4단계론은 시설/운영 분리를 민영화 1단계로 설명해왔는데 그걸 민영화 단계가 아니라고 하니 참여정부 '실드'가 아니냐는 것. 실제로 대부분의 철도 민영화 사례에서 시설/운영 분리가 선행되기도 했고 말이다. 


내 생각은 현재 이렇다. 참여정부 당시 제정된 철도사업법의 취지가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은 명시화되지 않은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취지는 그렇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현실적으로 취지를 배반해버리면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상당수 법과 제도가 그런 운명에 처한다. 오건호는 참여정부 당시 철도사업법에서 철도 신규참여 노선이 철도공사 포기노선 등에 한정된다고 했지만 철도공사가 정권 및 정부의 압력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지배구조 하에서 노선은, 특히 적자노선일 경우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포기'될 수 있다. 참여정부 당시 철도 민영화의 완결이 결과적으로 저지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참여정부의 '선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불법파업'을 감수한 철도노조의 격렬한 저항과 진보진영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참여정부 철도관련 정책의 취지가 설령 민영화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민영화로 가는 2차선 도로를 4차선 내지 8차선으로 넓힌 것만큼은 사실이 아닐까.


참여정부의 책임은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건호도 지적했지만 철도 민영화에서 한미 FTA 조항이 더 위협적이다. 내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한미 FTA라는 이슈에서 가장 책임이 큰 정부는 참여정부다(공로가 크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백번 양보해 참여정부에게 철도 민영화의 의도가 없었다고 인정하더라도 한미 FTA의 주요 이슈에서 참여정부의 책임을 제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의도는 없었을지 몰라도 철도 민영화의 개연성과 위험성을 지나치게 높인 정권이 참여정부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오건호의 논리로 얼마든지 함께 철도 민영화에 반대해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민영화 반대 전선을 흐트리는 이적행위'라는 식의 폭력적인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철도 뿐 아니라 다른 공공부문의 사유화 위협 때문에라도 이 사회가 공공성을 얼마만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 치열하게 논쟁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를 들춰보지 않을 수 없다. 철도 민영화와 한미 FTA에 대해 새삼 참여정부 인사들의 성찰과 자기비판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